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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병철
(1938~1987)
제2대
이건희
(1987~2018)
제3대
이재용
(2018~ )
삼성의 총수 · 삼성의 경영진 · 삼성전자의 회장 ·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 삼성전자의 인물
삼성 제2대 총수
이건희
李健熙
Lee Kun-hee
파일:이건희 사진.jpg
분류
기업인
출생
출생일
1942년 1월 9일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
사망
사망일
2020년 10월 25일 (향년 78세)
사망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지
수원 선영
본관
경주
신체
164cm
학력
부산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상학과 중퇴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졸업
조지 워싱턴 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석사(MBA) 수료
경력
삼성 제3대 총수
삼성전자 회장
가족
할아버지 : 이찬우
할머니 : 권재림
아버지 : 이병철
어머니 : 박두을
장남 : 이재용
장녀 : 이부진[1](1970년 10월 6일~)
차녀 : 이서현[2](1973년 9월 20일~)
삼녀 : 이윤형[3](1979년 4월 26일 ~ 2005년 11월 18일)
개신교
1. 개요2. 생애3. 심장마비4. 삼성 위기론5. 상훈6. 저서7. 여담8. 논란9.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이건희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이병철의 아들로 대구 출신이며, 삼성의 선대회장으로 그룹의 2번째 수장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42년 1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 중구 인교동에서 이병철의 삼남으로 태어났으며, 이후 조지 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MBA를 수료했다.

홍라희 여사와 결혼했으며,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의 사위이다.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후부터 삼성전자의 회장을 지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진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3월에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2014년부터는 심장마비 후 와병으로 아들 이재용이 경영을 사실상 물려받았다. 이건희가 경영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1993년 29조 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2013년 380조 원으로 늘었으며, D램 하나 뿐이던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은 20개로 늘어났다.

2014년 5월 10일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과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아 "이건희 사망" 보도가 나올 정도로 강북삼성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으며, 2020년 10월 25일 새벽 4시경, 약 6년 5개월의 장기 투병 끝에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79세로 사망했다.

생전에 대한민국 최고 갑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세계 부자 순위 6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망 직전 보유 재산은 약 23조 7,100억원(198억 달러)였다.

3. 심장마비[편집]

2014년 5월 10일 밤 호흡곤란 증세로 쓰러져 자택 근처의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 심근경색으로 심장이 멎었으나 바로 심폐소생술이 실시되어 호흡과 심장 박동은 살아났지만 의식은 깨어나지 못했다. 이후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 스텐트 삽입술을 받고 보조기구를 부착하여 저체온 치료를 하였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건희를 자택에서 계속 치료하는 방안과, 환자 이송전용 항공기 에어앰뷸런스에 태워 미국으로 옮겨서 치료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중이었다. 인터넷 매체인 아시아엔은 "이건희 회장이 5월 16일 오전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사실 무근으로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해당 언론사에 정정 보도 요청서를 보냈으나 해당 언론사는 사망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할 이유가 없다고 이를 거부했다.

4. 삼성 위기론[편집]

이건희는 위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영에 복귀한 2010년 3월에도 "삼성전자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으며,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제품이 사라질 것이므로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건희는 메기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고 전해진다. 미꾸라지가 있는 물 속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헤엄치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해진다는 것이 '메기론'이다. 그러나 메기론은 이건희가 처음 한 발언이 아니라 아버지 이병철이 자주 했던 발언이었다고도 한다.
메기론은 순서상으로 보면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의 '청어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 지난 1995년 애니콜 15만대를 불태우면서까지 휴대전화 품질향상을 중요시했고 이를 토해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애플과 지난 2015년 4분기 동률을 이루거나, 지난 2분기 '코로나 특수'를 누린 화웨이에 역전을 당하기도 했지만, 연간으로는 꾸준히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5. 상훈[편집]

  • 1984년 :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 1986년 :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 1991년 : IOC 올림픽훈장
  • 1993년 : 한국경영학회 제정 경영자 대상
  • 1993년 : 문화부 장관 감사패
  • 1994년 : 한국무역학회 무역인대상
  • 1996년 : 한국능률협회 선정 ‘최고의 경영자상’
  • 2000년 : 국민훈장 무궁화장
  • 2002년 :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감사패
  • 2004년 : 홍콩 디자인경영자상 초대 수상
  • 2004년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3등급) 훈장
  • 2006년 : 밴플리트 상

6. 저서[편집]

  • 수필(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년)

7. 여담[편집]

  •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자'며 신(新)경영을 주창했다.
  • 1996년 11월에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재인수하였다.
  • 2004년, 강원도 평창 보광휘닉스파크에서 록 밴드 체리필터의 연주 도중, 시끄럽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공연을 중단시켰다.
  • 2009년 3월, 포브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건희 일가의 재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30억 달러로, 세계 205위를 차지했다.
  • 2010년, 이건희는 삼성전자 보통주 4,980,000주와 우선주 12,000주, 삼성물산 2,206,000주, 삼성생명 41,519,000주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국내 최초로 보유 주식 지분가치가 9,223,000,000,000원을 돌파하였다.
  • 2011년 8월 5일, 이건희와 아내 홍라희는 지난 해인 2010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뉴욕주 컬럼비아 카운티에 건립 중인 ‘원달마센터’에 여러 차례에 걸쳐 120억 원을 기부했다. 홍라희는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원달마센터'는 원불교 개교 100주년인 2015년을 앞두고 뉴욕주 허드슨강 상류 지역에 건립될 예정인 포교 센터다. 10월 2일 개원할 예정으로 원불교 해외 포교를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대규모 명상 홀과 사무실·주거 시설 및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생전 두 명의 스승으로 아버지 이병철과 장인어른 홍진기를 꼽은 바 있다.

8. 논란[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건희/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이부진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다.[2] 이서현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이병철 전 삼성 창업자의 손녀이자, 김성수 전 부통령의 증손자 김재열의 아내이다. 2013년 12월 2일에 제일모직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겸직하다가, 2015년 12월 1일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을 맡아 패션부문 사업을 총괄하게 되었다.[3] 1979년 4월 26일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와 부인 홍라희 사이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1998년 대원외국어고등학교와 2002년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였고 세간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집안 사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삼성가의 딸로서 자신의 일상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공개하여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2005년 9월부터 뉴욕대에서 예술 경영을 공부하였다. 당시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와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주와 삼성SDS 주식 257만주를 보유 중이었다. 초기 기사는 미국 현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이후 자살로 밝혀졌다. 11월 18일 밤 유학중인 뉴욕 맨해튼 근처 숙소에서 스스로 목을 맨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만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뉴욕 경찰은 시신의 부검을 실시한 결과 목에 줄을 맨 흔적 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점으로 미뤄 자살로 결론지었다. 2006년 그녀가 보유하였던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 중 4.12%는 2006년 5월 18일 삼성이건희장학재단에 기부되었고, 나머지 4.25%는 정부에 헌납되었다.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주와 삼성SDS 주식 257만주(4.57%)도 전량 장학재단으로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