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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연방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Commonwealth of Australia
파일:호주 국기.png
파일:호주 국장.png
국기
국장
기본 정보
수도
캔버라
국기
언어
영어
면적
7억 7,412만 2천㏊ (6위)[2023년기준]
인구
2,643만 9,111명 (55위)[2023년]
종교
기독교 43.9%
무종교 38.9%
회교 3.2%
힌두교 2.7%
불교 2.4%
기타 1.7%
불명 7.2%
상징
국가
아름다운 호주여 전진하라
(Advance Australia Fair)
국수
캥거루, 에뮤
정치
정치체제
영연방 왕국, 입헌군주제, 연방제, 의원내각제
국왕
찰스3세
연방 총독
데이비드 헐리
연방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집권여당
노동당
외교
UN
1945년 가입
OECD
1971년 가입
APEC
1989년 가입
국제 전화
+61
여행경보
전 지역 여행유의
1. 개요2. 국호3. 형성4. 지각5. 역사6. 사회
6.1. 복지6.2. 여가 활동6.3. 노동인권6.4. 민족6.5. 언어6.6. 종교
7. 자연환경8. 문화
8.1. 교육8.2. 스포츠
9. 경제10. 정치11. 정치 체제12. 행정구역13. 대외 관계14. 군사15.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줄여서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호주(豪州)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섬,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주권국이며 오세아니아에서 1번째,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다. 북쪽에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북동쪽에는 솔로몬 제도와 바누아투, 누벨칼레도니,피지,나우루 그리고 남동쪽에는 뉴질랜드가 있다. 수도는 캔버라이고, 주요 도시로는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호바트, 퍼스, 골드코스트, 애들레이드 등이 있다.

2. 국호[편집]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고대에 남반구에 있는 가상의 대륙을 이르던 말인 테라 아우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에서 유래했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여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영토에 적용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오스트레일리아는 1644년에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붙인 "뉴홀랜드(New Holland)"로 알려져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굳혀졌다.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도 과학 논문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듣기 편하고 다른 지명과도 잘 어울린다"라고 주장한 탐험가 매슈 플린더스에 의해 널리 퍼졌다. 몇몇 유명 지도 제작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지도에 표기했다.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1512-1594)는 단어 "climata australia"를 그의 1538년판 복심장형 지도에 사용했고, 그의 스승이자 공동저자였던 게마 프리시우스는 그보다 앞선 1540년에 사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1817년 4월에 총독 래클란 매쿼리가 배서스트 백작에게서 받은 플린더스의 장부 영수증을 승인했을 때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8개월 후 매쿼리는 곧 정식으로 채택될 것이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용을 식민성에 권장하였다. 1824년에 영국 왕립해군은 신대륙을 오스트레일리아로 명명한다는데 동의했다. 새로운 이름은 1830년 해로 제작처의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명"에 처음 공개되었다. 구어체로는 "OZ"와 "the Land Down Under" (줄여서 "Down Under")가 있으며, "the Great Southen Land", "the Lucky Country", "the Sunburnt Country", "the Wide Brown Land"로도 불린다. 정식 국호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며 한국어권에서 공식적으로 일컫는 국호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이다. 그러나 이름이 너무 길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스트리아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한자 음역인 '호사태랄리아주(濠斯太剌利亞洲)'를 줄인 호주(濠洲)라는 이름이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 대한민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양국 정부에서도 "호주"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3. 형성[편집]

모든 주요 초대륙의 일부였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 대륙의 분리와 함께 페르미안에서 곤드와나가 분리된 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페름기에서부터 백악기까지 장시간에 걸쳐 남극에서 분리되었으며, 마지막 빙하기가 기원전 10,000년경에 끝났을 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즈메이니아가 육지로부터 분리되었고 배스 해협이 형성되었다. 기원전 8,000년에서 6,500년 사이에 북쪽의 저지대도 바다에 잠겼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1년에 6-7센티미티씩 유라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4. 지각[편집]

얇은 테두리를 제외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지각의 평균 두께는 38킬로미터로 범위는 24-59킬로미터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서쪽에서 발견되는 아르차이아의 분화구는 중앙에서, 조산 운동의 퇴적층과 변성암, 화성암은 동쪽에서 발견된다.

5. 역사[편집]

18세기 말 유럽인들 이주 이전 최소 40,000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다고 여긴다. 1606년 네덜란드 공화국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한 이후 1770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지역을 자기 영토로 삼았으며, 1788년 1월 26일부터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식민지로 죄인들을 수송해 정착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민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인구는 차츰 늘기 시작했고, 계속 대륙을 탐험해서 다섯 개 자치 식민지를 추가로 건설했다. 1901년 1월 1일, 여섯 개 식민지가 연합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설립하였다. 모국인 영국과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다른 정체성을 점차 갖추었다. 1942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적용을 받아 행정적으로 모국과 분리되었으며, 1948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영국 국민은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을 사용하게 되었다.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 법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 의회의 오스트레일리아 내 입법권이 정지되었으며, 사법권도 최고재판소가 런던의 추밀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으로 옮겨짐으로써 영국과 남은 법적 종속관계를 단절하여 자주국가가 되었다.

6. 사회[편집]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은 석기시대와 똑같은 수렵생활을 영위한 데 지나지 않았으며, 식민지 당국은 그 노력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원주민 인구는 크게 감소하여 순혈종의 원주민 약 4만 명이 특별보호구에서 보호 생활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주민 구성을 생각할 때 원주민은 현실적으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주민은 모두 최초의 선대 이래 도래한 사람들이며, 현재 총인구 약 1,973만 중 96%가 유럽계 백인으로 구성되어 명실공히 ‘백인의 천하’라 해도 좋겠다. 그중 영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아 90%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이민에 의한 인구 증가를 꾀해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급속한 자원 개발,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고, 또한 1930년대의 낮은 출생률에 기인하는 인구 구성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이민 수용정책이 채용되었다. 이탈리아·그리스·네덜란드·독일 등지로부터의 이민이 많다. 한편 골드러시 때의 중국인 채광부와의 사이에 일어난 노동력의 덤핑·생활 정도의 저하 등의 문제가 얽혀서 발생한 백호주의 정책이 최근까지 채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여론과 아시아로 눈길을 돌린 이 나라의 입장 등으로 백호주의 정책이 파기되었다. 국어는 영어이다.

6.1. 복지[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된 복지국가이다. 사회보장제도는 고령자·신체장애자 등에 대한 연금과, 실업자·병약자·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수당 등이 있다. 그 밖에 여러 복지단체에 대해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주택정책이 잘 되어 있어 2008년 기준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주택 보급률은 70%를 조금 웃돌아 세대의 약 25%의 정도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영국계 주민이 많고, 영연방의 하나인 탓에 생활양식이 영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6.2. 여가 활동[편집]

대다수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퇴근 후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하루 중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한다. 크리켓·론 볼링·럭비 등의 스포츠가 활발하다. 이 외에도 골프나 경마, 수상 스포츠, 캠핑을 즐기고, 일요일 오후에는 지역적으로 있는 ‘아르보(오후라는 뜻)’라는 정원 맥주파티에서 서로 어울린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흔히 예고없이 친구와 친척집을 ‘잡담하러’ 방문하는 관습이 있고, 시골에서는 남녀가 따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느긋한 옥외생활의 분위기는 먹는 일과 그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이곳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식 바비큐라는 요리를 항시 즐기게 되었다. 많은 공원이나 해변가에서는, 점심때나 저녁식사시간이면 불에 굽는 스테이크와 갈비 소시지의 냄새가 환담소리와 맥주 깡통 비우는 소리와 어울려 은은히 새어 나온다. 야외식사의 풍습은 굴·게·바닷가재, ‘야비’라고 하는 민물가재 등을 파는 거리의 노점에서도 성행되고 있다. 도박도 널리 행해져 대규모 사교클럽이 인기가 있고, 행락을 위하여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6.3. 노동인권[편집]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노동조건을 몇 가지 갖고 있다. 그들은 일년에 4∼5주의 휴가와 연중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다수의 공휴일을 확보하고 있다. 또,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외에,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농업전시회, 국왕의 생일, 그리고 멜버른 사람인 경우에는 이 나라 최대의 경마행사인 ‘멜버른 컵’ 경기 때도 근무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찍 근무를 시작하여 오후 5시면 끝마침으로써, 몰려오는 파도 옆의 백사장에서 본격적으로 일광욕을 하는 등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만들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의 하나는, 태양에 바랜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십대의 젊은이들이 풍요와 넘치는 영양, 그리고 야외생활로 다져진 건강한 피부빛의 육체들을 가지고 서프보드와 윈드서핑 장비가 꽂힌 캠프용 자동차 주위에 모여 있는 모습이다.[5]

6.4. 민족[편집]

영국계가 주류이지만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며, 원주민 보호 구역에는 예전부터 거주하던 어보리진도 분포한다. 태즈메이니아 지역 애버리진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백인이 벌인 '인간사냥'으로 전멸당하고 말았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애버리진들도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약 40년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원주민 말살정책으로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해 백인 가정으로 입양하거나 강제수용당했다. 원주민 인권을 짓밟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원주민 탄압정책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어판에 강제수용당한 원주민 소년이 탈출하여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가 실릴 만큼 지식인들 지탄을 받았으며, 애버리진도 불행한 자신들 과거를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를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 강제 입양이나 수용당한 원주민 어린이는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데, 일부는 법정투쟁으로 2007년 9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최초로 보상결정이 내려졌다.

2007년까지 재임한 존 하워드 정권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정부의 민족말살정책이 이전정권 일이었다는 이유로 애버리진에 관한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2007년 12월에 집권한 케빈 러드 행정부는 2008년 2월 13일, 범정부 차원 첫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적극적인 사죄 활동을 시작했다.[7]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정부가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정부주도의 토착민 가정 및 사회 파괴행위에 관해 사죄의 뜻을 밝힘으로써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보였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1973년까지 백호주의을 고수하여 흑인 이민을 제한하였으나 노동력 부족 등 문제가 나타나자 1973년에 백호정책을 전면 폐지하였고, 그 뒤로 인종 차별은 줄어들었다.

6.5. 언어[편집]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은 영어를 쓰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영어(오지 잉글리시)는 미국 영어나 영국 영어와 구별되는 특징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0%는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가정에서 많이 쓰는 언어가 중국어(2.1%), 이탈리아어(1.9%), 그리스어(1.4%) 순이다. 이민 1세대나 2세대 상당수는 두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계 이주민은 베트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 구사자도 있다. 일례로 동남아시아에 온 주민은 베트남에서 온 주민처럼 고향 언어를 사용하는 점이랑 영어를 같이 구사하는 점도 있는 편이다.

처음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이 사용하는 약 200에서 300개 토착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약 70개 정도만 살아남았으며, 그 가운데 20개는 사멸 위기에 있다. 이들 토착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인구는 약 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02%이다.

6.6. 종교[편집]

헌법 제 116조에는 어떤 종교를 확립을 위해 종교의식 강요,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을 금지하고있다.

7. 자연환경[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호주/자연환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문화[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수백 개의 국립공원만큼이나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가 벌어지는데 마디그라 축제, 패션축제, 애들레이드 예술축제, 캔버라 꽃축제, 포도축제를 비롯하여 요트경기·자동차 경주·경마경기 등이 사랑을 받고 있다. 오팔과 진주가 유명하며 독특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예술로 관광객들에게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고 있다.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는 전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가 종교가 없으며, 오스트레일리아 헌법 조항 166조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가 그 어떤 종교를 수립하고, 그 어떤 종교적 의식을 시행하는 것 또는 그 어떤 종교의 자유적인 활동을 금지"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종교는 샌즈교 교파인 오스트레일리아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이며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실례로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에서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학교내 종교 교육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시했다가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출신의 작가인 콜린 매컬로의 소설 가시나무새들도 로마 가톨릭을 일부 배경으로 하고 있다.

8.1. 교육[편집]

영연방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정규 대학 학사 과정은 일반적으로 영국과 같이 3년제를 유지하고 있다. 석사 과정의 수료는 1~2년이, 박사 과정은 4~5년이 요구되는 것이 보통이다.

8.2. 스포츠[편집]

오스트레일리아식 축구와 럭비 리그, 크리켓, 축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축구의 경우는 2004년엔 8개 팀으로 프로 축구 리그인 A-리그가 창설되었다. (현재 현대 A-리그에는 10개 팀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연고를 두고 있다.)이 있다.) 올림픽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2번 연 적이 있었다. 크리켓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9. 경제[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GDP가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높고, 1인당 GDP은 6번째로 높은 대표적 선진국이다. 군비 지출은 12번째로 많으며, 인간 개발 지수에서 2위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는 삶의 질,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보호 등 다양한 국가간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G20, OECD, WTO, APEC, 국제 연합, 영국 연방, 앤저스(ANZUS), 태평양 제도 포럼에 가입해 있다.

10. 정치[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연방 의회 중심의 입헌 군주국이다. 1901년 연방 정부가 성립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 하에서 안정적인 자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준주 정부 사이에서 권력이 나누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방 중 하나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부 체제는 영국(입헌 군주제, 강령한 정당 규율)과 미국의 정치 체제(연방 주의, 성문 헌법, 선출된 상원과 강력한 양원제)의 요소들과 독특한 자신들만의 특징들을 결합한 것이다.

연방 정부는 세개의 부서로 분리된다.
  • 입법부: 군주, 상원 및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의회
  • 행정부: 의회의 추천에 따라 정부 기관장이 임명한 총리 및 기타 국무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의 결정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연방 집행 위원회.
  • 사법부: 오스트레일리아 고등 법원과 다른 연방 법원, 의회의 추천에 따라 행정 장관이 임명하는 판사

찰스 3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국왕으로 군림하며 연방 정부의 총독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주지사들에 의해 대표된다. 주지사들은 국왕의 장관들의 조언에 따라 관습법을 제정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총리 및 연방 집행 위원회의 행위에 대한 법적 명목상의 지도자로서 정부 장성이 행동을 취한다. 정부 수반은 이례적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총리의 요청을 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75년 헌법 위기 당시 휘트람 정부의 해임이었다.

상원에는 76명의 상원 의원이 있다.(각 주에서 12명, 준주에서 2명) 하원에는 151명의 하원 의원이 있으며, "인구에 따른 소선거구에서 선출된다. 각 선거구는 최소 5석을 보장 받는다. 양원의 선거는 3년마다 동시에 실시된다. 준주 출신을 제외한 상원의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6년으로, 하원 선거 주기에 맞춰 선거를 치른다.

태즈메이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를 제외한 모든 하원 선거는 선호투표제, 상원은 비례대표와 결합된 이양식 투표제이다. 18세 이상의 모든 유권자는 의무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하원의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당수가 총리가 된다. 많은 지지를 받은 정당이 없는 경우에는 헌법에 따라 총독이 총리를 임명하며, 의회의 신임을 잃은 경우에는 파면한다.

일반적으로 정부, 연방 정부, 주 정부에는 노동당과 자유당, 국민당이 이루는 보수연립(Coaliation), 두개의 주요 정당으로 나뉜다. 보수 연합은 중도 우파, 노동당은 중도 좌파로 간주된다. 무소속 의원들과 몇몇 군소 정당들은 주로 상원에서 표를 얻었다.

가장 최근의 연방 선거는 2019년 5월 18일에 열렸고 그 결과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 연합이 정부를 유지하게 되었다.

11. 정치 체제[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 캐나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과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국가원수는 찰스 3세 국왕을 대표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며,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연방 성립 이후부터 대의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6개 주와 2개 준주, 6개 특별 지역이 있고, 약 2,290만 인구는 대부분 동쪽 지역에 밀집해 있으며, 도시화 비율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다.

12. 행정구역[편집]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뉴사우스웨일즈(NSW), 퀸즐랜드(QLD),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A), 태즈메이니아(TAS), 빅토리아(VIC),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WA)의 6개 주와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ACT), 노던 준주(NT)의 2개 준주가 있다. 연방 전부가 준주 정부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준주는 주와 거의 동일하게 기능한다.각 주와 준주에는 각각의 의회(노던 준주,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 퀸즐랜드는 단원제, 나머지 주는 양원제)가 있다. 하원은 입법 의회로 알려져 있고, 상원은 입법 회의로 알려져 있다. 각 주의 정부 수반은 총리이고 각 준주의 수반은 지사이다. 국왕은 각 주에서 주지사로, 노던 준주에서는 행정관으로 대표된다. 연방 정부에서 국왕의 대리인은 총독이다.

헌법에 따르면, 각 주는 원칙적으로 모든 영역에 대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전체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연방 의회는 51조에 명시된 영역 내에서만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 의회는 교육, 형법, 주 경찰, 보건, 운송 및 지방 정부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연방 의회는 이러한 분야의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연방 법은 역설적으로 주 법보다 우위에 있다. 또한 연방 정부는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주정부에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영연방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영역 내에서 특정 입법 안건을 추구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재정적 수단을 제공한다.

연방 의회는 슈모어와 카르티에 제도,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 크리스마스섬, 코코스섬, 코럴해섬, 허드섬과 맥도날드섬, 저비스 베이 준주 등의 외부 지역을 직접적으로 관리한다. 매쿼리섬은 태즈메이니아, 로드하우섬은 뉴사우스웨일즈가 관리한다.

13. 대외 관계[편집]

수십년간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교 관계는 ANZUS 조약을 통한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창립 멤버인 ASEAN, 태평양 제도 포럼, 태평양 공동체를 통한 아시아·태평양과의 관계 발전 의지 속에 추진되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5년 동남아시아에서 우호 협력 조약을 체결한 것에 이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취임식을 가졌고,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6회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연방 정부 수반들이 협력을 위한 주요 포럼을 제공하는 영연방 국가의 일원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제 무역 자유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케언스 그룹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의 설립을 이끌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으로 국가 간의 주요한 자유 무역 협정을 추진해 왔다. 미국 자유 무역 협정(FTA)과 뉴질랜드와의 긴밀한 경제 관계 무역 협정(Close Economic Relations), 중국, 일본, 대한민국,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자유 무역 협정(FTA)을 실시함과 동시에 2015년 11월 현재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을 의회에 상정하고 있다. 카티온

오스트레일리아는 트랜스-태즈만 여행 협정(Trans-Tasman Travel Arrangement)에 따라 뉴질랜드와 두 나라 간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성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나라들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많은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중에서도 뉴질랜드와는 혈맹과도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ANZAC 군으로 참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주재 뉴질랜드 고등판무관은 뉴질랜드 외교관 중에서도 가장 고위직 인사가 맡는 것이 관례이며, 캔버라의 고등판무관 사무소는 캔버라 의회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 영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는 지역 방위 협정인 5개국 방위 협정(Five Power Defence Agreements)의 당사자이다. 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다자 간 협력에 적극적이며 60여개국이 원조를 지원하는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05-06년도에 25억 오스트레일리아달러의 개발 지원을 제공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2년 글로벌 개발 센터의 개발 기여도에서 종합적으로 15위에 올랐다.

14. 군사[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호주 방위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문서 출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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