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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李範奭 | Lee Beom-seok
파일:이범석 사진.jpg
출생
1900년 10월 20일
대한제국 한성부 용동
사망
1972년 5월 11일 (향년 71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2묘역
본관
전주 이씨
국적
학력
경성 장훈보통학교 (졸업)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
중화민국 저장 성 항저우 체육학교 (졸업)
중화민국 윈난 육군강무학교 (졸업)
국방대학교 (행정학 / 학사)
중화민국 타이완 중화학술원 (철학박사)
가족
아버지 이문하
어머니 연안 이씨[생모], 김해 김씨[계모]
배우자 경주 김씨 마리야 김수란[재혼]
장남 이부흥
차남 이인종
병역
한국광복군 중장
(1919년 1월 ~ 1946년 12월)
종교
유교(성리학) → 대종교
소속 정당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재임기간
초대 국무총리
1948년 7월 31일 ~ 1950년 4월 20일
후임
장면 / 제2대
대통령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이범석은 대한민국의 초대 국무총리이다.

2. 상세[편집]

이범석은 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중화민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와 북로군정서 등지에서 항일독립활동을 하였으며,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 뒤 소련과 만주에서 활동하던 중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중장으로 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1945년 조선 광복 직후 귀국을 시도했지만 강제로 상하이에 억류 조치 처분되었다가 이듬해 1946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안호상과 함께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민족주의 정치 활동을 하였다.

김구의 남북협상에 반대하여 이승만에 협력, 단독 정부 수립에 동참하여 1948년 7월 31일에서 1950년 4월 20일까지 제1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였고 8월 15일부터는 국방부장관도 겸임하였다. 이후 중화민국 주재 대사와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52년 제2대 부통령 후보에 출마했고, 1956년 제3대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0년 이후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탈당,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초기 시대 나치 연구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조선 세종대왕의 5남이었던 광평대군의 17대손이며 이문하의 아들이다. 호는 철기, 자는 인남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왕운산, 인남, 철기, 이국근, 이국진 등이 있다. 본관은 전주이며 한성부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