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공화국
Republik Indonesia
Republic of Indonesia
파일:인도네시아 국기.jpg
파일:인도네시아 국장.png
국장
Bhinneka Tunggal Ika
다양성 속의 통합
국가 정보
국가명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현재] > 누산타라[2]
독립
1945년 8월 17일,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언어
인도네시아
면적
1억 9,169만 677㏊ (14위)
인구
2억 7,753만 4,122명 (4위)
종교
이슬람교 87%
기독교 9%
힌두교 1%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기
국가
위대한 인도네시아
국화
보르네오 재스민, 보르네오 난초, 라플레시아
정치
정치체제
대통령
조코 위도도 (2014년 10월 20일 ~ 현직)
부통령
마루프 아민 (2019년 10월 20일 ~ 현직)
인민대표의회
푸안 마하라니 (2019년 10월 1일 ~ 현직)
대법원장
무함마드 샤리푸딘 (2020년 4월 30일 ~ 현직)
외교
가입 국제기구
주한인도네시아
대사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380
국가 코드
360, ID, IDN
국제 전화 코드
+62
여행 경보
서파루아, 파푸아, 말루쿠, 아체 여행자제
여행자제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여행유의
1. 개요2. 상세3. 국명4. 역사5. 수도 이전6. 행정구역7. 자연환경
7.1. 지리7.2. 기후7.3. 생태계
8. 인문환경
8.1. 민족8.2. 언어8.3. 교통8.4. 종교
9. 경제10. 스포츠11. 군사12. 정치13. 대외 관계14.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인도네시아 공화국, 약칭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오세아니아까지 이어진 섬나라이다. 17,000여개의 섬이 국토로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다. 주요 섬들은 수마트라, 자와(자바), 보르네오, 술라웨시, 뉴기니 등이다.

2. 상세[편집]

인도네시아의 면적은 1,904,569km²로 세계에서 14번째로 넓은 나라이자 세계 최대 섬나라이다. 인구는 약 2억 7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섬인 자와 섬에는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 특히 발리와 수도 자카르타는 여행객이 많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제를 채택했으며, 선거로 선출한 의회가 입법부를 구성하는 입헌 공화국이다. 34개의 지방들 중 5개가 특별 지위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2번째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도심 지역이다. 그 외에도 동티모르, 파푸아 뉴기니와 육상 국경, 싱가포르베트남, 필리핀, 호주말레이시아, 팔라우,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와 해상 국경을 접한다. 인도네시아는 대규모 인구와 높은 인구 밀집도에도 국가의 관심과 환경 보호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였고,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태계 다양성을 지닌다.

인도네시아 군도는 7세기 경 스리위자야 왕국과 마자파힛 왕국이 중국 본토와 인도 아대륙과 교류하면서부터 중요한 교역 중심지였다. 토착 지배자들은 점차 외국 문화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이때 힌두교와 불교를 받알여 국교로도 삼았다. 무슬림 상인들은 이슬람교를 전했고 유럽인들은 식민지화 과정에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이 간섭을 하기도 하였으나, 인도네시아를 지배한 가장 주요한 유럽 열강 세력은 네덜란드인들로이다. 적어도 350년에 걸쳐 인도네시아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인도네시아’라는 통일된 국가 개념은 20세기 초에 처음 등장하였고, 1945년에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허나 당시 인도네시아 지역 지배권을 주장한 네덜란드는 이를 거부하였고, 이 문제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일어났고, 1949년 인도네시아의 영웅인 수카르노가 이끈 군대가 네덜란드를 격파하고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수백 개의 다른 민족들과 언어들이 공존한다. 이들 중 가장 큰 민족은 자와인이다.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섞였기에, 인도네시아 표어는 ‘다양성 속의 통합’이며, 복수의 국어, 민족적 다양성, 종교적 다양성을 관용하는 정책을 펼친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물가에 따른 구매력 평가로 5순위이다. 인도네시아는 국제 연합, 세계무역기구, 국제 통화 기금, G20, 비동맹 운동, 아세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동아시아 정상회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이슬람 협력 기구의 일원이기도 하다.

주요 도시로는 자카르타, 수라바야, 덴파사르, 마카사르, 발릭파판, 아체, 술루 암본 등이 있다.

3. 국명[편집]

정식 국명은 인도네시아 공화국이며 한국한자음으로는 인도니서아(印度尼西亞)의 줄임말인 인니(印尼)로도 불린다. 참고로 인도네시아란 명칭은 19세기 영국 학자가 명명하였고, '인도양의 섬들(네시아)'이라는 뜻이다. 적도의 푸른 보석이란 별칭도 있다.

‘인도네시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인도스(Ἰνδός)’와 ‘네소스(νῆσος)’를 합친 단어이고, ‘인도양의 섬들’이라는 뜻이다. 어원은 18세기, 현대 인도네시아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있었다. 1850년에 영국 민족학자 조지 윈드소르 얼이 처음으로 ‘인두네시아’와 ‘말레이유네시안’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이 단어를 이용하여 말레이 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학생이었던 제임스 리처드슨 로간이 ‘인도네시아’를 ‘인도 군도’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인들은 이 단어 사용을 꺼려했고, 말레이 반도나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명칭을 선호하였다.

190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각국 학계에서 자주 사용하였고,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베를린 대학 교수인 아돌프 바스티안은 자신의 저작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으며, ‘인도네시아’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원주민 학자는 1913년에 '키 하자르 데완타라'로 인도네시아에 신문사를 창립하며 공식화했다.

4. 역사[편집]

수카르노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민주주의에서 점차 멀어지는 행보를 보이더니, 결국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군대, 이슬람 종교세력, 인도네시아 공산당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권력을 유지하였다. 군대와 공산당 사이의 갈등은 점차 극에 달했고, 결국 1965년에는 쿠데타가 터졌다. 이때 군대를 이끌던 수하르토 장군은 대대적인 공산당 탄압 작전을 펼쳤고, 50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의 사람들을 학살하며 대참극을 벌였다. 공산당은 쿠데타 모의죄로 몰렸고, 결국 강제해산당했다. 수하르토는 점차 수카르토 대통령의 권력을 넘보았으며, 점차 그의 세력을 키우다가 1968년 3월에는 마침내 수카르토 대통령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아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해외직접투자를 장려하였으며, 이후의 급격한 경제 성장의 기초를 놓았다. 수하르토는 재직 중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원주민에 동화시킨다는 정책을 펼쳐, 중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는 등 중국인들에 대한 탄압이 잇따랐다.

인도네시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국가였다. 이로 인하여 대중들은 수하르토 정부를 불신하기 시작하였고, 수하르토가 그때까지 펼쳐오던 정치적 야당의 탄압과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인식을 본격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1999년에는 동티모르가 1975년에 인도네시아에 침략받은 이래 드디어 독립을 되찾았고, 그간 25년 동안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지역에서 저지른 참살은 국제적인 지탄을 받았다.

1998년에 수하르토 대통령이 마침내 하야하였으며, 이어 부통령이었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 압두라만 와힛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해 사실상 민주적인 성격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2003년까지는 간접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첫 대통령 직접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대결하여 유도요노의 승리로 끝났다. 2000년대에도 다만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부정부패, 테러리즘은 여전히 국가적인 난제로 남아있다. 허나 최근들어서는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라는 한계에서 오는 불협화음, 군대와 정부의 부정부패도 문제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군, 정부 엘리트층 출신이 아닌 인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7년에는 자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 2007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제작된 반이슬람영화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반이슬람영화로 촉발된 시위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하였다.

5. 수도 이전[편집]

2022년에는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이전하는 법안이 통과하여 수도가 2045년까지 누산타라로 이전을 완료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자카르타는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혼잡과 공해가 매우 심하다. 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수하루소 모노아르파 도시계획장관은 법안이 통과된 직후 의회에서 "새 수도가 경제적 중심지인 것은 물론 국가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며 국가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 이전 비용은 320억달러(약 38조1760억원)으로 추산된다.

6. 행정구역[편집]

인도네시아의 행정구역은 34개 주(provinsi), 3개 특별주(영어:daerah istimewa)(파푸아,욕이카르타,서파푸아), 1개 수도권(daerah khusus ibu kota)의 34개로 나뉜다. 수도는 자카르타이다. 최근 보르네오의 동 칼리만탄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제2의 도시는 수라바야이다. 인도네시아의 총 면적은 1,904,569㎢으로 세계에서 15번째로 크다.자와섬과 수마트라섬에 인구가 몰려있어서 서쪽 수마트라섬에서 동쪽 서뉴기니까지 영역이 매우 길게 뻗어있다. 티모르섬에는 인도네시아령인 서티모르와 독립국인 동티모르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가장 상위 지방단체는 주이다. 총 34개의 주가 있으며, 5개가 특별 자치단체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주들은 모두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으며, 주지사는 선거로 선출된다. 주 다음 단계는 군에 해당하는 ‘카부파텐’과 시에 해당하는 ‘코타’로, 각각 군수와 시장들이 맡아 운영한다. 이들도 모두 각자 의회가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지역구이며, 마지막 단계는 마을이다. 마을은 지방자체단체의 최하위 단계로, 여러 사회 그룹(루쿤 와르가)로 구성된다. 사회 그룹들은 또 이웃 그룹(루쿤 테탕가)로 나뉜다. 자와섬에서 마을들은 두순, 혹은 두쿠라고 하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며, 이들은 다른 섬들의 사회 그룹과 지위가 비슷하다. 2001에 실시된 지방자치조사에 의하면, 군과 시들이 대부분의 공무를 맡아 처리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마을이라고 하였다. 마을은 주민들에 의하여 선출된 ‘루라’, 혹은 ‘케팔라’라고 불리는 이장들이 관할한다.

아체, 자카르타, 욕야카르타, 파푸아, 서파푸아는 다른 지역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반다 아체의 경우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로, 샤리아 법과 관련되어 중앙정부의 법보다 훨씬 더 엄격한 법을 자율적으로 만들어 적용한다. 욕야카르타는 유일한 인도네시아의 식민시대 이전의 왕실이 아직까지 존속해내려오고 있는 곳으로, 욕야카르타의 술탄 후계자들이 주지사의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파푸아와 서파푸아는 지방 정부가 따로 세워져 있어 토착 거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정부를 운영한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권)이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7. 자연환경[편집]

7.1. 지리[편집]

인도네시아는 북위 6도와 남위 11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경 95도와 141도 사이에 위치한다. 섬으로 구성된 국가들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동서로 5,120킬로미터, 남북으로는 1,760킬로미터라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해양투자부에 의하면 인도네시아는 17,504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UN에 등록되어 있는 섬들은 총 16,056개이다. 이들 중 6,000여 개의 섬들에 사람들이 거주한다. 가장 거대한 섬들에는 자와섬, 수마트라섬, 깔리만딴섬, 슐라웨시섬, 뉴기니섬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와 세바틱섬에서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며, 뉴기니섬에서 파푸아뉴기니와, 티모르섬에서 동티모르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해상 국경으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팔라우, 오스트레일리아와 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최고봉은 해발 4,884미터의 푼착 자야산이다. 가장 거대한 호수는 수마트라에 위치한 토바 호이며, 총 1,145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한다. 가장 긴 강들은 칼리만탄과 뉴기니에 대부분 몰려 있으며, 주요 강들은 카푸아스 강, 바리토 강, 맘베라모 강, 세픽 강, 마하캄 강 등이 있다. 이들은 보트를 이용하여 교류하거나 물건을 사고팔고는 한다.

7.2. 기후[편집]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에서 남위 10° 사이에 위치하므로, 완전한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중 높은 기온을 나타내 거의 전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하며 적도변의 중앙지대에서는 월별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되는 적도 부근의 연중 강우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와 우기의 구별이 뚜렷하다. 주요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폰티아나크(보르네오섬) 3,175mm, 파당(수마트라섬) 4,172mm, 자카르타(자와섬) 1,755mm이며, 소순다열도의 동쪽은 훨씬 더 건조하다. 더운 날씨 때문에 12월, 1월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자카르타 (남위 6도)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로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우량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습도도 연평균 75∼85%로 상당히 높다. 연평균 기온은 26.8℃로 연교차가 1℃에 불과하지만 1월과 2월에는 20℃ 이하가 되는 날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적도 부근에 자리하고 있기에, 기후가 일년 내내 거의 비슷하다. 인도네시아에는 오직 2개의 계절만이 있는데, 크게 비가 내리는 우기와 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내리는 건기가 있다. 한국과 같이 여름과 겨울 등 극단적으로 온도가 상이한 계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지역 대부분에서 건기는 5월에서 10월까지이며, 우기는 11월에서 4월까지이다. 모든 지역들이 열대 기후를 보이고 있으며, 대부분의 섬들에서는 거대한 열대우림이 자생하고 있다. 그나마 시원한 기후대는 산악 지역으로, 높이가 해발 1,300m에서 1,500m 정도는 되어야 열대 기후가 어느 정도 시원한 기후대로 바뀐다. 고산 지대 일부에서는 서안 해양성 기후가 드물게 나타나며, 이 지역들에서는 열대 사바나 기후나 열대 기후가 번갈아 나타난다.

칼리만탄이나 수마트라 같은 지역들은 일 년 동안 강우량과 온도의 차이가 거의 없어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다만 누사 텡가라 같은 지역들에서는 차이가 어느 정도 발생하여 건기에는 가뭄이, 우기에는 홍수가 나기도 한다. 강우량은 지역마다 다양한데, 수마트라 서부, 자바, 칼리만탄 내부와 파푸아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고 오스트레일리아와 가까운 지역들에서는 상대적으로 강우량이 적다. 인도네시아 육지를 둘러싸고 있는 열대 바다가 거의 일정한 수온을 항상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육지의 기온도 어느 정도 일정한 수준을 늘 유지하곤 한다. 습도도 상당히 높아서, 70%에서 90% 사이를 오간다. 몬순 때에는 남동풍이 불어오며, 6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된다. 또한 11월에서 3월까지는 북서풍이 분다. 태풍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으나, 오히려 롬복 등의 해협에서 발생하는 조류의 변화가 더 큰 재산상의 피해를 초래한다.

7.3. 생태계[편집]

인도네시아는 그 특유의 열대 기후, 다양한 섬들, 그리고 광대한 크기로 인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생태계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동물군과 식물군은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가 섞여 있으며,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발리 등의 섬들은 한때 아시아 대륙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했었던 만큼 당시 아시아에서 번성했던 식물과 동물들 상당수가 이 섬들에서 서식하고 있다. 대형 동물들에는 주로 수마트라 호랑이, 코뿔소, 오랑우탄, 악어, 아시아 코끼리, 표범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를대표하는 코모도왕도마뱀도 있다.이들은 한때 발리 섬까지 뻗어있을 정도로 수가 융성했으나, 점차 인간들이 거주하며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편 대륙과 분리된 지 오래인 술라웨시, 누사 텡가라, 말루쿠 등의 섬들은 그들만의 생태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하였으며, 고유종들도 매우 많다. 파푸아섬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직접 닿아있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600여 종에 달하는 새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부터 전파되었을 정도이다. 숲이 인도네시아 전체 영토의 70%에 달하는 면적을 덮는다. 허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자와섬의 경우에는 특히 상당수의 숲들이 벌채되거나 사라진 상태이다.

인도네시아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수의 고유종들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1,531종의 새들 가운데에 36%가 오직 인도네시아에서만 서석하며, 515종에 달하는 포유류들 중에서는 39%가 이에 해당한다. 열대 바다가 인도네시아의 80,0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을 감싸고 있으며, 이덕분에 인도네시아는 산호초, 맹그로브 숲, 모래 해안, 대륙붕 등 다양한 해안 생태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산호초는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1,650여 종에 달하는 산호초 어종들이 오직 인도네시아의 동부 산호초 해안에서만 발견될 정도이다.

영국의 자연학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월리스 선’을 그어 인도네시아의 아시아 유래종들의 서식지와 오스트레일리아 유래종 서식지를 구분하였다. 이 선은 칼리만탄과 술라웨시 사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롬복 해협을 지나 롬복과 발리섬을 구분짓는다. 이 선 서쪽에 있는 섬들에는 대체적으로 아시아에서 건너온 동식물들이 서식하며, 동쪽에 있는 섬들에는 보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건너온 동식물들이 산다. 그가 1869년에 집필한 ‘말레이 군도’에서 그는 이 지방에만 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동식물들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공적을 기려 현재 월리스 라인과 뉴기니 사이에 있는 섬들의 명칭을 ‘월라세아’라고 정하기도 하였다.

8. 인문환경[편집]

8.1. 민족[편집]

인도네시아인은 85% 정도이고 그 외 민족이 15%를 차지한다. 중국계는 약 3%이다. 한국인은 35,000여명가량 거주하며, 자카르타 및 인근지역 28,000명, 수라바야 1,800명, 반둥 900명, 발리 600명 등으로 분포한다.인도네시아는 최소 300여 개가 넘는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은 오스트로네시아족의 후손들이며, 그들이 쓰는 언어들은 오스트로네시아조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의 타이완섬 지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민족들 중에서는 주로 뉴기니섬 서부와 말루쿠 제도 등 동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멜라네시아인들이 있다. 자바인들은 전체 인구의 40.2%에 달하며 가장 많은 민족이며, 정치적으로도 가장 거대한 세력이다. 자와섬의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으며, 서부에서도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순다족, 말레이인, 바탁인, 부기니즈인 등이 존재한다. 인도네시아는 아직까지도 국민통합이 완벽하게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국민들이 자신들을 민족적 정체성으로 구분짓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공식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로, 말레이어 방언에 기초한 언어이다. 1920년대에 민족주의자들이 발전시켰으며 1945년에 드디어 ‘바하사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으로 공식 언어로 지정되었다. 워낙 다양한 문화들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어에도 여러 언어들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는데, 자바어, 순다어, 힌두어, 산스크리트, 중국어, 아랍어, 네덜란드어, 포르투갈어, 영어 등 여러 언어들의 요소들이 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어는 교육, 학교, 통신, 사업, 정치, 대중매체 등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사할 줄 안다. 또한 그 외에도 자신의 민족들이 쓰는, 700여개에 달하는 언어들 중 몇 개를 추가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포함되며, 동부 지역에는 270여 개에 달하는 파푸아어족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자바어가 있다.

1930년대에 네덜란드인들과 여러 외국인들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수는 극히 미미하여 전체 2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4% 밖에 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이들이 쓰는 외국어는 한번도 대중적으로 통용된 적이 없으며, 공식 언어도 된 적이 없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네덜란드어에 기반한 크레올어를 쓰지만, 이마저도 거의 매우 오래된 세대의 노인들이나 전문적인 교수들만 쓴다.

8.2. 언어[편집]

공용어는 말레이어의 방언인 인도네시아어로 인도네시아의 국어이다.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어가 달리 표준화된 형태로서 1928년 청년단체가 말레이어를 약간 개정하여 인도네시아어로 제정한 것이다. 말레이반도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시아어와는 거의 흡사하나 발음, 철자, 단어의 의미, 문법 규칙 등이 약간씩 다르다. 어족으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중 서부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말레이어군에 속하며, 유형학적으로는 교착어에 속한다.[28] 말레이어가 국어이기는 하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약 3,000만 명 정도로 전국의 인구에 비해 의외로 적다. 이유는 말레이어는 과거 말라카와 말루쿠를 잇는 해상무역의 과정에서 골고루 사용된 것을 바탕으로 전 국민이 제2언어로서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 인구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인의 제1언어는 실질적으로 자와어이다. 회화체 언어로는 어휘, 문법 규칙 등이 서로 다른 583개 이상의 방언이 인도네시아어와 함께 병존하며 각 지역의 일상 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에 돈벌이하러 나오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에 지방 사람이라도 말레이어는 필수이며, 사용할 수 없으면 돈벌이에도 영향이 미친다. 인도네시아어 외에 인도네시아의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방어는 현재 742개로 추산되며, 자와어, 순다어, 발리어, 마두라어, 람풍어, 바탁어, 아체어, 이반어, 다약어, 마카사르어, 부기스어, 마나도어, 말루쿠어 등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많은 지방어가 관리되지 않아 특색있는 지방어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의 문자해득률은 2015년 기준 93.9%이다. 식민지 시절에는 네덜란드어가 공용어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의해 네덜란드어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와 말레이어가 공용어 기능을 하였다. 오늘날은 네덜란드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70세 이상의 노령 인구는 네덜란드어를 구사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화교는 일상적으로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지만 화교끼리는 대부분 중국어를 사용한다. 본래 대다수 화교가 중국어를 사용하였으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이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수하르토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각 민족의 문화를 이해하고 허용하는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국민을 "똑같은 인도네시아인"으로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였고(예: Kang → Kangean, Pang → Pangestu), 학교 또는 일상생활에서 중국어의 사용을 엄금했다. 수하르토 집권기 31년간 행해진 결과,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하르토의 하야 이후 하비비/와히드 정권을 거치면서 중국인 탄압정책이 폐지되었으나, 중국인들은 여전히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며, 인도네시아어만을 구사한다. 최근들어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으로 유학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중국어 구사율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말레이어 사용은 말레이어의 사용을 꺼려하고 말레이 문화를 거부하는 말레이시아 중국인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나오고 있다.

8.3. 교통[편집]

많은 섬으로 된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해운(海運)이 극히 중요하다. 전전(戰前)에는 네덜란드의 업체가 연안항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으나, 1957년에 이러한 권익은 모두 인도네시아에 의해 국유화되었다. 육상교통을 보면 자바에는 포장도로망이 발달해 있으나 그 밖의 섬에서는 도로가 미개발상태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육로교통수단은 크게 버스(bis), 앙꽅(Angkot: Angkutan Kota의 준말), 오젝(Ojek:오토바이), 택시(taksi) 이렇게 4개로 구분된다. 버스는 탑승객이 현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행되고 있고,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대중교통수단은 앙꽅이라고 불리는 소형버스이다. 이 소형버스는 구간에 관계없이 요금이 동일하며, 따로 정류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노선 중간 어디에서든지 탑승자가 원하는 지점에서 승·하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앙꽅에서는 조수(남자)가 동승하며 요금은 조수에게 지불한다.[25] 또한 인도네시아에는 한국의 <내집마련>과 동일하게 <내 오토바이 마련>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토바이들의 수가 정말 많다. 그리하여 오토바이로 승객을 원하는 지점에 데려다주고 거리에 따라서 요금을 받는 오젝이라는 교통수단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택시는 흰색, 주황색, 검은색, 파란색 등 많은 색깔들이 있는데 가장 대중적이고 안전한 택시는 Bluebird(일반승용차)이고, 같은 계열사로 모범택시격인 SilverBird(고급승용차)나 GoldBird(리무진)가 있다. 현재는 스마트폰의 활성화로 오젝과 개인승용차를 호출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앱으로는 고젝과 그랩이 있다.

철도는 자바와 수마트라의 일부 지방에 부설되어 있다. (인도네시아는 고속철도 계획을 세웠다.) 여러 가지 궤간(軌間)의 철도가 있는데, 3/4은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와섬에 부설되어 있다.[26] 항공은 국영기업인 가루다 인도네시아가 주요 국내선과 국제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만다린, 라이온, 스리위자야 등 주요 항공사가 있으며 소규모의 항공사들이 다소 난립된 국내선 운영을 하고 있다. 2019년 3월 25일 자카르타 지하철 제 1구간이 개통되었다.

차량 통행방향은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좌측 통행으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알고보면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기사(인도네시아어:Sopir, 소삐르)를 1~2명씩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인 경우가 제법 많다.

8.4. 종교[편집]

인도네시아는 국교가 따로 없고, 헌법 29조에 의해 6개 종교(이슬람, 개신교, 로마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만 주의할 점은 무신론자는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기 때문에[34] (혹은 반대로 공산주의자는 무신론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신분증에 반드시 신앙이 명시되어야 한다. 물론 21세기 들어 이것이 전근대적인 발상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인도네시아에는 종교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종교 유무의 자유는 없는 셈이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지만(인도네시아 대통령은 7대까지 다 무슬림이었다) 일부 지역에선 다른 종교가 강세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발리섬에서는 힌두교가, 술라웨시섬 북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서티모르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등이 강세를 보인다. 인도네시아 기독교는 1960년대에 크게 성장하는데, 이유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당원들을 교우로 받아들여서 정부와 극우파들의 박해와 학살로부터 보호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크리스마스, 부처님 오신 날, 힌두교 신년 등 타 종교의 기념일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사실상 사회 분위기를 많이 좌지우지하지만, 보통의 아랍국가들처럼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는 아니고, 식민지 시대 등을 거치며 세속 국가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탐탁치 않아하는 이슬람 강경파들도 존재하지만, 사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주류가 된 것도 중세 이후부터로 이전엔 오히려 불교나 힌두교가 강세였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강요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타 이슬람 국가들처럼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법이 적용된다. 이슬람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교칙에 따라 다리를 드러내지 않는 긴 치마를 교복으로 입고 머리에 히잡을 두른다. 특히 아체 주처럼 샤리아 율법을 강하게 적용하는 지역은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법을 적용하여 술 팔다 적발된 기독교인이 태형을 맞은 사례도 실제로 있다. 도박, 음주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게다가 무슬림들이 하람(금기) 행위를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9. 경제[편집]

인도네시아는 혼합 경제 체제로, 민간 부문과 정부가 동시에 경제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한 G20 회원국으로서,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2019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명목 GDP로는 세계 16위, PPP로는 세계 7위의 순위를 차지하며 각각 1조 1천만 달러, 3조 7,400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였다. 1인당 GDP에서는 PPP로 환산할 시 14,020달러이나, 명목 GDP로 계산하면 4,120달러로 줄어든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29.2%이다. 서비스업이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GDP의 43.4%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산업이 39.7%, 농업이 12.8%로 뒤를 잇는다. 2009년 이래 서비스업은 그 어떠한 부문들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력의 47.7%가 서비스업에 종사하였다. 그 뒤를 농업이 30.2%, 산업이 21.9%로 뒤따랐다.

인도네시아의 경제구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변화를 거쳐왔는데, 역사적으로는 농업에 크게 치중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정부가 곡물 자족을 위하여 농업 진흥정책을 펼쳤고, 이에 농업이 급격히 발전한 것이다. 1960년대에 점진적인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유가가 하락함에 따라 정부가 석유 수출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여 제조업 중심 정책을 피며 더욱 산업화와 도시화의 속도가 가팔라졌다. 이 과정은 1980년대 내내 지속되었고, 1990년대의 유가 충격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이 때 인도네시아의 GDP는 매년 7.1%에 달하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공식적인 빈곤율은 60%에서 15%로 떨어졌다. 1980년대에는 정부가 무역 장벽을 걷어냈고,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세계에 통합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가파른 성장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끝을 찍었는데, 이때 인도네시아는 경제에 엄청나게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실질 GDP가 1998년에 13.1%나 감소하였으며, 인플레이션이 무려 78%에 달했다. 경제는 1999년 중반에 최저점을 찍었으며 이때 인도네시아는 0.8%라는 최저의 성장률을 보였다.

최근에는 점차 이 타격에서 회복하여 급격하게 다시 성장하고 있다. 점진적인 인플레이션 속도와 실질 GDP의 증가로 인하여 소비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2007년 이래 연간 성장률이 은행업과 국내 소비의 활성화로 인하여 4%에서 6% 사이를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08년의 금융위기도 무사히 버텨냈다. 2011년에 인도네시아는 1997년에 잃었던 투자 등급을 다시 회복하였다. 2019년에는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9.41%만이 빈곤하게 살았으며, 공식적인 실업율은 5,28%였다. 인도네시아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주석, 구리, 금, 니켈과 같은 천연광물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또한 농업의 경우에는 쌀, 팜오일, 차, 커피, 카카오, 의료용 식물, 향신료, 고무 등을 생산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출품이며, 팜오일과 석탄, 정제유와 원유들은 특히 인도네시아의 수출의 기둥들 중 하나이다. 또한 전화기와 전자 장비들도 주요 수출품이며, 중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대한민국과 태국 등이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출국들이다.

10. 스포츠[편집]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배드민턴과 축구이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딴 6개의 올림픽 금메달은 모두 배드민턴에서 획득한 것으로써, 인도네시아의 국기(國技)로 지정되어 있다. 프로 스포츠로는 축구와 농구 리그가 있으며, 리가 슈퍼 인도네시아라고 불리는 축구리그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밖에 수마트라 지방에서 예로부터 널리 행해진 전통종목 세팍타크로도 저변이 넓으며, 아시안 게임과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소프트볼이나 야구도 도입되는 추세이다.

11. 군사[편집]

인도네시아의 군대(TNI)는 육군(TNI-AD), 해군(TNI-AL), 공군(TNI-AU)로 이루어져 있다. 대략 40만 명이 군대에 소속되어 있으며, 2018년 기준으로 전체 GDP의 0.7%를 국방비에 투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독립 전쟁 기간 동안 처음으로 결성되었으며, 이때는 비정규군의 형태로 네덜란드 군대에 맞선 게릴라전을 주로 펼쳤다. 이때 군대의 기본적인 골격이 완성되었으며, 국내의 안정과 외국의 침략에서부터 조국을 수호한다는 현재의 목표가 형성되었다. 군대는 창건 이래 국내적으로 강한 힘을 유지하였으며, 군부 출신의 수하르토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며 군대의 영향력이 최고조를 찍었다. 허나 1998년에 독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군부와 수하르토를 쫓아내자 군대의 영향력도 점차 약해졌다. 다만 여전히 군대는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독립 이래 인도네시아는 분리주의 운동과 지역 분란들에 맞서 강한 군대를 키우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특히 아체 주와 파푸아의 경우, 독립 운동이 워낙 극심하여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이때 인도네시아 군대는 수많은 인권 범죄와 살상을 일으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아체 주의 경우에는 2005년에 평화적으로 종식되었으나, 파푸아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2004년 이래 지역적인 자치법이 시행되며 폭력과 인권 탄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는 하였다. 군대가 동원된 또다른 사례로는 네덜란드령 뉴기니를 인도네시아에 편입하기 위하여 동원된 적이 있으며, 말레이시아 건국을 막기 위하여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가 일어난 적이 있고, 동티모르를 침공하기 위하여 군대가 파견된 적이 있다. 동티모르 침공은 아직까지도 인도네시아 군이 실시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군사 작전이다.

12. 정치[편집]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1998년에 수하르토가 퇴진한 이후, 인도네시아의 정치 체제는 급격한 개혁을 거쳤고,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통째로 갈아엎어졌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은 곧 국가수반이자 행정부 최고 지도자이며, 인도네시아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이다. 또한 국내의 행정을 모두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이며, 정책을 만들고 외교 정책들을 다루기도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입법부는 국민협의회라고 불린다. 주로 헌법을 수호하고 그에 맞게 법을 제정하는 역할을 하며,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국민협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상원격에 해당하는 지역대표의회는 총 136명의 상원의원들로, 하원격에 해당하는 인민대표의회는 575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8년의 개혁 이후, 입법부의 역할이 상당히 커졌으며 특히 상원인 지역대표의회에서 대부분의 역할과 권위, 권력을 맡는다. 사법부의 경우에는 가장 하급 법원으로 주 법원, 그 다음으로 고등 법원, 최고 법원으로는 대법원이 있다. 대법원에서는 최종 판결을 내리며, 하급 법원들에게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헌법 재판소도 따로 있는데, 주로 헌법적, 정치적인 사안들을 다룬다. 그 외에도 종교법원도 따로 구성되어 있어 샤리아와 관련된 재판들을 맡아 처리한다. 또한 사법 위원회가 사법부 내에 존재하며, 이들이 판사들의 행실을 면밀히 감시한다. 1999년까지는 대통령을 국민협의회(MPR)에서 간선제로 선출했으나, 2004년 이후부턴 직선으로 선출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차례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2014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취임하며 최초의 직선제 문민 정부가 수립되었다. 다당제로 여러 정당들이 난립하고 있어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힘든 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 후보는 총선 득표율 25% 이상 또는 의석점유율 20% 이상인 정당 또는 연합만 선출 가능하다.

13. 대외 관계[편집]

인도네시아는 132개의 국가들과 수교하고 있으며, 95개국에 대 설치되어 있다. 주 외교 기조는 ‘자유롭고 활동적인’ 정책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영토에 걸맞도록 지역 내에서 자유로운 역할을 맡으며 타국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냉전 기간 동안 세계적인 각축장이었다. 미국, 소련, 중국 등의 강대국들이 개입하여 인도네시아의 내정을 간섭하였던 것이다. 1965년의 쿠데타로 인하여 인도네시아의 외교 정책은 큰 전환기를 맞았는데, 서방 세계와는 조용한 관계를 유지하며 제3세계를 표방하며 비동맹 정책을 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ASEAN의 창립 회원국으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아시아정상회의에도 참가하고 있다. 여러 무슬림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며, 팔레스타인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다만 외국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가 이스라엘과 경제적, 군사적으로 상당한 협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1950년 이래 UN의 회원국이었으며, 비동맹 운동과 이슬람 협력기구의 주창국이었다. 인도네시아는 ASEAN 자유무역지대를 이끌어낸 주요 국가이며, OPEC, 세계무역기구 등에도 가입하며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 도중,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가 비상임 이사국으로 선출되자 일시적으로 UN에서 탈퇴한 적도 있다. 다만 18개월 후에 다시 재가입하였다. 이는 UN 역사상 처음으로 회원국이 탈퇴를 시도한 사례였다. 인도네시아는 1966년 이래 인도주의적 구호 물품을 받아오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이제는 해외에 구호를 도와주는 역할 쪽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1973년 협정을 기본으로 2005년까지 바탐섬 북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완결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9] 1950년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와 인도 양국 국민들에게, 식민지배 세력에 의하여 붕괴된 양국간의 1천년이 넘게 존재해온 우호 협력을 강화하자고 촉구하였다. 그로부터 15년 후, 자카르타에서는 정부가 선동한 구호가 들렸다. "제국주의의 종, 인도를 타도하자. 처부수자, 우리의 적". 그러나 1966년 봄, 양국의 외무장관은 우호관계의 시대에 대하여 다시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양국은 각각의 수도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터키와의 관계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와섬에 포르투갈이 식민지화를 시도하자 자와의 이슬람교 술탄은 이에 저항하며,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청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이에 대해 거대한 배와 병력을 파견하였고 이들은 이슬람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양국은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수도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나라와 모두 수교했다. 인도네시아와 대한민국은 경제, 군사적 협력에서 다방면으로 폭넓은 교류중에 있다. 한국 국적자로써는 권준, 유재훈 등의 많은 한국선수들이 인도네시아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으나, 인도네시아 현지인 (現地人)들 중에는 아직 K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 한국으로의 직항편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그리고 가루다 인도네시아 세 개 항공사가 자카르타와 발리에만 취항하나, 대한항공은 현지의 다른 도시에도 취항할 예정이다.

1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현재] [2] 현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빠른 산업화로 인해 혼잡하고 공해가 심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라 앉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가 수도를 누산타라로 2045년까지 새 수도 건설이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수도 이전 비용은 320억달러(약 38조1760억원)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