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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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판사4. 국회의원5. 더불어민주당 대표6. 6선 의원
6.1. 제22대 국회 활동6.2.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6.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당선

1. 개요[편집]

추미애의 생애를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상세[편집]

추미애는 1958년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차녀)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동기인 서성환 변호사와는 캠퍼스 커플이었으며, 결혼 전까지 7년간 연애하였다. 서성환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이며, 다리에 장애가 있다. 추미애의 집안에선 서성환과의 결혼에 반대하였으나 추미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85년 서성환과 결혼하였다. 한편 훗날 추미애를 정계에 입문시킨 김대중은 추미애에게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출신)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언론에선 추미애를 '대구의 딸이자 호남의 며느리'로 부른다.

3. 판사[편집]

1981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85년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한 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전두환 정부가 불온서적 압수수색을 시작하면서 검찰이 전국 법원에 서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을 때 다른 법원들은 영장을 모두 발부했지만 추미애만 "책을 유언비어로 볼 근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1989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했고, 199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며 김제시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제안으로 8월 27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당 부대변인으로 정당 생활을 시작했다.

4. 국회의원[편집]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광진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43.77%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판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초선이던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할 당시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서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는 지역감정이 심하던 때였다. 직전 대통령 선거인 제14대 대선 때는 야당이던 평민당 운동원들이 대구 유세를 하다 돌을 맞기도 하던 때였다. 그러나 추미애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유세단 이름을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 저돌적으로 선전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언론으로부터 '추다르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99년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됐다. 2000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이 실시한 '20세기를 빛내고 21세기를 빛낼 여성' 여론조사에서는 4위로 선정됐다. 한국유권자연맹으로부터 '국회의정활동 최우수상'과 전국 NGO단체연대로부터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여 받았다.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지지율이 낮을 때부터 지지하였다. 노무현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난 후 노무현의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 내에서 대선 후보 교체를 위한 후보 단일화 협의회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후보 교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무현의 당선에 일조하였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당선자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2003년 11월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며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결별하였다.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였으나, 같은 당 의원이었던 추미애는 "①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 ②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으니 현혹되면 안 된다. ③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다."라는 ‘3불가론’을 내세우며 탄핵에 반대하였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탄핵에 반대한 2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에 반대하는 추미애에게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너 혼자 잘났냐” 등 비난을 하였고, 결국 민주당의 당론은 탄핵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소속 의원 2명의 서명까지 받아 탄핵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자 추미애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숯댕이(범죄혐의로 수감된 의원)가 검댕이(노무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 며 결국 당론에 따라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후 국회에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개시되었다. 한편 곧이어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추미애에게 맡겼는데, 추미애는 탄핵 반대의 압도적 여론을 체감하고선 민주당이 탄핵에 동참한 것에 대해 당의 선대위원장으로서 당을 대표하여 사과하였다. 그리고 사과의 의미에서 3보1배를 하였다. 그러나 탄핵반대 여론의 역풍을 맞은 민주당이 9석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을 때 추미애도 낙선하였다. 훗날 추미애는“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드러난 삼성의 내부 문건에 '돈을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추미애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8년 실시된 18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고, 제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말에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사태 때는 탈당파를 강력히 비판하며 당에 잔류하였다.

2016년 4월에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5. 더불어민주당 대표[편집]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54.03%의 득표율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민주당 역사상 최초의 대구·경북 출신 여성 당 대표가 되었다. 2017년 5월 실시된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첫 여성 집권 여당 대표가 되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당 대표로서 선거를 진두지휘해 당의 압도적 승리를 이루어냈다. 같은 해 8월 임기가 만료되어 역대 민주당계 정당 대표 중 최초로 임기를 채운 대표라는 영예를 안으며 퇴임하였다.
== 법무부장관
2020년 1월 2일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조정하고 검찰인권보호수사규칙을 제정하는 개혁을 추진하였고, 대검찰청 중간 간부 자리를 대거 줄이고 형사·공판부를 강화하는 검찰 직제개편도 추진했다. 2020년 10월 19일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사건과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관련 의혹 수사 등에서 윤 총장의 지휘를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2020년 11월 24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청구하면서 직무배제 명령도 내리며, 윤 총장의 재판부 불법사찰, 감찰 방해, 언론사 사주와 부적절한 만남 등 비위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를 이끌어낸 뒤 법무부 장관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6. 6선 의원[편집]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격전지 중 하나인 하남시 갑에서 압도적으로 우세를 보임에 따라 6선이 확정되는 분위기에 차기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도 유력하다는 보도가 났다.

출구조사에서도 11.4%p 차로 압도적 우세를 보이며 낙승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개표 내내 정치 초년생이자 비례대표 현역 의원인 국민의힘 이용 후보에게 밀리며 출구조사가 빗나갈 뻔하다가 결국 막판에 역전하며 불과 1,199표 차(1.17%p)로 당선되면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여성 최다선 국회의원이 탄생했음은 물론, 지역구에서만 6선을 한 타이틀 기록도 보유하게 되었다.

6.1. 제22대 국회 활동[편집]

국회법 제18조의 규정에 따라 최다선(6선) 의원 중 최연장자로서 22대 국회 첫 본회의의 의사봉을 잡았으며 우원식 의장의 선출 후 우원식 의장과 교대했다.

상임위는 본인이 본래 희망했던 국방위원회에 더해, 국회운영위원회에 배정되었다.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과 크게 부딪혔던 만큼, 최전선에서 대통령실과 직접 싸우라는 의미로 보인다.

향후 후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내 둘뿐인 6선 의원인 데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만큼 도전 가능성이 없지는 않는 상황. 다만 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서 추미애를 지지했던 조정식, 정성호 의원도 잠재적인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성 난도가 있다.

2024년 7월 이뤄진 김건희 여사 비공개 대면조사가 검찰총장에 11시간 늦게 보고되었는데 이때 보고가 늦은 이유에 대해 "추미애 장관이 2020년 발동했던 수사지휘권 때문"이라는 설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이었던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내린 지시였는데 4년 동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6.2.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편집]

2025년 6월 22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을 두고 미국이 국제법을 어기고 예방 전쟁을 벌였다며 미국을 비판하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각 주요 국가에 보낼 특사 중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추미애 의원의 경우 영국 특사로 갈 가능성 높은 상황.

2025년 7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영국 특사로 임명되었다.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돌고 있다.

2025년 8월 이춘석 의원이 주식관련 의혹으로 탈당하면서 후임 법제사법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

보궐선거에서 171표 중 164표를 받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사실을 부정했다.

6.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당선[편집]

2026년 1월 9일에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2026년 4월 7일, 경기도지사 본경선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하여, 결선투표 없이 현역 김동연 지사와 한준호 의원을 꺾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다. 전반기 국회의장 탈락에 대한 동정 여론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본선에선 한때 같은 땅에서 한솥밥을 먹던 양향자 전 의원을 국민의힘 후보로, 조응천 전 의원을 개혁신당 후보로 만나게 되었다.

2026년 6월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추 후보는 도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도정을 이끌 강한 책임감을 강조했다. 추 후보는 오전 0시 5분 당선 소감을 통해 이번 결과를 경기도민의 선택이자 변화에 대한 열망의 표현으로 평가했다. 그는 "저는 한 번도 쉬운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왔다. 경기도민께서 저 추미애의 진심을 선택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은 대한민국 국가 정상화와 경기도의 큰 변화를 바라는 도민들의 승리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도민들에게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도록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향후 도정 운영 방향과 관련해서는 민생 현안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교통과 주거, 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지역 간 격차 해소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추 후보는 "경기도가 직면하고 있는 교통, 주거, 일자리 문제와 균형발전 문제를 국회의원들과 지역 단체장, 기초의원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하나씩 차분하게 풀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 대전환, 당당한 경기를 추미애가 책임지고 해나가겠다"며 도정 운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또 "도민이 바라는 대로 만들도록 하겠다"며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추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내세운 균형발전과 민생 중심 공약이 도민들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추 후보는 향후 경기도정 전반에 걸친 정책 추진과 지역 현안 해결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