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사건사고
실제로 발생한 사건사고에 관련된 내용을 다룹니다.
202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Російське вторгнення в Україну (з 2022)
Специальная военная операция | СВO
2022 Russian Invasion of Ukraine
기간
2022년 2월 24일 오전 4시 50분경(UTC+2)[1] ~ 진행 중
(침공 개시일로부터 +1001일 / 2주년)
장소
우크라이나 : 하르키우주(사실상)][진행중], 미콜라이우주[우(사실상)][상륙작전], 헤르손주[상륙작전], 키이우주[우], 체르니히우주[우], 지토미르주[우], 수미주[우], 루한스크주[러(사실상)][진행중], 도네츠크주[진행중], 자포리자주[진행중], 오데사주[우(사실상),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폴타바주
러시아 : 브랸스크주[특수작전], 벨고로드주[진행중], 로스토프주[바], 보로네시주[바], 리페츠크주[바], 모스크바주[바]
교전국 및 교전 세력
1. 개요2. 상세3. 배경4.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새벽 4시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침공한 사건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일부이다.

2. 상세[편집]

러시아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한 뒤, 2022년 2월 21일 동부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군대를 진주시켰다. 3일 뒤인 2월 24일, 러시아는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 보호,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유럽 연합 가입 저지 및 중립 유지"를 목표로 하는 군사 작전을 선언했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세계 각국은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과 인도적 지원을 하였다.

3. 배경[편집]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해체 직후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폐지하기로 합의했으며, 러시아, 영국,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사용에 대한 보장을 발행할 것을 조건으로 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에 서명했다. 5년 뒤인 1999년 러시아는 유럽 안보 헌장에 서명하며 각 참가국들이 동맹 조약을 포함한 안보 협정을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변경할 권리가 있음을 재확인했다.

1991년부터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푸틴과 러시아의 지도부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독립국가가 아닌 서방국가들의 괴뢰국으로서 존재하는 국가이며 구 소련 구성 공화국이자 키이우 대공국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러시아의 정신적인 고토로써 반드시 러시아가 서방국가들로부터 수복해야 할 영토로 인식해 왔다. 2008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을 반대했다.[39][40] 2009년 루마니아 분석가 이울리안 치푸와 그의 공동 저자들은 우크라이나와 관련하여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소련의 영향권이 붕괴되기 이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보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더 클 수 없음을 의미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최신 버전을 러시아가 추구했다고 의견을 냈다. 이러한 견해는 1990년대 초 서방을 달래기 위한 러시아의 행동이, 러시아의 국경을 따라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확장되지 않고 서방과의 상호주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유로마이단의 일부로서 몇 주 동안 시위가 지속된 후,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야당 지도자들은 2014년 2월 21일 조기 선거를 요구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다음 날 야누코비치는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박탈당할 탄핵 투표를 앞두고 키이우를 떠났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 지도자들은 야누코비치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이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으로 이어졌다. 분쟁 이후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친러 성향의 준국가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돈바스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여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연합을 탈퇴했다.

2020년 9월 1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을 목표로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특별한 파트너십을 발전시키는 것을 제공하는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국가 안보 전략을 승인했다. 2021년 3월 24일 젤렌스키는 일시적으로 점령된 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을 탈환하고 우크라이나에 재통합하는 전략을 승인하는 법령 117/2021호에 서명했다.

2021년 7월, 푸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하나의 국민"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합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판했다. 미국의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는 푸틴의 사상을 제국주의라고 묘사했다. 영국 언론인 에드워드 루카스는 이를 역사수정주의라고 표현했다. 다른 관측통들은 러시아 지도부가 현대 우크라이나와 그 역사에 대해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확장이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다. 반대로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소련, 그리고 현재 러시아 연방에 대한 피해사례가 많은 동유럽 국가들은 현재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다른 유럽 국가들은 푸틴이 러시아 제국/소련의 영토회복을 시도하고 공격적인 군국주의 정책을 추구한다고 비난했다. 1월 6일 정오부터 1월 7일까지 36시간동안 임시 휴전이 러시아 측에서 제안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거부 의사를 보였다.

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KST(한국 시각) 기준 2022년 2월 24일 오전 11시 50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