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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의 왕비
대한제국 고종의 황후
명성태황후 | 明成太皇后
명성황후 영정
출생
1851년 11월 17일
경기도 여주목 근동면 섬락리
(現 경기도 여주시 능현동)
사망
1895년 10월 8일 (향년 43세)
(사망 131주기)
한성부 경복궁 건청궁 곤녕합 옥호루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능묘
홍릉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재위기간
조선 왕비
1866년 5월 5일 ~ 1895년 1월 12일
대조선국 왕후
1895년 1월 12일 ~ 1895년 10월 8일
국적
본관
여흥 민씨
이름
휘
자영 혹은 아영
전호
경효전
존호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
휘호
제휘열목
시호
명성태황후
신체
163cm
가족
아버지 민치록 (1799 ~ 1858)
어머니 한산 이씨 (1818 ~ 1874)
배우자 고종 태황제 (1852 ~ 1919)
자녀 4남 1녀[1]
종교
무속
1. 개요2. 상세3. 생애4.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민비 또는 민후, 명성황후 민씨는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왕후이다.

2. 상세[편집]

친청파, 친러파라는 의견이 있다. 인현왕후의 생부인 민유중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으로 사후 증 의정부영의정, 여성부원군에 추봉된 민치록이고, 어머니는 감고당 아산 이씨이다. 아명은 자영(玆暎), 본관은 여흥. 출신지는 경기 여흥이며, 여주 나들목 인근에 생가 공원이 있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정비로 1871년 첫 왕자를 5일 만에 잃고,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했다.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으며,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한테 겨냥하는 견제를 위해 청나라의 지원에 의존하다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당한 이후에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했다. 맨 처음에는 개항에 미온적이었으나, 점진적인 개화시책을 통해 친일 성향을 띤 급진 개화파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주조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공모에 의해 일본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다(을미사변(乙未事變), 1895년). 사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정식 시호는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제휘열목명성태황후이다. 거주지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지어진 건청궁에서 주로 생활했다.

3. 생애[편집]

→ 자세한 내용은 명성황후/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장남 원자, 장녀 공주, 차남 순종, 3남 대군, 4남 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