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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r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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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조선로동당 총비서[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B]
김정은
金正恩 | Kim Jong Un[3]
출생
1984년 1월 8일[4] (40세)
강원도(북한)|강원도 원산시 송천동 특각 602호 초대소[5]
현직
조선로동당 총비서[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B]
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종교
무종교(무신론)
국적
학력
스위스 슈타인횔츨리공립중학교 (중퇴)[8]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 / 학사)
직업
정치인
계급
대장(계급)|대장[9] (2010년 ~ 201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10][11] (2012년 ~ 현재)
신체
168.6cm[12], 140kg[13], BMI 49.6[14], A형#s-1|A형
소속 정당
선거구
백두산 선거구(제111호)[15]
대표적 호칭
(북한)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16][17] /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 최고사령관동지 / 김정은장군(님) 등
대표적 호칭
(대한민국)
김정은[18] / 김정은 (국무)위원장[19] / 김정은 총비서 등
가족
조부 김일성 (1912년 - 1994년)
조모 김정숙(북한)|김정숙 (1917년 - 1949년)
김정일 (1941년 - 2011년)
고용희 (1952년 - 2004년)
이복형 김정남(북한)|김정남 (1971년 - 2017년)
김정철 (1981년생)
여동생 김여정 (1988년생)
아내 리설주 (1989년생)
장남 김○○ (2010년생)
장녀 김주애 (2013년 2월 19일생)
셋째 김○○ (2017년생[20])
조카
김한솔 (1995년생)
김금솔 (연도미상)
김솔희 (연도미상)
숙부
김만일(북한)|김만일 (1944년 ~ 1947년)
김평일 (1954년생)
김영일(북한)|김영일 (1955년 ~ 2000년)
고모
김경희(1946)|김경희 (1946년생)
김경숙 (1951년생)
김경진 (1952년생)
고모부 장성택 (1946년 ~ 2013년)
사촌형 김인강 (1983년생)
사촌누나 김은송 (1981년생)
1. 개요2. 후계자 생활3. 집권 이후
3.1. 2011년~2017년3.2. 2018년
4. 별명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제3대 최고지도자이자 독재자.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삼남으로, 김정일의 사처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박운'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후계자로서 권력을 승계받아 현재까지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집권 당시 나이는 27세로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다.

조선로동당 총비서,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등의 직책을 겸임하고 있다. 북한은 당국가체제(黨國家體制)로서 조선로동당 총비서 직함이 다른 어떤 직책보다도 앞서며, 이에 따라 북한 언론에서 사용하는 공식 칭호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다. 대한민국에선 보통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칭하며, 영어권에선 President Kim 또는 General Secretary Kim이라고 불리고 있다.

한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적인 측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단히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통틀어 가장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한국사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한민국과 미국을 향한 핵무기 위협 발언으로 인해 서방 매체에서 자주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는 연평도 포격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 여러 대남 도발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되며 아버지 김정일을 뛰어넘는 호전성으로 크게 경계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고, 여기서 비핵화와 종전을 약속하면서 문재인과 함께 남북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다. 2019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을 가지며 북미관계에서도 큰 진전을 일으키는 듯 했으나, 이후 비핵화 협상에 난항을 겪자 어떠한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2020년대 들어선 오히려 미사일을 빈번히 발사하는 등 평화를 위한 노력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전체주의 통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 일가에 대한 개인숭배 또한 여전하며, 잔인한 인권 유린 역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권 이후 장성택과 현영철 등을 숙청하며 당과 군부를 완전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의 영향으로 위상이 너무 막강해진 조선인민군의 기세를 약화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도 약화시키기 위해 조선로동당 및 중앙검찰소 라인을 우대하고 있다.

한편으론 경제개발을 강조하며 자력갱생, 속도전을 내세워 그 과정에서 경공업의 발전을 꾀하고 수많은 건설사업을 통해 중공업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대북제재의 해제가 동반되는 외부와의 무역 없이 국내 시장만으로 자력갱생을 실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고, 여기에 북한 정권의 유명무실한 행정 능력, 세계 최악의 부정부패, 그리고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까지 겹치며 결국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선 경제개발 실패를 인정하고 제2차 고난의 행군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2022년에는 북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과 비이성적인 무역 활동 제한, 국제사회의 지원 거부로 인해 북한에 심각한 식량난이 또다시 도래하였다. 이 때문에 최소 2018년 수준의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유의미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긴 힘들어 보인다.

이렇듯 국내외에서 촉발된 여러 위기에 봉착하자 그동안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2020년대부터는 오히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및 청년교양보장법 제정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더욱 무자비하게 옥죄고 있다. '젊고 외국물을 먹은 김정은이 북한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 예상했던 수많은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 그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 체제를 더더욱 퇴행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2. 후계자 생활[편집]

원래 김정은은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일설에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은 장손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 신세였다고. 링크 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남이며 언론 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고 더불어 나이와 경력이 있던 김정남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나, 김정남은 정식 결혼이 아니라 원래부터 유부녀와의 불륜의 소산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 김정은은 후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식결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정통성은 김정은쪽이 강하다.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달리 유일하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동복형 김정철의 경우, "김정일이 '여자아이 같다'는 평가를 내리며 후계자 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김정철과 달리 권력욕과 지도력이 있으며 어린 나이부터 부하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엿보였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김정남 후계자론이 대세였으며 김정남 대세론이 몰락한 후에도 김정철 대세론에 밀려서 김정은은 후지모토 겐지가 소개한 일부 일화만 주야장천 거론되며 "걔 성깔 있다더라~ 물론 증거는 없음" 정도의 평가를 받으며 고용희의 자식들이 대세인가 아닌가를 소개할 때 곁다리로 이름만 나오는 수준이었고, 2004년 고용희 사망 때도 형에게 밀려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후 5년간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2008년 12월까지만 해도 김정철 세력과 김정남 세력이 알력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김정철은 조선로동당 부부장 직위에 취임해서 적어도 북한의 실세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김정은 승계를 어느 정도 눈치챈 것으로 보이며 김만복 국정원장이 국정원 출입 기자들에게 세번째 아들의 승계가 가장 유력하다고 귀띔한 일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플리커에서 황한밍이라는 중국인이 북한 원산에서 촬영한 사진이 발견이 되었는데, 여기에 "만경대혈통과 백두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이것은 이런 칭호는 김정일만이 받았던 것이기 때문에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고, 2009년 6월 국정원이 김정은 후계자 등극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임이 만천하에 알려진다.
2010년 1월 8일, 즉 그의 생일,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생일, 6.25전쟁 휴전일, 로동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 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 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후에도 위의 각주에서 언급된 시게무라 도시미쓰가 김정은은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서 후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초를 쳤고 2010년 7월에는 신동아에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구해우가 김정은 후계자설은 뜬소문이라는 훈계조의 글을 게재하였으나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당 중앙위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후계자임이 명확해지면서 그야말로 개망신만 당했다.

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라고는 하지만 선전선동에 매우 중요한 요직이다)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

그러나 이 지도자에게 '권력 유지를 위한 능력' 말고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3살에 운전을 했니 백발백중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선전은, 반대로 말하면 '그것밖에 선전할 것이 없어서'인 것이다. 차라리 저런 황당한 소리를 선전이라고 할 바에야, 어릴 적부터 북한의 나아갈 길을 걱정한 속 깊은 아이였다거나, 오만한 미국인들을 말빨로 꺾었다거나 하는 소잿거리로 선전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김정일 때 썼던 선전이다. 그들의 선전에 따르면 소련 대사가 거들먹거리며 김정일에게 "동무도 우리 소련 대학교에서 공부할 거죠?" 라고 묻자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좋은 대학교인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 난 거기서 공부할 거다." 라고 말해서 소련의 오만한 대국주의에 반대해 북한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실제로 김일성대 경제학부로 진학하기는 했다), 3살 때 총을 쐈다느니 하는 것보다는 이런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과 러시아 등을 오가며 건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단다.

3. 집권 이후[편집]

3.1. 2011년~2017년[편집]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은 세계 최연소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조선중앙TV의 특별 방송에서도 김정일 추모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서 권력 서열 1위로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대한민국의 전문가들은 "1994년 당시 김정일의 승계 과정보다 훨씬 불안정하지만 김정일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중국의 지원으로 체제 붕괴나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이 미약하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일이 해왔던 1인 절대 독재는 불가능하며, 요직에 있는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등의 심복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세력 분포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박남기처럼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 많은 소련의 스탈린처럼 대숙청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예측과는 달리 장성택은 숙청되었으며, 유력한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김경희 역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잠적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정권 안정을 이제 자신하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김정은의 상황을 김정일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각이 있었다. 다만 아래의 주장은 한국의 대립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추어 서술된 면이 어느 정도 있다. 권력을 적절히 승계하는 것은 사실에 가까우나, 스위스 유학파라서 현실 감각이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2018년에서 2019년 말까지를 제외하고는 금강산 관광의 업적마저 부정하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충동적인 기질로 인해 들어맞지 않을 위기도 있다.
사망 발표 직후엔 일단은 김정일 장례에 모든 관심이 집중해서 별 탈은 없지만, 장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북한 내 정권들의 존폐 여부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김정은 초기에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정권 안정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건 오극렬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있으며,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이복형 김정남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여기에 아버지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까지 가세할 수도 있어, 안정적인 승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계승이 순조로운 듯하다. 상중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인사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여서다. 대표적으로 25일 군부를 이끌고서 조문을 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모부이자 핵심 실세로 예상하는 군부에 아무 직책이 없었던 장성택이 대장 직위를 달고 조문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점은 현재 북한의 실세 장성택이 군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니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도 작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김정일의 생전 지시인지, 아니면 김정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김정일이 생전 '나와 닮았다'라고 한 발언처럼 김정일만큼의 정치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오극렬 못지 않은 권력자인 현철해가 김정은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김정일의 집권 체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게 시작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대신 '제1비서'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취임해 조선로동당의 당권까지 장악했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의 직책이던 '국가 주석' 자리를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여 폐지시켰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 그리고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다시 국방위원장 대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했다.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남겨서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나란 추측도 했으나, 국방위원장직 역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헌법을 바꿔서 총비서가 아닌 제1비서로서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당 중심일 가능성이 높다.

2016년 5월 6일, 36년 만에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개최하였고, 5월 9일 새 직책인 조선로동당 위원장직을 신설하여 여기에 직접 자신이 취임하면서 완전히 당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바꿨다. 

그리고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에 추대되었다.

2017년에는 제6차 핵실험을 통해 마침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초토화시킨 리틀 보이와 팻 맨을 능가하는 핵무기 개발 및 실험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몰렸다.

3.2. 2018년[편집]

집권 이후 대남 대미 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180도 돌변하여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를 발표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를 계기로 개회식 당일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과 다음날 친서 전달 등이 이루어지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2018년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를 파견했고,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정상회담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3월 28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태양호를 타고 방중하여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으며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에 자신의 모습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며 판문점 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이때 김정은은 북핵(군사적 성취)보다 자신들의 정권 존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고 체제 안전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핵무기는 포기할 수 있다며 미국, 대한민국 등에게 핵무기 포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018년 5월 7일부터 5월 8일에 이번에는 참매 1호로 재차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롄에서 2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5월 10일에는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편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풀어줬다.

2018년 5월 16일 0시 30분에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2018년 5월 26일 15시 판문점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완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6월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1박 2일로 참매 1호로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베이징에서 3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3월 1차 방중과 5월 2차 방중과는 달리 첫 공식 방중이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냈는데 특히 연내 서울 방문 추진이라는 파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2019년이나 그 이후라도 만약 김정은이 실제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사례가 된다.

4. 별명[편집]

악명높은 독재자이니만큼 좋은 의미의 별명은 거의 없다. 꿀꾸리우스(Culcurius), 뚱땡이우스, 돈종(豚宗), 돼지3호, 딤정은, 맹물단지, 몽타주, 쇠매, 열흘이, 저팔계, 북돼지, 핵돼지, 북부돼공 등 한국, 북한, 중국에서 만든 별명이 진짜 많이 있는데 상당수가 비만에 의한 별명이다.

북한에서는 젊은대장, 둘째며느리, 김제곱, 돼지, 유치원생, 전간환자(정신질환자) 등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말 하다가 당국에 걸렸다간 평생 정치범수용소행이나 처형감이니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는 못한다.

2018년~2019년 초, 김정은이 남북관계 갈등 해소에 힘쓰는 것처럼 보이던 시절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인 "이니"를 따와 "으니"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이후로는 사장된 별명이다.
[A] 1.1 1.2 당연직으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도 겸함.[B] 2.1 2.2 당연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을 겸함.[3]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으로는 Kim Chŏngŭn이 되나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북한의 자체적인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Kim Jŏng Ŭn이다. 그러나 해당 표기법에서는 diacritic|변별 기호를 생략할 수 있다고 해 두었기에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에서는 Kim Jong Un이라는 표기만 사용하고 있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싱가포르 선언에도 Kim Jong Un으로 기재된 것을 보아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쪽이 공식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4] 김정일•후지모토 겐지•일본은1982년 출생으로, 고용숙·서양권은 1984년 출생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건 1984년|후자로, 미국·대한민국·중국도 이쪽으로 결론냈다.동아일보 우리민족끼리는 1983년 출생이라고 주장한다. 링크 공휴일이자 자칭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4월 15일)이나 김정일의 생일 광명성절 (2월 16일)과는 달리 2021년 시점에서도 명절은커녕 공휴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다. 2021년 김정은이 '김정은주의'를 내세우며 셀프 우상화에 나서고 있는데 그것이 완료되면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5]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반대편에 있다. 2018년 방남한 동생 김여정이 최문순 강원도지사에게 밝힌 내용이다. # 이와 별개로 북한 당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량강도 삼지연시 출생임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김일성|할아버지(만경대고향집)나 김정일|아버지(백두산 밀영, 실제로는 러시아 하바롭스크 근교 출신)마냥 출생지(라고 주장하는 곳)를 대대적으로 사적지로 만들고 있지는 않으며, 대내적으로도 그다지 출생지를 알리고 있지는 않다. 이북 5도 기준 함경남도 원산시 송상동, 송중동, 송하동, 문천군 덕원면 부산리, 어운리, 문암리 일대[8] School Liebefeld Steinhölzli.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다녔으나, 중퇴했다고 한다. 베른 국제학교 맞은 편에 위치해서 알렉스 맞추켈리가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9] 당시는 후계자의 위치였다.[10] 국가원수(元首)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元帥)' 자체가 하나의 군 계급명이다. 북한군은 원수 계급이 '대원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원수', '차수'의 4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원수'는 김일성, 김정일(사후 추서)에게만 부여된 계급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는 김정은 전용 계급이다. '차수'는 군 원로들에게 선물처럼 분배되는 계급이고, 직업군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은 그냥 '원수'('인민군 원수'라고도 함)이며 김정은의 취임 당시 이 계급에 도달한 사람은 오진우, 최광, 리을설 뿐이었다.[11] 2021년 1월부터 대원수 계급장을 단 사진이 공개되더니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에는 아예 대원수 견장을 찬 흰색 원수복을 입고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김정은은 원수로 호칭되고 있으며 원수 견장의 모습만 대원수 견장처럼 변경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는 김정은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12]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마주 서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키가 큰 편이라든가 아니면 트럼프와 만났을 때 키 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등 여러 가지 추측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키가 170cm인 문재인 대통령보다 같이 섰을 때 살짝 더 작았다. #[13] 2010년에는 90kg로 추정되었는데, 몇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장성택을 공개처형|공개총살한 이후로 특히 스트레스성 폭식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 뉴스에 따르자면 2014년에는 120kg, 2016년에는 130kg으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변 위협에 불면증…130kg으로 불어난 김정은 # 2020년 11월 3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체중이 14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그러나 2021년 9월 9일 정권 수립 73주년 열병식에는 체중을 많이 감량한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연설은 생략했다. 이에 당뇨로 인한 체중 감소라는 건강 이상설이 돌고 있지만, 건강관리를 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정은이 조부인 김일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려는 전략으로 살을 찌운 것인 만큼 체중 감량도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021년 10월 28일 김정은이 체중을 140kg에서 20kg 가량 감량했고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 2022년 9월 28일자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다시 140kg가 된 것으로 보인다.[14] 고도비만에 해당한다.[15] 2019년 이후로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불출마했다.[16] 북한에서는 이름 바로 뒤에 직책이 오는 경우 일반적으로 이름과 붙여 적는다.[17] 모든 호칭들 중 가장 격식 있고 길다고 볼 수 있는 호칭이다. 2020년 하반기 쯤부터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표현이 '국무위원장'으로 바뀌었다. 2021년 2월 중순까지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라는 긴 수식어를 사용하다가 이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과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경애하는'만 넣어 짧게 줄여 사용하고 있다. 특히 당 행사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라는 표현도 삭제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처럼 매우 짧게 사용하고 있다.[18]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이렇게 부른다. 과거 뉴스에서도 그냥 김정은이라고 불렀다.[19] 뉴스, 신문, 민주당계, 진보정당계 정치인들이 이렇게 부른다. 뉴스와 신문에서 김정은에게 위원장의 직함을 다는 것은 공적인 언론의 격식을 갖추기 위함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일부 정치인들이 이 표현을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종북주의자라서가 아니다.[20] 아들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