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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
윤기중
尹起重|Yoon Ki-joong
파일:윤기중 교수.jpg
출생
1931년 12월 19일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군 죽림리
(現 충청남도 논산시 죽림리)[1]
사망
2023년 8월 15일 (향년 91세)
국적
본관
파평 윤씨
학력
공주농업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경제학 학사
연세대학교 경제학 석사
히토쓰바시 대학 경제학 석사수료
가족
아버지 : 윤호병
어머니 : 인동 장씨
배우자 : 최성자
장남 : 윤석열
차남 : 윤신원
직업
교육가
종교
불교
1. 개요2. 생애3. 별세4. 경력5. 수상6. 저서7. 여담8.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윤기중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의 부친이다.

2. 생애[편집]

그의 집안은 고려의 개국공신인 윤신달을 시조로 삼고 있으며, 시조로부터 34세손인 윤호병과 인동 장씨의 3남 4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공주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1958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일본 명문 히토츠바시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수료했다.

1958년부터 1997년까지 한양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1997년까지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 교수 및 한국통계학회,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겸임하였다.

2021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2021년 4월 2일 아들 윤석열과 함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사전투표에 참여해 한표를 행사했다. 함께한 아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보시다시피 아버지께서 거동이 불편하셔서 제가 모시고 함께 왔다고 밝혔다.

2022년 3월 9일 20대 대선에서 아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서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사례는 지난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아버지 김홍조 옹 이후 30년만에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된걸 아버지가 생존하여 본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 부모만 생존해 계셨던 다른 대통령과는 달리 대통령 취임 기준으로 양친이 모두 생존해 있는 최초의 대통령이다.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비서들의 부축을 받으며 참석하였다.

2022년 6월 아들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인 용산구 대통령실을 둘러보고 격려와 칭찬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후 함께 대통령실에서 그의 아들과 그의 며느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하여서 며느리가 부축하였다고 한다.

3. 별세[편집]

2023년 8월 15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아들 윤석열 대통령과 며느리 김건희 여사는 광복절 경축식이 끝나자마자 서울대병원으로 향했으며 아들 내외가 도착하고 20분간 마지막을 함께하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윤석열이 제20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크게 감격했으며 교육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4. 경력[편집]

  •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조교수
  •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부교수
  •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초청강사
  • 한국통계학회장
  • 히토츠바시대학 객원교수
  •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학장
  • 한국경제학회장
  •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 한국연구원 이사

5. 수상[편집]

  • 1999년 : 3.1문화상 학술상

6. 저서[편집]

  • 1986년 : 통계학 개론
  • 1986년 : 수리통계학
  • 1987년 : SPSS를 이용한 통계자료 분석
  • 1996년 : 통계학
  • 1997년 : 한국경제의 불평등분석

7. 여담[편집]

  • 본관은 파평 윤씨로 대대로 명문가였다. 고조부 윤덕진은 판관 등을 역임했다.원칙적이며 매우 엄격한 성격이었다.
  • 한편 검소한 면이 있어서 사치를 하지 않았지만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르친 제자들이 스승의 날 같은 행사때 밥을 사주기 위해서 연락하여 밥을 함께 먹으면 윤기중 교수가 계산했다고 한다.
  • 뉴라이트 연합이 개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선언에 교육계 지도자로서 서명에 참여했다.
  • 김인규는 “윤 교수님이 임용될 때엔 석사 학위만으로도 교수를 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그 당시 구제 박사(논문 박사) 제도가 있었는데 간단한 논문을 쓰면 학위를 주는 식이었죠. 너 나 할 것 없이 이를 통해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윤 교수님은 거부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거였죠. 이런 기질을 아들이 물려받지 않았나 싶어요.” 라고 말했다.
  • 아들 윤석열이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옆집에 거주하던 주민이 축하 플랜카드를 아파트에 게시하였는데 이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따뜻한 마음 감사드려요 잊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8.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이 부근은 파평 윤씨 가문이 대대로 세거하던 곳으로, 윤선거, 윤증, 윤문거 등이 모두 이 곳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