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靖國神社 | Yasukuni Shrine | |
소재지 |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구단키타 3-1-1 |
좌표 | 북위 35° 41′ 38″ 동경 139° 44′ 34″ |
창건일 | 1869년 |
규모 | 약 10만㎡ (93,000~99,000㎡) |
제신 (祭神) | 일본군 전사자 246만 6천여위 |
사격 (社格) | 구 별격관폐사·칙제사 |
1. 개요[편집]
야스쿠니 신사 또는 조슈 신사는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황궁 북쪽에 있는 신사로,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신(영령)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2. 상세[편집]
총면적 93,356m2로 일본에 있는 신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전쟁 신사(war shrine)’란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1869년(메이지 2년), 침략 앞잡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도쿄쇼콘자가 그 전신이다. 지금의 이름인 ‘야스쿠니’는 ‘나라를 안정케 한다’는 뜻으로, `좌씨춘추(左氏春秋)'의 `오이정국야'에서 따왔다. 1879년 메이지 천황에 의해 현재 이름으로 개명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벚꽃의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사에는 2,466,532명의 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름, 본관, 생일, 죽은 장소들을 적어 봉안하고 있고, 심지어는 다양한 애완동물들까지도 함께 모셔져 있다. 이들 중 1,048명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판별받았으며, 특히 이들 중 14명이 A급 전범이기에 일본의 옛 식민지 국가들과 갈등을 겪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신사 본전에는 일본을 위해 싸우거나 일하다가 전사, 사망한 사람들을 합사하여 봉안해 놓았는데, 이들 중 강제적으로 일본에 끌려갔던 한국인, 대만인들도 합사되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다양한 신토 행사들이 이 곳에서 열리는데, 특히 일본의 고대 신들을 위한 축제가 열리는 봄과 가을에 가장 활발하다. 야스쿠니 신사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신사 배전 위에 걸려져 있는 국화 무늬의 거대한 흰 커튼인데, 이는 일본 황실의 고유 문양이다. 최근에는 고위 일본 정치인이나 외교관들이 이 곳에 참배하며 국제적으로 물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재의 최고 제관은 2018년 11월에 구니오 고보리의 뒤를 이은 13대 제관으로, 그 이름은 다테부미 야마구치이다.
1869년(메이지 2년), 침략 앞잡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도쿄쇼콘자가 그 전신이다. 지금의 이름인 ‘야스쿠니’는 ‘나라를 안정케 한다’는 뜻으로, `좌씨춘추(左氏春秋)'의 `오이정국야'에서 따왔다. 1879년 메이지 천황에 의해 현재 이름으로 개명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벚꽃의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사에는 2,466,532명의 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름, 본관, 생일, 죽은 장소들을 적어 봉안하고 있고, 심지어는 다양한 애완동물들까지도 함께 모셔져 있다. 이들 중 1,048명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판별받았으며, 특히 이들 중 14명이 A급 전범이기에 일본의 옛 식민지 국가들과 갈등을 겪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신사 본전에는 일본을 위해 싸우거나 일하다가 전사, 사망한 사람들을 합사하여 봉안해 놓았는데, 이들 중 강제적으로 일본에 끌려갔던 한국인, 대만인들도 합사되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다양한 신토 행사들이 이 곳에서 열리는데, 특히 일본의 고대 신들을 위한 축제가 열리는 봄과 가을에 가장 활발하다. 야스쿠니 신사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신사 배전 위에 걸려져 있는 국화 무늬의 거대한 흰 커튼인데, 이는 일본 황실의 고유 문양이다. 최근에는 고위 일본 정치인이나 외교관들이 이 곳에 참배하며 국제적으로 물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재의 최고 제관은 2018년 11월에 구니오 고보리의 뒤를 이은 13대 제관으로, 그 이름은 다테부미 야마구치이다.
3. 제신[편집]
야스쿠니 신사에는 2,46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합사되어 있다. 이 목록에는 단순히 전장에서 싸웠던 군인들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도왔던 여성, 어린 아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신사에는 시체, 혹은 유해, 심지어 위패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의 명단만이 존재한다. 신사의 제신에는 일본인들만이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27,863명의 대만인들, 21,181명의 한국인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전쟁 수행 도중 일본을 위해 싸우다 숨진 자들에만 한정된다. 이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죽은 일반인들은 이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이 곳에 합사된 사람들은 모두 다음의 목록 들 중 하나에 포함된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전쟁 수행 도중 일본을 위해 싸우다 숨진 자들에만 한정된다. 이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죽은 일반인들은 이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이 곳에 합사된 사람들은 모두 다음의 목록 들 중 하나에 포함된다.
- 일본군에서 복무했던 군인들, 혹은 시민들
- 전장에서 전사하였거나, 일본 열도 바깥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입은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
- 임무 수행 도중 입은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실종되었거나, 죽었다고 추측되는 사람들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비준된, 군사재판으로 인해 사형당한 사람들
- 군대 통솔 하에서 전투에 참여했고, 이로 인한 부상 혹은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 시민들(오키나와의 시민들 포함)
- 소련의 강제 수용소에서 전쟁 도중, 그리고 종전 이후에 사망한 사람들
- 자발적으로 전쟁 수행을 돕다가(공장 인부, 학도병, 적십자 단원, 공습 경보원 등) 임무 수행 도중 사망한 사람들
- 전투 상선에서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선원들
- 민간 선박의 침몰로 인해 사망한 선원들
- 전투 도중 사망한 오키나와의 어린아이들
- 사할린, 관동, 조선, 타이완의 식민 통치 기구에서 일하다 죽은 고위 관료들
매년 2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군인들이 새롭게 발견됨에 따라 이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곤 하지만,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한 이후에 사망한 일본인들은 단 한 명도 이 신사에 합사된 경우가 없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 자위대 소속 군인이 단 한 명도 모셔져 있지 않다.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지는 사람들의 합사 여부는 신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며, 친가족들의 동의 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히 합사된 한국인들의 친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는 절대로 한 번 합사된 사람들을 명단에서 빼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의 고위 제관의 발언에 의하면, 이미 한 번 합사된 사람의 영혼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들과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에, 절대 다시 떼낼 수 없다고 한다.
4. 재정 수입[편집]
매년 예산은 20억 엔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수입은 합사된 전사자 200여만 명 유족들의 향불값과 야스쿠니 내 전쟁 기념관인 유슈칸(游就館) 입장료, 협찬금 등이다.
5. 교통편[편집]
도쿄 메트로 난보쿠선, 유라쿠초선, 주오 본선, 도영 지하철 신주쿠선 이치가야역 A4 출구, 또는 도쿄 메트로 도자이선, 한조몬선, 도영 지하철 신주쿠선 구단시타 역 1번 출구 사이에 있다.
6. 국제사회[편집]
- 대한민국 :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신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는 편이지만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군 전범들을 합사하였던 곳이자 일본 극우세력의 성지로 알려져서 방송 뉴스에서도 많이 언급되었던 편이라 당연히 한국 국민들의 인식은 좋지 않은 편이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그 당시 한국 지상파 뉴스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으며 2001년 8월 13일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종전기념일을 2일 앞두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악화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고 2006년 8월 15일에는 종전기념일 당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 내 반발을 불렀다. 2013년 12월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그 당시 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한국과 관계가 악화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법적상으로는 여행금지구역으로는 지정되지 않았으나 국민정서상으로 전범들을 합사한 신사라는 인식 때문에 한국인 대다수가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 중국 : 중국에서는 중일 전쟁과 난징 대학살의 역사로 인하여 대한민국 못지않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다. 특히 난징 대학살 당시 가담했던 전범들이 모셔진 것으로 알려져서 반감이 큰 편이며 일본 총리들이 참배할 때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 대만 : 친일 국가로 알려진 대만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서 사건, 타파니 사건 등의 과거가 있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상처에 소금을 껴앉는 일"이라 비판한 바 있다.
- 홍콩 : 홍콩 또한 영국령 시절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홍콩을 침략하여 일본과 영국의 전쟁이 일어났고(일명 홍콩 전투),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피해국이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 미국 : 동맹국이 일본이면서 중국을 매우 싫어하는 미국 또한 이 신사에 대해서는 중국의 손을 들어주며 일본을 비판하는 편이다. 태평양 전쟁의 A급 전쟁범죄자가 합사되어 있다는 점 부터 미국이 볼때도 불편할수 밖에 없는 장소이다.
- 싱가포르 : 싱가포르 역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였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일본의 침략과 점령을 당한 역사가 있다.
- 베트남 : 2014년 1월 1일, 베트남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고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국 대륙의 절반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국경이 일본과 베트남 사이의 국경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은 베트남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베트남 또한 일본의 식민지가 됐었다.
-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 총리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였다. 참고로 말레이시아 또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이다.
7.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편집]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 히데키 전 총리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총리나 각료의 공식참배 여부가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 이후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최초로 총리 자격으로 공식참배를 하였으며, 이에 일제침략을 받은 한국과 중국은 '총리가 전범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고 거세게 항의하였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외교상의 문제로 총리의 공식 참배는 없었지만 '개인자격'으로 신사를 찾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총리가 되기 전 선거공약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일 년에 한 번씩 참배하겠다고 공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총리가 된 후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여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으로 서명하면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후 신사참배의 공사 성격문제가 논란이 됐으며, 일본 정부는 '사적참배'였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2년 4월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3대 행사인 봄 대제(大祭)를 하루 앞두고 다시 야스코니 신사를 방문,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방명록에 적어 넣었고, 2003년 1월 14일에 이어 2004년 1월 1일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는 등 총리 퇴임 전인 2006년까지 지속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였다. 뒤를 이은 아베 신조 총리는 재임기간(2006~2007)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지만, 2012년 10월 17일 자민당 총재로서 야스쿠니 추계대제에 참석하면서 총리 재임 당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2012년 8월 15일, 일본의 현직 각료인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불거진 한국과 일본 간 외교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일본 민주당 정부 각료가 이른바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09년 9월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민주당은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막아 왔다.
그러나 2012년 12월 16일 진행된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고 재집권에 성공, 아베 전(前) 총리가 26일 일본 총리로 다시 정식 지명되었다. 이에 따라 보수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보수파로 꼽히는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가 높아졌다. 실제 2013년 2월 8일 아베 신조 총리가 각료들의 신사참배에 대해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발언하여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허용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리가 되기 전 선거공약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일 년에 한 번씩 참배하겠다고 공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총리가 된 후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여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으로 서명하면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후 신사참배의 공사 성격문제가 논란이 됐으며, 일본 정부는 '사적참배'였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2년 4월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3대 행사인 봄 대제(大祭)를 하루 앞두고 다시 야스코니 신사를 방문,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방명록에 적어 넣었고, 2003년 1월 14일에 이어 2004년 1월 1일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는 등 총리 퇴임 전인 2006년까지 지속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였다. 뒤를 이은 아베 신조 총리는 재임기간(2006~2007)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지만, 2012년 10월 17일 자민당 총재로서 야스쿠니 추계대제에 참석하면서 총리 재임 당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2012년 8월 15일, 일본의 현직 각료인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불거진 한국과 일본 간 외교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일본 민주당 정부 각료가 이른바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09년 9월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민주당은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막아 왔다.
그러나 2012년 12월 16일 진행된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고 재집권에 성공, 아베 전(前) 총리가 26일 일본 총리로 다시 정식 지명되었다. 이에 따라 보수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보수파로 꼽히는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가 높아졌다. 실제 2013년 2월 8일 아베 신조 총리가 각료들의 신사참배에 대해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발언하여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허용을 시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