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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왕국
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1] | Kingdom of Thailand
파일:태국 국기.jpg
파일:태국 국장.png
국기
국장
ชาติ ศาสนา พระมหากษัตริย์
국가, 종교, 국왕
국가 정보
국명
태국
수도
방콕
건국
1782년 4월 6일
언어
태국어
면적
5,131만 2천㏊ (51위) [2023년기준]
인구
7,180만 1,279명 (20위) [2023년기준]
종교
상좌부 불교 94%
이슬람교 5%
기독교 0.9%
힌두교 0.1%
상징
국가
태국 애국가
(เพลงชาติไทย, Phleng Chat Thai)
국기
국화
라차프륵
국수
아시아 코끼리
정치
정치체제
단일 국가 입헌군주제하 의원내각제
(사실상 전제군주제하 군사 정부²)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
총리
쁘라윳 짠오차
왕실
짜끄리 왕조
외교
ASESN
1967년 가입
APEC
창설국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42
국가 코드
764, THA, TH
국제전화
+66
여행경보
나라티왓주, 빠따니주, 얄라주, 송클라주 남부 말레이시아 국경지역 출국권고를 제외한 전 지역 여행유의
1. 개요2. 상세3. 국호4. 역사5. 행정 구역6. 자연환경
6.1. 기후
7. 인문환경
7.1. 민족7.2. 언어7.3. 교육
8. 경제9. 문화10. 정치11. 군사12. 대외 관계13.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타이 왕국(태국어: 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랏차 아나짝 타이[4]), 약칭 태국(태국어: ประเทศไทย 쁘라텟 타이, 문화어: 타이)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사이에 걸쳐 있는 국가이다. 76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약 513,120km2,인구는 약 6,600만 명이다. 세계에서 50번째로 면적이 넓은 국가이며, 22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방콕이다. 북쪽으로는 미얀마와 라오스와 접경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접하고 있다. 남쪽에는 타이만과 말레이시아가 있고, 서쪽에는 안다만 해가 있다. 해상 국경으로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2. 상세[편집]

타이족은 약 11세기 즈음에 중국 남서부에서 동남아 반도로 이주해왔다. 이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몬 왕국, 크메르 제국, 말레이 군주국들이 등장하여 현재 태국계 왕조인 수코타이 왕국, 란나 왕국, 아유타야 왕국과 경쟁을 별였다. 명사에 따르면 14세기말 원나라에 이어 명 태조가 섬라곡국(暹羅斛國)을 섬라국(暹羅國)으로 인정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시기인 1511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과 만나며 유럽과의 교역을 시작하였고,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 즈음에 전성기를 맞아 지역 강국으로 번성하였다. 허나 왕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767년에 버마-태국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탁신 장군이 왕국을 재통합하는 데에 성공했고, 단명한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폭정으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풋타엿파쭐라룩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왕조는 현 국왕인 라마 10세까지 왕조를 이어오고 있다.

3. 국호[편집]

태국(泰國)이라는 명칭은 타이(태국어: ไทย)를 중국어에서 '타이'라고 발음되는 한자 '泰'로 음역한 것으로, 타이 왕국(泰王國)의 준말이다. 태국어 국호는 쁘라텟 타이(태국어: ประเทศไทย →자유의 땅)이다. 영어권에서는 타일랜드(Thailand)라고 표기하고 있다.

1939년 6월에 국호를 시암(태국어: สยาม 사얌[5], 음역어: 섬라(暹羅)/섬라곡국(暹羅斛國))에서 타이로 고쳤다가, 1945년 9월에 다시 시암으로 되돌렸다. 1949년 5월 11일에 국호를 다시 타이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역사[편집]

사이공이 함락되며 남베트남이 멸망하자, 안그래도 불안정했던 태국 사회는 갈수록 흔들렸으며 극우 세력들은 좌파 계열의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1976년에는 탐마삿 대학의 학생들이 대거 살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그날 쿠데타가 일어났고, 태국의 민주정부가 쫒겨난 자리에는 극우세력이 득세한 정부가 들어서 언론인, 관리,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극우 정부는 반공을 내세우며 독재를 정당화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탄압하며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같은 해 일어난 또다른 쿠데타로 인하여 그나마 더 온건한 성향의 정부가 들어섰으며, 1978년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우호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 난민 문제, 국경 분쟁, 경제 문제들이 연이어 겹치며 악재에 시달리자, 쁘렘 띤나술라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80년에서 1988년까지 총리로 재임하였다. 쁘렘 총리 시기는 종종 ‘반-민주주의’ 시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양원제로 구성된 태국의 의회들 중 하원은 모두 민주 선출제로, 상원은 모두 임명제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기에는 국왕이 점차 정사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에는 처음으로 태국에서 선거를 통하여 뽑힌 총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1991년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수찐다 끄라쁘라윤 장군은 자신이 총리직에 관심이 없음을 밝혔으나, 1992년 대선에서 비리를 저지르며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결국 이때도 라마 9세가 또다시 정국에 개입하며 국민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수찐다 총리는 그날로 사직하였다. 1997년에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40여 년에 이른 경제성장을 끝내버렸다. 정부는 IMF에게 구제 금융을 받았으며, 이는 수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포퓰리스트 정치인 탁신 시나와트라가 이끄는 정당이 이에 편승하여 인기몰이를 하였고, 탁신 총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재임하였다. 한편 2004년 인도양에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며 태국 남부를 대대적으로 덮쳤고,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일어나며 탁신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게 증폭되었다. 이후 탁신 총리의 2기 집권기에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2006년에 쿠데타가 일어나며 탁신 총리도 쫒겨났다. 군부 세력은 군정을 설치하였고, 이 군정은 대략 1년 정도 지속되었다.

2007년에는 탁신 전 총리와 연합한 태국 인민의 힘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인민의 힘 당은 민주당과 연정을 맺어 정부를 구성하였고, 이후 탁신계 인사들이 정부에 줄줄이 재등용되는 것에 반대한 세력들이 시위를 일으켰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2011년 총선에서도 탁신계 정당이 승리를 거두었고, 탁신의 누이인 잉락 시나와트라가 새로운 총리로 당선되었다. 반대세력들은 탁신의 친척들이 정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시위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잉락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미루려 들었으나, 헌법재판소가 이를 저지하면서 실패하였다. 이후 2014년에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쁘라윳 찬오차 장군의 주도하의 국가평화유지위원회가 결성되어 현재까지 태국을 통치해오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시민권과 정치권을 제한하였으며, 국왕의 권위를 모독하는 행위들을 엄격히 단속하는 탄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야당과 반대 세력들은 ‘단속 캠프’로 보내지고 있다는 설도 있어 논란은 여전히 증폭되고 있다. 한편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라마 9세가 2016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라마 10세가 왕위에 올랐다. 2019년에는 군부가 3월에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하였고, 쁘라윳 총리는 군부를 지지하는 팔랑쁘라차랏당의 지원을 받아 총리직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한편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내려진 비상 봉쇄령에 반발하며 2020년 태국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5. 행정 구역[편집]

도는 방콕(태국에서는 끄룽텝이라 부른다)이며, 치앙마이나 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행정 구역으로는 태국은 위치 구분에 따라 5개의 지역(중부, 동부, 북부, 북동부, 남부)에, 76개의 짱왓(changwat)으로 나뉜다(태국의 주 참조). 짱왓은 한국의 도 개념과 비슷하다. 짱왓보다 하위 개념으로 암프(amphoe)가 있다. 다시 암프는 암프 므앙과 땀본 등으로 나뉜다. 짱왓의 도청소재지는 암프므앙이라고 불린다. 많은 암프므앙의 이름은 짱왓의 이름과 같다. 2개의 특별자치구가 있으며, 수도인 방콕(Bangkok, Krung Thep Maha Nakhon)과 파타야(Pattaya)가 바로 그것이다. 각 지방은 다시 877개의 암프와 50개의 방콕지구로 나뉜다. 대한민국경기도에 해당되는 방콕과 경계를 이루는 지방은 Greater Bangkok(pari monthon)라고도 한다. 각 지방의 주도의 이름은 그 지방의 이름과 동일하다.

6. 자연환경[편집]

  • 북부 : 북부는 높은 산악지대로 미얀마, 라오스와 접경한다. 비교적 시원한 기후이다. 남북방향의 높은 산맥이 줄지어 있으며, 태국 내 최고봉인 도이 인타논(2,576m)도 이 지역에 있다. 산맥 사이에 치앙마이·치앙라이·난·람빵 등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하천 골짜기를 이용한 교통로가 예로부터 발달되었다.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전통적 관개수리체계가 발달되어 태국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집약적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코끼리들이 숲에서 일을 하고 겨울철 딸기나 복숭아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기에 알맞은 곳이다.동북부동북부(이싼)는 거의 전역에 코랏 분지가 펼쳐져 있으며, 강우량이 적어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에 있고, 경제적인 빈곤이 문제가 되는 지역이다. 태국 중부 동쪽 끝은 페차분 산맥과 동파야디옌 산맥으로 갑자기 막힌다. 이 산맥들은 역사적으로 태국 중부와 태국 동북부를 갈라놓았는데, 산맥 서쪽은 가파른 산지이자 무성한 삼림지역이고 동쪽은 큰 대지로 태국 전국토의 약 1/3을 차지한다. 메콩강에 접하고 있기도 하다. 기복있는 저지대는 논으로 만들어지고, 고지대는 소림(疎林)으로 덮였지만 인구증가에 따라 소림지역도 논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벼농사 외에 밭농사와 축산도 이루어진다.
  • 중부 : 중부에는 짜오프라야 강이 형성한 광대한 짜오프라야 삼각주로 불리는 풍성한 평지가 퍼져,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수한 벼농사 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짜오프라야 강은 국내 제일의 하천으로 중부의 교통의 대동맥이면서 생활과 농업 생산에 필요한 물을 공급한다. 태국 중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짜오프라야 삼각주는 구델타와 신델타로 나뉜다. 구델타는 예로부터 육지로 만들어진 땅이며, 장대한 자연제방과 습지로 인해 깊은 물에서도 잘 견디는 부도(浮滔)라는 벼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신델타는 아유타야로부터 해안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이며, 완전한 평탄지로 좀체로 물이 빠지지 않는다. 19세기 말부터 물길이 가로세로로 파여져 벼농사 경작지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취락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 태국 제1의 곡창지이다. 품질 좋은 과일도 이곳에서 많이 재배된다. 태국 중부 서쪽 끝은 다우나산맥으로 미얀마와 국경을 이룬다.
  • 남부 : 남부는 말레이 반도의 일부를 차지하며, 대부분 산지이나 시암만쪽 동편에는 해안에 잇닿은 소규모 해안평야가 몇 곳에 형성되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파라 고무나무가 펼쳐져 있고, 최근까지 주석 채굴이 활발했다. 어업도 중요하다. 또, 우기가 중부보다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태국 정부는 남부에 말레이 반도 대운하 계획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검토 중이다.
    • 타이만
    • 짜오프라야강 - 태국 중앙부를 흐르는 큰 강. 수도 방콕으로 흐른다.
    • 메콩강 - 라오스와의 국경에 흐르는 큰 강.
    • 푸껫섬 - 태국 서부 안다만해에 떠오르는 국제적인 리조트지.
    • 꼬 피피, 꼬 사무이, 꼬 팡안, 꼬 따오, 꼬 사멧 등
  • 위 4개의 지역에 아래 2개의 지역을 더하여 6개의 지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6.1. 기후[편집]

다른 여러 동남아시아 나라와 마찬가지로 열대몬순 지대에 속한다. 수도 방콕에서 가장 더운 4월 평균 기온이 섭씨 29.5도이며, 가장 시원한 12월 평균 기온은 섭씨 25.3도이다. 연교차는 4.2이다. 이러한 단조로운 기후에 변화를 가져오는 게 몬순이다. 5월부터 10월까지 남서몬순이 부는 우기이며, 연간 강우량의 거의 전부가 이 시기에 쏠린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동북몬순이 불어 아시아 대륙의 건조한 대기의 영향을 받아 건조기가 된다.

7. 인문환경[편집]

7.1. 민족[편집]

타이족이 75%로 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태국 주류에서 벗어난 여러 인종이 태국의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중국계가 18%, 기타 말레이족, 크메르족, 몽족, 고산족 등 나머지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 타이족은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도 거주하고 있으며, 태국의 문화적 영향이 강하게 작용함에도 여전히 엄격한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화교 또한 태국 사회, 특히 방콕 주변에서 특징적인 요소이다. 태국 사회로 성공적인 진입을 이룬 화교는 정치나 경제 권력을 가진 세력으로 부상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태국의 전 수상 탁신 친나왓이다. 그는 2001년부터 정권을 잡았으나 2006년 9월 19일 쿠데타로 축출당했다. 소수 민족으로는 화교 이외에도, 크메르족, 몬족, 말레이족, 산간부족(먀오, 야오, 라와, 리소, 무소, 카렌, 이코)이 있다.

태국은 2019년 기준으로 66,558,935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시골에 거주하며, 특히 중부 지역의 곡창 지대에 밀집되어 있다. 2010년 기준으로 대략 45.7%의 국민들이 도심부에 살고 있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수도인 방콕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방에 몰려 살고 있다. 태국은 급격한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하여 정부 주도의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고, 1960년대만 해도 약 3.1%에 달하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인 데에 반하여 현재는 약 0.4% 정도로 낮아졌다. 1970년대에는 한 가정 당 약 5.7명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2010년의 통계 결과에 의하면 약 3.2명 정도 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태국 인구의 95.9%가 태국 국적의 태국인이며, 나머지 약 2% 정도는 일자리를 위하여 떠나온 미얀마인들, 그리고 나머지 국적인들이 약 1.3% 정도를 차지한다. 2011년 왕실 주도의 차별금지조사에 의하면, 태국에는 현재 약 62개 정도의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태국 내에서 가장 인구 비율이 높은 타이계 제족들은 약 34.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7.2. 언어[편집]

태국의 공식언어는 태국어이다. 태국어는 인근의 라오어, 하이난과 윈난 산악 지방에서 사용되는 소수 민족들의 언어와도 굉장히 비슷하다. 태국 정부에서는 정부 주도로 태국어를 모든 국민들의 공용어로 정착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태국어를 국어로 선택하여 가르치고 있다. 참고로 태국어를 적을 때에는 크메르 문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태국 문자를 사용하여 표기한다.

태국 정부는 2011년에 약 62개의 언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태국어를 제외하면 태국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언어는 북동부 지방에서 사용되는 라오어이다. 종종 지역 방언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주로 옛 란쌍 왕국에 속해있었던 지방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남부 지방에서는 케란탄-파타니 말레이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화교들이 워낙 많은 탓에 중국어도 자주 사용된다.

7.3. 교육[편집]

  • 유치원 : 태국의 교육 제도는 유치원 제도가 이미 기본적으로 정착되어 왔으며, 초 중 고 대학교의 기본 학제가 한국과 같거나 비슷하게 운영된다. 유치원 및 영아 유치원 교육은 교육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라기보다는,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태국에서는 일할 수 있는 여자들의 절반이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내와 남편 모두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그래서 부모의 출근 시간대에서부터 퇴근 시간대까지 아이들을 돌봐 주는 탁아소의 역할을 부담하는 요금에 따라서 탄력 있게 감당하고 있다.
  • 진학 : 태국에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야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시험을 통하여 하기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좋은 중학교를, 좋은 중학교를 위해서는 좋은 초등학교를, 좋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좋은 유치원을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좀 멀고, 힘이 들더라도 좀 더 나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애를 쓴다. 비판적으로 보면, 태국에서 교육의 기회는 자녀를 명문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 소수 부유층들만 가질 수 있고, 거의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처음부터 상당히 닫혀있는 것이다.
  • 중고교과정 : 태국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위해 각각 3년을 들여야만 하는 정규 학제 이외에도, 중고교 졸업장을 비교적 손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로 열려 있다.
  • 대학 : 대학 과정은 분야별로 명문대가 있는데, 방콕의 쭐라롱껀, 탐마쌋, 씨나카린위롯, 씬라빠껀, 까셋쌋, 마히던 대학교 등이 명문이며 지방의 명문으로는 북부의 치앙마이 대학교, 북동부(이산)의 컨깬대학교, 남부의 송클라나카린대학교가 있다. 한편, 공부는 하고 싶으나 가정형편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방콕에는 물론 지방에도 곳곳에 개방대학이 개설되어 있다. 그 중 방콕에 있는 람캄행 대학은 세계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누구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학비가 저렴하여 등록금과 교재 구입비를 포함하여 한 학기당 25-30달러 정도 되므로 공부를 하고픈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강의는 하나도 안 들어도 되고, 시험 성적으로 학점을 얻는다. 하지만 졸업이 어려워서, 개방대학을 나오면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8. 경제[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태국/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문화[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태국/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정치[편집]

태국은 2014년 5월 22일까지 입헌군주정 국가였다. 태국의 총리가 국가 수반이었으며, 태국의 국왕이 상징적인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명예를 가졌다. 사법권은 행정부와 입법부와 독립되었었다.

2014년 5월 22일에 2014년 태국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2007년 제정된 헌법이 개정되었으며 군인들로 이루어진 국가평화유지위원회가 행정권을 차지했다. 국가평화유지위원회는 입법부를 해산시켰으며, 입법권을 자신들의 권한으로 넘겼다. 계엄령이 태국 전역에 발효된 가운데, 정상적인 경우에는 민사 법원에서 처리될 사안들도 군사 법원들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태국 헌법재판소는 헌법 자체가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국가평화유지위원회는 2019년 7월 16일에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며 공식적으로 해산하였다.

태국은 역사적으로 엄격한 전제군주정이었다. 그러나 서구화된 귀족층과 구시대적 군인들이 이끈 1932년의 개혁 이후 태국은 총리가 국가의 실무를 지휘하고 국왕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있는 입헌군주정으로 변모했다. 첫 헌법이 공포되었고, 태국의 정치판세는 구 귀족층, 장군들, 군벌들의 싸움터로 변했다. 쿠데타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군부 세력들이 국가의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 세력들은 그때마다 헌법을 개정하였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법들을 뜯어고쳤다. 현재까지 태국은 17번 헌법을 개정했으며, 이는 얼마나 태국이 불안정한 정치사를 겪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쿠데타 이후에는 장군들, 정치인들, 사회 유력자들, 의원들이 모여 정치적 안정을 일시적으로나마 재건하곤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태국을 2019년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판정하며 민주주의 지수를 1.69점 올렸다. 전년도에는 이보다 낮은 '혼합된 체제'였다.
  • 의회 : 의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과 선거로 선출되는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 임기 6년, 2년마다 하원은 임기 4년. 총리는 의회의 추천을 통해 국왕이 임명한다. 2004년 1월 회교도 거주 지역인 남부의 3개 주(빠따니 주, 나라티왓 주, 얄라 주)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한 이래 남부 지역에서 간헐적인 소요 및 지속적인 사상자가 발생 중에 있다.

11. 군사[편집]

태국군(กองทัพไทย)은 크게 육군(กองทัพบกไทย), 해군(กองทัพเรือไทย), 공군(กองทัพอากาศไทย)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준군사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다. 태국의 육군은 약 306,000여 명이며, 245,000여 명을 예비군으로 가지고 있다. 태국 군의 최고 통수권자는 국왕이지만, 이는 명예직일뿐 실제로 군대를 담당할 최고 권한은 총리에게 있다. 태국 국방부장관이 육군의 총책임자로, 총리의 명령을 따르며 군 관련 사무들을 감독한다. 태국의 1년 국방비 예산은 2005년에는 780억 바트 정도였던 데에 반해, 2016년에 이르자 2,070억 바트 정도로 뛰어오르며 거의 3배 넘게 상승했다. 게다가 2019년에는 GDP의 1.5%를 국방비가 차지하기도 했다. 2015년 9월에 조사된 자료 결과에 의하면, 태국의 군사력은 세계 16위 정도라고 한다.

군대는 단순 방위 업무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임무도 함께 맡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얀마의 로힝야족을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로 옮겨주는 임무에 참여한 것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모든 태국 국민들은 군대에서 복무해야 한다. 태국은 21세가 넘는 남성들에 한하여 추첨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들은 입대한 후 국토방위생(Territorial Defence Student)로 교육받으며, 이 과정을 수료한 성적과 사회에서의 교육 수준에 따라서 각각 다른 종류의 업무에 배치된다. 다만 이 국토방위 교육은 종종 비판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 교육과정이 창의적인 군인을 생산하기는커녕 고참들의 시중꾼이나 군산회사들의 하수인 따위나 양산해낸다고 지적받기 때문이다. 2020년 3월의 보고서 결과, 엠네스티에서는 군 지도자들이 국토방위 교육을 남용하여 군인들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폭로하기도 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태국군의 존재 이유가 외국의 침입보다는 내국의 소요 진압에 더 치중해있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특히 태국군대는 국내안전보위부(Internal Security Operations Command)라는 특수 준경찰조직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회운동가들과 시민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며 심지어는 반민주적인 임무들을 종종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추적, 감시, 암살과 같은 행위들로도 악명이 높기도 하다. 태국 군대가 워낙 태국 정계에 깊이 관여하다보니 부정부패도 막대하고 현역 의원들 다수가 군대의 요직에 앉아있다가 온 사람들인 경우도 많다.

12. 대외 관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태국/대외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문서 출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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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atcha-anachak Thai /raːt̚˥˩.t͡ɕʰa˦˥.ʔaː˧.naː˧.t͡ɕak̚˨˩.tʰaj˧/[2023년기준] 2.1 2.2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