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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② 실제로 발생한 사건 사고에 관련된 내용을 다룹니다.
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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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방화 사건 | ||
▲ 당시 현장 사진 | ||
발생일 | 2001년 3월 4일 오전 3시 47분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312-135 | ||
국가 | ||
유형 | 화재로 인한 건물 붕괴 | |
인명 피해 | 실종 | 0명 |
부상 | 3명 | |
사망 | 6명[1] |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연립건물 화재·붕괴 사고로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불을 낸 범인은 구해달라고 요청한 집주인의 아들이었는데 방화범은 당시 사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3. 원인[편집]
화재가 난 연립건물은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불법주차·점용으로 인해 당시 소방차량이 이면도로에 진입하기 힘든 구조였으며 소방관들은 집주인의 아들인 최모씨가 화재 건물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화재현장에 진입했다가 4시 12분 건물이 붕괴되어 매몰되었으나 건물주 등 8명은 이미 화재 직후 모두 탈출한 상황이었다.
4. 방화범 범행 동기[편집]
집주인의 아들인 최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화재 발생 1시간 전인 새벽 2시반 무렵 술에 만취한 채 귀가하며 자신을 야단치던 어머니 선모씨와의 다툼 끝에 어머니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이에 어머니 선씨가 위층으로 피신하자 화가 풀리지 않았던 최씨는 방 안에 있던 생활정보지에 불을 붙였다고 자백했으며 불길이 크게 번지기 시작하자 식겁한 최씨는 외삼촌 집으로 달아났다가 사건 당일 오후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최씨의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최씨를 방화와 존속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후 최씨는 현주건물 방화 및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리고 재판 결과 최씨는 1989년 무렵부터 정신질환으로 3차례 입원 치료를 받은 전적으로 인해 심신미약이 인정되면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2006년 출소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의 정확한 근황은 알 수 없다.
그 후 최씨의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최씨를 방화와 존속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후 최씨는 현주건물 방화 및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리고 재판 결과 최씨는 1989년 무렵부터 정신질환으로 3차례 입원 치료를 받은 전적으로 인해 심신미약이 인정되면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2006년 출소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의 정확한 근황은 알 수 없다.
5. 전개[편집]
- 03시 47분 화재신고 최초 접수
- 03시 59분 현장 도착 및 소방 차량 진입 불가
- 04시 10분 1차 구조 완료 (주민 1명 구조)
- 04시 17분 2차 구조 시작
- 04시 27분 건물 붕괴 (소방관 9명 매몰, 6명 순직, 3명 부상)
6. 인명피해[편집]
7. 순직 소방관 명단[편집]
- 지방소방장 박동규
- 지방소방교 김철홍
- 지방소방교 박상옥
- 지방소방교 김기석
- 지방소방서 장석찬
- 지방소방사 박준우
8. 사건 이후[편집]
- 2001년 3월 7일 부산광역시 연산동 빌딩화재로 소방관 1명이 순직하면서 의무소방대의 설치 계기가 되었고 사고 당시 소방관들이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일종의 비옷)을 지급받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 2번의 화재 사고 이후 방화복이 지급되었다.
- 2001년 7월에 종전 청록색 기동복, 하늘색 구급복, 주황색 구조복이 시인성 문제가 거론되어 소방의 시그니처 컬러인 주황색 기동복(남색 옷깃)으로 통합되었다.
- 이 사건 이전에는 행정자치부 소방국 외에 국방부에도 예산 지원이 안 돼 국방부 직할·육·해·공군·해병대 소방대도 군용 우의와 재질이 같은 방수복을 입었다가 이 사건을 겪고 나서야 방화복이 지급되었다.
- 2012년 11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을 이달의 현충인물로 지정하였으며 대한민국 소방행정을 비판하는 데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 각 사업장의 자위·자체 소방대도 방수복을 입었다. 2010년대가 지나 2020년대가 되어도 방수복을 여전히 입는 사업장이 있다.
9. 반응[편집]
순직 소방관들을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졌고 합동분향소에는 3일 동안 3만 명에 가까운 시민과 공무원이 조문했다. 소방관들이 목숨을 바쳐 구하려 한 집주인 아들이 정작 구조 대상자는 커녕 오히려 방화를 저지르고 도주하여 참사를 유발한 당사자인 것으로 밝혀져 더욱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10.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전부 방화범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가 건물이 붕괴 되어 모두 순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