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r4판)
[주의!] 문서의 이전 버전(에 수정)을 보고 있습니다. 최신 버전으로 이동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조선중기 김치후께서 순조 때 통정대부로 정3품 벼슬을 받은 승정원 우승지에 올라 왕의 국사를 도왔다. 그의 뿌리는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신흥리로 조상의 음덕으로 고을을 터전삼아 후손들이 번창하였으나, 조선 말 청일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할 떄 후손의 안녕을 위해 그의 증조모와 조부모께서 문중의 일부 친척과 함께 1894년에 피란하였고, 現 출생지에 정착하였다고 그의 묘비문에 새겨져 있다. (2017년 립(立))
1923년 6월 28일 경상북도 영주에서 출생하였고 경성부의 연희전문학교 2년을 수료한 후 일본군 학도병으로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중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육군 소위 임관 하였으며, 같은 해 1946년 대한민국 육군 중위 진급하였고 그 후 1969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육군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다. 그 후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하고 자유중화민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를 지냈고(1971년 1월~ 1978년 12월) 1978년 12월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그 후 원효실업 회장을 지냈다가 물러났다. 2016년 12월 3일 오후 11시에 숙환으로 타계했다.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오현리 선산에 아내 서봉선 여사와 합장되었다.
1923년 6월 28일 경상북도 영주에서 출생하였고 경성부의 연희전문학교 2년을 수료한 후 일본군 학도병으로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중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육군 소위 임관 하였으며, 같은 해 1946년 대한민국 육군 중위 진급하였고 그 후 1969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육군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다. 그 후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하고 자유중화민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를 지냈고(1971년 1월~ 1978년 12월) 1978년 12월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그 후 원효실업 회장을 지냈다가 물러났다. 2016년 12월 3일 오후 11시에 숙환으로 타계했다.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오현리 선산에 아내 서봉선 여사와 합장되었다.
3. 재판[편집]
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