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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오세훈
1. 개요[편집]
오세훈의 생애를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유년기[편집]
1961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의 후손으로[5] 경기도 용인에서 10대째 살아온 집안이나 경술국치에 몰락하였다.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회억리에 조부모와 조상의 선산을 두고 있다.
오세훈은 어린 시절을 "산꼭대기 동네에 살면서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러 다니면서 학원도 못 다닐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으며, 숙제는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아버지는 부도 직전의 건설회사에 재직하여 급여는 밀리기가 일쑤였고, 어머니는 부업으로 침구류를 만들었다. 오세훈은 카나리아 같은 관상용 새를 키워 돈을 벌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회사 사정으로 온 가족이 부산 광복동으로 이사하여 사무실 한켠에 임시로 칸을 막고 다다미를 깔고 지냈다.
대일고등학교 3학년인 1978년 송상호와 짝이 되었다. 송상호는 오세훈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몸이 좋지 않아 한해 학교를 쉰 뒤 3학년으로 복학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학교를 자주 빠지던 송상호의 숙제를 위해 그의 집을 자주 들르면서 송상호의 여동생인 송현옥과 만났다. 그 뒤 송현옥과 같은 대학 커플로 이어지고 후에 결혼하게 된다. 1979년에 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정학부에 입학하였으며, 그 후 고려대학교 법대로 편입하였다.
오세훈은 어린 시절을 "산꼭대기 동네에 살면서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러 다니면서 학원도 못 다닐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으며, 숙제는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아버지는 부도 직전의 건설회사에 재직하여 급여는 밀리기가 일쑤였고, 어머니는 부업으로 침구류를 만들었다. 오세훈은 카나리아 같은 관상용 새를 키워 돈을 벌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회사 사정으로 온 가족이 부산 광복동으로 이사하여 사무실 한켠에 임시로 칸을 막고 다다미를 깔고 지냈다.
대일고등학교 3학년인 1978년 송상호와 짝이 되었다. 송상호는 오세훈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몸이 좋지 않아 한해 학교를 쉰 뒤 3학년으로 복학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학교를 자주 빠지던 송상호의 숙제를 위해 그의 집을 자주 들르면서 송상호의 여동생인 송현옥과 만났다. 그 뒤 송현옥과 같은 대학 커플로 이어지고 후에 결혼하게 된다. 1979년에 고등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정학부에 입학하였으며, 그 후 고려대학교 법대로 편입하였다.
3. 변호사, 방송인 활동[편집]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 16기로 입소하였다. 졸업시험 도중 점심으로 먹은 콩비지가 탈을 일으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해당 시험은 결시처리되었다. 이로 인해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시보로 연수 중에 사법연수원에서 유급 결정이 내려져 17기로 수료하였다. 1987년 오세훈은 사법연수원생 신분으로, 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중인 피고인을 무료변론하게 된다. 이 형사재판에서 검찰의 기소에 대해 무죄를 받아내었다. 오세훈은 이 사건의 변론요지서를 간직하고 훗날 방송에서 '내 인생의 사과나무'라며 소개했다.
1988년 육군에 입대하여 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정보처(2처)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했고,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전공하여 1990년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육군에 입대하여 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정보처(2처)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했고,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전공하여 1990년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3.1. 대한민국 최초의 일조권 침해 피해보상 판결[편집]
1991년 변호사를 개업했고, 얼마 되지 않아 인천 산곡동 경남아파트 주민집단소송 사건을 수임하였다. 건설사가 아파트의 간격을 기준보다 가깝게 지어 햇볕이 들지 않아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건설사와 보상 협의를 시도했으나 결렬되었고, 구청에도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에 주민들은 서울남부지법에 공동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당시 헌법35조에 명시된 환경권은 그저 조문일 뿐 형사·민사상 판례는 전무하였다. 이에 오세훈 변호사는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옆나라 일본의 건축기본법과 판례를 연구해 변론자료로 사용하였고, 한국감정원의 감정촉탁의뢰, 그리고 서울대 건축공학과 김광우 교수를 감정인으로 선임하여 과학적인 피해보상액을 산정하였다. 결국 2년 6개월에 걸친 법정싸움 끝에 1심에서 재판부는 주민들의 손을 들어 주고 건설사가 주민들에게 총 13억원을 배상하라는 2년 후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헌법 조문상으로만 존재했던 환경권이 실질적 권리로 인정받은 대한민국 최초의 사건이었고, 법원은 구체적인 일조권 침해의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당시 건축법시행령 제86조 제2호 (나) 목에 의하면 연속하여 일조를 확보하는 기준을 건축조례에 위임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당시 지방자치단체에는 관련 조례가 전무하였다. 그리하여 일조권을 침해받아도 행정기관으로부터 '법적 하자가 없다'고 반문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 판결을 계기로 '동지일을 기준으로 9시부터 15시까지 6시간동안 일조시간이 2시간 이상 연속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됨에 따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토지공법학회 학술저널에 '일조권에 대한 사법적 검토'라는 제목의 학술논문을 게재하였다. 본격적으로 오세훈은 환경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7년 서울시 구로구 재건축현장에서 고층 아파트에 가려 주변 단독주택 거주자들의 일조권이 침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도 1심에선 이미 패소한 상황에서 오세훈 변호사는 2심에서 공사중지 판결을 이끌어냈다.
3.2. 시민운동과 방송계 진출[편집]
일조권 침해 소송을 진행하며 여러 시민단체와 접촉한 것을 계기로 최열 대표와 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1992년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이 되어 5년간 무료상담을 진행했다. 그와 동시에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시작한 '형사당직변호사'로 활동하였고, 1996년에는 형사당직변호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의원을 역임했고, 1997년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감사를 맡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환경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환경변호사로서 자연공원법 입법청원 및 의회입법 발의,[12], 통합선거법 제87조의 위헌에 관한 헌법소원, 고리핵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 현장 조사 후 책임자 고소, 상계소각장 환경영향평가 조작사건 수사촉구, 패스트푸드점 환경실태 조사에 관한 기자회견, 그린벨트 해제안에 대한 헌법소원(민변 환경특위) 등으로 활동하였다.
일조권 소송에서 새내기 변호사가 대기업 변호인단을 상대로 승소한 이 사건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언론 매체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러던 중 MBC뉴스 손석희 아나운서와 인터뷰한 것을 지켜본 방송국 관계자가 오세훈에게 방송출연을 권유하면서 오세훈 변호사는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MBC에서 방영한 《오변호사 배변호사》의 진행자가 되었다. 한국 복장기술경영협회에서 발표한 양복이 제일 잘 어울리는 베스트 드레서10에 선정되었고,[16] 씨네2000에서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가장 사귀고 싶은 유부남'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방송 내용을 수필로 엮은 저서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TOP 10에 진입하였다. 오세훈은 남성 정장브랜드 '로가디스'의 초대 TV CF모델로도 활동했고, 생명보험협회 TV CF모델로도 활동했다. 1996년 동아일보의 결혼하고 싶은 남성(상) 설문조사에서 배우 이병헌을 제치고 6위로 조사됐다.
1996년 5월에는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에 위촉된 뒤, 10월부터 1년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맡았다.[20] 이 기간 중 이권단체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갑론을박 동서남북》, 《오늘과 내일》, 《뉴스 따라잡기》 등의 TV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경원대학교에서 민사소송법 강사로 재직하였고, 1997년 9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민사소송법의 겸임 교수로 일했다. 1998년 미국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 Law School에서 Visiting Scholar로 재직 후 199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사소송법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이장호, 김기수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1999년 3월 다시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민사소송법 겸임교수로 위촉되었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매맞는 여성의 쉼터)에서 공익변호사로서 무료법률상담을 하기도 했으며, 2000년부터 다시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일조권 소송에서 새내기 변호사가 대기업 변호인단을 상대로 승소한 이 사건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언론 매체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러던 중 MBC뉴스 손석희 아나운서와 인터뷰한 것을 지켜본 방송국 관계자가 오세훈에게 방송출연을 권유하면서 오세훈 변호사는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MBC에서 방영한 《오변호사 배변호사》의 진행자가 되었다. 한국 복장기술경영협회에서 발표한 양복이 제일 잘 어울리는 베스트 드레서10에 선정되었고,[16] 씨네2000에서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가장 사귀고 싶은 유부남'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방송 내용을 수필로 엮은 저서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TOP 10에 진입하였다. 오세훈은 남성 정장브랜드 '로가디스'의 초대 TV CF모델로도 활동했고, 생명보험협회 TV CF모델로도 활동했다. 1996년 동아일보의 결혼하고 싶은 남성(상) 설문조사에서 배우 이병헌을 제치고 6위로 조사됐다.
1996년 5월에는 시사저널 편집자문위원에 위촉된 뒤, 10월부터 1년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맡았다.[20] 이 기간 중 이권단체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갑론을박 동서남북》, 《오늘과 내일》, 《뉴스 따라잡기》 등의 TV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경원대학교에서 민사소송법 강사로 재직하였고, 1997년 9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민사소송법의 겸임 교수로 일했다. 1998년 미국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 Law School에서 Visiting Scholar로 재직 후 199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사소송법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이장호, 김기수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1999년 3월 다시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민사소송법 겸임교수로 위촉되었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매맞는 여성의 쉼터)에서 공익변호사로서 무료법률상담을 하기도 했으며, 2000년부터 다시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4. 제16대 국회의원[편집]
2004년 3월 9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을 때 오세훈은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이에 반대하여 서명하지 않았으나, 3월 12일 본회의에서의 표결에 참가했다.
2004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신라대학교 모 학과에서 평가한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에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 등을 선정하여 기념패를 전달하였다.
오세훈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2500만원의 의정활동 잔여금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신문광고 수익금 3000만원을 장애 아동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 기탁했다.
2004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신라대학교 모 학과에서 평가한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에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 등을 선정하여 기념패를 전달하였다.
오세훈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2500만원의 의정활동 잔여금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신문광고 수익금 3000만원을 장애 아동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 기탁했다.
5. 국회의원 퇴임 후[편집]
2004년 법무법인 지성에서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 오세훈 변호사는 중국경제 전문변호사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 이후 아파트 관리 프로그램 업체들의 발전을 위한 '한국 공동주택 관리협의회'에 고문변호사로 추대되었다. 2004년 장진, 이영재, 송일곤 감독의 영화 《1.3.6》 중 '뫼비우스의 띠'에 특별출연하기도 하였다. 2004년 설악국제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대회에 참가하여 3시간 25분 14초에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하였다. 이후 트라이애슬론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후 Tri-A라는 동호회를 창단하여 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2005년 통영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는 배우 송일국,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과 팀을 이루어 출전하였다.
2005년 한국 여성재단에서 창립한 '미래포럼'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과 함께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50] 또한 같은 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변호사에 위촉되어 활동하였다.[51] 그리고 대한사회복지회 요청으로 인한 '사랑의 사진전' 모델료로 받은 3000만원 전액을 장애아와 미혼모를 위해 써달라며 기탁하였다. 2005년 12월에는 '희망원정대' 2기 원정대원으로, 엄홍길 원정대장 및 가수 안치환 등과 함께 장애인의 멘토가 되어 함께 킬리만자로 등반에 나섰다.
국립발레단의 저명인사 초청 발레공연에 초청되어 연습 후 실제 무대에 출연하였다. 현대무용가 최정자 교수와 공동으로 무용문화포럼을 창립하고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부산 대우 월드마크 분양 과정에서 법조타운이라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오세훈을 아파트 광고모델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시절 '오세훈법' 을 통과시키며 얻은 깨끗한 정치 이미지로 청호나이스 아이스콤보의 TV광고를 촬영하였고 '속 보이는 얼음처럼 세상도 투명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2005년 6월 여론조사 결과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호 후보 1위로 조사되었다. 11월 2일 오세훈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한나라당에서는 맹형규, 홍준표, 박진 등의 인사가 계속 거론되었으나, 2006년 4월 5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강금실 전 장관이 여론조사 결과 1위로 나타나자,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적극적으로 오세훈의 영입을 주장했다. 결국 2006년 4월 9일 경선 참여를 선언하고, 4월 25일 여론조사에서 65.05%의 지지율을 얻으며 총 41%의 득표로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2006년 5월 2일 강금실이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공천된 직후 나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지지율에서 20%p이상 강금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연령층 지지율에서도 오세훈은 강금실을 앞섰다.
오세훈 후보는 세운상가와 동대문 운동장 철거, 강북 중심의 뉴타운 50곳 건설 등 강북 개발과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하고 오래된 화물차를 폐기 유도한다는 대기질 개선 공약을 내걸었다. 한편, 오세훈이 변호사 시절 찍었던 정수기 CF가 선거일 90일 전부터 본인이 등장하는 동영상, 사진 광고를 금지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되기도 했다. 5월 21일 오세훈 후보의 유세를 돕던 박근혜 대표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충호에게 문구용 칼로 습격당했다. 이후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지면서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오세훈은 2,409,760표(61.05%)를 득표하며 1,077,890표(27.31%)를 얻은 강금실을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2005년 한국 여성재단에서 창립한 '미래포럼'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과 함께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50] 또한 같은 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변호사에 위촉되어 활동하였다.[51] 그리고 대한사회복지회 요청으로 인한 '사랑의 사진전' 모델료로 받은 3000만원 전액을 장애아와 미혼모를 위해 써달라며 기탁하였다. 2005년 12월에는 '희망원정대' 2기 원정대원으로, 엄홍길 원정대장 및 가수 안치환 등과 함께 장애인의 멘토가 되어 함께 킬리만자로 등반에 나섰다.
국립발레단의 저명인사 초청 발레공연에 초청되어 연습 후 실제 무대에 출연하였다. 현대무용가 최정자 교수와 공동으로 무용문화포럼을 창립하고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부산 대우 월드마크 분양 과정에서 법조타운이라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오세훈을 아파트 광고모델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시절 '오세훈법' 을 통과시키며 얻은 깨끗한 정치 이미지로 청호나이스 아이스콤보의 TV광고를 촬영하였고 '속 보이는 얼음처럼 세상도 투명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2005년 6월 여론조사 결과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호 후보 1위로 조사되었다. 11월 2일 오세훈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한나라당에서는 맹형규, 홍준표, 박진 등의 인사가 계속 거론되었으나, 2006년 4월 5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강금실 전 장관이 여론조사 결과 1위로 나타나자,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적극적으로 오세훈의 영입을 주장했다. 결국 2006년 4월 9일 경선 참여를 선언하고, 4월 25일 여론조사에서 65.05%의 지지율을 얻으며 총 41%의 득표로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2006년 5월 2일 강금실이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공천된 직후 나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지지율에서 20%p이상 강금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연령층 지지율에서도 오세훈은 강금실을 앞섰다.
오세훈 후보는 세운상가와 동대문 운동장 철거, 강북 중심의 뉴타운 50곳 건설 등 강북 개발과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하고 오래된 화물차를 폐기 유도한다는 대기질 개선 공약을 내걸었다. 한편, 오세훈이 변호사 시절 찍었던 정수기 CF가 선거일 90일 전부터 본인이 등장하는 동영상, 사진 광고를 금지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되기도 했다. 5월 21일 오세훈 후보의 유세를 돕던 박근혜 대표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충호에게 문구용 칼로 습격당했다. 이후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지면서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오세훈은 2,409,760표(61.05%)를 득표하며 1,077,890표(27.31%)를 얻은 강금실을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6. 서울시장 4기[편집]
민선 4기 서울시의 비전은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6년 6월 1일에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제타룡 전 도시철도공사 사장을 공동인수위원장으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특별시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6.1. 창의 시정[편집]
2006년 7월 서울시 공무원이 업무수행 중 창의적인 제안을 제출할 수 있는 '상상뱅크'를 개설하였다. 또한 '사이버정책토론방' 활성화로 인해 2008년 UN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발전시켜 일반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행정 아이디어 및 정책으로 변환하는 시민 정책 제안 창구인 '천만상상 오아시스'도 개설하였다. 천만상상 오아시스는 또다시 2009년 UN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 4월부터 근무태도가 불량하거나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직원을 단순 현장업무에 투입하는 '현장시정추진단'을 추진했다.[66] 공무원들의 반발이 심했으나, 서울시 인재개발원을 통한 교육을 통해 퇴출공무원을 2007년 102명에서 2010년 24명으로 줄이면서 불량 공무원을 시정했다. 더불어 '상시평가시스템' '성과포인트제' 등 창의적 인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공공기관 최초로 ISO 9001 국제인증을 받았다.
2009년에는 직접 안내원이 돌아다니며 관광객의 편의를 돕는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를 명동과 남대문에 설치하였고, 이후 광화문광장으로 확대하였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시 행정서비스 만족도는 3년연속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2007년 4월부터 근무태도가 불량하거나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직원을 단순 현장업무에 투입하는 '현장시정추진단'을 추진했다.[66] 공무원들의 반발이 심했으나, 서울시 인재개발원을 통한 교육을 통해 퇴출공무원을 2007년 102명에서 2010년 24명으로 줄이면서 불량 공무원을 시정했다. 더불어 '상시평가시스템' '성과포인트제' 등 창의적 인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공공기관 최초로 ISO 9001 국제인증을 받았다.
2009년에는 직접 안내원이 돌아다니며 관광객의 편의를 돕는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를 명동과 남대문에 설치하였고, 이후 광화문광장으로 확대하였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시 행정서비스 만족도는 3년연속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6.2. 디자인 서울과 도시경쟁력 제고[편집]
오세훈 시장은 “도시가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21세기에는 서울의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이고, “서울은 이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의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화와 디자인을 원천으로 도시의 부가가치와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문화도시, 디자인도시 전략, 이른바 ‘컬쳐노믹스’와 ‘디자인노믹스’를 추진하였다.
디자인 서울은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사업이다. 세빛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등이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2006년부터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한강공원 주변을 정비하였다. 서울특별시가 '2010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2008년부터는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디자인 창의도시로 지정되었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주요도시 경쟁력 순위에서 2006년 27위였던 서울시가 2010년 9위로 올랐고, 영국계 컨설팅그룹 Z/Yen이 매년 3월과 9월 발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에서 서울시의 국제금융 경쟁력은 2007년 43위에서 2011년 11위로 상승했다. 국제협회연합(UIA)이 발표한 컨벤션 순위에서 서울은 2006년 세계 11위에 불과했으나, 2010년과 2011년에는 5대 도시에 선정되었다.
디자인 서울은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사업이다. 세빛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등이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2006년부터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한강공원 주변을 정비하였다. 서울특별시가 '2010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2008년부터는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디자인 창의도시로 지정되었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주요도시 경쟁력 순위에서 2006년 27위였던 서울시가 2010년 9위로 올랐고, 영국계 컨설팅그룹 Z/Yen이 매년 3월과 9월 발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에서 서울시의 국제금융 경쟁력은 2007년 43위에서 2011년 11위로 상승했다. 국제협회연합(UIA)이 발표한 컨벤션 순위에서 서울은 2006년 세계 11위에 불과했으나, 2010년과 2011년에는 5대 도시에 선정되었다.
6.3. 강남북 격차 해소 및 균형 발전[편집]
오세훈 시장은 재정격차가 지자체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재산세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2008년부터 재산세의 50%를 특별시세로 징수하여 25개 자치구에 균등 배분하는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 최대 16.6배에 이르던 강남북 재산세 세입 격차가 4.7배로 크게 줄었다. 또한 조정교부금 제도도 대폭 손질하여 가난한 자치구에 더 많은 교부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6.4. 지방자치단체 최초 특별 훈령 발표[편집]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이에 오세훈 시장은 2009년 1월 '경제살리기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울시장 특별훈령' 을 발표했다. 이는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시행되었고, 중소기업 지원 확대, 일자리 창출 확대, 공공사업 조기집행 등을 골자로 총 14개의 정책을 연말까지 시행하였다.
=== 복지 정책과 120 다산콜센터 도입 ==/
희망드림 프로젝트는 저소득층의 자립을 돕는 정책이다. 2007년부터 저축금액만큼을 서울시가 추가로 적립해주는 '희망플러스 통장'을 운영했다. 저소득층의 목돈마련을 지원하는 '희망플러스 통장'은 UN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 9월에는 서울시와 관련된 민원을 전화로 해결해 주는 다산 콜 센터의 운영을 개시하였다. 자치구가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민원시스템과 기관별 ARS번호를 국번없이 120 하나의 번호로 통합하였다. 다산 콜 센터는 2009년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서비스분야 KS표준 대상1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한국경제 주관 고객감동경영대상을 수상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학교폭력과 사교육비 부담, 학습준비물이 없는 '3무(無) 학교 만들기'에 공을 들여 1102명의 학교 보안관을 국공립 초등학교 551개교에 2명씩 배치하고 시교육청과 예산을 분담해 학습준비물을 학교에서 대신 준비했다. 서울형어린이집에 예산을 지원해 민간어린이집 보육료를 국공립어린이집 수준으로 내리고 시설을 개선했으며 소득하위 70% 가구의 영유아 보육료도 전액 지원했다.
2009년 1월 28일에는 전문상담사가 계층별 전문상담과 취업알선 및 창업상담을 진행하는 일자리 플러스 센터를 설립하였다.
2009년 5월 4일부터 일정한 기준과 조건을 갖춘 어린이집을 서울시장이 공인해 보육료와 보육교사의 인건비를 국공립 수준으로 낮추고 시가 차액을 지원하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출범하였다.
우범지대 CCTV 확충, 모유수유방 확충,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등 여행 프로젝트(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로 2010년 UN공공행정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 복지 정책과 120 다산콜센터 도입 ==/
희망드림 프로젝트는 저소득층의 자립을 돕는 정책이다. 2007년부터 저축금액만큼을 서울시가 추가로 적립해주는 '희망플러스 통장'을 운영했다. 저소득층의 목돈마련을 지원하는 '희망플러스 통장'은 UN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 9월에는 서울시와 관련된 민원을 전화로 해결해 주는 다산 콜 센터의 운영을 개시하였다. 자치구가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민원시스템과 기관별 ARS번호를 국번없이 120 하나의 번호로 통합하였다. 다산 콜 센터는 2009년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서비스분야 KS표준 대상1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한국경제 주관 고객감동경영대상을 수상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학교폭력과 사교육비 부담, 학습준비물이 없는 '3무(無) 학교 만들기'에 공을 들여 1102명의 학교 보안관을 국공립 초등학교 551개교에 2명씩 배치하고 시교육청과 예산을 분담해 학습준비물을 학교에서 대신 준비했다. 서울형어린이집에 예산을 지원해 민간어린이집 보육료를 국공립어린이집 수준으로 내리고 시설을 개선했으며 소득하위 70% 가구의 영유아 보육료도 전액 지원했다.
2009년 1월 28일에는 전문상담사가 계층별 전문상담과 취업알선 및 창업상담을 진행하는 일자리 플러스 센터를 설립하였다.
2009년 5월 4일부터 일정한 기준과 조건을 갖춘 어린이집을 서울시장이 공인해 보육료와 보육교사의 인건비를 국공립 수준으로 낮추고 시가 차액을 지원하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출범하였다.
우범지대 CCTV 확충, 모유수유방 확충,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등 여행 프로젝트(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로 2010년 UN공공행정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6.5. 장기 전세 주택 시프트 도입과 주택 정책[편집]
오세훈 시장은 어릴적 집이 없어 초등학교를 4번이나 바꾸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주택정책에 관심을 기울였다. 주택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시행,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휴먼타운과 공공관리자제도 등을 도입하였다.
2006년 은평뉴타운의 고분양가가 논란이 되자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가 건설하는 모든 아파트에 대해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이후에 분양하는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하였다. 2007년 신년사를 통해 “서울시 SH공사가 공급하는 아파트의 50여 개에 달하는 항목의 분양원가를 상세히 공개하고 자치구 분양승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분양가격을 판단할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투명한 분양원가 공개를 천명했다. 이는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혼선과 부동산가격 폭등 현상에 극명히 대비되어 주목받았고, 이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오세훈 시장이 훨씬 월등한 정책을 쓰고 있다'라고 논평하였다.
2007년 중산층과 실수요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전세 시세 80% 이하의 가격에 최장 20년까지 임대하는 장기전세주택 '시프트(SHift)'를 추진하였다. 이는 난지공원 복원, 청계천 정비와 더불어 도시주거정책의 모범사례로 인정되어 UN-Habitat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부터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공관리자제도’와 ‘클린업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공사비 절감, 사업기간 단축, 투명성 확보가 용이해져 비리가 줄고 분양원가가 크게 낮아지는 등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그 밖에 저소득층으로서 임대주택을 공급받지 못한 대기자와 지하주택 거주자 등에게도 임대료 보조를 지원해주는 ‘주택바우처’를 확대하였고, 주거자립을 위해 주춧돌통장 가입자에게 별도의 가산이자를 지급해주는 ‘주춧돌 프로그램’을 도입하였으며, 저소득층 가구의 주거환경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서울형 집수리사업’의 수혜대상도 차상위, 차차상위, 다문화 가정 등으로 확대하였다.
=== 친환경 도시와 대기질 개선 및 녹지 확충 ====
오세훈 시장은 '온실가스 해결 없이는 미래도시 발전도 없다'며 서울시가 온실가스를 비롯한 환경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공언하였다. 2006년 C40그룹에 가입하였고, 제3회 C40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클린턴재단과 기후변화 이니셔티브, 기후긍정 개발사업 공동 추진에 관한 MOU를 체결하였고, 클린턴재단에서 추진하는 세계 탄소중립도시 16개 중 하나로 서울 마곡지구를 선정하는 MOU를 체결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에코마일리지 도입과 함께 저탄소 금융상품 개발, 오염저감장치를 설치한 친환경 건축물에 지방세·취득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 도입으로 친환경도시 서울을 만들고자 하였다.
오세훈은 서울의 심각한 대기오염을 개선하겠다고 밝히며, 대기오염과 평균수명과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서울시민 여러분, 잃어버린 3년을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오세훈 시장은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으로서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하였는데, 이 법의 시행일이 우연히도 오세훈 시장의 취임일 직후였다. 이로 인해 이 공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임기 중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대부분을 천연가스(CNG)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중교통 정비로 인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였다. 또한 새벽 도로 물청소 실시 확대, 중대형 경유차에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등 대기질 개선을 위한 노력했다. 그 결과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2006년 60㎍/m3에서 2010년 49㎍/m3로 떨어져 1995년 관측 이래 가장 낮았다.
“녹지 100만 평을 추가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오세훈 시장은 ‘그린디자인’을 강조했다. 도심 곳곳의 자투리 녹지 공간을 발굴해 기존 공원과 연결했고 옥상공원과 도시구조물 벽면녹화, 가로변 녹지 확충 등을 통해 재임기간 중 423만m2의 녹지공간을 새로 조성하였다. 서울 서남권과 동북권 일대에 ‘서서울호수공원’과 ‘북서울 꿈의 숲’, ‘서울창포원’ 등 녹지공원을 조성했고, 한강변에서는 시멘트를 걷어낸 뒤 녹지 생태공간으로 만들었다. 성곽을 따라가며 역사유적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서울성곽길(21km)과 자연생태・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외사산길(157km)을 연결하는 총 연장 178km의 서울둘레길과 ‘무장애 숲길(자락길)’을 조성하기도 했다. 어린이대공원을 리모델링한 후 무료 개방하고, 중랑캠핑숲,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서울대공원, 푸른수목원 등에 캠핑장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2006년 은평뉴타운의 고분양가가 논란이 되자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가 건설하는 모든 아파트에 대해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이후에 분양하는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하였다. 2007년 신년사를 통해 “서울시 SH공사가 공급하는 아파트의 50여 개에 달하는 항목의 분양원가를 상세히 공개하고 자치구 분양승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분양가격을 판단할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투명한 분양원가 공개를 천명했다. 이는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혼선과 부동산가격 폭등 현상에 극명히 대비되어 주목받았고, 이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오세훈 시장이 훨씬 월등한 정책을 쓰고 있다'라고 논평하였다.
2007년 중산층과 실수요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전세 시세 80% 이하의 가격에 최장 20년까지 임대하는 장기전세주택 '시프트(SHift)'를 추진하였다. 이는 난지공원 복원, 청계천 정비와 더불어 도시주거정책의 모범사례로 인정되어 UN-Habitat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부터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공관리자제도’와 ‘클린업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공사비 절감, 사업기간 단축, 투명성 확보가 용이해져 비리가 줄고 분양원가가 크게 낮아지는 등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그 밖에 저소득층으로서 임대주택을 공급받지 못한 대기자와 지하주택 거주자 등에게도 임대료 보조를 지원해주는 ‘주택바우처’를 확대하였고, 주거자립을 위해 주춧돌통장 가입자에게 별도의 가산이자를 지급해주는 ‘주춧돌 프로그램’을 도입하였으며, 저소득층 가구의 주거환경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서울형 집수리사업’의 수혜대상도 차상위, 차차상위, 다문화 가정 등으로 확대하였다.
=== 친환경 도시와 대기질 개선 및 녹지 확충 ====
오세훈 시장은 '온실가스 해결 없이는 미래도시 발전도 없다'며 서울시가 온실가스를 비롯한 환경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공언하였다. 2006년 C40그룹에 가입하였고, 제3회 C40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클린턴재단과 기후변화 이니셔티브, 기후긍정 개발사업 공동 추진에 관한 MOU를 체결하였고, 클린턴재단에서 추진하는 세계 탄소중립도시 16개 중 하나로 서울 마곡지구를 선정하는 MOU를 체결하였다. 오세훈 시장은 에코마일리지 도입과 함께 저탄소 금융상품 개발, 오염저감장치를 설치한 친환경 건축물에 지방세·취득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 도입으로 친환경도시 서울을 만들고자 하였다.
오세훈은 서울의 심각한 대기오염을 개선하겠다고 밝히며, 대기오염과 평균수명과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서울시민 여러분, 잃어버린 3년을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오세훈 시장은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으로서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하였는데, 이 법의 시행일이 우연히도 오세훈 시장의 취임일 직후였다. 이로 인해 이 공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임기 중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대부분을 천연가스(CNG)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중교통 정비로 인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였다. 또한 새벽 도로 물청소 실시 확대, 중대형 경유차에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등 대기질 개선을 위한 노력했다. 그 결과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2006년 60㎍/m3에서 2010년 49㎍/m3로 떨어져 1995년 관측 이래 가장 낮았다.
“녹지 100만 평을 추가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오세훈 시장은 ‘그린디자인’을 강조했다. 도심 곳곳의 자투리 녹지 공간을 발굴해 기존 공원과 연결했고 옥상공원과 도시구조물 벽면녹화, 가로변 녹지 확충 등을 통해 재임기간 중 423만m2의 녹지공간을 새로 조성하였다. 서울 서남권과 동북권 일대에 ‘서서울호수공원’과 ‘북서울 꿈의 숲’, ‘서울창포원’ 등 녹지공원을 조성했고, 한강변에서는 시멘트를 걷어낸 뒤 녹지 생태공간으로 만들었다. 성곽을 따라가며 역사유적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서울성곽길(21km)과 자연생태・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외사산길(157km)을 연결하는 총 연장 178km의 서울둘레길과 ‘무장애 숲길(자락길)’을 조성하기도 했다. 어린이대공원을 리모델링한 후 무료 개방하고, 중랑캠핑숲,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서울대공원, 푸른수목원 등에 캠핑장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7.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