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왕국 ព្រះរាជាណាចក្រកម្ពុជា | Kingdom of Cambodia | ||
국기 | 국장 | |
ជាតិ សាសនា ព្រះមហាក្សត្ 국가, 종교, 국왕 | ||
국가 정보 | ||
국가명 | 캄보디아 | |
수도 | 프놈펜 | |
독립 |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부터 독립 | |
언어 | 크메르어 | |
면적 | 1,810만 4천㏊ (89위) | |
인구 | 1,694만 4,826명 (73위) | |
국교 | 상좌부 불교 | |
종교 | 불교 97% 이슬람교 2% 기독교 0.3% 기타 0.5% | |
경제개발 수준 | ||
상징 | ||
국기 | ||
국가 | 장엄한 왕국 (នគររាជ, Nôkôr Réach) | |
국화 | 수련 | |
정치 | ||
정치체제 | ||
총리 | 훈 센 (1998년 11월 30일 ~ 현직) | |
왕실 | 노로돔 왕조 | |
외교 | ||
가입 국제기구 | ||
주한대사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20길 12 | |
국가 코드 | ||
855, KH | ||
국제전화 코드 | ||
+855 | ||
여행경보 | ||
여행유의 | 여행자제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 |
여행자제 | 욷더민체이, 프레아비히어 |
1. 개요[편집]
캄보디아 왕국 또는 약칭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다.
2. 상세[편집]
3. 국명[편집]
나라 이름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캄부자'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캉보주'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원래는 구한말에 이 나라의 국호를 '금변국'으로 불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식 발음인 '캄보자'로 대체되어 들어왔었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주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이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4. 역사[편집]
캄보디아 평화 파리 협정으로 훈센 정권과 민주캄프챠 연합정부를 통합한 네 계파에 의한 캄보디아 최고 국민 평의회(SNC)가 결성되었다. 다음 해 1992년 2월부터, 유엔 캄보디아 잠정 통치기구(UNTAC)가 평화유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5월에는 국민의회 총선거가 실시되어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선거 결과는 전120 의석 가운데 펑신펙크 당이 58석, 캄보디아 인민당이 51석, 손 산의 불교자유민주당이 10석, 기타 1석으로 의회가 구성되었다. 이 선거로 두 명의 수상제가 선택되어, 펑신펙크 당수로 시하누크의 2남 라나리드가 제일 수상에 캄보디아 인민당의 훈센이 제2수상으로 선출되었다. 동년 9월 23일, 제헌의회가 신헌법을 발표되었고, 9월 24일 시하누크가 국왕에 재즉위하여, 캄보디아 왕국이 23년 만에 통일 정권으로서 탄생하였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선택된 의회의 헌법 공표, 정부 설립을 주관한 UNTAC의 잠정 통치는 1993년 9월에 종료되었다.
1997년 7월, 프놈펜에서 펑신펙크 당과 캄보디아 인민당의 군대가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제일 수상인 라나리드는 파리로 도망가 약 반년 후인 1998년 3월에 시하누크 국왕의 은사로 귀국하였고, 9월에는 국민의회의 의장으로 취임했다. 동년 7월의 총선거로 이번은 캄보디아 인민당이 제일당이 되어, 훈센이 제일 수상으로 취임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가맹이 연기되고 있었지만, 1999년 4월에 가맹을 완료했다.
폴 포트는 1998년 4월에 산중에서 사망하고, 12월에 폴 포트파 간부가 국민에게 폴 포트에 의한 학살을 사죄하였다. 2001년 1월 폴 포트파 간부를 재판하는 특별법정이 설치되었다.
2004년 10월 14일, 시하누크가 퇴임하고, 그의 셋째 아들의 노로돔 시하모니가 국왕에 즉위 하였다.
2006년 10월 18일, 펑신펙크당은, 라나리드 당수를 해임하고, 주독일 대사의 케오 풋 라스 메이를 선출, 제1 부당수에는 루 라이스 렌, 제2 부당수에는 차조기 와트 스리웃드(차조기 와트 왕가의 출신)가 선출되었다. 2006년 11월 16일, 라나리드는 노로돔 라나리드당(The Norodom Ranariddh Party)을 설립했다.
1993년 5월에는 국민의회 총선거가 실시되어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선거 결과는 전120 의석 가운데 펑신펙크 당이 58석, 캄보디아 인민당이 51석, 손 산의 불교자유민주당이 10석, 기타 1석으로 의회가 구성되었다. 이 선거로 두 명의 수상제가 선택되어, 펑신펙크 당수로 시하누크의 2남 라나리드가 제일 수상에 캄보디아 인민당의 훈센이 제2수상으로 선출되었다. 동년 9월 23일, 제헌의회가 신헌법을 발표되었고, 9월 24일 시하누크가 국왕에 재즉위하여, 캄보디아 왕국이 23년 만에 통일 정권으로서 탄생하였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선택된 의회의 헌법 공표, 정부 설립을 주관한 UNTAC의 잠정 통치는 1993년 9월에 종료되었다.
1997년 7월, 프놈펜에서 펑신펙크 당과 캄보디아 인민당의 군대가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제일 수상인 라나리드는 파리로 도망가 약 반년 후인 1998년 3월에 시하누크 국왕의 은사로 귀국하였고, 9월에는 국민의회의 의장으로 취임했다. 동년 7월의 총선거로 이번은 캄보디아 인민당이 제일당이 되어, 훈센이 제일 수상으로 취임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가맹이 연기되고 있었지만, 1999년 4월에 가맹을 완료했다.
폴 포트는 1998년 4월에 산중에서 사망하고, 12월에 폴 포트파 간부가 국민에게 폴 포트에 의한 학살을 사죄하였다. 2001년 1월 폴 포트파 간부를 재판하는 특별법정이 설치되었다.
2004년 10월 14일, 시하누크가 퇴임하고, 그의 셋째 아들의 노로돔 시하모니가 국왕에 즉위 하였다.
2006년 10월 18일, 펑신펙크당은, 라나리드 당수를 해임하고, 주독일 대사의 케오 풋 라스 메이를 선출, 제1 부당수에는 루 라이스 렌, 제2 부당수에는 차조기 와트 스리웃드(차조기 와트 왕가의 출신)가 선출되었다. 2006년 11월 16일, 라나리드는 노로돔 라나리드당(The Norodom Ranariddh Party)을 설립했다.
5. 행정구역[편집]
캄보디아의 행정 구역은 최상위 행정 구역인 주와 다음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은 구(ស្រុក, srŏk)와 지방 자치체(ក្រុង, krong)이며 구는 쿰(ឃុំ, khum)과 상캇(សង្កាត់, sangkat), 품(ភូមិ, phum)으로 나뉜다. 지방 자치체는 상캇(សង្កាត់, sangkat), 품(ភូមិ, phum)으로 나뉘며 수도 프놈펜은 칸(ខណ្ឌ, khan), 상캇(សង្កាត់, sangkat), 품(ភូមិ, phum)으로 나뉜다.
캄보디아의 주는 다음과 같다.
있는 내용은 주도이다.
캄보디아의 주는 다음과 같다.
있는 내용은 주도이다.
- 프놈펜반테아이메안체이 주 (시소폰)
- 바탐방 주 (바탐방)
- 캄퐁참 주 (캄퐁참)
- 캄퐁치낭 주 (캄퐁치낭)
- 캄퐁스페우 주 (캄퐁스페우)
- 캄퐁톰 주 (캄퐁톰)
- 캄포트 주 (캄포트)
- 칸달 주 (타크마우)
- 코콩 주 (코콩)
- 케프 주 (케프)
- 크라티에 주 (크라티에)
- 몬둘키리 주 (센모노롬)
- 오다르메안체이 주 (삼라옹)
- 파일린 주 (파일린)
- 시아누크빌 주 (시아누크빌)
- 프레아비헤아르 주 (프놈트벵메안체이)
- 푸르사트 주 (푸르사트)
- 프레이벵 주 (프레이벵)
- 라타나키리 주 (반룽)
- 시엠레아프 주 (시엠레아프)
- 스퉁트렝 주 (스퉁트렝)
- 스바이리엥 주 (스바이리엥)
- 타케오 주 (타케오)
- 트봉크뭄 주 (수옹)
6. 자연환경[편집]
6.1. 지리[편집]
캄보디아는 1,810만 4천㏊ 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태국과 800 킬로미터, 북동쪽으로는 라오스와 541 킬로미터를 접경하고, 1,228 킬로미터를 동쪽과 남동쪽으로 베트남과 맞닿아 있다. 타이만을 따라서 443 킬로미터의 해안선이 있다.
6.2. 기후[편집]
캄보디아의 기온은 10 °C~40 °C에 이르며, 열대 몬순 기후이다. 10월~1월은 30 °C 정도이며, 2월~5월은 32 °C ~ 35 °C에 이른다.
우기와 건기로 나눌 수 있는데 우기는 5월~10월 사이로 내륙으로 불어오는 남서 몬순이 타이만과 인도양에서 습한 바람을 몰고온다. 이로 인해 연 강수량의 75%가 여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7월~9월에 절정을 이룬다. 건기는 10월~4월 사이로 11월~1월 사이는 우리나라 초가을 정도로 매우 시원하지만 이때를 제외하면 매우 덥고 건조하다.
우기와 건기로 나눌 수 있는데 우기는 5월~10월 사이로 내륙으로 불어오는 남서 몬순이 타이만과 인도양에서 습한 바람을 몰고온다. 이로 인해 연 강수량의 75%가 여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7월~9월에 절정을 이룬다. 건기는 10월~4월 사이로 11월~1월 사이는 우리나라 초가을 정도로 매우 시원하지만 이때를 제외하면 매우 덥고 건조하다.
7. 인문환경[편집]
7.1. 주민[편집]
주민은 크메르족이 90%이며, 크메르어가 공식 언어이다. 나머지는 베트남계 5%, 중국계 1%, 기타 4%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메르어는 오스트로 아시아어군의 몽크메르 하위계보이다. 인도차이나계의 프랑스어가 한때는 사용되었고, 지금도 일부는 사용하고 있으며, 과거 식민지 유물로 대부분 오래된 캄보디아 사람들은 제2 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학교와 대학교에서는 프랑스 정부의 기금을 지원받아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캄보디아 프랑스어는 캄보디아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주로 정부기관에서 사용되는 방언이 섞인 프랑스어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은 많은 젊은 캄보디아인들과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용활용범위가 넓은 영어를 더 선호한다. 주요 도시와 여행자 센터에서는 영어가 폭넓게 사용되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이기도 하다. 시골로 내려가도 불교 사원의 승려 등을 포함하여 많은 젊은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한다.
주요 종교로는 크메르 루주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소승 불교가 95%, 이슬람교 3%, 기독교가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종교로는 크메르 루주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소승 불교가 95%, 이슬람교 3%, 기독교가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7.2. 언어[편집]
1993년 9월 23일 헌법 5조에 의하면 "공식어와 공식문자는 크메르어와 크메르 문자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어는 프랑스어를 대체하고 이 나라의 제2 언어로 각광받고 있다. 소수 언어로는 중국어, 태국어 등이 있다.
7.3. 교육[편집]
인간개발지수는 중간이고 문맹률은 높은 편이다.
7.4. 교통[편집]
육상교통망은 수도 프놈펜에서 각지로 도로가 뻗어 있고, 철도도 프놈펜으로부터 서쪽으로는 태국과의 국경 도시인 포이펫, 남부의 캄포트를 거쳐, 캄퐁솜만 방향으로 가는 노선이 있는데 모두 단선이다. 또 메콩, 톤레사프, 바사크 등의 하천은 중요한 수상 교통로이다. 외항선은 프롬펜과 콤퐁솜에 기항한다.
7.5. 문화[편집]
캄보디아의 문화는 대표적으로 앙코르 시대(802년 ~ 1432년)에 만들어진 앙코르 와트 사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화려했던 유물들은 관리가 소홀한 탓에 파괴와 식민 시대의 약탈 등에 시달려 많은 손상을 입었다.
7.6. 종교[편집]
종교는 95%가 소승 불교이다. 그외 이슬람교, 로마 가톨릭, 개신교, 힌두교순이다.
8. 정치[편집]
캄보디아의 정치는 1993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의회에 의해 운영되는 입헌군주제를 따르고 있다. 캄보디아의 총리는 의회의 수반이고, 국왕은 국가의 수반으로 다당제의 형태의 정당을 운영하고 있다. 총리는 국회의 승인을 받아 국왕이 임명하며, 총리는 집행부(행정부)의 권력을 행사한다. 입법권은 집행부와 상,하원 양 의회에 주어진다.
2004년 10월 14일, 1주일 전 갑작스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왕위 선발 위원회에 의해 선택되었다. 시아누크 국왕의 간택은 훈센 총리와 국회 의장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승인함으로써 계승식은 마무리되었다. 왕위 계승식은 10월 29일 프놈펜에서 거행되었다. 군주는 상징적이며, 실제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예술에 정통하며, 캄보디아 전통춤에 조예가 깊고, 체코에서 오랫동안 체류를 했기 때문에 체코어도 능숙하다.
캄보디아는 2006년 국제 투명성 기구가 조사한 국가 투명도 지수에서 163개국 중 151위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179개국 중 16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라오스, 미얀마에 이어 동남아 3대 부패국에 손꼽히는 것이다.
BBC에 의하면 캄보디아 정계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지원되는 국제 원조가 불법적으로 정치인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새어나간다는 보도가 있었다.[5]
캄보디아의 부정 부패는 광범위한 소득 불균형을 이루어 빈부의 격차가 뚜렷하다.
2004년 10월 14일, 1주일 전 갑작스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왕위 선발 위원회에 의해 선택되었다. 시아누크 국왕의 간택은 훈센 총리와 국회 의장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승인함으로써 계승식은 마무리되었다. 왕위 계승식은 10월 29일 프놈펜에서 거행되었다. 군주는 상징적이며, 실제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예술에 정통하며, 캄보디아 전통춤에 조예가 깊고, 체코에서 오랫동안 체류를 했기 때문에 체코어도 능숙하다.
캄보디아는 2006년 국제 투명성 기구가 조사한 국가 투명도 지수에서 163개국 중 151위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179개국 중 16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라오스, 미얀마에 이어 동남아 3대 부패국에 손꼽히는 것이다.
BBC에 의하면 캄보디아 정계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지원되는 국제 원조가 불법적으로 정치인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새어나간다는 보도가 있었다.
캄보디아의 부정 부패는 광범위한 소득 불균형을 이루어 빈부의 격차가 뚜렷하다.
2004년 10월 14일, 1주일 전 갑작스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왕위 선발 위원회에 의해 선택되었다. 시아누크 국왕의 간택은 훈센 총리와 국회 의장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승인함으로써 계승식은 마무리되었다. 왕위 계승식은 10월 29일 프놈펜에서 거행되었다. 군주는 상징적이며, 실제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예술에 정통하며, 캄보디아 전통춤에 조예가 깊고, 체코에서 오랫동안 체류를 했기 때문에 체코어도 능숙하다.
캄보디아는 2006년 국제 투명성 기구가 조사한 국가 투명도 지수에서 163개국 중 151위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179개국 중 16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라오스, 미얀마에 이어 동남아 3대 부패국에 손꼽히는 것이다.
BBC에 의하면 캄보디아 정계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지원되는 국제 원조가 불법적으로 정치인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새어나간다는 보도가 있었다.[5]
캄보디아의 부정 부패는 광범위한 소득 불균형을 이루어 빈부의 격차가 뚜렷하다.
2004년 10월 14일, 1주일 전 갑작스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왕위 선발 위원회에 의해 선택되었다. 시아누크 국왕의 간택은 훈센 총리와 국회 의장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승인함으로써 계승식은 마무리되었다. 왕위 계승식은 10월 29일 프놈펜에서 거행되었다. 군주는 상징적이며, 실제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예술에 정통하며, 캄보디아 전통춤에 조예가 깊고, 체코에서 오랫동안 체류를 했기 때문에 체코어도 능숙하다.
캄보디아는 2006년 국제 투명성 기구가 조사한 국가 투명도 지수에서 163개국 중 151위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179개국 중 16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라오스, 미얀마에 이어 동남아 3대 부패국에 손꼽히는 것이다.
BBC에 의하면 캄보디아 정계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지원되는 국제 원조가 불법적으로 정치인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새어나간다는 보도가 있었다.
캄보디아의 부정 부패는 광범위한 소득 불균형을 이루어 빈부의 격차가 뚜렷하다.
9. 대외 관계[편집]
캄보디아는 유엔 회원국이며, 세계은행과 IMF의 특별 회원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ASEAN 회원국이고, 2004년 WTO에 가입하였고, 2005년에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가하였다.
캄보디아는 많은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동남아 이웃국들과 파리평화협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화인민공화국, 유럽 연합, 일본, 러시아 등과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모두와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1970년과 80년의 격동이 지나가고, 몇 차례의 국경 분쟁을 이웃국들과 경험했는데, 여전히 일부 도서와 베트남에 인접한 국경 및 타이와 접한 바다의 경계는 아직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3년 1월, 프놈펜에서 타이의 인기 여배우의 발언으로 촉발된 앙코르 와트와 관련하여 소요가 발생했는데, 캄보디아의 언론과 훈센 총리까지 곤욕을 치른 사건이었다. 당시 타이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고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2003년 3월 21일, 캄보디아 정부에서 타이 대사관을 파괴한 보상금으로 6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국경이 다시 개방되었다.
2008년 태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프레아 비히어 사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둘러싸고 캄보디아와 태국은 사원 인근에 각각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잦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캄보디아는 많은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동남아 이웃국들과 파리평화협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화인민공화국, 유럽 연합, 일본, 러시아 등과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모두와 수교 관계를 맺고 있다.
1970년과 80년의 격동이 지나가고, 몇 차례의 국경 분쟁을 이웃국들과 경험했는데, 여전히 일부 도서와 베트남에 인접한 국경 및 타이와 접한 바다의 경계는 아직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3년 1월, 프놈펜에서 타이의 인기 여배우의 발언으로 촉발된 앙코르 와트와 관련하여 소요가 발생했는데, 캄보디아의 언론과 훈센 총리까지 곤욕을 치른 사건이었다. 당시 타이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고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2003년 3월 21일, 캄보디아 정부에서 타이 대사관을 파괴한 보상금으로 6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국경이 다시 개방되었다.
2008년 태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프레아 비히어 사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둘러싸고 캄보디아와 태국은 사원 인근에 각각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잦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