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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日本国 |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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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기본 정보
수도
도쿄
상징
국기
일장기
인구밀도
334명
언어
일본어
인문환경
인구
125,960,000명
인구밀도
334명
언어
일본어
자연환경
면적
377,975km²
시간대
JST (UTC+9)
정치
천황
나루히토
내각총리
[[이시바 시게루]
참의원 의장
산토 아키코
중의원 의장
호소다 히로유키
최고재판소장관
오토니 나오토
경제
GDP
5조 4,514억 달러
1인당 GDP
46,827 달러
통화
엔(JPY, ¥) (JPY)
1. 개요2. 역사3. 인문화경
3.1. 사회3.2. 언어3.3. 교육3.4. 의료3.5. 인권3.6. 문화
4. 종교
4.1. 신도4.2. 불교4.3. 기독교4.4. 교육
5. 자연환경
5.1. 지리5.2. 지형5.3. 기후
6. 문화
6.1. 문학6.2. 음악6.3. 비디오 게임
7. 정치
7.1. 선거7.2. 정당
7.2.1. 소규모 정당7.2.2. 기타 정당
7.3. 외교7.4. 한일관계
8. 국방9.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일본국, 약칭 일본은 동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태평양에 있는 일본 열도의 네 개의 큰 섬(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과 이들 주변에 산재한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전체 면적은 37만 7973 km2이며, 독일(35만 7386km2)보다 조금 크다.

2. 역사[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본/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인문화경[편집]

3.1. 사회[편집]

일본의 인구는 2006년 기준 1억 2800만 명으로 인구의 70% 정도가 간토 남부에서 규슈 북부에 걸친 태평양 연안에 거주한다. 일본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수 민족으로는 류큐인, 아이누족, 윌타족, 니브히족 등이 있는데, 계속된 차별을 받아온 류큐인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1970년대 일본 편입 이후 재독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이누족은 적극적인 문화 회복 활동을 통해 일본 국회에서 선주민 자격을 인정받았다.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2009년 기준 남성이 79.29세이며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인 86.05세를 기록하였다. 특히 여성의 평균 수명은 1985년 이후 계속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인의 주된 사인은 1996년 조사에 의하면 암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심장병, 뇌졸중 등의 성인병과 자살, 교통사고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출생률이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사망률 또한 현저히 줄어들어 노인 계층이 증가해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상태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일본인의 기대 수명은 2009년 기준 싱가포르와 더불어 약 82세 정도라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에 이어 2위로 높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3.2. 언어[편집]

일본 전체 인구의 99% 이상이 일본어를 제1국어로서 사용하고 있다. 일본어는 화자와 청취자의 상대적인 지위를 구분하는 경어, 동사의 형태나 교착어 체계 등 일본 사회의 계층적인 특성을 반영한다. 또, 대표적인 일본어 사전인 신센고쿠고지텐에 따르면 한자·한문·중국어를 뿌리로 하는 단어가 전체 어휘의 49.1%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어 토박이말이 33.8%로 뒤를 이었고, 영어를 비롯한 기타 외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가 8.8%를 차지하고 있다.

문자는 한자와 가나를 기본으로 하며 이외 라틴 알파벳, 아라비아 숫자가 혼용된다. 류큐어는 오키나와에서만 한정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한편 홋카이도 지방에서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아이누어는 메이지 시대 이후 이루어진 사용 탄압과 혼혈의 증가 등으로 인해 사용 인구가 점점 노령화되고 줄어들고 있다. 한편으로 영어는 많은 공·사립학교에서 일본어와 함께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3.3. 교육[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본/교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 의료[편집]

일본에서 건강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일본에 거주하여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제도는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에 의해 제공된다. 1961년에 개인 의료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어떤 종류의 건강보험계획에 가입하여야 한다. 공무원이나 개인 회사의 노동자들은 근로자 보험 또는 회사건강 보험계획 중 하나에 가입해야 하며 자영업자와 퇴직자들은 지방단체가 운영하는 국가건강보험계획에 가입해야 한다. 일본의 건강 보험제도의 특징으로는 ‘성과급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의료기관들이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을 때 건강보험계획에 의하여 배상금을 지급받는 제도이다. 건강보험계획은 의사들에게 개인 병원을 아무 곳이든 개업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였다. 건강증진법이 있어 철도역 등에서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3.5. 인권[편집]

일본은 미국 국무부가 2001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에서 2017년까지 연속해서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2등급 국가'에 포함되어 있으며, 주요 8개국(G8) 국가 중에서는 일본만 2등급이다. 2004년에는 한 단계 더 낮은 '2등급 감시대상국'으로 추락한 적도 있다.

3.6. 문화[편집]

4. 종교[편집]

일본의 종교(日本-宗敎, 일본어: 宗教, しゅうきょう 슈쿄)는 일본인들의 종교 문화 및 종교 생활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본은 다수의 종교적 전통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존해왔기 때문에 종교 생활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종교 생활을 신앙 생활이 아닌 생활 관습으로 여긴다.

일본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토, 불교, 기독교를 비롯한 주요 종교들은 종교법인으로서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에 등록되어 있다. 또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종교를 믿는 경우가 많으며, 신토나 불교, 기독교 등의 다른 종교들의 사상을 반영한 새로운 종교들이 매우 자주 발생하는데, 이러한 신흥 종교들은 기복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4.1. 신도[편집]

신토(일본어: 神道), 혹은 신도는 일본 지역에서 발생한 애니미즘 신앙을 바탕으로 한 토착 신앙이다. 초기에는 자연물과 자연 현상 등을 신처럼 섬겼으나, 점차 조상이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죽은 천황 등의 실존 인물들 또한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신토"라는 용어는 《일본서기》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처음에는 종교 의식이나 신, 신들을 모시는 장소인 신사(神社)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었다.[4] "신토"라는 용어가 현재와 같은 '일본 고유의 애니미즘 신앙'을 가리키게 된 건 12세기 이후의 일이다.[4] 에도 시대 이후 들어온 주자학 사상과 만나 교리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국가의 주도로 신토의 교리를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제2차 세계 대전 이후 GHQ의 민주화 정책에 따라 교리 교육은 폐지되었고, 현재의 신토는 지역의 신사를 중심으로 종교 행사를 치르는 신사 신토로 남아 있다.

신토의 종교 시설인 신사는 신토 의식을 치르고 신께 소원을 비는 곳으로, 8만 5천곳 이상의 신사가 있다.

4.2. 불교[편집]

일본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백제 성왕 때인 538년경으로, 도장(道藏)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성을 세웠다. 이후 혜총, 도림, 담혜, 혜미 등 백제의 승려들이 건너가 불교를 전파했으며, 쇼토쿠 태자의 불교 장려책으로 불교는 일본에서 하나의 종교로 위상을 굳혔다. 나라 시대에는 각 율령국을 대표하는 절을 두는 고쿠분지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으며, 중국의 화엄종을 비롯한 6종파가 성행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당나라 유학 승려 출신인 사이초와 구카이가 각각 천태종과 진언종을 성행시켰다. 이 때까지만 해도 불교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퍼졌으나, 가마쿠라 시대 이후 교세가 농민들 사이에서도 퍼져 센고쿠 시대에는 잇키를 주도하는 사찰도 생겼다.[5] 불교는 에도 시대 이후 정치적 밀착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쇠락했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승려들의 주도로 쇄신 운동을 벌였다.

현재 일본의 절은 약 7만 5천곳에 이르며, 승려 수는 18만명이다.

4.3. 기독교[편집]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549년으로, 가톨릭 수도사들이 모인 예수회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규슈에 처음으로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기독교도의 수는 17세기 초에 75만명에 이르렀으나, 에도 막부의 탄압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되고 기독교는 금지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일본 정부가 미국, 유럽 각국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현재 일본의 기독교 신자로는 가톨릭 신자가 약 95만명, 장로교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신교 신자가 약 43만명이다.

4.4. 교육[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본/교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자연환경[편집]

5.1. 지리[편집]

일본의 영토는 동아시아 동쪽에 길이 3,000여km에 활 모양으로 걸쳐져 있는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를 포함한다. 일본의 최동단은 도쿄도 미나미토리섬, 서단은 오키나와현 요나구니섬, 남단은 도쿄도 오키노토리섬, 북단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홋카이도의 벤텐섬이다.

일본은 아시아 대륙 연변(沿邊)에 있으며 일본의 국토 면적은 약 37만 8천km2이고 이는 지구 표면적의 0.07%, 세계 육지 면적의 0.3%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한반도의 약 1.7배이고 말레이시아와 독일보다는 크며 스발바르 제도를 포함한 노르웨이보다는 작다. 주로 홋카이도·혼슈·시코쿠·규슈의 4섬과 그 속도(屬島) 및 이즈 제도·오가사와라 제도·난세이 제도로 이뤄져 있다.

5.2. 지형[편집]

일본 열도에는 몇 줄기의 화산맥이 뻗어 있기 때문에 지형의 기복이 심하다. 강은 짧고 급류인 경우가 많으며 해안선은 보통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또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세계 화산의 10%가 일본 열도에 있다. 일본 열도는 지진 다발 지대이기도 해서 1923년에 일어난 간토 대지진, 1995년에 일어난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나 2011년에 일어난 규모 9.0의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국토의 67%는 산지이고 대부분은 숲으로 뒤덮여 있으며 농지는 14%, 택지는 3%, 공업용지는 0.4% 정도이다.

5.3. 기후[편집]

난세이 제도를 포함한 일본 열도는 남북으로 5,000km에 이르며 냉대 기후에서 열대 기후까지 걸쳐있는 데다가 복잡한 지형과 해류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역별 기후의 차이가 현저하다. 연평균 기온은 남쪽 오키나와현의 나하시가 섭씨 22.7도를 기록하고 또 야에야마 제도의 이시가키섬은 섭씨 24도로서 열대 우림 기후에 속한다, 규슈 지방의 가고시마시는 섭씨 18.3도, 오사카시는 섭씨 16.5도, 도쿄도의 구 지역은 섭씨 15.9도이다. 북쪽 홋카이도의 네무로시가 섭씨 6.1도로 최저를 기록한다. 그러나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현의 야에야마 제도, 도쿄도의 오키노토리섬, 미나미토리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은 온대 기후에 속해 온난한 기후이고 사계절 구분이 뚜렷하다. 태평양 연안 지대는 여름이면 남동 계절풍이 불어 매우 무덥고, 겨울에는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아진다. 한편 동해 쪽에서는 겨울에 시베리아 계절풍으로 인한 강설이 많아 니가타 현을 포함한 호쿠리쿠 지방은 세계적인 다설 지대로 손꼽혀 4~5m에 이르는 눈이 쌓이는 곳도 있다. 홋카이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6월 초순부터 7월 중순에 걸쳐 고온다습한 장마가 내리며 8월부터 10월에 걸쳐 일본 열도 남서부 지역은 태풍의 영향을 심하게 받아 풍수해의 대부분을 초래한다.

일본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로,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일본 열도의 특성상 봄과 가을이 오는 시기가 다른데 특히 봄이 오는 시기를 알려주는 지표인 벚꽃은 오키나와에서는 보통 1월 말에 피고, 홋카이도에서는 5월 말에 개화하기 때문에 "벚꽃 전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가을 시기의 지표인 단풍의 경우는 홋카이도 방면에서 제일 먼저 생겨 오키나와 방면으로 갈수록 점점 늦게 생긴다.

일본 열도는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 투성이의 섬나라이기 때문에 좁은 면적에 비해서는 기후 변화가 심하다. 지리적인 남북의 차이, 바깥 일본(表日本)과 안 일본(裏日本) 차이뿐 아니라 여름 겨울의 대조 등 연간 기후의 차이도 현저하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다우지역에 해당한다. 기이 반도·시코쿠, 남부에 걸친 지역처럼 연간 4,000mm를 넘는 다강수지역을 볼 수 있다. 각지의 강수는 우기와 건기의 뚜렷한 교체는 볼 수 없으나 대체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는 6~7월의 장마철이며, 다음엔 태풍기에 많다.

일본은 바다에 둘러싸인 섬나라인데도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한기류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겨울은 세계의 동위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4~5도나 저온이며 이른바 동안 기후(東岸氣候)를 이루고 있다. 한편, 여름은 아열대의 고온 다습한 기류의 지배하에 들어가 무덥다.

6. 문화[편집]

6.1. 문학[편집]

일본 문학의 기원은 구전 문학(口傳文學)에서 비롯하여 8세기 초에 최초의 기록 문학 형태를 갖추었다. 왕실에서 직접 주도하여 712년 신화와 전설에 관한 작품집인 고지키가, 720년에는 역사서인 니혼쇼키가 완성되었다. 또 759년 경에는 일본 최고(最古)의 시집으로 4,500편의 시가 수록된 만요슈가 등장하여 이 시기에 단가(短歌) 형태의 시가 문학이 나타났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 후 헤이안 시대의 귀족 문화에서 문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궁중의 여관(女官)으로, 이 시기에 세이 쇼나곤, 무라사키 시키부 등의 여성 시인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센고쿠 시대와 에도 시대를 거쳐서 17세기에는 마쓰오 바쇼가 17자의 단문 시 형식인 하이쿠를 만들기도 하였다.
근현대 일본 문학은 다양한 사조의 등장으로 문학 작품의 다양성이 강해져 일본 내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대표적인 작가로 미시마 유키오,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등이 있다. 지금도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현대에 형성된 염세주의 소설, 추리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증가와 왕성한 문학 창작력으로 일본 국내에서 일본 문학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한민국, 중국, 유럽 등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고정된 작품관에서 서브 컬처 문화 증가와 더불어 라이트 노벨이 등장하였다.

6.2. 음악[편집]

일본에서는 전통 음악에서부터 서양의 고전 음악, 팝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CD는 일본에서 연간 4억 5천여장, 테이프는 2,300만 여본이 제작되며 야마하와 같은 악기 제조 업체들이 발전하여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악기사 또한 다른 문화 분야의 역사처럼 오래되었는데, 중국의 《위지왜인전》에는 5~6세기에 한국으로부터 삼국시대 음악이 도래되기 전에도 일본 고유의 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5~9세기에 걸쳐서는 아시아의 주변 여러 나라로부터 대륙계 음악들이 유입되었고, 당나라의 당악과 불교 음악 등이 유입되기도 하였다. 사무라이들의 등장으로 궁정 귀족들이 몰락한 이후에는 향토 음악이 발전하였으며 16세기 후반에는 류큐 열도로부터 샤미센과 기독교 음악이 전래되었다. 메이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간에는 이전의 전통적 음악들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왔으나 양악이 다양한 분야에 유입되면서 잠시 뜸해졌다가 현대에 이르러서 전통 예능 부흥 운동이 일어나 다시 왕성해지고 있다.

보편적인 대중 음악으로는 엔카와 제이팝 등이 있는데 그 중 엔카는 대한민국의 트로트와 비슷한 장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엔카가 시장에서 위력이 약해지고 서양에서 들어온 팝 음악에 일본색에 의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음악 종류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제이팝(영어: J-pop 제이팝[1], 일본어: ジェイポップ 제이폿푸[2])이다. 제이팝은 일본의 라디오 방송국 J-WAVE에서 만들어진 용어로서 일본 대중가요에서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총칭한 장르이다. 제이팝은 1960년대에 활동한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었다. 제이팝이 가지는 일본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현재 제이팝을 중심으로한 일본 음반시장의 규모는 약 2조 5천억원으로 환산되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고 인구 대비 세계최고다. 하지만 여전히 기획상품인 10대 아이돌 스타는 제이팝의 큰 축을 떠받치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OST, 뉴에이지 곡을 필두로 하는 음악 장르와 음악가들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히사이시조, 사카모토 류이치, 유키구라모토, 어쿠스틱 카페 등이 있다.

6.3. 비디오 게임[편집]

일본에서 게임이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보다 가정용 게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가정용 게임기의 보급률이 높은 것이다.[188] 그 이유는 아직 PC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1983년에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이 발매가 되었다. 그 전에도 가정용 게임기는 있었지만 패미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로 인해 게임 붐이 일어났다. 또한 ‘마리오’, ‘동키 콩’과 같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시리즈화하였다. 1995년, 윈도우 95의 발매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인터넷으로도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져도 이미 일본 게임 시장에는 가정용 게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의 집은 작고 좁아서 당시 데스크톱 컴퓨터가 보급되지 못하여서 가정용 PC는 거의 노트북 컴퓨터였다. 이 때문에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로’라는 인식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게임을 즐기는 연령층이 주로 어린이였지만 요즘에는 성인들도 많이 즐기고 있다. 이처럼 성인을 타깃으로 한 휴대용 게임기가 보급되면서 인기있는 게임 소프트로 변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주로 어린이가 타깃이었기 때문에 롤플레잉 게임과 같은 어드벤처, 액션이 인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두뇌 훈련, 학습용 소프트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닌텐도의 닌텐도 DS는 간편한 휴대성때문에 각종 기업,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유입되는 온라인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나 휴대용 게임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나 인기가 적은 편이다.

7. 정치[편집]

7.1. 선거[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본/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정당[편집]

일본 정당
정당 명칭
대표
중의원
참의원
합계
자유민주당
기시다 후미오
262
119
381
입헌민주당
이즈미 겐타
97
39
136
일본유신회
마쓰이 이치로
41
21
62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
32
27
59
일본공산당
시이 가즈오
10
11
21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10
10
20
레이와 신센구미
야마모토 다로
3
5
8
사회민주당
후쿠시마 미즈호
1
1
2
NHK당
야마구치 나쓰오
0
2
2
참정당
마쓰다 마나부
0
1
1
무소속
7
12
19

7.2.1. 소규모 정당[편집]

  • 입헌양정회 (立憲養正会)제2원구락부 (第二院クラブ)
  • 샐러리맨신당 (サラリーマン新党)
  • 행복실현당 (幸福実現党) - 2009년 행복의 과학에 의해 창당

7.2.2. 기타 정당[편집]

  • 일본혁명적공산주의동맹 (日本革命的共産主義者同盟)
  •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전국위원회 (革命的共産主義者同盟全国委員会) * 일본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혁명적마르크스주의파 (日本革命的共産主義者同盟革命的マルクス主義派)
  • 국가사회주의 일본 노동자당 (国家社会主義日本労働者党)
  • 국민당 (国民党)
  • 여성당 (女性党)
  • 유신정당 신풍 (維新政党・新風)
  • 도쿄 티당일본제일당 (日本第一党)

7.3. 외교[편집]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의 대외 관계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년) 및 각국과의 배상·보상조약을 거쳐 재구축된 것이다.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축으로 하여 서방 각 국가들과 긴밀한 제휴를 해 가면서 반공주의, 경제중심주의 외교라는 특징을 가지고 유엔을 지원함으로써 평화로운 안정과 번영을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패전 이후, 1951년까지 주권을 상실하여 외교 자주권을 갖지 못하여 점령 기간 동안 점령국인 미국의 정책을 구현하는 선에서 대외 정책이 실시되어 왔다. 그 후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서 소비에트 연방 등 공산주의 국가들의 조인 거부가 이루어진 가운데 미일 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이 체결되고, 중화민국과 중일조약이 조인되어 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함과 동시에 외교권을 회복하게 된다. 1955년에는 GATT에 가맹한 것을 시작으로 민주주의 경제 정책을 취하는 선진 공업 국가들 중에서 점차 중요한 대외 입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6년에는 소비에트 연방과 국교를 회복함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복귀하게 되고 거의 모든 독립국과 국교를 맺고 외교를 행하고 있다. 다음 해인 1957년에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유엔 중심주의,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협조, 아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입장 견지라는 외교 3원칙을 발표하였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각국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서양을 비롯해 세계 각국과 국교를 텄다. 일본은 전 세계 국가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데 현재 일본은 맹방인 미국과의 외교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체결된 조약에 따라 일본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2006년까지 미국은 일본의 최대교역국이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내각 이후 미일 관계는 각종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이웃한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서유럽 각국과의 관계도 깊다. 다만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러시아 등과 영토 문제 및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인해 계속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과는 센카쿠 열도(조어도 제도), 러시아와는 쿠릴 열도 남부에 있는 4개 섬(이투루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 대한민국과는 독도를 둘러싸고 영토 문제를 안고 있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여 국교를 회복하였으며 경제의 고도 성장을 거치면서 국제적 지위가 점차 높아지는 반면 동남아시아에서는 반일 운동이 일어나는 등 마찰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유엔에 경제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나 그에 비해 지위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42] 독일, 브라질, 인도와 함께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속 시도하는 국가인 이른바 G4 국가에 속한다.[43] 군사적으로는 한국 전쟁 당시 자위대를 후방에 파병한 것이 첫 활동이었으며 2003년 이라크 침공 등을 계기로 자위대의 해외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7.4. 한일관계[편집]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고대부터 각종 문화의 전파와 무역을 비롯한 많은 교류를 이어왔다. 특히 백제는 고대 일본에 중국 문물을 많이 전파하였다.[47] 고려 시대 후반과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서는 쓰시마섬과 규슈를 근거지로 하는 왜구(倭寇)가 각종 약탈을 일삼았으며 이로 인해 조선 시대 중반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등 중세와 근세기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기도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통신사 파견으로 다시 한일 교류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한 일본 제국이 1910년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병합한 뒤 1945년까지 35년 동안 폭악한 식민 통치를 행하고 현대에도 일본의 여러 우익 인사들이 한국에 대한 정치적 도발을 주창하면서 양국의 국민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일본에서도 반한감정을 가진 일부 일본인들이 반한시위를 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은 일본에 의해 제기되는 독도 분쟁과 동해의 이름에 대한 분쟁 등의 이슈를 안고 있다. 2009년에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성립한 이후 이루어진 양국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더 악화된 한일 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 응답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위안부에 대한 역사왜곡으로 일본정부는 유엔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 독도 영유권 문제 ==
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지도에 ‘독도’를 ‘죽도’로,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일본 외무성은 누리집을 통해 여러 나라의 말로 독도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있으며, 시마네 현은 2월 22일을 ‘죽도의 날’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개최하여 자신들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주장을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라고 배우고 있다.

8. 국방[편집]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당시 항복의 조건으로 제국군을 해체시켰다.따라서 일본국 헌법에 명시한 내용으로써 전쟁을 포기하고 육해공군의 전력을 가지지 않을 것임을 밝혀왔다. 그 때문에 패전 후 군비(軍備) 및 교전권(交戰權)이 부인되었으나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어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어, 미국의 명령으로 일본의 기초적인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한 경찰예비대를 설치하였으며 1952년 보안청으로 승격되고, 1954년 방위청이 설치되어 경찰예비대가 현재의 자위대가 됨으로써 사실상 군대로 변모하였다이후 일본은 3~5년 단위의 방위력 정비·증강 계획을 추진하여 1987년부터 방위비가 GNP 대비 1%를 초과하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 말 첨단 군사장비의 자급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와 함께 극우계에서는 방위 개념의 확대를 기도함으로써 1980년대 말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한편으로 1947년 시행된 헌법에 따르면 국가 간의 교전권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자위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재해석하여 자위대를 강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자위대는 육상, 해상, 항공 자위대로 나뉘며 헌법에 따라 징병이 아닌 자원으로 충원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의 최고 지휘권은 내각을 대표하는 총리대신이 가지고 있지만 통상적 업무는 방위상에게 있다.

한편 자위대와 더불어 일본의 실질적인 군사적 방위를 담당하고 있는 주일 미군은 1945년 이후부터 일본에 계속 주둔하고 있다. 또한 주일 미군은 자위대에 지속적으로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고 공유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자위대의 지나친 주일 미군 의존이나 기노완 후텐마 기지 이전을 비롯한 주일 미군의 재편 문제, 주일 미군이 일으키는 범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견제라는 취지에서 발동된 명령으로 정비되기 시작한 일본의 자위대가 과연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가 유럽의 상황처럼 명령취소의 단계에 들어갔을 때 미국과 유엔의 명령으로 자진 해산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위대의 역행적 자진해산이 가능한지는 일본 자위대의 지속적인 권한확대 및 강화에 따른 정반대의 행보로 비춰지는 '신군국주의'의 우려를 낳았다.

9. 문서 출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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