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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49대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Kamala Harris
파일:카멀라 해리스 사진.jpg
본명
카멀라 데비 해리스
Kamala Devi Harris
출생
1964년 10월 20일 (60세)
캘리포니아 주 앨러메다 카운티 오클랜드 카이저 병원
사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브렌트우드
국적
학력
하워드 대학교 (정치학 학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 (법무부 박사)
가족
아버지 : 도널드 해리스
어머니 : 샤말라 고팔란
배우자 : 더글러스 엠호프
종교
침례회
소속 정당
제49대 부통령
임기
2021년 1월 20일 ~
대통령
전임
마이크 펜스 (제48대)
1. 개요2. 상세3. 생애4. 경력
4.1.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4.2.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4.3. 미국 상원의원
5. 2020년 대선
5.1. 대통령 선거 운동5.2. 부통령 선거 운동
6.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카멀라 데비 해리스는 미국의 변호사 출신 제49대 부통령이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부통령, 아시아계 미국인 부통령이다.

2. 상세[편집]

1964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인도(타밀)계와 흑인의 혼혈이다.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영어판)은 인도의 타밀족 가족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유방암 전문 과학자였다.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카인으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현재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과의 명예교수이다. 카멀라 해리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서 자랐으며, 미국 사회에서도 해리스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긴다.

1986년에는 워싱턴 D.C. 하워드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1989년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헤이스팅스 법무대학원 법무석사(JD)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990년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에서 일했으며,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제27대 샌프란시스코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제32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2017년 1월 3일부터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 의원을 역임하고 있다. 2019년 1월 21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경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으나, 선거 자금 부족으로 12월에 중도 하차했다.

2020년 8월 11일 조 바이든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출신 부통령이 되었다.

3. 생애[편집]

1964년 10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유전자에 관한 연구와 유방암 연구 활동을 한 생물학자인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1958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영양 및 내분비학 대학원생으로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고팔란은 196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 아버지 도널드 J. 해리스는 스탠퍼드대 경제학 명예교수로, 1966년 UC 버클리 대학 대학원 공부를 위해 1961년 미국에 도착하여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리스는 여동생 마야와 함께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살았고, 잠시 버클리 중심부의 밀비아 거리에 살았으며 그 후 웨스트 버클리에는 밴크로프트 웨이의 복층으로 불리며 상당한 흑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 입학시기에 버클리대학의 포괄적 차별 철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해리스는 지원을 받아 버클리대학의 북버클리대학 캠퍼스에있는 부우한 지역의 공립학교인 사우전드 오크스 초등학교에 다녔다. 이 학교는 인종차별시기에 95%의 백인 학교였고, 인종차별 철폐 계획이 발효된 후 비로소 흑인의 비율이 40%가 되었다.

한 이웃의 교인이 정기적으로 해리스 자매를 오클랜드의 한 흑인 교회에 데리고 갔고, 자매는 어린이 찬양단원이 되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을 힌두교 신화에 소개시켜 가까운 힌두교 신전으로 데리고 가서 가끔 노래를 불렀다.

어렸을 때, 해리스 자매는 인도 남동쪽 해안 마드라스(현 첸나이)에 살던 어머니 가족을 여러 번 방문했다. 그녀는 민주주의와 여성 권리에 진보적인 관점을 그녀에게 깊은 알려준 인도 은퇴 공무원인 외할아버지 P. V. 고팔란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해리스는 그녀의 성인 생활 동안 내내 그녀의 인도인 이모들과 삼촌들과 연락을 유지했다. 또한 해리스은 자메이카에 있는 아버지의 가족을 방문했다.

카멀라 부모님은 그녀가 7살 때 이혼했다. 해리스 자매는 주말에 팰로앨토에 살던 아버지를 방문했을 때, 이웃의 다른 아이들은 해리스 자매가 흑인이라 함께 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리스와 자매가 12살 때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로 이사를 갔고, 샤일랄라는 맥길 대학 부속 유대인 종합병원의 연구 및 교수직을 수락했다. 해리스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초등학교인 노트르담데데스 니게스를 거쳐 1981년 퀘벡 주 웨스트마운트에 있는 웨스트마운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1년 해리스 부통령은 워싱턴 DC에 역사적으로 흑인들의 하버드 대학이라 부르는 하워드 대학에 다녔다. 하워드 총리 시절 앨런 크랜스턴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의 우편물실 사무원으로 인턴 생활을 하며 경제학회를 이끌었고 토론팀을 이끌고 알파 카파 알파에 합류했다. 해리스는 1986년 하워드를 정치학과 경제학으로 졸업했다.

그 후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헤이스팅스 법학전문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LEOP)에 입학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UC 헤이스팅스에 있는 동안 그녀는 흑법학생회 지부장을 지냈다. 그녀는 1989년에 쥬리 박사와 함께 졸업하였고 1990년 6월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4. 경력[편집]

1990년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앨러미다군에서 지방 검사로 고용되어 "올라가는 길에 있는 유능한 검사"로 주목받았다.

1998년 2월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 테런스 홀리난은 해리스를 지방 검사 보조로 채용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른 다섯 명의 변호사를 감독하면서 직업형사과장이 되었고, 그곳에서 살인, 강도, 강간, 성폭행 사건, 특히 삼진 사건을 기소하였다. 해리스는 2000년, 소년법원이 아닌 상급법원에서 소년 피고인을 재판할 수 있는 선택권을 검사들에게 부여하는 발의안 제21호("제21호")를 놓고 할리난의 조수인 Darrell Salomon과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가 그 조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살로몬은 프로프21에 대한 언론 질의를 해리스에게 지시하는 것에 반대하여 사실상 좌천인 그녀를 재지정했다. 해리스는 살로몬을 고소하고 그만두었다.

2000년 8월, 해리스는 시 변호사 루이스 렌느에서 일하는 샌프란시스코 시청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해리스는 아동학대와 방임 사건을 대표하는 가정 및 아동 서비스 부서를 운영했다. 렌은 그녀의 D.A. 캠페인 기간 동안 해리스의 지지선언을 했다.

4.1.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편집]

해리스는 2002년 현 할리난과 빌 파지오를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에 출마할 준비를 하면서 베이뷰 근교에 선거사무소를 차렸다. 해리스는 세 후보 중 가장 덜 알려진 후보였지만중앙위원회를 설득하여 할리난으로부터의 지지를 보류시켰다. 해리스와 할리난은 각각 33%와 37%의 득표율로 총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결선투표에서 해리스는 절대 사형을 구형하지 않을 것과 강력범죄의 경우에만 삼진범들을 기소할 것을 약속했다. 해리스는 윌리 브라운 전 시장,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 작가 겸 만화가 에런 맥그루더, 코미디언 에디 그리핀과 크리스 록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해리스는 그의 연기를 공격함으로써 할리난과 차별화했다. 그녀는 주 전체 평균 83%의 유죄판결율에도 불구하고 중범죄에 대한 그의 52%의 유죄판결률을 강조하며 기술적으로 서툴러 그의 공직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했다. 해리스는 자신의 사무실이 도시의 총기 폭력을 막기 위해, 특히 베이뷰와 텐더로인 같은 가난한 동네에서 충분히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가정폭력의 경우 유죄판결을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의지를 공격했다. 해리스가 56%의 득표로 승리하여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로 선출된 최초의 유색인종이 되었다.

해리스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보다 더 낫고 더 비용 효과적인 처벌이라고 말했으며, 이로 인한 비용 절감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만 1,000명의 경찰관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해리스는 절대 사형을 구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사망한 후, 다이앤 파인스타인(및 전 샌프란시스코 시장) 미국 상원의원 바버라 복서, 오클랜드 시장, 제리 브라운, 샌프란시스코 경찰협회 등이 해리스에게 그 입장을 번복하라고 압력을 넣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4.2.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편집]

2011년 해리스는 2010년 미국의 압류 위기를 계기로 모기지 사기 타격대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해리스는 퀘스트 진단으로부터 2억4100만 달러, 그리고 SCAN 의료 네트워크로부터 3억2300만 달러의 캘리포니아주 메디칼과 연방 메디케어 지불을 초과하여 캘리포니아주 허위 청구법 역사상 가장 큰 두 건의 회수를 받았다.

해리스는 2013년 존 페레스 국회의장, 다렐 스타인버그 상원 의장과 함께 공격적인 압류 전술에 대항해 전국적으로 가장 강력한 보호책 중 하나로 여겨지는 권리장전을 도입했다. 주택소유자 권리장전은 "이중 추적"(수정 및 압류를 동시에 처리)하는 관행을 금지하고 주택소유자에게 대출기관에서 단일 연락처를 제공했다. Harris는 이 법안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택소유자들을 위한 9자구도의 합의안을 대부분 로보 사인 및 이중 트랙 남용과 더불어 대출 처리업자들이 신용 모기지 대금을 신속하게 지불하지 못한 경우, 이자율을 잘못 계산한 경우, 그리고 대출자들에게 부당한 수수료를 부과한 경우를 기소하는 경우로 달성했다.

해리스는 2013년 스티븐 므누신(당시 민간 시민) 미 재무장관이 이끄는 투자단체가 소유한 원웨스트은행을 캘리포니아주 압류법 위반으로 고발한 주 수사관들이 초안한 민원을 승인하지 않았다. 2016년 선거 때 해리스는 므누신으로부터 기부를 받은 유일한 민주당 상원 후보였다. 해리스는 므누신 장관이 원웨스트은행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유로 기부금을 받아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의 선거운동은 2019년 기소 불기소 결정이 원웨스트 소환 불능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의 언론담당 비서관은 원웨스트가 약탈적 대출을 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으며 해리스 상원의원은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법은 전적으로 그들 편이었고 그들은 연방 은행이기 때문에 주 소환장으로부터 보호받았다."

해리스는 2014년 잘못된 요금 청구, 만기일 전에 계약을 다 갚은 고객들에게 과다 청구, 사생활 침해 등의 혐의로 임대 소매업자 애런스 사에 대해 제기한 고소를 해결했다. 이번 합의에서 이 소매업체는 캘리포니아 고객들에게 2840만 달러를 환불하고 민사 벌금으로 340만 달러를 지불했다.

해리스는 2015년 취약계층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허위 광고와 기만 마케팅을 하고 학생·투자자·인증기관에 취업알선율을 잘못 전달한 혐의로 영리 후기 교육기업 코린트스칼리지스를 상대로 12억 달러의 판정을 받았다. 법원은 코린트인에게 8억 2천만 달러의 배상금과 또 다른 3억 5천만 달러의 민사 처벌을 명령했다.

해리스는 2012년 2월 애플, 아마존, 구글, 휴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인모션과 계약을 맺고 매장에서 판매되는 앱들이 사용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개인 정보를 공유하고 누구와 공유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을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이후 이 협약에 동참했다. 그해 여름 해리스는 사이버 프라이버시, 신원 도용, 데이터 침해와 관련된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프라이버시 집행 및 보호 장치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말, 해리스는 100명의 모바일 앱 개발자들에게 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사실을 통보하고 캘리포니아 주민에 의해 비호환 앱을 다운로드할 때마다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만들거나 2500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4.3. 미국 상원의원[편집]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으로 24년 만에 연임한 바버라 복서 상원의원이 2016년 임기 말 미국 상원에서 은퇴할 뜻을 밝혔다. 해리스가 처음으로 복서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밝힌 후보였다. 해리스는 2015년 1월 13일 공식적으로 선거운동 시작을 알렸다. 해리스는 선거 운동 시작 몇 주 후부터 최고 경쟁자였다. 퍼블릭 폴리시 폴링의 조사에 의하면 41% 대 16%의 지지를 얻은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과의 가상 대결에서 그녀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와 전 주 전체 선출직 공무원인 존 챙, 존 가라멘디, 빌 로키어, 개빈 뉴섬, 알렉스 파디야 등이 출마를 거부했다.

2016년 2월, 캘리포니아 민주당은 8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은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기 위해 전당대회에서 투표를 했다. 3개월 후,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그녀를 지지했다.

6월 7일 예비선거에서 해리스는 40%의 득표로 1위를 차지했고 대부분의 카운티에서 다수로 승리했다. 7월 1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은 해리스의 손을 들어줬다.

해리스 의원은 총선에서 로레타 샌체즈 의원과 맞붙었다. 2016년 11월 선거에서 해리스는 4개 군을 제외한 모든 군에서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샌체즈를 꺾었다. 승리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으로부터 이민자 보호를 약속하며 2016년 말까지 법무장관으로 남겠다는 뜻을 밝혔다.

5. 2020년 대선[편집]

5.1. 대통령 선거 운동[편집]

해리스는 2019년 1월 27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해리스는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에서 최고의 경쟁자이자 잠재적인 선두 주자로 여겨져 왔다. 2018년 6월, 그녀는 "제외하지 않는다"고 인용되었다. 2018년 7월, 그녀가 출마 가능성을 알리는 회고록을 출간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2019년 1월 21일 해리스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대선 전, 그리고 선거운동 기간 동안 #KHIVE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한 온라인 비공식 단체가 그녀의 출마를 지지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 공격으로부터 그녀를 방어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5.2. 부통령 선거 운동[편집]

해리스와 조 바이든은 2020년 8월 12일 러닝메이트 선정 발표 후 첫 유세 행사에 참석했다.

2019년 5월, 의회 블랙코커스 중진 의원들은 바이든-해리스 티켓 발행을 지지했다. 클라이번은 3월 초 바이든에게 러닝메이트로 흑인 여성을 선택하라고 제안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들은 충성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3월에 바이든은 러닝메이트로 여성을 선택하기로 약속했다.

뉴욕 타임스는 12일 해리스가 부통령 특유의 정치적 경험을 가진 유일한 흑인 여성인 만큼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6월 26일 CNN은 바이든의 수색 과정에 가까운 12명 이상이 엘리자베스 워런, 밸 데밍스, 키샤 랜스 보텀스와 함께 바이든의 4대 주자로 해리스가 꼽혔다고 보도했다. 2020년 8월 11일 바이든은 해리스가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인도계 미국인이며 제럴딘 페라로, 세라 페일린에 이어 세 번째 여성이다.

6.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