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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남북 관계3. 일본4. 미국5. 중화인민공화국6. 러시아7. 오스트리아8. 이란9. 인도네시아10. 기타 국가11.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이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 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2. 남북 관계[편집]

남북 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경제적으로는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업지구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6년 10월 13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여러 국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여 남북 관계는 소원(疎遠)해졌으며, 각종 남북 협력 사업이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2007년 6자 회담과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의 타결로 활발히 재개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11월 24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축소 등을 통보했다.[5][6] 통일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선 희박하지만 배제 못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11월 10일 인천 대청도 인근 해상 북방 한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대청해전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함정이 반파되었다. 그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의 도발이라고 주장하며 가혹한 군사적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하였다. 2010년 3월 26일에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277 천안을 어뢰로 침몰시켰다. 2010년 11월 23일에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하였고, 이 포격으로 대한민국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연평도 주민들이 인천 내륙으로 피난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박은 대한민국의 영해를 통과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항공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공을 통과하지 못한다.

3. 일본[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은 북일수교 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에 나서려 했으나 일본인 납북문제와 일제강점기 과거사 사과여부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북한은 한일합병에 대한 평가나, 배상문제·청구권문제 등에 대하여도 결말이 나지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1962년부터 일본은 한반도에 '두 개의 한국'이 사실상 존재하고 있다고 해 왔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이후에도 "한국의 주권은 한국이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휴전선 이남에 한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해 왔다. 따라서 일본측은 정경분리 원칙을 적용하여 북한을 실질적 존재로 취급하여 왔다. 한편, 배상 문제도 남한과의 조약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 수상으로는 처음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나눈 적이 있다. 2002년의 북일 정상회담에서 배상권을 상호 포기하고 일본으로부터 북한이 경제 협력을 얻는 방법에 합의했다고 발표됐었으나, 이후, 국교정상화 협상은 정지되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괴선박 사건으로 대표되는 북한의 국가 범죄에 대한 일본 여론의 반발과 핵 문제 등으로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는 북한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 일본은 현재 경제제재를 북한에 가하고 있다. 북한은 핵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테러국가 지정해제를 받고자 하였으나, 미국은 오히려 엄격한 제재조치로 전환하였다.

4. 미국[편집]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은 아직까지도 적대 관계에 있어 수교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행 안내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미국 대사관이 없습니다. 의료적·영사적 응급 상황이 발생한 미국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찾으세요."라고 기술하고 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도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이용한다. 2005년 북한 정부는 미국과의 조속한 수교를 바라지만 전면 수교에 앞서 초보 단계로 이익대표부를 상대국 수도에 개설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이익대표부(Interest Section)의 책임자는 정무공사(Charge d’affaire)다. 2007년 3월 5일 북한은 미국측에 조기에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 사무소를 개설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연락 사무소 설치의 전 단계로 평양의 외국 공관 가운데 한 곳을 이익대표부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후 이른 시일 내에 평양 주재 영국 대사관이나 스웨덴 대사관 안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하려고 했다. 미국은 외교관계가 없는 쿠바의 아바나에 스위스 정부의 법적 보호 아래 6명이 상주하는 이익대표부를 두고 있다. 북한의 초청으로 동료의원 3명과 함께 사흘간 방북했던 데이비드 앨튼 영국 상원이 2009년 2월 11일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미국의 스파이가 북한 외교관의 유전자를 채취, FBI가 보관하고 있다. 미국 대학생 2명이 평양프로젝트라는 계획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존 에버라드 전 주평양 영국대사는 "북한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혐오증은 예상보다 훨씬 큽니다. 미국보다 중국을 더 싫어합니다. 평양 시민은 의외로 미국에 대해서는 적대감이 크지 않아요"라고 강조하였다.

1969년 말부터 미국과의 대외관계에서 보다 유화적이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북한은 일본과 유럽 국가 등 대서방진영 외교를 한층 강화하였고, 미국과의 접촉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북한은 1969년 10월 29일 미국의 저명 일간지 뉴욕 타임즈에 김일성의 업적을 칭송하는 광고를 내고, 미국인들을 평양에 연달아 초청하였다.

2018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대한민국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미국 대통령인 도날드 트럼드에게 전달한 양국간 정상회담 제의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락하면서 양국간의 첫 북미정상회담(北美頂上會談)이 이뤄졌다. 하지만 회담 얼마 전인 5월 24일, 트럼프가 북한의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적개심, 경계로 인하여 회담을 취소하려 한다고 의사를 밝혔다가 이틀 뒤인 5월 26일에 갑자기 다시 회담수락을 하여 2018년 6월 12일, 역사상 최초로 정상회담이 현지 시각 9시에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이뤄졌다. 북한측 명칭은 조미수뇌상봉(朝米首腦相逢)이다.

5.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 6일 수교하였다. 1990년대 초 최악이었던 북중 관계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수교로 훼손된 관계 회복에 나서 지금껏 모두 7차례에 걸친 김정일의 방중과 장쩌민·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거치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상과 함께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 변수가 됐다. 천안함 사건으로 대북 경제협력을 단절한 이명박 정부의 5·24 조처로 경협 분야에서 북-중 경협이 남북경협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위화도와 황금평을 100년간 임대하였다. 2010년 12월 26일 중국은 나진항 4, 5, 6호 부두를 50년간 동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베이징에 북한 무역상이 1000명 정도 있다.

6. 러시아[편집]

김일성은 수 차례 소련의 지배자인 스탈린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자인 마오쩌둥을 만나 무려 48회나 남침 허락 내지는 전쟁 지원을 요청하였다. 공개된 구 소련의 문서에 의하면 애초에 스탈린은 조선인민군이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인민군의 실력이 미국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아직은 단독으로 전쟁을 치를만한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더러 미국과의 마찰을 두려워하여 무력 행사를 기피하였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수 차례 그를 설득하였고 스탈린 자신도 일부 연구자들이 옛 소련의 문서들을 근거로 주장하는 이론에 의하면, 미국을 시험하고 미국의 관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리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전쟁 원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하는 조건으로 김일성의 남침을 승낙하게 된다. 이리하여 스탈린은 북한에 강력한 군사적 원조로서, 소련의 무기들을 대량으로 북한으로 제공하였다. 그 후에, 스탈린은 김일성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제관으로 옹립한 것을 후회했다.

7. 오스트리아[편집]

오스트리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는 영세중립국인 오스트리아와 공산 진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74년 12월 17일 수교를 맺은 데서 출발한다. 오스트리아는 전 대통령 하인츠 피셔가 조선·오스트리아친선협회 회장을 맡는 등 서유럽 국가 가운데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두 국가의 총교역량은 132.5만 유로 규모로 집계되었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휴전 상태에 놓인 대한민국과도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21년에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8. 이란[편집]

이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관계는 각국 언론을 통해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양국 외교의 실리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인해 이란이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꾼 이후에 설립되었다.

9. 인도네시아[편집]

인도네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비동맹 운동 회원국이다. 인도네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좋아하는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핵 6자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재자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3년에 영국방송협회 조사로 인도네시아인들은 42%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긍정적”이라고 말한 반면, 22%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정적”이라고 각각 말했다.

10. 기타 국가[편집]

  • 포르투갈 : 2017년 10월 12일 포르투갈은 북한의 잦은 미사일 도발로 인해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수교 후 42년 만에 공식으로 파기했다.

11.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