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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왕국
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Kingdom of Saudi Arabia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장.png
국기
국장
국가명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독립일
1927년 5월 20일 (99주년)
수도
리야드
최대 도시
리야드
언어
아랍어
인구
35,165,787명 (세계 47위 / 2026년 기준)
면적
2,149,690km (세계 13위)
국교
이슬람 (수니파)
종교
이슬람교 92%
기독교 5%
힌두교 3%
상징
국가
군주를 찬양하라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
표어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سعود
하나님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국화
대추야자
국기
정치
정치 체제
국왕
(국가원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Mohammed bin Salman Al Saud)
총리
(정부수반)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Mohammed bin Salman Al Saud)
경제
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1조 3,886억 (전체 / 세계 19위)
$32,881 (1인당)
PPP GDP
$2조 8,945억 (전체 / 세계 17위)
$63,118 (1인당)
통화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SAR)
외교
가입
국제기구
G20, 아랍 연맹, 이슬람협력기구, 걸프 협력회의, BRICS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녹사평대로 26길 37
남북수교
파일:대한민국 국기.jpg 1962년 10월 16일 (63주년)
파일:북한 국기.jpg 미수교
국가 코드
682, SA, SAU
국제 전화
+966
여행경보
특별주의
출국권고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출국권고
사우디-예멘 국경 인근 180km 지역[1]
1. 개요2. 상세3. 행정 구역4. 자연환경
4.1. 지리4.2. 기후
5. 인문환경
5.1. 언어5.2. 종교5.3. 이슬람력
6. 정치7. 왕실8. 국방9. 문화
9.1. 스포츠9.2. 예술
10. 문제점
10.1. 인권10.2. 여성의 인권
11. 역대 국왕12.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중동 및 서아시아에 있는 전제군주국이다. 2,207,651 km²에 달하는 영토를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랍국가이며,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전체 아랍권 국가들 중에서는 알제리에 이어 두번째로 면적이 넓은 국가이기도 하다. 

2. 상세[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북쪽으로는 요르단과 이라크가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쿠웨이트가 있고, 동쪽으로는 카타르바레인아랍에미리트가 있으며 남동쪽에는 오만, 남쪽에는 예멘이 있다. 다만 이집트와 이스라엘과는 아카바 만으로 인하여 서로 분리되어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와 페르시아 만에 둘다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 대부분은 아라비아 사막과 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8년 10월에 조사된 결과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중동에서는 가장 거대하고 세계에서도 18위권에 드는 규모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도 가장 젊은 국가들 중 하나인데, 3,340만 명에 달하는 인구 중 50%에 달하는 사람들이 25살 이하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세워진 곳은 고대 문명이 번성한 유서깊은 지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대 역사는 인류 역사의 여명기로 거슬러올라가며, 세계 제 2의 종교인 이슬람교도 바로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지역에서 7세기 초에 생겨났다. 이 때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통일하고 동일한 이슬람 공동체로 묶었던 것이다. 무함마드가 632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후계자들은 급격하게 영토를 늘려나갔고 이슬람교를 전 세계로 포교하기 시작하였다. 전성기 때에는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에 닿았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 발흥한 아랍 왕조들에는 정통 칼리파조, 우마이야 칼리파조, 아바스 칼리파조, 파티마 칼리파조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무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이슬람 왕조들이 이 곳에서 번성하였다.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는 크게 하자즈, 네지드, 동부 아라비아, 남부 아라비아, 총 이 4개의 지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1932년에 이븐 사우드에 의하여 건국되었는데, 그는 1902년부터 원정을 펼쳐 4개의 지방들을 하나의 국가로 묶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도 절대적인 전제군주정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사우드 가문에 의하여 국왕직이 세습되는 구조이다. 극보수적인 와하비즘과 수니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류 문화를 장악하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가지고 이 사상을 전세계로 퍼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종종 ‘2개의 신성한 모스크의 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메카에 있는 알 마스지드 알하람과 메디나에 있는 알 마스지드 안 나바위, 이 2개의 사원이 이슬람교 전체에서 가장 신성한 모스크들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다.

1938년 3월 3일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이후 연이어 유전들이 발견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이래 세계에서 2번째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로 떠올랐고,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과 6번째로 거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 발견이 줄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자국경제에 못 따라간 석유생산량에 의하여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은행으로부터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인간개발지수도 높은 편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아랍 국가로는 유일하게 G20에 가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 내전 개입, 이슬람 테러리즘 후원 의혹, 특히 심각한 여성 인권 침해와 시민권 탄압, 사형제의 남용, 무신론자와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국가적 탄압, 국가적인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샤리아법의 엄격한 적용 등으로 전세계적인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GDP의 8%를 군대에 쏟아부으며, 이는 오만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양의 자금을 국방비에 투자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무기 수입국이었으며, 중동으로 수출하는 미국 무기들 중 절반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했다. BICC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28번째로 군사화된 나라이며 군장의 질도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에서 최고로 우수한 편에 손꼽힌다고 전한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예멘 내전 간섭 등의 행동으로 인하여 국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으며, 특히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당한 이후 그 목소리는 더더욱 커지고 있다.

3. 행정 구역[편집]

수도는 리야드이다.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는 메카, 메디나, 항구 도시인 지다 등의 주요 도시가 존재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총 13개의 '마나티크 이다리야'(مناطق إدارية)로 나누어져 있는데, 마나티크 이다리야는 행정 구역에서 '도'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13개의 마나티크 이다리야는 118개의 '무하파잣'(محافظات)으로 나뉜다. 무하파잣은 행정 구역에서 주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 118개의 무하파잣들에는 13개의 주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주도들은 시장을 총책임자로 하는 다른 무하파잣들과는 다르며, 법적으로도 유별한 대우를 받는다. 이 무하파잣들은 또 하위 행정 구역인 '마라키즈'(مراكز)로 나누어진다.

4. 자연환경[편집]

4.1. 지리[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인 아라비아 반도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위 16도에서 북위 33도에 걸쳐져 있으며, 동경 34도에서 동경 56도에 뻗어 있다. 오만 및 아랍에미리트와의 국경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전체적인 면적은 알 수 없다. 월드 팩트북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면적을 2,149,690 km2 (830,000 mi2)로 추정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국가라고 규정했다. 지질학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바이판에서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리는 아라비아 사막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준사막과 관목지로 구성되어 있다. 몇몇 산맥과 고원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는 연결된 수많은 사막들로 구성된 땅이며 국가 남동부에 위치한 룹알할리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의 일부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몇몇 호수가 존재하지만, 영구적인 수자원은 없으며 수많은 와디가 존재한다. 비옥한 지역은 곳곳에 산재한 분지, 오아시스, 그리고 와디들에서 발견된다. 주요 지형학적 특징은 중앙의 고원으로 홍해에서 급격히 상승해 네지드쪽으로 점차 줄어드는 형상이고, 페르시아만 쪽으로 뻗어 있다. 홍해 해안 지역에서는 좁은 해안 평야가 있으며, 이 지역은 티하마로도 불린다. 아시르 주의 남서 지방은 산악지대이고 자발 사와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아시르 주 일대를 제외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막 기후로, 낮에 매우 덥고, 밤에는 급격히 온도가 떨어진다. 여름의 평균 기온은 45도이지만, 가장 높은 경우에는 54도까지 올라간다. 겨울의 경우 온도가 0도까지 하락한다. 평균적인 강수량도 적은 편이다. 아시르 지역의 경우 인도양의 몬순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몬순이 오는 10월부터 3월까지 평균 300mm로 비가 오며 1년 전체 강수량의 60%를 차지한다.

4.2. 기후[편집]

대부분의 지역은 건조 기후로 강수량이 매우 적은 사막 지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추운 달은 12~1월로, 이때의 날씨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유사하다. 겨울철의 경우 모래바람이 불지 않아 공기가 맑고 비가 오는 날이 많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파르와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통 겨울 외투가 반드시 필요하다.

계절에 무관하게 햇살이 강한 날이 많아, 선글라스·선크림이 필수적이다.

가장 더운 달은 6~7월이다. 낮의 온도는 보통 50도까지 올라가며, 햇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100미터도 걸어가기 힘든 기후이다. 이때 밤의 온도는 약 27도, 일교차는 보통 16도 이상이다.

5. 인문환경[편집]

5.1. 언어[편집]

아랍어가 공용어다. 아랍어 구사자들은 크게 3부류로 나뉘는데, 대략 6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헤자지 아랍어를 사용하며, 8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즈디 아랍어를,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페르시아 만 아랍어를 사용한다. 대략 5만 명의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서 지방의 고유어인 파이피어를 사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수화가 공식적인 수화 언어이다. 그 외에도 리야드, 지다 등의 도시에서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랍어를 쓰지 않더라도,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 영어와 아랍어를 제외하고 타갈로그어, 로힝야어, 이집트 아랍어 등도 매우 많이 이용되고 있다.
== 외국인 ===
사우디아라비아 통계청의 조사 결과, 2014년 말에 대략 전체 인구의 33%가 외국인으로 조사되었다. CIA 팩트북은 2013년에 대략 21%의 인구가 외국인이었다고 추정하였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인도인이 150만 명, 파키스탄인이 130만 명, 이집트인이 90만 명, 예멘인이 80만 명, 방글라데시인이 40만 명, 필리핀인이 50만 명, 팔레스타인인이 26만 명, 인도네시아인이 25만 명, 스리랑카인이 35만 명, 수단인이 25만 명, 시리아인이 10만 명, 튀르키예인이 8만 명 정도가 있다고 집계되었다. 서방 유럽인의 경우에는 약 1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추정되며, 이들은 대부분 한 곳에 모여 살거나 폐쇄적인 사회를 따로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10년 이상 거주한 무슬림들은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다만 팔레스타인 국적의 경우에는 사우디 자국민들과 결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없는데, 이는 아랍 연맹의 회원국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국적을 주는 것을 거부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51년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가 늘어나는 와중에 석유 수출은 갈수록 정체된 상황을 보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점차 '사우디화' 정책을 펼쳐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국민들에게 이를 배분해주고 싶어한다. 1990년과 1991년에 정부는 80만 명에 달하는 예멘인들을 쫓아냈고, 불법 예멘인 이민자들을 막기 위하여 장벽을 세우고 국경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2013년 11월에는 수 천명에 달하는 불법 에티오피아 국적 체류자들을 추방하였고, 국제 인권 기구 등은 이같은 결정을 비판하였다. 2013년부터 대략 50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들, 대부분이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예멘 국적의 사람들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5.2. 종교[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불리거나 혹은 종교의 자유가 다른 국가보다 덜 보장되는 것으로 악명높은 아랍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국민의 절대 다수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국가적으로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국민들이 무슬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알려진 다른 아랍 국가 중에서도 그러듯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또한 사우디 자국민을 제외한 외국인이 국가에서 지정한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를 개인적으로 믿을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슬람교의 예배장소인 모스크를 제외한 교회와 절, 사원 등의 종교 시설의 설립은 법으로 막고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의 발상지이고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건국 이념에서도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종교는 함부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거나 선교를 할 수 없다. 라마단(禁食)이 엄격하게 지켜지며(이 때문에 1998년 아시안 게임에 불참하였다.), 공항에서 술, 음란 잡지 등은 적발시 압수조치될 정도로 무슬림 율법의 적용에 매우 엄격하다. 종교 때문에 야구 등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보다는 축구 등 시간 제한이 있는 스포츠가 발달하였다.

종파 별로는 전체 인구의 90%가 수니파이며, 10%는 시아파에 속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주된 교파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와하비즘이다. 와하비즘은 주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그 세를 불리고 있으며, 18세기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가 창시하였다. 이같은 폐쇄적인 교리 때문에 같은 무슬림 사이에서도 소수파인 시아파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탄압받고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총 150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단기적인 직업 목적으로 기독교도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은 제한적으로 허가하고 있으나, 다만 공개적으로 믿음을 드러내거나 포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한다. 이런 탄압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의 기독교 비율은 거의 0에 가깝다. 자국민이 만일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을 때에는 사형이라는 극약 처방을 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현재 39만 명에 달하는 힌두교도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인도 계열의 외국인 노동자이다. 무신론자들도 존재는 하지만, 국가에서 거의 테러리스트 취급을 하기에 대놓고 이를 표명하지는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태어난 직후부터 남녀가 부동석일 정도로 남녀구별이 엄격하여, 초등학교부터 남녀 공학 학교가 단 하나도 없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교과목에도 꾸란이 포함되어 있다. 강간과 성폭력은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로 간주되며, 실제로 사우디 법원은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을 참수한 바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라마단 기간에는 낮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5.3. 이슬람력[편집]

622년, 헤지라 이후 그 날을 이슬람교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서기 2016년은 이슬람력으로는 1437년이다.

6. 정치[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자 현대에 몇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전제군주정이다. 다만 1992년에 왕실 칙령으로 선포된 기본법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도 샤리아법과 쿠란은 필수적으로 지켜야만 하며, 쿠란과 무함마드의 어록을 담은 경전인 하디스가 국가의 헌법으로 공포되었다. 그 어떠한 정치적인 단체나 선거도 왕실의 허가 없이는 실행이 불가하며, 해외 평론가들은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전체주의적 독재주의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2012년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총 167개국들 중 5번째로 민주주의 지수가 낮은 국가로 평하기도 하였으며, 프리덤 하우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최하점인 7.0점, 즉 '자유롭지 않음'이라는 평가를 주었다.

전국적인 선거와 정당의 부재 탓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판에는 크게 왕실과 그 나머지 시민들, 이 두 세력만이 존재한다. 다만 사우드 왕가 이외의 인사들에게는 정치적인 참여권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정무의 대부분은 사우드 왕가의 일원들이 토착 셰흐들이나 경제적 거물들과 밀실에서 협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며,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에도 보도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관습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모든 성년이 된 남성들이 국왕에게 탄원을 넣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옛적 부족 시대였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관습인데, 이처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부족적인 색채가 정부 기관들에게까지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부족적인 구분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매우 강한 편이고, 사우드 왕가 이외의 정치적 인사들도 대부분 유력 토착 부족장 가문들의 후예이며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국가적인 대소사를 결정하는 편이 많으며 지역적으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 관계에 대하여 비판이 많다 보니, 1990년대에 국정자문회의(Majlis Ashura)를 설립하고 정치 참여 계층의 폭을 넓히려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사우드 왕가의 통치에 반발하는 세력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슬람 수니파 세력의 실천주의 계열 세력들, 둘째는 특히 동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이슬람 시아파 세력, 세번째는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평론가들, 네번째는 분리주의와 독립을 추구하는 지방의 토착 셰흐들이다. 이 네 세력들 가운데에서 수니파의 실천주의 계열 세력들이 가장 정부가 온 힘을 쏟아 억누르는 대상들이며 그 목소리도 가장 크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정부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시위들, 심지어 이 시위들이 평화적이라고 하더라도 폭력이나 공권력을 사용하여 진압하는 경우가 많다.

7. 왕실[편집]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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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아지즈
사우드
파이살
칼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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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흐드
압둘라
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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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사우디아리비아의 국가원수이자 통치자이다. 국왕은 절대군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은 물론 정무(政務)에까지 개입한다. 또한, 국왕은 사우디아라비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기도 하다. 

8. 국방[편집]

사우디아라비아 군대는 모병제를 실시한다. 이슬람 종교법상 징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GDP의 8%에 달하는 비용을 군대에 투자하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군대는 크게 사우디아라비아 육군,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사우디아라비아 해군, 사우디아라비아 방공군, 사우디아라비아 국가경비대(Saudi Arabian National Guard) , 그 외 준군사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을 다 합치면 총 20만여 명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 2005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육군 75,000명, 공군 18,000명, 방공군 16,000명, 해군 15,500명, 국가경비대 75,000명, 그리고 25,000여 명의 부족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참고로 '알 무캇바라 알 아마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사적으로도 파키스탄과 상당히 깊은 군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비밀리에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에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근미래에 파키스탄으로부터 핵무기를 넘겨받을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가경비대는 예비군에는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면에 나서며 군사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븐 사우드의 부족군에서 유래하였으나, 현재의 국가경비대의 모태는 압둘라 국왕의 사병에서 출발한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국가경비대는 국방부와 항공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오직 국왕과 왕실의 명령만을 따른다. 이 국가경비대는 사우드 왕조의 유력 파벌인 '수다이리파'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 수다이리파의 유력자가 2011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국방부 장관, 항공부 장관, 국가경비대 총사령관을 모두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방비에 막대한 지출을 퍼붓기 시작하였고, 2019년에는 7,840억 달러라는 거금을 모두 국방비로 지출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GDP의 8%에 달하는 비용을 국방비로 들이며 세계에서 가장 국방비 지출이 많은 나라 10위권에 들었으며, 막대한 자금을 유용하여 세계 최신제 무기들, 특히 미국제, 영국제, 프랑스제 무기들을 사들이며 세계에서 가장 잘 무장된 군대들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군수산업계는 1951년부터 2006년까지 8천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들을 사우디아라비아에 팔아왔다. 2010년 10월에는 미국 국방부가 600억 달러가 넘는 무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하겠다고 미국 의회에 제시한 적도 있다. 2013년에는 사우디라아비아가 이같은 지출을 더욱 가속화하여 영국, 프랑스, 일본을 제치며 세계 4위로 올라서기도 하였다.

영국은 1965년이래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가장 주요한 무기 수입원들 중 하나였다. 1985년부터 영국은 파나비아 토네이도나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같은 항공기들을 사우디아라비아에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알 야마마 거래를 통하여 현재까지 430억 파운드에 달하는 무기를 팔아왔고, 앞으로도 400억 파운드에 달하는 무기들을 또다시 팔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무기 수입국이었으며, 2005년에서 2009년까지 수입한 무기들의 총량에 4배에 달하는 무기들을 수입하였다. 프랑스는 2015년 한 해에만 180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들을 사우디아라비아에 팔아치웠다. 다만 2016년에 유럽 연합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내전 간섭에 대한 항의로 무기 수출 제한을 걸 것을 협의하였다. 2017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게서 1,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수입해들였다.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가 살해당한 이후, 유럽 의회에서는 2018년에 전유럽적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 제재를 시행하였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현 상황에서는 도저히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앞으로 무기를 팔 수 없다'라고 단언하며 독일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공식적인 무기 수출 금지국으로 만들었다. 2019년에는 캐나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역대급으로 많은 양의 무기를 팔아치웠다.

9. 문화[편집]

9.1. 스포츠[편집]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팀들 가운데 하나이며, 6번이나 AFC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나 그중 3번이나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월드컵에도 1994년에서도 두각을 발휘하였는데, 1994년 피파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벨기에와 모로코 등을 꺾었으나 16강전에서 스웨덴에게 패배하였다. 199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된 킹 파흐드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다만 전통적인 축구 강국인 아르헨티나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그 외에도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농구 등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명한데, 1999년에 농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인 낙타 경주와 경마도 매우 인기가 많다. 리야드에 있는 경기장에는 주로 겨울에 경기를 개최한다. 특히 낙타 경주는 1974년부터 왕실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전역에서 이 경기에 참가하기 위하여 선수와 낙타들이 올라온다. 그 외에도 매사냥과 같은 전통적 스포츠들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

여성 스포츠는 보수적인 이슬람 세력들로 인하여 남성 스포츠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져 있다. 다만 최근들어서는 이같은 규제들이 훨씬 완화되고 있으나, 2018년까지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도 금지되었다. 최근들어서는 출입이 허가되었으나 여전히 좌석이 남성들과 분리되어 있고, 주요 도시의 3개 경기장에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현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수많은 새로운 종목의 스포츠들을 국내에 유치하거나 스포츠 스타들을 영입해 공연을 펼치도록 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스포츠워싱', 즉 예멘 내전 간섭과 인권 탄압으로 악화된 국가 이미지를 스포츠를 이용하여 만회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9.2. 예술[편집]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관들은 와하비즘의 교리와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왕국 곳곳에 성업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의 이슬람 근본주의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1979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메카의 대모스크를 점거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해지자 정부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하여 모든 극장과 영화관들을 폐업시켰다. 다만 2005년에 압둘라 국왕이 다시 현대화 정책을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몇몇 영화관들이 다시 재개장할 수 있었다.

18세기 이래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을 점거한 와하비즘 교리는 그 엄격한 율법 때문에 예술과 오락 산업의 성장을 정체시켰다. 게다가 이슬람 수니파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율법적으로 금지하고 대신 기하학적인 문양, 식물, 추상적인 무늬 등만 그릴 수 있게 허락하였는데, 이때문에도 많이 예술과 미술계가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20세기에 서구와의 접촉이 점차 늘어나며 주택, 가구, 의복 등 여러 서구식 문화들이 아라비아 지방으로 들어왔다. 아라비아 지방에서 음악과 춤은 매우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전통 음악들은 주로 시와 짝을 짓고 있으며 함께 불리는 경우가 많다. 악기에는 라바바와 같이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것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드럼과 같은 투블, 탬버린과 비슷한 타르 등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춤들 중 하나는 '아르다'라고 불리는, 부부가 함께 추는 춤인데, 보통 남자들은 칼이나 총을 차고 춤을 추며, 드럼과 탬버린의 리듬에 맞추어 음악과 춤을 즐기는 것이다. 종교적인 율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검열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매우 엄격하여 문학의 발달을 늦추었다. 몇몇 사우디아라비아의 소설가나 시인들이 아랍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뛰어난 문학 작품들을 창작하기도 하였으나, 정작 자신의 조국에서는 오히려 이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2016년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중문화위원회는 사우디의 문화를 세계로 전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고, 그 다음해에 리야드에서 25년 만의 첫 콘서트가 열렸다. 그외에도 이같은 변화에 힘입어 레슬링 경기, 몬스터 트럭 경기, 코미디쇼 등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2018년에는 35년만에 첫 대중 영화관이 개방되었으며, 2030년까지 이를 2,000여 개까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점차 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칸 영화제, 베네치아 영화제 등에 작품들을 출품하고 있는데, 리야드에서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넘는 영화 시사회를 개최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서양식 음악과 콘서트들을 점차 풀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머라이어 캐리, 숀 폴, 에이콘 등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연을 열었다.

10. 문제점[편집]

10.1. 인권[편집]

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프리덤하우스와 같은 각종 인권 관련 국제기구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과 인권 탄압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법정에는 배심원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소수의 관련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0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처음으로 형사소송법이 도입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는데, 이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이마저도 판사들에게 무시되는 경우가 잦다고 밝혔다. 형법으로 체포된 자들은 자신이 체포된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고 만일 죄를 자백하지 않을 시 고문이나 신체적인 압박도 당할 수 있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판사들은 이미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중간에 증거나 물증이 있다고 하여도 이를 근거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가 힘들다. 대다수의 재판들은 비공개로 처리된다. 이같은 불공정한 재판제도는 외국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닌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영국 국적의 연금수령자이자 암환자, 그리고 74세의 고령이었던 카를 안드레가 집에서 술을 담갔다는 이유로 360대의 태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그는 영국 정부의 항의로 인하여 풀려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히 세계 최악의 인권 국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권문제들로는 지나친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심각한 여성 인권 탄압, 사형제로 다스릴 정도로 억누르고 있는 동성애 문제, 종교적인 차별, 종교경찰들의 지나친 권한, 종교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의 제한 등 여러가지들이 있다. 1996년과 2000년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4개의 UN인권 관련 협약에 서명하였고, 국가 인권 위원회를 2004년에 창설하였다. 허나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부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이유로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실제 권한은 매우 약하기에 별다른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심지어 UN의 세계인권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정말 몇 안되는 나라들 중 하나인데, 그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국가이고, 서구의 인권 같은 가치들은 거의 잘 맞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들고 있다.

인권 탄압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12년에 아랍의 봄을 맞아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17세 소년 알리 무함마드 바키르 알 님르는 2014년 5월에 체포당했는데, 공개적으로 참수형을 당했고 그 시체는 십자가에 끌려 올라갔다. 2013년에 정부는 수 천명에 달하는 외국인들을 국외로 추방하였는데, 주로 비자가 만료되었거나 불법으로 거주한 자들이었다. 인권 기구들에 의하면 이러한 외국인들이 고용주들이나 국민들에 의하여 고문당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오는 것을 꺼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 서비스의 질 자체를 상당히 낮추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는데, 자국민들은 정부의 현금 지원 등에 익숙해져 있기에 막노동과 같은 블루 칼라 일자리들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극단적인 개념들이 대중들 사이에서 퍼지는 것'을 막고, '관용과 온건과 같은 이슬람의 진정한 가치들을 전파하는 것'을 국가적인 이념으로 삼고 있다. 다만 이 '관용과 온건'이라는 정책은 더 선이나 엠네스티와 같은 외국 언론, 국제기구 등에 의하여 의문을 불러 일으켰는데, 현재까지도 이슬람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자유 선거와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시아파의 셰흐 1명을 '종교적'인 이유로 처형하였다. 2018년 10월 2일에는 사우디의 저널리스트이자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실종되었는데, 튀르키예 정부가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까슈끄지는 영사관에서 살해된 후 시체가 토막나 버려졌다고 전했다. 2020년 4월, 최고법원은 살만 국왕의 명을 받아 범죄를 저지른 사회적 소수자들이 더 이상 사형에 처해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신 수용소에서 재교육 프로그램을 최소한 10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외국으로 나가있는 반체제 인사들을 자국으로 송환하기 위하여 자국 내에 거주하는 가족들을 포로로 잡아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진다.

10.2. 여성의 인권[편집]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 미국 국무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차원의 여성 차별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판정하였으며 정부의 정책들로 인하여 여성들이 제대로 된 참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하였다. 2010년에 조사된 성격차지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체 134개국 가운데에 129위를 차지하며 최하위에 가까운 성평등 지수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행위도 처벌할 수 있는 법도 미비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법에 의하면, 모든 여성들은 최소한 1명의 남성을 '보호자'로 삼고 있어야한다. 2010년대 들어선 지금에도 여성들은 이 보호자들의 허가가 있어야만 여행, 공부, 일을 할 수 있었다. 다만 2017년 5월에 왕실 칙령에서 교육이나 복지와 같은 기본적인 공립 서비스들을 남성 보호자들의 허가 없이도 여성들이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반포되었다. 다만 이마저도 샤리아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성들은 법정에서도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데, 사우디 가족법에 따라 '여성 2명의 증언은 남성 1명의 증언과 같다'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부다처제도 법적으로 허가되며, 여성은 그 어떠한 법적 보호 조치도 없이 '탈라크' 제도라고 하여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할 수 있다. 여성은 반면 마음대로 이혼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오직 남성과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만, 혹은 남성이 신체적으로 심각한 상해를 입혔을 때, 그 것도 법률상으로만 이혼이 가능하다. 다만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이 여성에게 일정한 재산은 반드시 남겨주라고 기록을 해놓았기에, 여성들은 그나마 남성 상속자가 받는 것의 절반 정도는 물려받을 수 있다.

여성이 처음으로 결혼하는 나이는 25세로 매우 젊은 축에 속하나, 다만 조혼 풍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015년에 여성은 대학 졸업자의 51%를 차지하였으나, 실제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고용자 비율에는 13%밖에 차지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들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여성 문해율은 81%로, 남성의 문해율보다 훨씬 낮다. 2018년까지 여성들은 마음대로 운전을 하거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엄금되었다. 2014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교육부에서 공식적으로 의회에 '샤리아법에 어긋나지 않는 스포츠에 한하여' 여학생들에게 걸려있는 외부활동 금지 조치를 일부 풀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다만 여전히 성차별적인 태도는 유지하고 있으며 남녀간에 합반은 꿈도 꿀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무타와'라 불리는 종교 경찰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공공적으로 여성들의 인권과 권리를 매우 심각하게 탄압하는 사회적인 병폐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식당에서 여성들에게 지정된 자리에 앉으라고 강요하거나, 히잡 바깥으로 머리카락이 흘러나오지 않게 강압하는 등 따위의 제재를 공개적으로 가한다.

이후 서구 사회의 비판과 국제적인 압력으로 인하여 주식시장의 책임자에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하거나 히잡 등 이슬람식 복장에 대한 규제를 정말 일부 완화하고는 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 문제는 현재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11. 역대 국왕[편집]

  •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932 - 1953)
  •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953 - 1964)
  •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964 - 1975)
  • 칼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975 - 1982)
  • 파흐드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982 - 2005)
  •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2005 - 2015)
  •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2015 - 현재)

12.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

[1] (지잔 주, 아브하(Abha), 카미스 무샤이트(Khamis Mushait)시 포함), 샤이바 유전, 프린스술탄 공군기지, 라스 타누라, 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