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신상 정보 | |||
출생 | 1953년 1월 24일 (71세) | ||
거주지 | 경상남도 양산시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 ||
국적 | |||
학력 | 1971년 경남고등학교 졸업 | ||
1983년 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 |||
경력 | 법무법인 부산 변호사 | ||
청와대 민정수석 | |||
대통령비서실장 | |||
제19대 국회의원 | |||
더불어민주당 대표 | |||
가족 | 아버지 : 문용형 | ||
어머니 : 강한옥 | |||
배우자 : 김정숙 | |||
자녀 : 문준용, 문다혜 | |||
종교 | 천주교 |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국군 | ||
복무기간 | 1975년 8월 ~ 1978년 | ||
소속 | |||
최종계급 | |||
근무부대 |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 ||
참전 | 판문점 미루나무 제거 작전(후방지원) | ||
정치 정보 | |||
재임기간 |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 ||
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9일 | |||
전임 | |||
후임 | |||
소속 정당 |
1. 개요[편집]
문재인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남평. 노무현과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했고, 참여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 제19대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2. 상세[편집]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 독재에 항거하다가 1975년 서대문구치소에 투옥됐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신체 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로 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특전사로 군복무를 마친 후 복학해 다시 학생운동을 이끌며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1980년 청량리구치소에 투옥됐으나, 조영식 경희대 총장의 신원보증 하에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석방되었다. 198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됐다고 알려졌으며,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2003년에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시기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퇴임 후 2023년 자신의 자택 근처인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평산마을1길 17)에 「평산책방」(사업자등록번호 448-70-00490)을 개업하여 대표자로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2003년에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시기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퇴임 후 2023년 자신의 자택 근처인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평산마을1길 17)에 「평산책방」(사업자등록번호 448-70-00490)을 개업하여 대표자로 있다.
3. 생애[편집]
문재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4. 수상[편집]
- 1983년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상
- 2014년 제16회 백봉신사상
- 2015년 제17회 백봉신사상
- 2017년 대서양협의회 세계시민상
- 2018년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지도자부문
- 2018년 포춘(Fortune)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 중 4위
5. 대통령 취임식[편집]
문재인/취임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6. 문재인 정부[편집]
문재인 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7. 대통령 퇴임 이후[편집]
퇴임 이후 양산시 하북면에 지어진 새 자택으로 이사하였다.
11월에는 곰이와 송강이를 정부에 반납하였다.
12월 3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2월 7일 한동훈은 문재인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민주당은 한동훈의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11월에는 곰이와 송강이를 정부에 반납하였다.
12월 3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2월 7일 한동훈은 문재인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민주당은 한동훈의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8. 평가[편집]
문재인/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9. 논란[편집]
문재인/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10.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