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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허균 | |
許筠 | |
출생 | 1569년 12월 10일 (조선 강원도 강릉도호부) |
사망 | 1618년 8월 24일 (조선 한성부) |
자 | 단보(端甫) |
호 | 교산(蛟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 |
본관 | |
부모 | 아버지 허엽, 어머니 강릉 김씨 |
가족 | 형 허성, 허봉, 누나 허난설헌 |
종교 | |
주요 저서 | |
1. 개요[편집]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호민)뿐이다."허균, 《호민론》 중에서
2. 생애[편집]
2.1. 성장과 가계[편집]
2.2. 관직 생활[편집]
2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외교 문서 작성에 탁월하여 명나라 사신의 접대(원접사 종사관) 등에서 활약하며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하여 기생과 어울리거나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특히 어머니의 상중에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러나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하여 기생과 어울리거나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특히 어머니의 상중에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한 일화가 유명하다.
2.3. 혁명가? 혹은 역적?[편집]
3. 사상 및 업적[편집]
3.1. 적서차별 철폐[편집]
스승 이달과 서얼 친구들의 영향으로 적서 차별 철폐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의 저서 《유재론(遺才論)》에서는 "하늘이 재주를 내리는데 신분으로 사람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라며 인재 등용의 개방을 역설했다.
3.2. 민본 사상 (호민론)[편집]
《호민론(豪民論)》에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나누고, 그중 사회를 뒤엎을 힘을 가진 '호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왕조 중심의 사회에서 백성을 역사의 주체로 본 파격적인 사상이었다.
3.3. 종교적 개방성[편집]
4. 주요 저서[편집]
- 성소부부고: 그의 시와 산문을 엮은 문집. '부부(覆瓿)'는 '장독 덮개로 쓰일 만큼 쓸모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겸손(혹은 자조)을 담은 제목이다.
- 도문대작: 조선 팔도의 명물 음식을 기록한 책. 유배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그리워하며 썼다고 한다. (일종의 맛집 가이드)
- 한정록: 은둔과 한적한 삶에 대한 글을 모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