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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청와대
靑瓦臺 | Cheong Wa Dae
파일:청와대 사진.jpg
▲ 청와대 사진
국가
건축 기간
1990년 9월 4일 ~ 1991년 9월 4일
기능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처
대통령관저
면적
253,505㎡
위치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종로구 청와대로 1
2025년 12월 29일 0시를 기점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서 청와대로 공식 이전 완료

1. 개요2. 상세3. 연혁4. 시설5. 경호6. 풍수7. 민간인 관람8. 본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청와대는 대한민국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이다.

2. 상세[편집]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부와 관계된 행정기관이다. 별칭은 블루 하우스(Blue House)이다.

1948년 8월 15일부터 대한민국대통령이 기거한 대통령 관저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부와 관계된 행정기관이다. 별칭은 블루 하우스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0월 관저 완공 후 이듬해 9월 4일 본관을 준공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으며, 윤석열 정부 시절을 제외하고 대통령의 관저 역할을 해왔다. 주요 시설로는 집무 공간인 본관과 공식 행사 공간인 영빈관, 주거 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 장소인 상춘재, 비서 부속기구인 대통령비서실, 경호 부속기구인 대통령경호처, 대언론 창구인 춘추관 등이 있다.

3. 연혁[편집]

1395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이곳에 경복궁을 창건하였다.[1]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로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며, 경복궁과 그 후원 일대는 일본 식민 통치의 상징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1937년
조선총독부는 기존 총독 관저가 노후화되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총독 관저 건립을 결정하였다.
1939년
경복궁 후원 북쪽에 조선총독 관저가 완공되었다. 훗날 청와대 본관의 구조적 전신이 된다. 이후 이곳은 조선총독의 공식 관저이자 정치적 통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며 일본 총독부 체제가 붕괴되었다. 총독 관저 건물은 미군정 최고 책임자의 관저로 전환되어 사용되었고, 여전히 최고 권력자의 거처라는 성격을 유지하게 된다.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기존 총독 관저를 대통령 관저 겸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때 이 공간은 ‘경무대’ 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2]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같은 해, 식민 잔재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경무대’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건물의 푸른 기와에서 착안한 ‘청와대’ 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는 강력한 권위주의 권력의 중심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다.[3]
1974년
광복절 기념식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 이후 대통령 경호 체계가 전면 재정비되었고, 청와대 내부 동선과 보안 시스템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민주화 이후 첫 정부가 출범하였다.
1989년
정부는 기존 청와대 본관을 철거하고, 새로운 본관을 건설하기로 공식 결정하였다.
1990년
전통 한옥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新) 청와대 본관 공사 착공.
1991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청와대 본관이 완공되었다.
1993년
~
2017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차례로 청와대를 사용하였다.
2022년
이후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되었다. 이후 청와대는 국민에게 전면 개방되어 역사·문화·관광 공간으로 전환되었다.[4]
2025년
12월
윤석열 대통령파면 된 후 이재명 대통령이 12월 29일 0시를 기점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무실을 다시 청와대로 이전하여 현재 사용중이다. 이로써 대통령이 청와대로 복귀하면서 2022년에 개방되었던 청와대는 민간인 관람이 제한되었다.

4. 시설[편집]

→ 자세한 내용은 청와대/시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경호[편집]

청와대 경호는 대통령경호처가 담당하며 경찰과 군도 경호 업무를 맡는다. 경찰 조직에선 서울특별시경찰청 소속 101경비단·202경비단·22경찰경호대 등 세 기관에서도 청와대의 경비·경호를 담당한다. 101경비단은 청와대 내곽을 경비하고 202경비단은 외곽을 경비한다. 경찰경호대는 대통령 외부 행사장에서 경호를 맡는다. 인원은 경비단이 700여 명 수준이고 경호대는 100~150명 정도다. 군 조직에선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제1경비단이 외곽 경비를 담당한다. 산하에 2개 대대와 전투지원중대·장갑중대·방공대가 있는데 과거 존재하던 30경비단과 33경비단을 통합하여 창설됐다. 소속 병력은 2,000여 명 수준이다.

6. 풍수[편집]

옛 경복궁 후원에 조선 총독의 관저가 들어섰다가 6년만에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이 관저를 물려받은 한국 대통령들의 말년이 불운하여 풍수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노태우 때 청와대 본관과 관저를 분리하는 공사를 하면서 '천하제일복지'라고 각자된 바위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1990년대에 "청와대 터는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청와대 흉지론'을 주장했다. 그 외에도 다수의 풍수지리 연구가들은 청와대가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 뒤로는 북악산 등의 정기를 받고 있지만, 북악산에 많은 바위가 풍수에서는 '살기'에 해당하므로 청와대 터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조수범 단국대학교 풍수지리학과 박사는 한 많은 후궁들이 거처하던 7궁의 자리, 한때 무수리들의 임시 무덤과 군사들의 무예 훈련장으로도 사용되었던 소외되고 버려진 땅이 청와대 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청와대 터가 주변의 잡스러운 기운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복궁도 조선 시대 내내 길지다 흉지다 이견이 많았다고 하였다.

반대로 청와대가 풍수지리학상 길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890년 전인 고려 시대에도 남경의 이궁(왕궁)이 들어섰고 광복 후 수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거듭날 만큼 국가의 기운이 융성한데 땅이 무슨 문제냐는 얘기다. 대통령의 말년이 순탄하지 않았던 건 정치 시스템상의 문제이고 개인의 욕심에 의한 것이므로 청와대 터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7. 민간인 관람[편집]

청와대는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70여년 간 대통령이 머물던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2022년 5월 10일부터 민간에 개방됐다. 올해 상반기까지 약 780만여명이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7월 31일 청와대재단에 따르면 청와대는 8월1일부터 종합 보안·안전 점검 및 시설물 점검을 시작한다. 

대통령실은 지난 6월 청와대 복귀 관련 예비비 259억원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 의결했다. 이후 지난 16일부터 예약 인원과 관람 동선이 일부 조정됐다.

8월 1일부터는 문을 닫고 전면 개방됐던 본관과 관저를 대통령이 이용할 수 있게 시설 개·보수와 보안 점검에 들어간다. 대통령실의 복귀 예정 시기는 미정이다.#

8. 본 문서 출처[편집]

[1] 그리고 궁궐의 배후를 보호하는 군사적·풍수적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일반 백성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2] 경무대는 대통령 권력의 상징이 되었으며, 일반 국민에게는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었다.[3]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주변의 경호·군사·경찰 체계가 대폭 강화되었으며, 이후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게 된다.[4] 이로써 청와대는 약 74년간 유지되어 온 대통령 집무·관저 기능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