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소말리아 연방공화국 Jamhuuriyadda Federaalka Soomaaliya جمهورية الصومال الفدرالية Federal Republic of Somalia | ||
국기 | 국장 | |
국가명 | 소말리아 연방공화국 | |
독립일 | 1960년 7월 1일 (66주년) | |
수도 | 모가디슈 | |
언어 | 소말리어 | |
인구 | 19,280,850명 (66위 / 2025년 기준) | |
면적 | 637,657 km² (43위) | |
국교 | 이슬람교 | |
종교 | 수니파 이슬람교 99.8% 기독교 0.02% | |
상징 | ||
국가 | 어떠한 나라의 깃발이라도 | |
국화 | 용왕꽃 | |
국수 | 표범 | |
정치 | ||
정치 체제 | ||
대통령 | 하산 셰흐 마하무드 | |
총리 | 하산 알리 카이레 | |
경제 | ||
경제체제 | 시장경제 | |
명목 GDP | $129억 9,000만 (전체 / 147위) $766 (1인당 / 177위) | |
PPP GDP | $325억 (전체 / 151위) $1,920 (1인당 / 179위) | |
외교 | ||
대한 수교 | ||
주한대사관 | 없음[1] | |
가입 국제기구 | ||
국가 코드 | ||
706, SO, SOM | ||
국제 전화 | ||
+252 | ||
여행금지 | 전 지역[2] | |
1. 개요[편집]
소말리아 연방 공화국은 아프리카 동부 (이스트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과거에 1969년까지는 소말리 공화국, 쿠데타가 일어난 후부터 1991년까지는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이었다.
2. 상세[편집]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뿔에 있는 나라인데, 북서쪽으로는 지부티, 남서쪽으로는 케냐, 서쪽으로는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쪽에는 아덴만과 예멘, 동쪽에는 인도양이 있다.
소말리아는 150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단합된 나라들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인구의 85%가 소말리인이며, 역사적으로 소말리아 북부에 거주해 살아왔다. 소수 민족들은 주로 남부 지방에 모여 살고 있다. 소말리아의 공식 언어는 소말리어와 아랍어이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고전기에 소말리아 지방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전설에 나오는 푼트 지방의 가장 유력한 후보들 중 하나로 보인다. 중세에는 여러 소말리계 제국들이 지역 간의 거래를 통제하였는데, 주로 아주란 술탄국, 아달 술탄국, 겔레디 술탄국 등이 번영하였다. ‘소말리아’라는 국명은 이탈리아의 여행가 루이지 브리체티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말리아는 19세기까지 독자적인 주권을 가지고 번영하였으나, 19세기 후반에 유럽 열강들에 의하여 점령 되고 만다. 처음으로는 독일이 주도권을 쥐었고, 나중에 독일이 떠나고 난 이후에는 영국과 이탈리아가 들어왔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각각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를 설립하고 식민 통치를 행하였다.
내부적으로 반발도 만만치 않아 무함마드 압둘라 하산이 이끄는 데르비쉬 왕국이 저항을 계속하였다. 다만 이 저항도 1920년 소말리아 원정으로 인해 진압 당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한편 소말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술탄국들을 원정으로 멸망시키며 소말리아 북동부, 중앙, 남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였다. 1960년에 이르러서야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리아가 민간 정부의 주도 하에 새로운 소말리아 공화국을 창립하기 위해 통합되었다.
1969년에 최고혁명위원회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다만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은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하여 22년 만인 1991년에 해체되었다. 이 시기 동안 소말리아 지방들 대부분이 관습법, 혹은 종교법으로 통치 되며 나라 전체가 퇴보하였다. 2000년대 후반에서야 여러 과도 정부들이 연이어 세워졌는데, 2000년에는 과도국민정부(TNG)가, 2004년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소말리아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인정을 받은 과도연방정부(TFG)가 설립되어 소말리아 군대를 다시 재건하였다. 2006년에 과도연방정부는 국가의 남부 지역들 대부분을 신흥 세력인 이슬람법정연합으로부터 다시 되찾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슬람법정연합은 이후 알 샤바브와 같이 더 과격한 분파들로 분화되었고, 영토를 빼앗기 위하여 과도연방정부와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다.
2012년 중반, 소말리아에도 점차 안정이 찾아왔고 조금 더 항구적인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임시 헌법이 2012년 8월에 통과되었으며, 소말리아를 연방 국가로 개조하였다. 같은 달에 소말리아 연방 정부가 설립되었으며 수도 모가디슈에서 개혁이 단행되기 시작하였다. 소말리아는 현재까지도 비공식 부문 경제 중심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로 통신업이나 재외 국민들이 보내주는 돈, 수공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UN, 아랍 연맹, 아프리카 연합, 이슬람협력기구의 일원이기도 하다.
소말리아는 150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단합된 나라들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인구의 85%가 소말리인이며, 역사적으로 소말리아 북부에 거주해 살아왔다. 소수 민족들은 주로 남부 지방에 모여 살고 있다. 소말리아의 공식 언어는 소말리어와 아랍어이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고전기에 소말리아 지방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전설에 나오는 푼트 지방의 가장 유력한 후보들 중 하나로 보인다. 중세에는 여러 소말리계 제국들이 지역 간의 거래를 통제하였는데, 주로 아주란 술탄국, 아달 술탄국, 겔레디 술탄국 등이 번영하였다. ‘소말리아’라는 국명은 이탈리아의 여행가 루이지 브리체티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말리아는 19세기까지 독자적인 주권을 가지고 번영하였으나, 19세기 후반에 유럽 열강들에 의하여 점령 되고 만다. 처음으로는 독일이 주도권을 쥐었고, 나중에 독일이 떠나고 난 이후에는 영국과 이탈리아가 들어왔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각각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를 설립하고 식민 통치를 행하였다.
내부적으로 반발도 만만치 않아 무함마드 압둘라 하산이 이끄는 데르비쉬 왕국이 저항을 계속하였다. 다만 이 저항도 1920년 소말리아 원정으로 인해 진압 당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한편 소말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술탄국들을 원정으로 멸망시키며 소말리아 북동부, 중앙, 남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였다. 1960년에 이르러서야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리아가 민간 정부의 주도 하에 새로운 소말리아 공화국을 창립하기 위해 통합되었다.
1969년에 최고혁명위원회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다만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은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하여 22년 만인 1991년에 해체되었다. 이 시기 동안 소말리아 지방들 대부분이 관습법, 혹은 종교법으로 통치 되며 나라 전체가 퇴보하였다. 2000년대 후반에서야 여러 과도 정부들이 연이어 세워졌는데, 2000년에는 과도국민정부(TNG)가, 2004년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소말리아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인정을 받은 과도연방정부(TFG)가 설립되어 소말리아 군대를 다시 재건하였다. 2006년에 과도연방정부는 국가의 남부 지역들 대부분을 신흥 세력인 이슬람법정연합으로부터 다시 되찾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슬람법정연합은 이후 알 샤바브와 같이 더 과격한 분파들로 분화되었고, 영토를 빼앗기 위하여 과도연방정부와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다.
2012년 중반, 소말리아에도 점차 안정이 찾아왔고 조금 더 항구적인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임시 헌법이 2012년 8월에 통과되었으며, 소말리아를 연방 국가로 개조하였다. 같은 달에 소말리아 연방 정부가 설립되었으며 수도 모가디슈에서 개혁이 단행되기 시작하였다. 소말리아는 현재까지도 비공식 부문 경제 중심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로 통신업이나 재외 국민들이 보내주는 돈, 수공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UN, 아랍 연맹, 아프리카 연합, 이슬람협력기구의 일원이기도 하다.
3. 자연환경[편집]
3.1. 지리[편집]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동쪽 끝에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이고, 기후는 아시아 대륙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주요 하천은 시벨리강과 주바강이다. 소말리아 반도를 구성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지부티, 케냐와 접해 있고, 북쪽과 동쪽은 인도양에 접해 있다.
3.2. 기후[편집]
일 년 내내 계절풍이 불며 뜨겁다. 불규칙적인 강우가 나타나기 때문에 가뭄이 빈번하다. 고지대를 빼고서는 매일 최대 기온이 30~40도에 육박한다. 최저 기온은 15~30도 정도이다. 남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바닷바람이 불기도 하는데 5월~10월에 나타나며 12월~2월 정도까지는 북동 계절풍이 불어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후가 나타난다. 두 계절풍이 나타나지 않는 3월, 4월과 11월의 경우 습하고 덥다.
4. 인문환경[편집]
4.1. 언어[편집]
2004년 2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작성한 소말리아 공화국의 임시연방헌장 7조(언어)에는 "1. 소말리아 공화국의 공식어는 소말리어(마아이 및 마하하티리) 및 아랍어다. 2. 임시 연방 정부의 2언어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다."고 규정했다. 남부에서는 이탈리아어외에도 스와힐리어도 통용되며 일부는 러시아어도 통한다.
소말리어와 아랍어가 공식 언어로, 소말리어는 토착 민족이자 최대 민족인 소말리인들의 전통 언어이다. 소말리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쿠시어파 계열에 속하며, 가장 가까운 어족은 오로모어, 아파르어, 사호어 등이 있다. 소말리어는 쿠시어파 계얼의 언어들 가운데에서 가장 자료가 많기도 하고 사용자도 가장 많은 언어이며, 1900년대 이전부터 연구가 진행되었을 정도로 관련 조사도 매우 많이 이루어졌다.
소말리아의 방언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크게 북부, 바나디르, 마아이가 바로 그 것이다. 북부 소말리아 방언이 주로 표준어로 쓰이고 있으며, 바나디르 방언(해안 소말리어)는 주로 바나디르 지방의 해안가에서 쓰이며, 아달레에서 메르카, 모가디슈까지 두루 통용된다. 바나디르 방언은 표준어에는 없는 성조가 있기도 하다. 마아이는 주로 소말리아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디길 지방과 미리플 지방에서 쓰이고 있다.
소말리어를 표기하기 위한 여러 문자들도 나왔는데, 이들 중 소말리 알파벳이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되며 1972년 10월에 최고혁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이후 소말리아의 공식 문자로 쓰이고 있다. 소말리 알파벳은 소말리아의 언어학자 샤이레 자마 아흐메드가 창안하였으며, p, v, z를 제외한 모든 알파벳들을 사용한다. 또한 소말리아에서는 아흐메드의 라틴어 계열 문자를 제외하고도 아랍 문자 등도 참고하여 사용하고 있다. 20세기에는 오스만야, 보라마, 카다레 문자 등 수많은 문자 표기법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각각 오스만 유슈프 케나디드, 셰흐 압두라흐만 셰흐 누르, 후세인 셰흐 아흐메드 카다레가 창안하였다. 소말리어와 비슷한 아프리카아시어어족의 언어인 아랍어도 소말리아의 공식 언어이다. 대략 2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아랍 세계와의 연관성으로 인하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에서는 아랍 미디어, 언론, 종교 교육 등에도 매우 많이 쓰인다.
영어는 국제 공용어의 지위로 인하여 광범위하게 배우고 쓰인다. 초기 영국령 소말릴란드의 공식 언어로 쓰였으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소말리아에서도 활발히 쓰이고 있는 것이다. 소말리아의 대학들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여 교육하며, NGO들도 교육에서 주로 영어를 학교에서 가르친다. 이탈리아어는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의 공식 언어이자 신탁 통치기에도 잘 쓰였으나, 독립 이후에는 급격히 사용자가 감소하였다. 현재는 노인들, 정부 각료, 엘리트층 일부만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다.
소말리어와 아랍어가 공식 언어로, 소말리어는 토착 민족이자 최대 민족인 소말리인들의 전통 언어이다. 소말리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쿠시어파 계열에 속하며, 가장 가까운 어족은 오로모어, 아파르어, 사호어 등이 있다. 소말리어는 쿠시어파 계얼의 언어들 가운데에서 가장 자료가 많기도 하고 사용자도 가장 많은 언어이며, 1900년대 이전부터 연구가 진행되었을 정도로 관련 조사도 매우 많이 이루어졌다.
소말리아의 방언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크게 북부, 바나디르, 마아이가 바로 그 것이다. 북부 소말리아 방언이 주로 표준어로 쓰이고 있으며, 바나디르 방언(해안 소말리어)는 주로 바나디르 지방의 해안가에서 쓰이며, 아달레에서 메르카, 모가디슈까지 두루 통용된다. 바나디르 방언은 표준어에는 없는 성조가 있기도 하다. 마아이는 주로 소말리아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디길 지방과 미리플 지방에서 쓰이고 있다.
소말리어를 표기하기 위한 여러 문자들도 나왔는데, 이들 중 소말리 알파벳이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되며 1972년 10월에 최고혁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이후 소말리아의 공식 문자로 쓰이고 있다. 소말리 알파벳은 소말리아의 언어학자 샤이레 자마 아흐메드가 창안하였으며, p, v, z를 제외한 모든 알파벳들을 사용한다. 또한 소말리아에서는 아흐메드의 라틴어 계열 문자를 제외하고도 아랍 문자 등도 참고하여 사용하고 있다. 20세기에는 오스만야, 보라마, 카다레 문자 등 수많은 문자 표기법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각각 오스만 유슈프 케나디드, 셰흐 압두라흐만 셰흐 누르, 후세인 셰흐 아흐메드 카다레가 창안하였다. 소말리어와 비슷한 아프리카아시어어족의 언어인 아랍어도 소말리아의 공식 언어이다. 대략 2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아랍 세계와의 연관성으로 인하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에서는 아랍 미디어, 언론, 종교 교육 등에도 매우 많이 쓰인다.
영어는 국제 공용어의 지위로 인하여 광범위하게 배우고 쓰인다. 초기 영국령 소말릴란드의 공식 언어로 쓰였으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소말리아에서도 활발히 쓰이고 있는 것이다. 소말리아의 대학들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여 교육하며, NGO들도 교육에서 주로 영어를 학교에서 가르친다. 이탈리아어는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의 공식 언어이자 신탁 통치기에도 잘 쓰였으나, 독립 이후에는 급격히 사용자가 감소하였다. 현재는 노인들, 정부 각료, 엘리트층 일부만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다.
4.2. 민족[편집]
디르, 다루드, 하위예, 이스자아크 등의 씨족이 소말리족의 대부분을 구성하며, 디길과 라한위인 등의 씨족들로 구성된 유목민, 대부분 반투족인 소수 민족이 있다. 이중 유목민들은 경멸 당하기 때문에 부족 간의 대립이라는 불씨가 남아 있다. 과거에는 아랍인, 이탈리아인, 인도인들도 소수 있었다.
소말리아에는 2018년 기준으로 1,5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75년의 330만 명에 비하여 크게 증가하였다. 전체 인구의 85% 정도가 소말리인들이며, 역사적으로 현 소말리아의 북부 지방에 거주해왔다. 주로 부족 단위로 모여 살고 있으며, 강대할 적에는 느슨한 제국, 술탄국, 도시 국가들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의 내전으로 인하여 소말리인들은 주로 해외로 도피하였으며, 특히 이때에 주 엘리트층들이 국내에서 대부분 유출되며 인적 자원 면에서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소수 민족들이 15% 정도를 차지하며, 주로 남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주로 브라바인, 반투인, 바주니인, 에티오피아인, 예멘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이탈리아인, 영국인 등이 있다. 소말리아의 가장 규모가 큰 소수 민족인 반투족들은 아프리카 동남부 지방에서 아랍과 소말리인 상인들이 데려온 노예들의 후손이다. 1940년 경에는 이탈리아인들이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하여 대략 5만 명 정도 들어왔으며, 독립된 이후에는 대부분 떠났으나 여전히 소규모의 유럽인들이 남아 국제기구나 정부 조직들에 참여하고 있다.
소말리인들은 주로 미국, 그 중에서도 미네소타 주나 영국의 런던, 스웨덴,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핀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같은 서구 국가들을 포함하여 아랍 국가들, 그 외에도 우간다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아프리카 인접국들로 도피하고 있다. 이 같은 난민 현상은 소말리아의 극히 불안정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으로, 소말리아 대통령인 모하메드 압둘라히 모하메드조차도 이전에 난민으로 미국으로 떠나 시민권을 받은 적이 있으며, 2019년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였다.
소말리아의 인구는 매년 1.7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1,000명 당 40.87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 소말리아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6.08명으로 매우 높으며,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자연사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기에 국민들의 평균 나이도 매우 어려 평균 나이가 17.7세에 불과하다. 인구의 44%가 0세에서 14세 사이이며, 52.4%가 15세에서 64세 사이이다. 오직 2.3%의 사람들만이 겨우 65세를 넘기고 살 수 있었다. 성비는 대략 균형을 맞추고 있으나,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많다.
소말리아의 도시화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집계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대략적인 조사에서는 2005년과 2010년 사이에 도시화율이 매년 4.79%에 달했으며, 여러 마을들이 급격하게 도시들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소수 민족들도 마을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특히 키스마요나 모가디슈와 같은 대도시로 몰리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37.7%에 달하는 인구가 마을과 도시에 모여 살았으며, 이 수치는 현재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소말리아에는 2018년 기준으로 1,5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75년의 330만 명에 비하여 크게 증가하였다. 전체 인구의 85% 정도가 소말리인들이며, 역사적으로 현 소말리아의 북부 지방에 거주해왔다. 주로 부족 단위로 모여 살고 있으며, 강대할 적에는 느슨한 제국, 술탄국, 도시 국가들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의 내전으로 인하여 소말리인들은 주로 해외로 도피하였으며, 특히 이때에 주 엘리트층들이 국내에서 대부분 유출되며 인적 자원 면에서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소수 민족들이 15% 정도를 차지하며, 주로 남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주로 브라바인, 반투인, 바주니인, 에티오피아인, 예멘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이탈리아인, 영국인 등이 있다. 소말리아의 가장 규모가 큰 소수 민족인 반투족들은 아프리카 동남부 지방에서 아랍과 소말리인 상인들이 데려온 노예들의 후손이다. 1940년 경에는 이탈리아인들이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하여 대략 5만 명 정도 들어왔으며, 독립된 이후에는 대부분 떠났으나 여전히 소규모의 유럽인들이 남아 국제기구나 정부 조직들에 참여하고 있다.
소말리인들은 주로 미국, 그 중에서도 미네소타 주나 영국의 런던, 스웨덴,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핀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같은 서구 국가들을 포함하여 아랍 국가들, 그 외에도 우간다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아프리카 인접국들로 도피하고 있다. 이 같은 난민 현상은 소말리아의 극히 불안정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으로, 소말리아 대통령인 모하메드 압둘라히 모하메드조차도 이전에 난민으로 미국으로 떠나 시민권을 받은 적이 있으며, 2019년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였다.
소말리아의 인구는 매년 1.7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1,000명 당 40.87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 소말리아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6.08명으로 매우 높으며,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자연사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기에 국민들의 평균 나이도 매우 어려 평균 나이가 17.7세에 불과하다. 인구의 44%가 0세에서 14세 사이이며, 52.4%가 15세에서 64세 사이이다. 오직 2.3%의 사람들만이 겨우 65세를 넘기고 살 수 있었다. 성비는 대략 균형을 맞추고 있으나,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많다.
소말리아의 도시화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집계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대략적인 조사에서는 2005년과 2010년 사이에 도시화율이 매년 4.79%에 달했으며, 여러 마을들이 급격하게 도시들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소수 민족들도 마을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특히 키스마요나 모가디슈와 같은 대도시로 몰리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37.7%에 달하는 인구가 마을과 도시에 모여 살았으며, 이 수치는 현재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4.3. 종교[편집]
임시연방헌장 8조(종교)는 "1. 이슬람은 소말리아 공화국의 종교다. 2. 이슬람의 샤리아는 국가입법의 근본원천이다."고 했다. 이는 이슬람이 국교임을 천명한 것으로, 이는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인 현실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퓨 리서치 센터에 의하면 소말리아 국민들의 99.8%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수니파가 우세를 점하며, 수피교도 지방의 학교와 사원들을 여럿 세우며 상당한 세를 불리고 있다. 소말리아의 헌법에는 이슬람교를 연방 공화국의 국교로 아예 못 박아 놓고 있으며, 이슬람교의 샤리아법이 국가 법령에도 도입될 정도로 종교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또한 샤리아와 어긋나는 그 어떠한 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정부 차원에서 지정해 놓고 있다.
이슬람교는 매우 초기에 소말리아에 진출하였는데, 고대에 아프리카의 뿔 지방에 아랍 난민들이 홍해를 건너 모여들며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이슬람교가 워낙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기에, 심지어 아랍 지방에서 터를 잡기 전부터도 소말리아에서 상당한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의 사회는 주로 이슬람의 셰흐들과 사제들이 지휘하는데, 이들은 주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들과 중동에서 교육 받은 이슬람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여 주로 14세기의 우스만 빈 알리 자일라가 소말리아의 신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권위적인 경전들을 대거 집필하였다.
기독교는 소말리아의 소수 종교며,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0.1% 정도만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전했다. 가톨릭도 워낙 세가 작기에 소말리아에는 가톨릭 교구가 오직 모가디슈 한 곳에만 존재한다. 게다가 2004년에도 모가디슈 교구에 소속된 신자들이 약 100여 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1913년에 식민지 기간 초에는 소말리아에 거의 기독교 신자가 아예 없었으며, 100명에서 200명 정도의 사람들만이 영국령 소말릴란드에 세워진 선교회를 찾아와 개종하곤 하였다.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에는 아예 선교회나 선교사 자체가 거의 없었다. 1970년대에 시아드 바레 장군 주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교회 주도의 학교들이 폐지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추방되었다. 1989년 이래 소말리아에는 주교가 없었으며, 모가디슈에 겨우 세워져 있던 대성당은 내전 기간에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2013년 12월에 사법종교부는 기독교와 관련된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령을 전국에 공포하기도 하였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이 민속 신앙을 믿는다고 한다. 주로 소말리인들이 아닌 소수 민족들이 민속 신앙들을 믿으며, 주로 애니미즘을 기반으로 한 종교들을 믿는다. 최대 소수 민족인 반투족의 경우에는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자신들의 종교들을 여전히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추가적으로 소말리아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이 유대교, 힌두교, 불교 등 타 종교를 믿는다고 한다.
퓨 리서치 센터에 의하면 소말리아 국민들의 99.8%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수니파가 우세를 점하며, 수피교도 지방의 학교와 사원들을 여럿 세우며 상당한 세를 불리고 있다. 소말리아의 헌법에는 이슬람교를 연방 공화국의 국교로 아예 못 박아 놓고 있으며, 이슬람교의 샤리아법이 국가 법령에도 도입될 정도로 종교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또한 샤리아와 어긋나는 그 어떠한 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정부 차원에서 지정해 놓고 있다.
이슬람교는 매우 초기에 소말리아에 진출하였는데, 고대에 아프리카의 뿔 지방에 아랍 난민들이 홍해를 건너 모여들며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이슬람교가 워낙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기에, 심지어 아랍 지방에서 터를 잡기 전부터도 소말리아에서 상당한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의 사회는 주로 이슬람의 셰흐들과 사제들이 지휘하는데, 이들은 주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들과 중동에서 교육 받은 이슬람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여 주로 14세기의 우스만 빈 알리 자일라가 소말리아의 신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권위적인 경전들을 대거 집필하였다.
기독교는 소말리아의 소수 종교며,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0.1% 정도만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전했다. 가톨릭도 워낙 세가 작기에 소말리아에는 가톨릭 교구가 오직 모가디슈 한 곳에만 존재한다. 게다가 2004년에도 모가디슈 교구에 소속된 신자들이 약 100여 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1913년에 식민지 기간 초에는 소말리아에 거의 기독교 신자가 아예 없었으며, 100명에서 200명 정도의 사람들만이 영국령 소말릴란드에 세워진 선교회를 찾아와 개종하곤 하였다.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에는 아예 선교회나 선교사 자체가 거의 없었다. 1970년대에 시아드 바레 장군 주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교회 주도의 학교들이 폐지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추방되었다. 1989년 이래 소말리아에는 주교가 없었으며, 모가디슈에 겨우 세워져 있던 대성당은 내전 기간에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2013년 12월에 사법종교부는 기독교와 관련된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령을 전국에 공포하기도 하였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이 민속 신앙을 믿는다고 한다. 주로 소말리인들이 아닌 소수 민족들이 민속 신앙들을 믿으며, 주로 애니미즘을 기반으로 한 종교들을 믿는다. 최대 소수 민족인 반투족의 경우에는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자신들의 종교들을 여전히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추가적으로 소말리아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이 유대교, 힌두교, 불교 등 타 종교를 믿는다고 한다.
5. 정치[편집]
1960년 6월 26일 영국으로부터 북부 지역이 독립하였고, 1960년 7월 1일 이탈리아로부터 남부 지역이 독립하였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로, 의회 구성은 양원제이다.
대통령은 총리를 지명하며, 이 총리가 정부를 통제한다. 소말리아 의회가 소말리아의 정식 의회이며,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있는 양원제이다. 상원과 하원 모두 임기는 4년인 선출직으로 구성되며, 이 의회가 대통령, 의회 대변인을 선출한다. 의회에게는 법안들을 통과시키거나 거부할 권한도 있다.
2012년 9월 10일에 의회는 하산 셰흐 모하무드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모하무드 대통령은 압디 파라 시르돈을 그해 10월 6일에 새 총리로 지명하였으며, 2013년 12월 21일에는 압디웰리 셰흐 아흐메드가 직을 승계하였다. 2014년 12월 17일에는 전 수상 아마르 압디라쉬드 알리 셰르마르케가 다시 총리로 지명되었다.
소말리아 사법부는 소말리아 연방정부 과도 헌법을 기반으로 한다. 2012년 8월 1일에 모가디슈의 제헌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과도 헌법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연방의회의 대변인이던 모하메드 오스만 자와리의 지휘하에 작성되었다. 주로 연방공화국의 국시에 대하여 명시해놓고 있으며, 공권력의 행사도 모두 이 법전에 기반한다.
국가 재판 기구는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진다. 가장 상위 법원이 헌법재판소이며, 그 다음이 연방 법원이고 그 아래가 주 법원이다. 9인으로 이루어진 사법위원회가 모든 판사들을 임명한다. 사법위원회는 예비 헌법재판소 후보들을 추천하며, 이 후보들은 의회의 재가를 받은 후에 대통령령으로 직위에 임명된다. 5인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관련된 재판들을 진행하며, 여러 국가 존립과 직결된 문제들을 심의한다. 소말리아의 법은 크게 민법, 이슬람법, 관습법, 이 세 가지가 합쳐진 형태를 띠고 있다.
대통령은 총리를 지명하며, 이 총리가 정부를 통제한다. 소말리아 의회가 소말리아의 정식 의회이며,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있는 양원제이다. 상원과 하원 모두 임기는 4년인 선출직으로 구성되며, 이 의회가 대통령, 의회 대변인을 선출한다. 의회에게는 법안들을 통과시키거나 거부할 권한도 있다.
2012년 9월 10일에 의회는 하산 셰흐 모하무드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모하무드 대통령은 압디 파라 시르돈을 그해 10월 6일에 새 총리로 지명하였으며, 2013년 12월 21일에는 압디웰리 셰흐 아흐메드가 직을 승계하였다. 2014년 12월 17일에는 전 수상 아마르 압디라쉬드 알리 셰르마르케가 다시 총리로 지명되었다.
소말리아 사법부는 소말리아 연방정부 과도 헌법을 기반으로 한다. 2012년 8월 1일에 모가디슈의 제헌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과도 헌법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연방의회의 대변인이던 모하메드 오스만 자와리의 지휘하에 작성되었다. 주로 연방공화국의 국시에 대하여 명시해놓고 있으며, 공권력의 행사도 모두 이 법전에 기반한다.
국가 재판 기구는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진다. 가장 상위 법원이 헌법재판소이며, 그 다음이 연방 법원이고 그 아래가 주 법원이다. 9인으로 이루어진 사법위원회가 모든 판사들을 임명한다. 사법위원회는 예비 헌법재판소 후보들을 추천하며, 이 후보들은 의회의 재가를 받은 후에 대통령령으로 직위에 임명된다. 5인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관련된 재판들을 진행하며, 여러 국가 존립과 직결된 문제들을 심의한다. 소말리아의 법은 크게 민법, 이슬람법, 관습법, 이 세 가지가 합쳐진 형태를 띠고 있다.
6. 외교[편집]
소말리아의 외교 관계는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며, 그 옆에서 소말리아 외교부가 보좌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국가 헌법 54조에 의하면 소말리아는 연방 국가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와 주 정부 간에 헌법에 기반한 협의 하에 권력과 의무를 나누어 책임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허나 주 정부는 외교, 국방, 시민권, 이민, 금융 등에 관련한 사무는 처리할 수 없고 오직 중앙 정부만이 통제가 가능하다. 다만 헌법 53조에는 연방 정부가 국제적인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주 정부와의 협의 과정이 필요하며, 국제 무역, 금융 조약 등을 체결할 때에도 주 정부와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 현 소말리아는 여러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데, 주로 지부티,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예멘, 튀르키예, 이탈리아, 영국, 덴마크, 프랑스, 미국,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러시아, 대한민국 등이 주요 수교국이다.
소말리아는 세계 각국에 대사관들을 설치해 놓고 외교 업무를 분담하게 하는데, 모가디슈와 그 외 주요 도시에는 여러 국가들의 대사관과 영사관들이 설치되어 있다. 소말리아는 UN과 같은 국제적 협의체의 공식 일원이며, 그 외에도 아프리카 연합과 아랍 연맹의 회원이기도 하다. 1969년에는 이슬람 협력 기구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소말리아는 세계 각국에 대사관들을 설치해 놓고 외교 업무를 분담하게 하는데, 모가디슈와 그 외 주요 도시에는 여러 국가들의 대사관과 영사관들이 설치되어 있다. 소말리아는 UN과 같은 국제적 협의체의 공식 일원이며, 그 외에도 아프리카 연합과 아랍 연맹의 회원이기도 하다. 1969년에는 이슬람 협력 기구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7. 대북 관계[편집]
1967년 4월 13일 소말리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수교했다. 이는 대한민국보다 20년 앞선 시점이다. 1967년 11월 23일 북한은 소말리아에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김일성은 197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를 ‘아프리카 자력갱생의 본보기’로 만들겠다며 상당한 경제ㆍ군사적 지원을 했다. 북한식 제도를 받아들이게 해 발전을 꾀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북한의 혁명 이론에 의하면 타도 대상인 지주 계층을 도우면서까지 소말리아의 농업 발전을 도왔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빈곤과 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느 날 북한이 소말리아에 지어준 성냥 공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도와주는데 바레 그 놈이 무식하다"며 욕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소말리아와 적대 관계인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북한이 에티오피아와 밀착하면서 소말리아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진 뒤 공산권에서 점점 소외됐고, 서구권으로 눈을 돌리던 중 대한민국과 수교하게 되었다.
1991년 1월 북한은 소말리아 대사관을 폐쇄하였고 주에티오피아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김일성은 197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를 ‘아프리카 자력갱생의 본보기’로 만들겠다며 상당한 경제ㆍ군사적 지원을 했다. 북한식 제도를 받아들이게 해 발전을 꾀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북한의 혁명 이론에 의하면 타도 대상인 지주 계층을 도우면서까지 소말리아의 농업 발전을 도왔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빈곤과 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느 날 북한이 소말리아에 지어준 성냥 공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도와주는데 바레 그 놈이 무식하다"며 욕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소말리아와 적대 관계인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북한이 에티오피아와 밀착하면서 소말리아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진 뒤 공산권에서 점점 소외됐고, 서구권으로 눈을 돌리던 중 대한민국과 수교하게 되었다.
1991년 1월 북한은 소말리아 대사관을 폐쇄하였고 주에티오피아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8. 국방[편집]
소말리아군은 소말리아 연방 공화국의 공식적인 군대이다. 대통령이 최고통수권자이며, 국가의 주권, 독립과 영토의 통합 등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투입될 수 있다. 소말리아 군대는 주로 육군, 공군, 해군, 경찰, 국가보안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립 직후부터 점차 소말리아는 군력을 확장하며 아프리카 내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을 가진 국가로 발돋움하였는데, 1991년에 내전이 터지면서부터 무정부 상태에 돌입하면서 거의 군대가 사라지다시피하며 추락하였다.
2004년에는 과도연방정부가 설립되면서 다시 군대를 재조직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현재 소말리아군은 국방부가 통솔하고 있으며, 국방부는 2012년 중반 즈음에 설립되었다. 2013년 1월에는 모가디슈에 방첩기구를 다시 건립하고 국가정보안전기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독립적으로 자치하고 있는 소말릴란드와 푼틀란드는 자치적인 군대와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4년에는 과도연방정부가 설립되면서 다시 군대를 재조직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현재 소말리아군은 국방부가 통솔하고 있으며, 국방부는 2012년 중반 즈음에 설립되었다. 2013년 1월에는 모가디슈에 방첩기구를 다시 건립하고 국가정보안전기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독립적으로 자치하고 있는 소말릴란드와 푼틀란드는 자치적인 군대와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다.
9. 경제[편집]
CIA와 소말리아 중앙은행에 의하면 소말리아는 내전과 불안정에 불구하고도 환전업, 통신업, 가축업 등에 의존하여 상대적으로 내부 경제를 그럭저럭 잘 지탱해왔다고 전한다. 다만 정부의 통계 능력 부족과 최근의 내전으로 의하여 정부의 경제 파악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소말리아 경제의 규모나 성장률을 제대로 알아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1994년에 CIA에는 소말리아의 GDP를 33억 달러 정도로 추산하였고, 2001년에는 41억 달러 정도로 성장하였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전체 GDP가 57억 3100만 달러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대략 2.6%정도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추정하였다. 2007년 영국 조사에 의하면 소말리아의 민간 분야도 특히 서비스업 분야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한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소말리아에서 정부가 서비스업을 통제하였다면, 내전으로 인하여 정부가 힘을 잃자 민간 투자자들과 사업가들의 경제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말리아에서는 무역, 환전, 통신업, 교육업, 건강업, 건설업과 호텔업 등이 아프리카의 타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 중앙 은행의 집계 조사 결과, 소말리아의 1인 당 GDP는 2012년 기준 226달러였으며, 1990년대와 비교했을 때 약간 낮아진 수치이다. 전체 인구의 43%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며, 도심 지대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24%가, 시골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54%가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소말리아의 경제는 전통적 경제와 현대 경제가 뒤섞여 있는데, 점차 현대식 산업화 기술이 들어오며 현대화되고 있는 중이다. 소말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낙타들을 키우고 있으며, 소말리아 중앙은행 조사 결과 전체 인구의 80% 가량이 유목민이거나 거의 반유목민처럼 염소나 양, 낙타와 소를 키우며 생활한다고 한다. 이들은 수입을 보충하기 위하여 건포도나 껌 종류의 식물들을 키워 내다 팔기도 한다.
소말리아 중앙 은행의 집계 조사 결과, 소말리아의 1인 당 GDP는 2012년 기준 226달러였으며, 1990년대와 비교했을 때 약간 낮아진 수치이다. 전체 인구의 43%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며, 도심 지대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24%가, 시골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54%가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소말리아의 경제는 전통적 경제와 현대 경제가 뒤섞여 있는데, 점차 현대식 산업화 기술이 들어오며 현대화되고 있는 중이다. 소말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낙타들을 키우고 있으며, 소말리아 중앙은행 조사 결과 전체 인구의 80% 가량이 유목민이거나 거의 반유목민처럼 염소나 양, 낙타와 소를 키우며 생활한다고 한다. 이들은 수입을 보충하기 위하여 건포도나 껌 종류의 식물들을 키워 내다 팔기도 한다.
9.1. 통화[편집]
소말리아 중앙은행이 소말리아의 최고 금융, 통화 관리역을 맡으며 통화 정책을 총괄하며 화폐를 발행한다. 그러나 현지 화폐의 신용 부족으로 인하여, 소말리아 전역에서 미국의 달러화가 쓰이고 있다. 소말리아 실링의 최대 문제는 지나친 인플레이션과 저가치이다. 중앙은행에 의하면 이 인플레이션 문제는 중앙은행이 화폐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소말리아 실링이 개인들까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때가 돼서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졌다.
소말리아는 1991년에 내전이 터진 이래 약 15년 동안 중앙 금융기관이 부재 하였고, 2009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중앙은행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였으나, 소말리아의 경제는 개인환전기구(MTO)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이것들이 거의 비공식적인 은행처럼 작동하여 그나마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소말리아에서는 송금 회사가 매우 거대한 산업 분야이며, 매년 국외에 사는 소말리아인들이 보내주는 1억 6천만 달러 정도가 이 송금 회사들을 통해 들어온다. 소말리아 최대 송금 회사는 다합실리라는 이름의 회사인데,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런던과 두바이 등에 지부를 두고 144개가 넘는 국가들에 진출해있다. 소말리아 중앙은행이 최고 재정 기구의 역할을 다시 맡음에 따라, 몇몇 송금 회사들은 이 중앙은행의 허가를 받고 미래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하여 합법적인 은행으로의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적인 사업체로 성장하기를 노리고 있으며, 국책이 주도하는 재정 정책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특권을 얻어 막대한 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 정부가 다시 들어서고 치안이 급격히 향상됨에 따라, 소말리아 난민들이 다시 국내로 돌아와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것이 최근의 해외 투자와 펀드의 유입과 합쳐져 소말리아 실링의 가치가 크게 뛰는 결과를 낳았으며, 2014년 3월에 소말리아 실링은 달러화에 맞서 대략 60%나 그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였다. 소말리아 실링은 블룸버그가 거래하는 175개의 국제 통화들 가운데에서 가장 상승세를 보였다.
소말리아 증권 거래소는 소말리아의 공식 주식 시장이다. 2012년에 소말리아 외교관 이드 모하메드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소말리아 국내 회사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고 소비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1991년에 내전이 터진 이래 약 15년 동안 중앙 금융기관이 부재 하였고, 2009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중앙은행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였으나, 소말리아의 경제는 개인환전기구(MTO)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이것들이 거의 비공식적인 은행처럼 작동하여 그나마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소말리아에서는 송금 회사가 매우 거대한 산업 분야이며, 매년 국외에 사는 소말리아인들이 보내주는 1억 6천만 달러 정도가 이 송금 회사들을 통해 들어온다. 소말리아 최대 송금 회사는 다합실리라는 이름의 회사인데,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런던과 두바이 등에 지부를 두고 144개가 넘는 국가들에 진출해있다. 소말리아 중앙은행이 최고 재정 기구의 역할을 다시 맡음에 따라, 몇몇 송금 회사들은 이 중앙은행의 허가를 받고 미래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하여 합법적인 은행으로의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적인 사업체로 성장하기를 노리고 있으며, 국책이 주도하는 재정 정책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특권을 얻어 막대한 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 정부가 다시 들어서고 치안이 급격히 향상됨에 따라, 소말리아 난민들이 다시 국내로 돌아와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것이 최근의 해외 투자와 펀드의 유입과 합쳐져 소말리아 실링의 가치가 크게 뛰는 결과를 낳았으며, 2014년 3월에 소말리아 실링은 달러화에 맞서 대략 60%나 그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였다. 소말리아 실링은 블룸버그가 거래하는 175개의 국제 통화들 가운데에서 가장 상승세를 보였다.
소말리아 증권 거래소는 소말리아의 공식 주식 시장이다. 2012년에 소말리아 외교관 이드 모하메드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소말리아 국내 회사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고 소비하고 있다.
9.2. 농업[편집]
소말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부문은 바로 농업이다. 농업은 전체 GDP의 65%를 차지하며, 전체 근로자의 6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축업은 GDP의 40%를 차지하며 전체 수출에서 벌어 들이는 수입의 50%가 이 곳에서 들어온다. 또 다른 수출 품목으로는 어업, 석탄업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바나나, 옥수수, 설탕 등을 국내 시장에서 생산하여 팔고 있다. 소말리아 중앙 은행에 의하면 총 수입품은 대략 매년 4억 6천만 달러에 이르며, 1991년 내전 이전부터 수입한 금액을 모두 더한 것보다도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출은 대략 매년 2억 7천만 달러 정도인데, 이 것 또한 내전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다고 전했다. 소말리아는 이러한 수출입 불균형으로 매년 1억 9천만 달러 정도 적자를 보고 있으나, 내전으로 인하여 국외로 떠난 소말리아인들이 국내로 외화를 매년 10억 달러 정도를 보내주며 이를 절충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말리아는 아라비아 반도와 근접하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활발히 아랍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축산업과 육류 시장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경쟁하고 있으며, 매우 낮은 가격에 양질의 육류를 매매하고 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아랍 국가들은 소말리아에 전략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는 축산업 인프라를 깔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는 거대한 규모의 농장을 사들이고 있다. 소말리아는 유향과 몰약 등의 주요 생산국이기도 하다.
소말리아의 산업 분야는 주로 농산품을 가공하는 쪽에 치중하여 있는데, 전체 GDP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소말리아 상업회에 의하면 6개의 사립 항공사들이 국내, 국외로 향하는 화물기들을 제공하여 이 같은 산업을 촉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2008년에 푼트랜드 정부는 두바이의 루타 그룹과 협약을 체결하여 1억 7천만 디르함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 받기로 합의하였고, 자유무역지대와 공항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보사소에 지어지는 신공항은 국제 기준에 적합하게 지어질 것이며, 3,400m에 달하는 활주로와 상당히 큰 크기의 대합실과 건물들, 택시와 버스 정차소, 검색대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소말리아는 아라비아 반도와 근접하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활발히 아랍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축산업과 육류 시장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경쟁하고 있으며, 매우 낮은 가격에 양질의 육류를 매매하고 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아랍 국가들은 소말리아에 전략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는 축산업 인프라를 깔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는 거대한 규모의 농장을 사들이고 있다. 소말리아는 유향과 몰약 등의 주요 생산국이기도 하다.
소말리아의 산업 분야는 주로 농산품을 가공하는 쪽에 치중하여 있는데, 전체 GDP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소말리아 상업회에 의하면 6개의 사립 항공사들이 국내, 국외로 향하는 화물기들을 제공하여 이 같은 산업을 촉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2008년에 푼트랜드 정부는 두바이의 루타 그룹과 협약을 체결하여 1억 7천만 디르함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 받기로 합의하였고, 자유무역지대와 공항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보사소에 지어지는 신공항은 국제 기준에 적합하게 지어질 것이며, 3,400m에 달하는 활주로와 상당히 큰 크기의 대합실과 건물들, 택시와 버스 정차소, 검색대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9.3. 통신업[편집]
내전 이후부터 소말리아에서는 수많은 새 통신업 회사들이 등장하여 분해된 정부를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서비스들을 제공하였다. 소말리아 회사들은 주로 중국, 대한민국, 유럽 등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기술력을 키워나갔으며, 양질의 모바일 폰들과 인터넷 서비스들을 전국에 공급하였다. 이는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 지역에서도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용자들은 이 서비스를 활용하여 돈을 송금할 수 있으며, 모바일 폰을 통하여 은행 서비스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소말리아는 이 같은 특성을 활용하여 무선 인터넷 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소말리아 통신 업계는 스프린트, ITT, 텔레노르 등의 다국적 통신 기업들과 제휴하여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장 저렴하고 깨끗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전국의 마을과 도시들 대부분에 모두 제공되며, 현재 1,000명 당 25개의 통화선이 배치되어 있고 전화선의 밀집도는 이웃 국가들보다도 훨씬 높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에티오피아보다는 3배나 빽빽할 정도이다. 현재 소말리아의 주요 통신 업계는 골리스 텔레콤 그룹, 호르무드 텔레콤, 소마폰, 네이션링크, 네트코, 텔콤, 소말리 텔레콤 그룹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호르무드 텔레콤은 혼자서 매년 4천만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정도로 규모가 있다. 이 수많은 업체들은 서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으나, 2005년에는 서로 모여 회의를 하며 가격 통제, 시장 점유에 관한 기본적인 기준들을 정해 경쟁이 통제 범위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데에 합의하였다.
소말리아의 통신업에 투자가 몰리고 있는 것은 현 소말리아의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신호로, 내전으로 피폐해진 경제에도 드디어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국영 기업인 소말리 국가 텔레비전은 주요 TV 채널로, 26년 간의 공백을 거친 후 2011년 4월 4일에야 재개장하였다. 또한 국영 라디오인 라디오 모가디슈도 수도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에 방송을 송출하며, 북부 지방에서는 소말릴란드 국가 TV와 푼트랜드 TV & Radio가 따로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말리아는 이 외에도 여러 민영 방송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혼 케이블 텔레비전과 유니버셜 TV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도 가로웨 온라인, 워드히어 뉴스, 푼트랜드 포스트 등이 온라인으로 뉴스를 제공한다.
소말리아의 국가 도메인은 .so이다. 2010년 11월 1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하였으며, 우편 통신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2012년 3월 22일에 소말리아 내각은 국가 통신법을 승인하여 구가 주도의 통신 통제 기구를 창설하고 방송, 통신 분야에 정부의 개입을 늘리기로 하였다. 2013년 11월에는 에미리트 포스트와의 협약을 통하여 우편 통신부에서 소말리아 우편부를 재개장하였으며, 2014년 10월부터는 해외의 우편 업무도 다시 시작하였다.
소말리아 통신 업계는 스프린트, ITT, 텔레노르 등의 다국적 통신 기업들과 제휴하여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장 저렴하고 깨끗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전국의 마을과 도시들 대부분에 모두 제공되며, 현재 1,000명 당 25개의 통화선이 배치되어 있고 전화선의 밀집도는 이웃 국가들보다도 훨씬 높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에티오피아보다는 3배나 빽빽할 정도이다. 현재 소말리아의 주요 통신 업계는 골리스 텔레콤 그룹, 호르무드 텔레콤, 소마폰, 네이션링크, 네트코, 텔콤, 소말리 텔레콤 그룹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호르무드 텔레콤은 혼자서 매년 4천만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정도로 규모가 있다. 이 수많은 업체들은 서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으나, 2005년에는 서로 모여 회의를 하며 가격 통제, 시장 점유에 관한 기본적인 기준들을 정해 경쟁이 통제 범위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데에 합의하였다.
소말리아의 통신업에 투자가 몰리고 있는 것은 현 소말리아의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신호로, 내전으로 피폐해진 경제에도 드디어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국영 기업인 소말리 국가 텔레비전은 주요 TV 채널로, 26년 간의 공백을 거친 후 2011년 4월 4일에야 재개장하였다. 또한 국영 라디오인 라디오 모가디슈도 수도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에 방송을 송출하며, 북부 지방에서는 소말릴란드 국가 TV와 푼트랜드 TV & Radio가 따로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말리아는 이 외에도 여러 민영 방송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혼 케이블 텔레비전과 유니버셜 TV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도 가로웨 온라인, 워드히어 뉴스, 푼트랜드 포스트 등이 온라인으로 뉴스를 제공한다.
소말리아의 국가 도메인은 .so이다. 2010년 11월 1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하였으며, 우편 통신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2012년 3월 22일에 소말리아 내각은 국가 통신법을 승인하여 구가 주도의 통신 통제 기구를 창설하고 방송, 통신 분야에 정부의 개입을 늘리기로 하였다. 2013년 11월에는 에미리트 포스트와의 협약을 통하여 우편 통신부에서 소말리아 우편부를 재개장하였으며, 2014년 10월부터는 해외의 우편 업무도 다시 시작하였다.
9.4. 에너지[편집]
세계 은행은 이제 소말리아의 기업들이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업들 가운데에서는 주로 소말리 전기기업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발전, 전송을 담당하여 전기 배분에도 관여하고 있다. 2010년에 소말리아에서는 3억 1천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하였으며, 그 중 2억 8천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소비하였다. CIA에 의하면 이는 세계적으로 발전량은 170위, 소비량은 177위라고 전했다.
소말리아에는 여러 광물질과 자원들이 묻혀있는데, 주로 우라늄, 철광석, 천연가스, 소금, 구리, 석고, 주석 등이 풍부하다. CIA에는 총 소말리아에 5,663억 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하였다. 소말리아의 석유 매장 여부는 불투명하다. 2011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현재 소말리아에는 석유가 없다고 전했으며, UN에서는 현재 소말리아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북부 소말릴란드 지역에 약간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또한 석유 기업들의 조사 결과 북동부의 푼트랜드 지방에는 50억 배럴에서 100억 배럴의 석유를 생산해낼 수 있다고 추정하였는데, 수단의 67억 배럴에 비하여도 상당한 수치이다. 소말리아 연방 정부는 석유 생산을 촉진하기 위하여 소말리아 석유회사를 창립하였다.
1960년대 후반, UN의 지질학자들은 소말리아에서 우라늄과 희귀 광물질 광산들을 찾아냈다. 특히 우라늄이 대량으로 묻혀있는데, 무려 80만 톤에 달하는 우라늄이 묻혀있어 전세계 매장량의 25%에 달하는 우라늄이 소말리아에 묻혀있다는 것이다. 1984년에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소말리아에는 최소한 5천 톤의 우라늄이 묻혀있으며, 추가적으로 11,000톤의 우라늄이 석회층에, 15만 톤의 우라늄이 사암과 석회층에 있다고 하였다. 소말리아는 미국,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브라질 기업들의 투자 하에 우라늄의 주 공급원이 되었으며, 지금도 조사를 통하여 수많은 광산들을 찾아내고 있다.
소말리아에는 여러 광물질과 자원들이 묻혀있는데, 주로 우라늄, 철광석, 천연가스, 소금, 구리, 석고, 주석 등이 풍부하다. CIA에는 총 소말리아에 5,663억 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하였다. 소말리아의 석유 매장 여부는 불투명하다. 2011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현재 소말리아에는 석유가 없다고 전했으며, UN에서는 현재 소말리아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북부 소말릴란드 지역에 약간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또한 석유 기업들의 조사 결과 북동부의 푼트랜드 지방에는 50억 배럴에서 100억 배럴의 석유를 생산해낼 수 있다고 추정하였는데, 수단의 67억 배럴에 비하여도 상당한 수치이다. 소말리아 연방 정부는 석유 생산을 촉진하기 위하여 소말리아 석유회사를 창립하였다.
1960년대 후반, UN의 지질학자들은 소말리아에서 우라늄과 희귀 광물질 광산들을 찾아냈다. 특히 우라늄이 대량으로 묻혀있는데, 무려 80만 톤에 달하는 우라늄이 묻혀있어 전세계 매장량의 25%에 달하는 우라늄이 소말리아에 묻혀있다는 것이다. 1984년에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소말리아에는 최소한 5천 톤의 우라늄이 묻혀있으며, 추가적으로 11,000톤의 우라늄이 석회층에, 15만 톤의 우라늄이 사암과 석회층에 있다고 하였다. 소말리아는 미국,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브라질 기업들의 투자 하에 우라늄의 주 공급원이 되었으며, 지금도 조사를 통하여 수많은 광산들을 찾아내고 있다.
10. 소말리아 해적[편집]
소말리아에는 해적이 많은데, 소말리아 해적은 다른 나라에서 오는 배를 수도 없이 납치를 한 적이 있다.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 인도, 대한민국 등 각국 해군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다른 나라에서 오는 배를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소말리아 해적 문제는 지금도 통제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소말리아에서 오는 해적들은 대부분 지방 출신이다. 소말리아는 경제 상태가 가장 나쁜 최빈국으로 분류되며,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해적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 소말리아 근처 해안에 산업 폐기물을 투기하는 경우가 많고,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소말리아가 정치적 혼란 상태인 것을 이용해 제재 없이 불법 어업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아 해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오는 해적들은 대부분 지방 출신이다. 소말리아는 경제 상태가 가장 나쁜 최빈국으로 분류되며,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해적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 소말리아 근처 해안에 산업 폐기물을 투기하는 경우가 많고,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소말리아가 정치적 혼란 상태인 것을 이용해 제재 없이 불법 어업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아 해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11.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