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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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저격 사건
파일:문세광 사진.jpg
▲ 피의자 문세광의 신상공개
발생일
1974년 8월 15일
발생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유형
저격 사건
피의자
문세광 (남성 / 22세)
인명
피해
사망
2명 (육영수, 장봉화[1])
문세광
(피의자)
혐의
내란목적 살인 외[2]
재판
최종
형량
사형 집행
(1974년 12월 20일 오전 7시 30분 교수형으로 사망)
사형집행장
서울구치소
1. 개요2. 상세3. 사건 진행 과정
3.1. 대통령 암살시도3.2. 육영수 사망3.3. 장례와 유족동정
4. 한일 관계5. 허술한 대응6. 진범 논란7.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진행된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 박정희가 경축사를 하던 도중에 청중석에 있던 재일 한국인 문세광이 쏜 총에 의해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맞아 사망한 사건이다.

2. 상세[편집]

당시 문세광의 본래 목적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으나 박정희가 방탄 연설대 아래로 몸을 피하여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총탄을 머리에 맞은 육영수 여사는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진 후 뇌수술을 받았으나, 이날 오후 7시 경 향년 48세로 사망했다.

범인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된 후 중앙정보부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고수사 결과 문세광은 위조된 여권을 이용하여 밀입국한 뒤 일본의 한 파출소에서 탈취한 권총을 범행에 사용했고 일본인 공범이 있었다는 것 등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 강력히 항의했으며 양국관계는 급속히 경색되었다.

이후 9월에 집권당인 자유민주당 부총재 시나 에쓰사부로가 수상 다나카의 친서를 휴대하고 사과방한 이후 양국관계는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나 대한민국 국민의 대일 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3. 사건 진행 과정[편집]

3.1. 대통령 암살시도[편집]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10분경,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10시 23분경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기 시작하자 객석에 앉아 있던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문세광은 첫발을 오발하여 자신의 허벅지를 쏘았으나 곧 연단을 향해 달려나가며 총을 쏘기 시작했다. 경호실장 박종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응사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방탄 연설대 뒤로 몸을 피하여 무사하였다.

문세광과 경호원 간의 총격전으로 기념식에 참석한 합창단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 장봉화 양(1957년생)이 경호원에 의해 피격되어 숨졌다. 연단을 향해 계속 달려가던 문세광을 객석에 있던 세무 공무원 이대산이 발을 걸어 넘어뜨렸고 10시 30분경에 경호원들이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피격된 육영수 여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현장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박정희는 나머지 기념사를 모두 읽었고 광복절 기념식은 종료되었다.

3.2. 육영수 사망[편집]

육영수 여사를 실은 응급차가 국립중앙극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 9분 만인 10시 32분이다. 응급실장 김진복 박사의 지휘 아래 지혈제와 산소호흡, 항-쇼크처치 등의 응급조치가 10여분 이어졌다. 오전 11시경부터 신경외과 전문의 최길수의 집도로 오후 4시 20분까지 뇌수술을 받았다. 근처 병원과 적십자혈액원의 모든 AB형 혈액을 쏟아붓는 큰 수술이었는데, 400mL 혈액 148팩이 수혈되었다. 그러나 총알이 좌뇌의 가장 큰 정맥을 손상시킨 탓에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도의는 사건 다음날 "꼭 살렸어야 했는데… 5mm만 비켜 갔어도…"라며 침통해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이 찾아와 회복실에서 20분~30분가량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육영수는 이날 오후 7시 경 향년 49세로 사망했다.

3.3. 장례와 유족동정[편집]

저녁 8시 10분, 청와대 김성진 대변인이 육영수 여사의 서거를 공식 발표했다. 사망 당시 병원 가족실에는 남편 박정희와 여동생 육예수, 둘째 딸 박근영, 아들 박지만이 있었다. 장녀 박근혜는 당시 프랑스에 유학 중이었는데, 대사관에서 급히 귀국해야 한다는 연락만 받고 서둘러 탑승수속을 받던 중 공항에서 신문을 보고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서전을 통해서 그 당시 심정을 "온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육영수의 유해는 8월 15일 밤에 청와대로 이송되었으며 국민장으로 5일장을 치른 후 8월 19일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장례식을 치른 후 박근혜는 유학 후 강단에 서겠다는 꿈을 접고 영부인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당시 고교 1년생이었던 장남 박지만은 방황하며 성적이 하락하였고 이로 인해 본래 목표인 서울대학교 진학을 접고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로 진로를 변경했다고 한다.

4. 한일 관계[편집]

수사결과를 토대로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한일관계가 불편해졌다. 9월 19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며 집권당인 자유민주당 부총재인 시나 에쓰사부로가 수상 다나카의 친서를 휴대하고 진사특사로 한국을 다녀갔다. 이후 양국관계 개선되었는데, 지난번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양국외교 관계에 있어서 공세적이었던 일본은 이 사건으로 인해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고조되었다.

한편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양택식은 행사 책임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불명예 퇴임하고 말았다.

5. 허술한 대응[편집]

사건 당시 경호원들의 대응은 엉망이다 못해 최악 그 자체였다.

이 사건에서 경호원들이 보여준 대응은 정말이지 이보다 더 나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없었고 완전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우선 가장 큰 실책은 비표(출입증)가 없는 사람을 통과시킨 것. 앞에서 설명한 대로 당시 문세광은 비표가 없었는데 고급 외제차를 타고 일본어를 쓰면서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일본인인 척 하자 몸 수색 없이 출입을 허가해 버렸던 것이다. 이로부터 교훈을 얻은 청와대 경호실은 이후 어떠한 경우라도 예외 없이 출입증을 검사하고 몸수색을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박정희가 연설을 하던 중 '텅'하는 금속성 소리가 울렸을 때 오케스트라석에 앉아 있었던 단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렸지만 객석, 단상 위의 경호원들과 박정희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것부터가 경호원들의 어이없는 실책이다. 저게 총성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일단 총성과 유사하거나 무언가 확인되지 않은 소리가 들린 시점에서 경호원들은 즉시 박정희를 감싸거나 연단에서 내려오게 하고 주변을 경계했어야 한다. 만약 그랬다가 총성이 아니라 다른 소리를 오해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경호원들은 꼼꼼하게 일처리를 했을 뿐, 책임은 전혀 없다.

문세광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 쪽을 달리면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객석에 배치된 경찰들과 경호원들은 그가 권총을 들고 유유히 통로를 뛰어다니는 걸 봤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후 그를 경호원으로 착각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이니 민간인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경호원이 할 착각은 아니다. 결국 한 발이 아니라 대여섯발 넘게 발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연단에 맞아서 그렇지 조금만 위로 날아갔더라면 박정희를 죽인 사람이 김재규가 아니라 문세광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6. 진범 논란[편집]

문세광은 선고 법정에서 육영수 여사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며, 이로 인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수사본부 요원으로 현장 검증과 감식을 했던 서울시경 감식계장 이건우도 월간 다리 1989년 8월호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건우는 후일 국민일보 기자 노가원에게도 진범이 문세광이 아니라고 증언하였다.

2005년 동아일보는 당시 경호관들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보도를 하였다. SBS의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격 실험을 통해 육영수의 암살사건에 얽힌 의혹들을 풀고자 하였다.

7.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문세광과 경호원 간의 총격전으로 기념식에 참석한 합창단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 장봉화 양(1957년생)이 경호원에 의해 피격되어 숨졌다.[2]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 총포화약류 단속법 위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