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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
Republic of Trinidad and Tobago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png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장.png
국기
국장
국가명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
독립일
1962년 8월 31일 (63주년)
수도
포트오브스페인
언어
영어
인구
1,533,893명 (세계 154위 / 2023년 기준)
면적
5,131km² (세계 163위)
종교
기독교 63.4%
힌두교 24.3%
이슬람교 6.4%
무종교 2.3%
기타 3.4%
상징
국가
우리가 사랑하는 자유로운 조국
국기
표어
우리는 함께 열망하고, 함께 성취한다
정치
정치 체제
대통령
크리스틴 캉갈루
총리
카믈라 퍼사드비세서
경제
명목 GDP
$293억 (전체 / 세계 107위)
$19,612 (1인당 / 세계 7위)
PPP GDP
$436억 (전체 / 세계 126위)
$30,178 (1인당 / 세계 58위)
통화
트리니다드 토바고 달러
외교
대한 수교
파일:대한민국 국기.jpg 대한민국 : 1985년 7월 23일
파일:북한 국기.jpg 북한 : 1986년 1월 22일
주한대사관
없음
가입
국제기구
군소 도서 국가 연합
국가 코드
780, TT, TTO
국제 전화
+868
여행경보
여행자제: 전 지역
1. 개요2. 역사3. 지리4. 인문환경5. 정치6. 스포츠7. 군사8.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은 카리브해 남쪽에 있는 섬나라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11km, 그레나다에서 남쪽으로 약 1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2. 역사[편집]

1498년 콜럼버스의 제 3차 항해로 유럽에 알려진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은 1532년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대영 제국, 네덜란드 연합왕국, 프랑스 왕국, 쿠를란트-젬갈레 공국 등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본래 아라와크족과 카리브족이 거주했는데, 1700년경 스페인의 통치에 항거하다가 멸족당했다.

1802년 아미앵 조약에 의해 트리니다드섬이 스페인으로부터 영국에 할양되었고, 1814년 파리 조약에 의해 토바고섬이 프랑스로부터 영국에 할양되어 두 섬 모두 영국령이 된다. 1833년에는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영국은 1888년부터 두 섬을 통합하여 관리하였다.

1950년 독립을 위한 새 헌법을 공포하고 인민민족운동(PNM)을 중심으로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1956년 자치 정부를 수립하고 1959년 서인도 연방에 편입되었지만, 1962년 연방에서 탈퇴해 영국 연방의 자치국으로 독립하였다. 독립 당시에는 영국 여왕이 국가 원수인 군주제 국가였으나, 1976년에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 되었다.

3. 지리[편집]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남아메리카에서 아주 가깝지만, 문화지리적 특징에 따라 북아메리카에 속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은 이 나라의 가장 주된 두 개의 섬이며, 그 밖에 21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높은 지역은 트리니다드섬에 있으며, 해발 940미터이다. 열대성 기후이며,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 있다.

남동쪽으로는 안틸레스 제도와 서인도 제도에 마주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베네수엘라의 해안으로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전체 면적은 5,128km²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보르네오섬 최북단 정중앙에 위치한 브루나이의 넓이와 같은 크기이다.

섬의 지세는 산과 평원의 혼합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은 북쪽 지역에 있는 엘 세로 델 아리포로서 940m이다. 절대 다수의 인구가 트리니다드에 사는데 대부분의 마을과 도시가 이곳에 분포한다. 포트오브스페인, 샌퍼넌도, 차과나스가 주요 도시이다.

트리니다드섬은 다양한 토양 형질로 되어 있는데 대개 고운 모래거나 점토이다. 북쪽 지역의 계곡 일대 토양이 비옥하다. 북쪽 지대는 쥐라기 대의 토양과 백악기 시대의 토질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 저지대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부드러운 토양으로 되어 있다. 남쪽으로 가면 중앙 지대가 있는데 백악기 시대와 시신세 대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

4. 인문환경[편집]

이 나라는 미국, 영국처럼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이지만, 백인보다는 흑인, 인도계,등이 많이 거주 하는데, 흑인이 35%, 인도계가 35% 거주하며 다수를 차지한다. 이외에 혼혈(20%), 백인(1%), 등이 있으며, 백인은 소수이며, 식민 통치 이후에 남은 영국계가 주류를 이룬다.

문화도 여러가지다. 공용어는 영어로, 그 밖에 힌디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어는 베네수엘라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의 영향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사용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카니발은 프랑스계 백인 지배층이 향유했던 문화였으나, 노예 해방 이후 흑인 하층 계급의 저항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크리켓 또한 전래되었다. 영국으로부터 서인도 제도의 독립이 추진되던 당시, 서인도 연방으로 결성은 지역적, 인종적, 계급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분열을 극복하고 연방 결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동력이 필요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식민지 지역과는 달리 서인도 제도는 원주민이 전멸하면서 이들의 전통과 문화가 단절되었고, 아프리카계의 흑인 노예들은 강제로 이주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상실했다. 이들은 백인들의 문화였으므로 하나의 국민 문화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서로 다른 정치적 함의란 이질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카니발의 경우 영국의 식민지배 이전에 정착한 프랑스계 백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최한 카니발에서 유래했고, 크리켓은 트리니다드에 설립된 영국 퍼블릭 스쿨을 통해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스포츠로 분명히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등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 이후 트리니다드 카니발은 흑인 하층 계급이 전유하며 이들의 거리 문화로 변화했고, 크리켓을 통해 흑인 중간 계급은 신체적 기량을 발휘하면서 백인 지배층과 동등한 위신을 갖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카니발은 크리켓과 함께 서인도 제도의 국민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칼립소는 칼린다에서 기원한 음악 장르의 하나이다. 백인들의 카니발은 미뉴에트 음악과 바이올린이 사용되었지만, 흑인 계급이 향유하게 되면서 서아프리카의 노동요에서 유래한 칼린다와 젬베로 대체되었다. 칼린다는 카리브해 지역에서 흑인들에 의해 사용되던 음악과 춤을 이르는 말로써, 후에 칼립소로 변화한 것이다. 초기 칼립소 가수들은 일상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트리니다드 프랑스어 크리올이나 스페인어를 사용해서 노래했으나, 19세기 이후에는 트리니다드 영어 크리올을 사용해 즉흥적으로 노래했다. 칼립소 가수들은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성적 매력과 자유를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여겼다.

종교는 25% 개신교, 20% 가톨릭이다. 그 외에 인도계의 영향으로 힌두교 20%, 이슬람 5%이다.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하고, 의무교육은 10년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인들은 빈곤률이 17%이며, 약 베네수엘라와 비슷하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 아스팔트의 채굴로 발전하는 편이다. 농산물로는 감귤, 코코아, 사탕수수 등을 생산한다. 수출품은 석유와 석유 제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무역 상대국은 영국, 미국, 스페인, 자메이카 등이다.

5. 정치[편집]

이 나라는 대통령제이며, 대통령이 통치한다. 1976년 이전에는 영연방 군주제였으며, 이후에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행정 구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트리니다드섬은 9개 지역, 3개 구, 2개 시로 구성되어 있다. 토바고섬은 자치권을 갖고 있으며 토바고섬 의회를 두고 있다.

6. 스포츠[편집]

영연방 + 인도계 다수 국가라서 그런지 크리켓이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 크리켓은 남녀 종목 공히 국가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으며, 카리브해 이웃 국가들과 치열한 대륙 간 경쟁 관계에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남/녀 크리켓 대표팀은 T20 크리켓 뿐만 아니라 원데이 인터네셔널 경기에서 서인도 제도팀의 일원으로서 대표하고 있다.

축구는 크리켓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로,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협회로부터 관리되어 지고 있다.

일단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앤디 콜과 같이 '블랙투톱'을 이루며 1998/1999 시즌 트레블을 이루는 데 공헌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공동득점) 드와이트 요크가 이 나라 출신. 한때 프리미어 리그 선덜랜드 AFC에 몸담았던 공격수 켄와인 존스도 해축팬이라면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다. 북중미 축구연맹 회장이었던 잭 워너도 여기 출신이다. 2002 월드컵 개최 경쟁 당시만 해도 정몽준 지지파라서 국내 언론에서도 긍정적으로 나온 적도 있는 사람이나, 그 뒤로는 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 골수 지지자가 되면서 정몽준과 적이 되어버렸다. 예전 피파 회장 선거에서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회장을 피파 회장 후보로 지지하던 정몽준과 반대로 블라터 회장 재선을 지지하던 그였기에 서로 공개적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2011년 6월 그의 비리가 문제되어 아시아축구연맹의 무함마드 빈 함맘과 똑같이 블라터에게 토사구팽당했다. 북중미축구연맹회장에서 쫓겨난 그는 이를 갈며 2011년 12월 24일 성명서를 내고 블라터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국가대표팀은 인지도는 북중미 내에서만 알아주는 편이며, 월드컵 본선 진출도 해 본 경험이 있다.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여 첫 경기 스웨덴전에서 수적 열세를 가지고도 0:0 무승부를 거두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이후 두 경기(vs 잉글랜드, 파라과이)를 모두 패해 본선 진출 자체를 기념으로 삼아야만 했다. 이후 다시 약체로 돌아갔다가 2017년 10월,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홈경기에서 미국을 잡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미국을 지역예선에서 광탈시켜버렸다. 훌륭한 같이 죽기의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이 패배로 미국 전역은 그야말로 대충격. 미국인들만 놀란 건 아닐까?

육상 남자 단거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 100m에서 하슬리 크로포드가 당시 육상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으며 자국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세계적 스프린터 아토 볼든이 1997년 아테네 세계육상 선수권 대회 남자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2000 시드니 올림픽 100m 은메달, 200m 동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00m, 200m 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어,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m 에서 리차드 톰슨이 은메달, 남자 4×100m 계주팀이 금메달[10]을 획득하였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400m에서는 라론드 고든이 동메달, 남자 4x100m 계주팀이 2회 연속 은메달, 4x400m 계주팀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육상 투척종목에서도 메달이 나왔는데 케숀 월컷이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창던지기에서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7. 군사[편집]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모병제를 실시하며, 육군, 해군, 공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8.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