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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한민족은 대부분 한반도와 일부 그 주변의 만주, 연해주, 몽골 등지에 살면서 공동 문화권을 형성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동아시아계 민족이다. 한인으로도 부르고,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일본에서는 조선민족으로 부른다.

2. 명칭[편집]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반만년 동안 혈연적 동일성을 지니고 이어진 단일민족임을 강조한다.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민족의 고유의 왕조가 계속 지속되면서 오래 전부터 고유한 언어적ㆍ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민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언제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고조선과 동일한 시기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진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외에 기록은 확실치 않다. 즉 이런 제한된 기록에서 고조선 당시에 한반도 중남부에는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고조선과는 구분되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후신인 부여, 동예,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고조선과 진국의 구성원들 역시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등과 같이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와 달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민족이 전체 주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이다.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지닌 집단이기 때문에 여러 민족도 하나의 민족 집단으로 융화된다. 예를 들어 거란 전쟁에서 거란인들을 노예로 끌고 오기도 하였다. 오늘날 동일한 언어와 문화, 공동체 의식을 지닌 한민족으로 융화되었다. 곧 한민족 집단이 언제나 지배적 지위에 있으면서 여기에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한민족화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9]

한반도인들은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로 발전되어 나아갔다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의 유적은 대표적인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과 굴포리·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 석장리로 이외에도 연천 전곡리, 평안도의 검은모루 동굴 등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며 이곳에서 전기·중기·후기의 고대 한반도인들이 거쳐 간 흔적이 보인다. 이 유적의 4·5층의 것은 15만 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로 그 위층의 중기 구석기 문화는 4만~1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또 후기 구석기 문화층에 속하는 상층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따라 30,69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석기 문화가 상당한 기간 이어지고 구석기가 발전하여 신석기 문화를 가진 빗살무늬 토기가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발전하여 이른 민무늬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기하문토기 등으로 발전된다.한민족의 근간은 몽골족·만주족·터키족, 즉 ‘우랄 알타이어’ 계통족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에서 분파된 일족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이 문헌상으로 한이나 예맥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들은 북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선주민들을 구축하면서 동으로 이동하여 왔던 것 같다. 여기에서의 선주민이란 구석기 시대인과 즐문토기 문화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한국의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는 함경북도의 동관진과 굴포리·부포리, 충청남도의 공주 석장리 등지에 불과하나 앞으로 한강과 낙동강 및 수원·안성 등지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석장리의 유적이라고 최근에 논의되는바 이곳에는 전기·중기·후기의 선주민들이 거쳐간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되고 있다.

신석기 문화는 한국의 경우 약 1만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1500년쯤에 청동기 시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빗살무늬 토기 문화이다. 적어도 기원전 10세기 전부터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살기 시작한 예맥은 북방적 요소가 강한 청동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각처에서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사회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한민족의 구석기인들은 옆의 두 나라 일본과 중국과는 달리 평화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가 도래해도 그들의 문화와 양식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한민족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유전적 및 문화적으로 구석기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한국에 구석기 문화가 남아있다는 주장에는 다양한 근거가 존재한다. 단군 신화의 해석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을 평화적으로 통합해 그들의 유산이 남아있다고 한다. 구석기 시대의 인종을 정복하고 죽이는 대신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또 단군 신화의 이전에는 마고할미와의 분쟁을 다루지만, 마고할미가 다시 돌아와 타협하는 것으로 끝나는 신화가 존재한다. 중국과 일본의 신화와 비교했을 때 창세설화가 없으며, 어떠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존속 살해의 묘사가 없는 점과 인간형 신이 아닌 동물에 초점을 맞춘 것이 두드러진다. 이에 대한 해석은 주로 폭력보다는 타협을 추구하였으며 상상의 동시에 자연을 숭상하는 것을 추구하였다고 해석된다.

둘째는 단점으로 언급되곤 하나, 상상력의 부재라고 볼 수 있다. 구석기인과 신석기인들은 생물학적으로 현대 인간과 다른 종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것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상력의 여부이다. 생물학적으로 구석기인들은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신화에서는 괴물을 묘사할 때도 실존하는 동식물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인간과 똑같다는 묘사가 많이 있다. 중국의 상반신은 인간이지만 하반신은 뱀인 신과 일본의 해와 달을 형상화한 신이 있는 반면 한국은 현실의 인물을 신격화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신화에서 '외부인'을 '괴물'로 표현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민족이 외부인에 대한 관념이 개방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 한국에서도 판타지와 SF 등의 공상적인 요소는 인기를 끌지 못하며, 현실이 배경인 매체가 자주 만들어지며, 가상의 세계이더라도 인간만 등장하곤 한다. 한윤형 작가는 '상식의 독재'에서 한국 문화가 구석기적인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석기 윤리의식은 신석기 윤리의식와는 다르게 선천적 계급을 생각하지 않는 편에 속하며, 노조와 같은 집단보다 가족과 같은 소규모 집단을 중시하는 경향(부족주의)이 강하다. 이 문화의 최대 장점으로는 계급 차별을 반대하는 문화로, 최대 단점으로는 반골적인 성향이나 '학연, 지연, 혈연'으로 대표되는 비리로 발현된다고 주장한다.

3.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