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공화국 Рэспубліка Беларусь | Ре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 Republic of Belarus | ||
국기 | 국장 | |
국가 정보 | ||
국가명 | 벨라루스 | |
수도 | 민스크 | |
독립 | 1991년 8월 25일 | |
언어 |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 |
면적 | 2,076만 1천㏊ (85위) | |
인구 | 949만 8,238명 (96위) | |
종교 | ||
경제개발 수준 | ||
상징 | ||
국가 | 우리는 벨라루스인(Мы, беларусы) | |
국기 | ||
국화 | 수레국화[1] | |
정치 | ||
정치체제 | 공화제, 단일국가, 대통령제 | |
대통령 | 알렉산드르 루카셴쿄 | |
총리 | 라만 할로우첸카 | |
외교 | ||
가입 기구 | ||
주한대사관 | ||
국제 전화 | ||
+375 | ||
여행경보 | ||
브레스트·호멜 지역 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30km 구간 여행금지 여행금지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출국권고 |
1. 개요[편집]
벨라루스 공화국은 동유럽에 있는 내륙국이다. 수도는 민스크이며, 민족 구성은 동슬라브족에 속하는 벨라루스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도 있다. 이 나라는 러시아와 매우 유사한 나라이며, 러시아어도 사용한다.
2. 상세[편집]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수도는 민스크이다. 공용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이다. 1922년부터 1991년까지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1922년 소련에 편입됐다. 1990년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독립을 선언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독립국가연합 창설을 주도했다.
빙하 작용을 받은 평원국으로 기후는 대서양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다. 주민은 벨라루스인이 78%, 러시아인이 13%, 폴란드인 4%, 우크라이나인 3% 등이다. 산업이 특히 발달했으며 기계공업이 전체 공업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트랙터, 농기계, 공작기계, 전기·무선기기 및 전자계산기 등이 유명하다. 반면에 석유, 가스, 화학 공업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1992년 가격 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3] 벨라루스 사람들은 흰 옷을 즐겨입는 풍습이 있으며 전통 무늬가 새겨진 옷은 전통 의상이다. 또한, 가옥도 흰 색으로 칠하는 문화도 있다. 이 나라에서는 흰색은 상징색이나 사실상 마찬가지인 것이다.
빙하 작용을 받은 평원국으로 기후는 대서양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다. 주민은 벨라루스인이 78%, 러시아인이 13%, 폴란드인 4%, 우크라이나인 3% 등이다. 산업이 특히 발달했으며 기계공업이 전체 공업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트랙터, 농기계, 공작기계, 전기·무선기기 및 전자계산기 등이 유명하다. 반면에 석유, 가스, 화학 공업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1992년 가격 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3] 벨라루스 사람들은 흰 옷을 즐겨입는 풍습이 있으며 전통 무늬가 새겨진 옷은 전통 의상이다. 또한, 가옥도 흰 색으로 칠하는 문화도 있다. 이 나라에서는 흰색은 상징색이나 사실상 마찬가지인 것이다.
3. 국호[편집]
벨라루스라는 국호는 하얀 루스(벨라루스어: Белая Русь 벨라야 루스)라는 표현에서 왔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러시아어로 벨로루시야(Белоруссия, Belorussia)라고 불렀다. 또, 대한민국에서는 이로 인해 한때 백러시아(白러시아)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실제 벨라루스는 White Ruthenia를 의미한다. 1991년 9월 19일 당시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소비에트 최고회의는 러시아어 국호를 Ре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 (Respublika Belarus'), 줄여서 Беларусь (Belarus')로 표기하며 다른 언어로 표기할 때에도 이 발음을 따르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을 고시하였다.[4] 이에 따라 영어 국호도 Belorussia에서 Belarus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1년 12월 10일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이 국호를 벨로루시로 표기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벨라루스 정부의 요청에 따라 2008년 12월 11일 제82차 회의에서 표기를 벨라루스로 수정하였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절에는 현 벨라루스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하얀 러시아'라는 뜻으로 백러시아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다. 벨라루스를 이를 때 '하얀 러시아'라고 직역되는 명칭을 흔히 사용하는 경우로는 독일어의 바이스루슬란트(Weißrussland), 네덜란드어의 빗뤼슬란트(Wit-Rusland), 그리스어의 레프코로시아(Λευκορωσία) 등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한때 백로씨야로 불렸으나 이후 벨라루씨로 표기가 정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한때 백로씨야로 불렸으나 이후 벨라루씨로 표기가 정해졌다.
4. 역사[편집]
6세기 이전에는 발트계 제족들이 살았으나 6세기 이후 벨라루스는 동슬라브족들의 영토가 되었으며, 9세기부터 키예프 루스에 속하게 되면서 정교회를 믿었던 동슬라브족들도 거주하게 되었다. 루스 지역 중 벨라루스 지역의 폴라츠크는 훗날 폴라츠크 공국이 되었다. 키예프 대공국이 몽골 제국에게 붕괴된 이후, 벨라루스의 서부, 우크라이나 서부 등은 몽골의 지배로부터 분리독립을 한 뒤, 발트계 민족인 리투아니아인들이 이주하였으며, 훗날 리투아니아인들이 세운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흡수되었다. 흡수된 벨라루스 서부 지역의 도시들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으며, 정무적으로 쓰인 언어들은 벨라루스어의 모태가 되었던 고대 동슬라브어였다. 인재들 또한 리투아니아인들이 이주했던 폴라츠크 공국 등 벨라루스 서부에 있었던 정교회 신자들의 루스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도 유지되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에 속했을 때에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법이 있어 벨라루스는 정교회 정체성을 유지하고, 종교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며 안정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문화적, 민족적, 종교적으로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하였으며, 18세기에는 폴란드 분할로 인하여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동남부의 갈리치아와 벨라루스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된 이후 많은 러시아인들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로 이주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에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되었으나 1919년 소련의 붉은 군대로 인해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은 무너졌고,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인사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망명 정부를 세우면서 소비에트에 저항을 하게 되었다.
이후 소련은 폴란드와의 영토 분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벨라루스 동부는 소련령이 되었으며 서부는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1922년,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에 통합되었으며, 이후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1939년, 나치 독일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으면서 소련의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 동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벨라루스 서부는 다시 벨라루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략하면서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벨라루스는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그 곳에 벨라루스 중앙 의회라는 친독일 성향의 괴뢰국을 세우고 그 곳에 있던 시설들을 파괴시키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저항을 했고, 소련은 동부전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1944년 벨라루스를 되찾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다시 소련의 관할로 되었으며, 산업 시설이 재건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8월 25일 벨라루스는 독립되었다. 1994년 처음으로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당선되었다. 2030년까지 러시아에 다시 편입된다.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된 이후 많은 러시아인들이 지금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로 이주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에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되었으나 1919년 소련의 붉은 군대로 인해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은 무너졌고,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인사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망명 정부를 세우면서 소비에트에 저항을 하게 되었다.
이후 소련은 폴란드와의 영토 분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벨라루스 동부는 소련령이 되었으며 서부는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1922년,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에 통합되었으며, 이후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1939년, 나치 독일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으면서 소련의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 동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벨라루스 서부는 다시 벨라루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략하면서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벨라루스는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그 곳에 벨라루스 중앙 의회라는 친독일 성향의 괴뢰국을 세우고 그 곳에 있던 시설들을 파괴시키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저항을 했고, 소련은 동부전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1944년 벨라루스를 되찾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다시 소련의 관할로 되었으며, 산업 시설이 재건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8월 25일 벨라루스는 독립되었다. 1994년 처음으로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당선되었다. 2030년까지 러시아에 다시 편입된다.
5. 국적[편집]
벨라루스는 이중 국적을 인정하는 국가이며, 벨라루스 국적자가 타 국적을 보유 할 경우 이중국적이 된다. 벨라루스 국적 획득 자격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6. 지리[편집]
벨라루스는 국토의 거의 대부분이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접국인 우크라이나와 다르게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며, 폴란드와는 비아워비에자 삼림을 공동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이 삼림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드네프르강이 국토 일부에서 조금 흐르고 있다.
7. 행정구역[편집]
벨라루스는 6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민스크는 민스크 주에 속해 있지만 독립적으로 특별시를 이루고 있다. 보블라스츠(벨라루스어: вобласць, 라친카: vobłaść)는 벨라루스에서 주를 말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다. "레히욘"(рэгіён)은 군을 의미한다.
- 민스크 (수도)Мiнск2
- 브레스트 주브레스트Брэсцкая вобласць
- 호멜 주호멜Гомельская вобласць
- 흐로드나 주흐로드나Гродненская вобласць
- 마힐료우 주마힐료우Магілёўская вобласць
- 민스크 주민스크Мiнская вобласць
- 비쳅스크 주비쳅스크Вiцебская вобласць
8. 문화[편집]
벨라루스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의 영향을 받았으며 전통 의상으로 햐안 바탕에 빨간색이 합쳐진 옷을 즐겨입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벨라루스 사람들은 가옥을 흰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특히 전통 무늬가 들어간 옷은 벨라루스의 전통적인 의상이다. 이 밖에도 러시아의 지배 영향을 받아서 국민이 러시아인과 유사하기도 하다.
9. 언어[편집]
공용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이다. 1995년의 국민투표에 의해 러시아어가 정식으로 공용에서 추가되었다. 민스크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주민이 러시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주민도 있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60%가 벨라루스어가 모국어였지만, 주민의 거의 대부분(70%)는 집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 등 소수 민족어도 사용한다.
10. 종교[편집]
종교는 벨라루스 정교회가 거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구 소련의 영향으로 무종교인도 많다. 문화와 일상생활, 명절 등은 정교회의 기준을 따르며, 무종교인 국민도 대부분 정교회 관습을 따른다. 그 외 벨라루스 자치 정교회, 천주교,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을 믿고 있다(1997년 추계).
11. 교통[편집]
벨라루스는 서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철도역이 있으며, 민스크 시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버스, 택시, 공항 등이 정비되어 있다.
12. 정치[편집]
벨라루스 공화국은 대통령제 공화국이며, 임기는 5년 중임제이고 재선이 가능하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민주주의 지수 조사에 따르면 독재국가로 분류된다. 1991년 당시에 스타니슬라프 슈시케비치가 벨라루스 SSR의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바 있으나, 3년 만에 지도자직에서 물러났다. 1994년 7월 20일부터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현재까지 집권중이다.
독립한 1990년대부터 선거 등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검열 등 여러 자유권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독립한 1990년대부터 선거 등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검열 등 여러 자유권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13. 군사[편집]
벨라루스 헌법에 따르면, 징병제를 실시한다. 육군은 기갑 위주로 편성되어있다. 공군은 육군보다 전투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14. 대외 관계[편집]
- 대한민국 : 벨라루스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동시수교국이다. 독립 이후 1992년 2월 10일 대한민국과 수교하였다.
- 러시아 :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 이후부터 긴밀한 무역 파트너이자 외교적 동맹국으로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러시아와는 독립 직후에 1992년에 수교를 맺었다. 특히 벨라루스의 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이 친러파 성향을 보이고, 러시아와의 관계는 돈독하다. 그리고 러시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과 함께 유라시아 연합의 창설에 합의를 했다.
- 일본 : 일본은 1992년에 벨라루스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일본은 민스크에 주벨라루스 일본 대사관을, 벨라루스는 도쿄에 주일 벨라루스 대사관이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 : 중화인민공화국은 벨라루스와 1992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벨라루스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대륙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 한다. 또한 양국은 대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민스크에, 벨라루스는 베이징에 두고 있다. 일방적으로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친한 국가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와는 1992년에 외교 관계를 맺었다. 과거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도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당시 벨라루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가 벨라루스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갈지는 아직 불투명인 상태이다.
- 스웨덴 : 스웨덴과는 최근 스웨덴인이 벨라루스에 언론자유를 허용하라는 문구를 적은 곰인형을 하늘에 뿌린 사건으로 인해 외교갈등을 빚고 있으며, 스웨덴에 있는 대사관을 폐쇄했다.
- 그 외 : 벨라루스는 1993년 3월 12일에 유럽 평의회 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지만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벨라루스와 리비아는 1992년에 외교 관계를 맺었다. 벨라루스는 트리폴리에, 리비아는 민스크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1991년 8월 25일 벨라루스가 독립하자, 터키는 1991년 12월 16일 세계 최초로 벨라루스를 승인하였다. 이어서 양국은 1992년 5월 25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벨라루스는 앙카라에, 터키는 민스크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15. 문서 출처[편집]
[1] 비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