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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Ham United Football Club | ||
이름 | 데이비드 모예스 David Moyes | |
본명 | 데이비드 윌리엄 모이스 David William Moyes[1] | |
출생 | 1963년 4월 25일 (61세)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 |
국적 | 영국 | |
신체 | 키(신체)|키 185cm | |
직업 | 축구선수 (중앙 공격수 / 은퇴) [ 코치(스포츠)|축구감독 | |
소속 | 선수 | 이스로타반달라흐 베스트만나이야|ÍBV]] (1978 / 유스) 드럼채플 아마추어 (1978~1980 / 유스) 셀틱 FC (1980~1983)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 FC (1983~1985) 브리스톨 시티 FC (1985~1987) 슈루즈버리 타운 FC (1987~1990) 던펌린 애슬레틱 FC (1990~1993) 해밀턴 아카데미컬 FC (1993)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3~1999) |
감독 |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8~2002) 에버튼 FC (2002~20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2019) | |
코치 |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8) | |
국가대표 | 없음 |
1. 개요[편집]
영국(스코틀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감독직을 맡고 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에버튼 FC 감독으로 재직, 프리미어 리그에서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다음으로 오랫동안 리그에서 한 팀의 감독직을 수행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에버튼 FC 감독으로 재직, 프리미어 리그에서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다음으로 오랫동안 리그에서 한 팀의 감독직을 수행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2. 선수시절[편집]
지금은 감독으로서 나름대로 성공한 모예스도 선수로서는 평범한 커리어를 보유했다. 아이슬란드의 축구팀인 ÍBV 유스 출신이며 셀틱에서 중앙 수비수로 프로에 데뷔한 그는 1981/82시즌 우승에 공헌했지만 3년간 불과 24경기 출전에 그친 로테이션 멤버였고 케임브릿지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그나마 알려진 프레스턴으로의 이적 전까지 10년간 무려 5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생활을 하게 된다.
1995/96시즌 프레스턴의 4부 리그 우승에 공헌한 모예스는 1998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바로 프레스턴의 수석 코치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1998년 2월 프레스턴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축구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시작된다.
1995/96시즌 프레스턴의 4부 리그 우승에 공헌한 모예스는 1998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바로 프레스턴의 수석 코치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1998년 2월 프레스턴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축구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시작된다.
3. 여담[편집]
지도자 자격증을 두 개 국가에서 취득한 감독이다. 보통 유럽축구연맹 지도자 자격증을 자국에서 혹은 몸 담은 클럽에서 취득하는게 보통이지만 모예스는 잉글랜드에서 먼저 취득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취득했다. 두 나라간 자격증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1998년 선수 겸 코치로 지도자에 첫 발을 내밀 당시 각국 국가대표팀의 훈련 과정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못벌던 시절이라 A매치가 있는 날이면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 지원을 받아 경기 입장권을 구입했으며, 숙박비가 없어서 차를 임대해 다니며 차에서 자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여러 국가대표팀들의 훈련 과정 참관은 보안을 이유로 모두 다 거절당했고 모국인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의 훈련 과정만 참관했다고 한다.
맨유에서의 1년간 '풋볼 지니어스', '태명장' 등의 반어적 별명이 붙게 되었다.
웨스트햄에 와서는 선수의 포텐을 몇명 터트리고 있다. 슬라벤 빌리치 감독 밑에서 최악의 선수였던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를 윙어가 아닌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며 아르나우토비치의 포텐을 터트리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모예스 덕에 아르나우토비치는 그 이후에도 웨스트햄의 공격을 이끌었다. 또한 미카일 안토니오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며 안토니오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만들었고, 큰 부상 이후 레프트백에서 들쭉날쭉한 활약을 보인 애런 크레스웰을 쓰리백의 왼쪽 스토퍼로 기용하며 수비력과 공격력 모두 향상시켰다. 결정적으로 맨유에서 임대해온 제시 린가드를 부활시켰다!
1998년 선수 겸 코치로 지도자에 첫 발을 내밀 당시 각국 국가대표팀의 훈련 과정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못벌던 시절이라 A매치가 있는 날이면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 지원을 받아 경기 입장권을 구입했으며, 숙박비가 없어서 차를 임대해 다니며 차에서 자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여러 국가대표팀들의 훈련 과정 참관은 보안을 이유로 모두 다 거절당했고 모국인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의 훈련 과정만 참관했다고 한다.
맨유에서의 1년간 '풋볼 지니어스', '태명장' 등의 반어적 별명이 붙게 되었다.
웨스트햄에 와서는 선수의 포텐을 몇명 터트리고 있다. 슬라벤 빌리치 감독 밑에서 최악의 선수였던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를 윙어가 아닌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며 아르나우토비치의 포텐을 터트리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모예스 덕에 아르나우토비치는 그 이후에도 웨스트햄의 공격을 이끌었다. 또한 미카일 안토니오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며 안토니오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만들었고, 큰 부상 이후 레프트백에서 들쭉날쭉한 활약을 보인 애런 크레스웰을 쓰리백의 왼쪽 스토퍼로 기용하며 수비력과 공격력 모두 향상시켰다. 결정적으로 맨유에서 임대해온 제시 린가드를 부활시켰다!
[1] 원래 발음은 '모예스'가 아니라 '모이스'가 맞다. 린지 로핸(린제이 로한)처럼 발음이 변형돼서 정착된 사례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