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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서 편집 집중 기간 [1]
2023년 07월 18일 ~
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파일:태극기.jpg
파일:대한민국 국장1.png
국기
국장
표어
홍익인간
弘益人間
국가 정보
국가명
대한민국
수도
광복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광복
언어
한국어
면적
1,004만 1,259.87㏊ (108위)
인구
5,155만 8,034명 (29위)
종교
무종교 56.1%
기독교 27.6%
불교 15.5%
기타 0.8%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기
국가
국화
정치
정치체제
대통령
국회의장
김진표
대법원장
김명수
국무총리
한덕수
헌법재판소장
유남석
집권여당
외교
가입 국제기구
수교국
192개국
국가 코드
410, KOR, KR
국제 전화
+82
1. 개요2. 상세3. 국호4. 자연환경
4.1. 지리4.2. 기후4.3. 동식물4.4. 천연자원
5. 역사6. 경제
6.1. 농업6.2. 공업6.3. 자동차6.4. 서비스업6.5. 통신업6.6. 건설업
7. 교통
7.1. 도로7.2. 도시철도7.3. 철도7.4. 버스7.5. 항공
8. 정치9. 국방
9.1. 육군9.2. 해군9.3. 해병대9.4. 공군
10. 대외 관계11.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국가이다.

2. 상세[편집]

현정체제는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국기는 대한민국 국기법에 따라 태극기이며, 국가는 관습상 애국가, 국화는 관습상 무궁화이다.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어이다. 수도는 서울이다. 인구는 2023년을 기준으로 약 5,174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절반이(약 2,624만 명) 수도권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에서 대한민국의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 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

대한민국은 20세기 후반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등의 부침이 있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2022년 1인당 국민 총소득 (GNI)은 명목 3만 4,994달러이다. 2020년 유엔개발계획 (UNDP)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 (HDI) 조사에서 세계 22위를 기록하였다.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마지막 회의에서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 그룹으로 ‘의견 일치’로 변경하고 선진국으로 인정했다. 다만 높은 자살률, 장시간 근로 문화와 높은 산업 재해 사망률, 저출산 등의 사회 문제가 이 같은 성과와 병존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 조사에서 2019년 기준 23위의 8.0점을 기록한 바와 같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주요 20개국 (G20), 경제 협력 개발 기구 (OECD), 개발 원조 위원회 (DAC), 파리 클럽 등의 회원국이다.

1948년 이후로 오늘날까지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분단국가가 각각 남북에 위치하고 있다.

3. 국호[편집]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호 중 ‘한’ 또는 ‘대한’(大韓)의 어원은 삼국시대때 유래한 것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틀어서 삼한이라 칭했는데, 그 삼한이 통일되었다는 의미에서 대한이라 한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한반도의 세 나라를 삼한이라 불렀고, 이것이 후대에 이어져서 삼한을 ‘삼국’이라 부르고 삼한일통의 하나의 '한(韓)'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즉 ‘한(韓)’의 나라라는 뜻이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고대부터 내려오던 낱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해석이 있다. 나중에는 한(汗)이 군주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근대 국가의 국호로서의 ‘대한’(大韓)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하였다.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한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나라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고 밝혔다. 이후 여기에 민국(民國)[12]을 더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는 이승만,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이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 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 이에 20세기 전반까지도 널리 사용되던 지명으로서의 "조선"이라는 이름은 "대한(大韓)"이나 "한국(韓國)", "한(韓)"으로 대체하여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국의 국호를 "대한민국", "한국" 등으로 부르며, 자국을 호칭할 때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한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며,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비해 한반도 남부에 있다 하여 "남한"으로도 불리는데, 특히 대한민국 한반도 북부를 점거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을 남조선(南朝鮮)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韓國) 또는 남한(南韓) 등으로도 부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을 반국가단체로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명칭 대신에 남조선(南朝鮮)으로 부른다. 대한민국은 과거엔 구한국(舊韓國), 신한국(新韓國)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국제사회에서는 관습상 대한민국을 간단히 코리아(Korea)라 부르며, 이 이름은 동아시아의 고대 국가인 고려에서 유래하였다.

코리아(Korea)란 영문 국호의 어원은 동아시아의 중세 국가인 고려에서 유래하였다. 고구려가 5세기 장수왕 때 국호를 고려(高麗)로 변경한 것을 918년 건국된 중세 왕조 고려(高麗)가 계승하여 '고려'라는 국명이 아라비아 상인등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유럽인들이 '고려'를 코레(Core, Kore), 코리(Kori)로 불렀고, 이 명칭에 '~의 땅'을 의미하는 '-a'를 붙어 '고려인의 땅'이라는 '코레-아'(Corea), '코리-아'(Korea), '코리-아'(Koria)가 되어 프랑스어로 Corée, 스페인어로 Corea, 영어로 Korea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로서, 약칭 'R.O.K.'이며 관습상으로는 간단히 Korea라고 불리며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는 약칭 'KOR'로 불린다.

공식 문서에는 'Corea' 또는 'Korea'가 혼용되어 사용되었고, 1900년대 초기부터 영어권에서는 'Korea'의 사용 빈도가 높았다. 1892년 외국인이 자주 보는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Archived 2016년 2월 18일 - 웨이백 머신〉 5월 호에는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우리가 차용한 이 땅의 이름을 아주 조리 있게 K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일본,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에 있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일상에서 대한민국을 간단히 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4. 자연환경[편집]

4.1. 지리[편집]

서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황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일본과 동해를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북한과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한반도는 제3기 마이오세 이후에 일어난 단층과 요곡운동의 결과 동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급경사로 동해안에 임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이를 동고서저의 경동지형이라 한다. 높은 산들은 대부분 동부 지방에 치우쳐서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산맥에 자리한다. 태백산맥의 대표적인 산이 설악산이다. 태백산맥의 남서쪽으로 소백산맥이 이어지며 그중에는 지리산이 유명하다. 제주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사화산인 한라산이 있다.

하천의 유량은 극히 불규칙하여 여름에는 집중 호우로 연 강수량의 약 60% 이상이 홍수로 유출되며, 갈수기에는 강바닥을 거의 드러내는 하천이 많다. 대표적인 강은 위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다. 대다수의 강이 산지가 많은 동쪽에서 평평하고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서쪽으로 흐르며 중하류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산맥은 교통에 적지 않은 제약을 주어, 산맥을 경계로 지역의 문화나 풍습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산맥으로 가로막힌 지방은 고개를 넘어 왕래했는데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을 연결하는 태백산맥의 대관령·한계령·진부령·미시령, 중서부와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소백산맥의 죽령·이화령·추풍령·육십령 등이 산맥을 넘는 주요한 교통로로 사용된다.

한반도의 서쪽은 황해, 동쪽은 동해, 남쪽은 남해와 맞닿아 있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이며, 가장 큰 부속 도서인 제주도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접한다. 황해와 남해 연안은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해안 지형도 꽤 평탄하여 넓은 간석지가 전개된다. 또한 수많은 섬이 있어서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동해 연안은 대부분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으며 간만의 차가 적다. 해안 근처에는 사구·석호 등이 형성되어 있고 먼 해상에 화산섬인 울릉도가 있으며 그보다 동쪽으로 약 87.4km 거리에 대한민국 최동단인 독도가 위치한다. 서쪽에는 평지가 발달됐다.

4.2. 기후[편집]

북위 33도~38도, 동경 126~132도에 걸쳐 있어 냉대 동계 소우 기후와 온대 하우 기후,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난다. 겨울에 북부 지역은 편서풍으로 인해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의 영향을 받아 대륙성 기후를 띠어서 건조하고 무척 추우나 남부 지역은 이런 영향을 적게 받아 상대적으로 온난한 편이다. 여름에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보여서 고온다습하다. 계절은 사계절이 뚜렷이 나타나며 대체로 북부 지역은 여름과 겨울이 길고 남부 지역은 봄과 가을이 길다.

3월 초에서 5월 초에 걸쳐 포근한 봄 날씨, 5월경에서 8월 초에는 무더운 여름이, 8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화창하고 건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11월에 기온과 습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여 12월에서 2월까지는 춥고 건조한 겨울 날씨를 보인다. 중부 산간 지방을 제외하고 대체로 연 평균 기온은 10 ~ 16℃이며,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은 23 ~ 36℃, 5월은 16 ~ 19℃, 10월은 11 ~ 19℃,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6 ~ 3℃이다.

비는 주로 여름에 많이 내리는데 연 강수량의 50 ~ 60%가 이때 집중된다. 이를 장마라고 하며 특히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를 장마철이라 한다. 각 지역의 연 평균 강수량은 중부 지방이 1100 ~ 1400mm, 남부 지방이 1000 ~ 1800mm, 경북 지역이 1000 ~ 1200mm이다. 경상남도 해안 지역은 약 1800mm이며 제주도는 1450 ~ 1850mm이다.

습도는 7월과 8월이 높아서 전국에 걸쳐 80% 정도이고 9월과 10월은 70% 내외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연평균 28개 정도가 발생하여, 이 중 두세 개가 영향을 미친다.

본래 4계절이 뚜렷한 기후 환경이었으나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봄, 가을의 기간이 급격히 줄어들며 게릴라성 폭우로 특징되는 열대성 호우가 잦아 아열대화가 진행되면서 어업이나 농업에 변화가 있다.

4.3. 동식물[편집]

한반도 전역에 동식물 10만 여 종이 분포한다.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큰 종인 백두산호랑이가 과거 살았었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밖의 맹수로는 반달곰과 표범이 있으며 소수 개체군이 생존한다. 그 밖에도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의 포유류와 까치, 꿩, 참새, 비둘기를 비롯한 텃새, 두루미, 기러기 같은 철새가 서식하며 지네나 거미, 수많은 곤충류도 서식한다. 삼면이 바다여서 난류와 한류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패류와 고래도 존재한다. 또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한류성 어류가 감소하고 불가사리나 해파리가 급증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산삼이나 진달래, 소나무 등 많은 식물은 약용이나 기타 여러 용도로 쓰인다. 제주도에는 열대림과 비슷한 야자수가 번육하며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는 북방계형의 특산 식물들이 자생한다. 백두산에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만 볼 수 있는 침엽수림과 같은 북방계 식물류가 자란다. 중부 지방에는 높은 산지로 말미암아 고산형 식물과 약용 식물 여러 종이 자생한다.

4.4. 천연자원[편집]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원료인 석회암은 한국의 주요 자원으로 각지에 대량 분포한다. 다른 자원은 양이 적거나 품질이 낮아 채산성이 맞지 않으므로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21세기에 와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재개장하는 광산이 있다. 석탄은 무연탄만이 있으며 삼척, 태백 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철광석은 양양, 충주 등지에서 주로 캤다. 텅스텐은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특히 영월에 대규모의 광산이 있다.

울산 앞바다에 천연가스층을 발견하고 개발중이며, 독도 부근 해저에서 메테인 하이드레이트 대규모 매장량을 발견했다. 석유는 제주도 남방 해역 대륙붕 제7광구에 천연가스와 함께 매장 가능성을 언급하나[31] 실제로 탐사하지 않았다. 이곳은 1974년에 체결한 한일 대륙붕 협정에 따라 2028년까지 한일이 공동 관리한다.

5. 역사[편집]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당파성과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정책, 한국 전쟁에서의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여로 인해,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은 아쉽게 후퇴해야 했으며, 미 공군이 북한에 대한 중공군의 지원을 끊기 위해 압록강철교를 폭파하였고, 남북이 분단되어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다. 특히,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고 기반시설은 거의 대부분 초토화되어 남북 사이의 상호 불신이 깊어 갔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복구하고 1960년대 이후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북한의 경제 수준을 추월하는 등 대한민국은 중진국으로 변모하였다. 광복 후에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으로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며,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1919년-1948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간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제1공화국으로부터 1987년 이후의 제6공화국 체제까지 총 여섯 대의 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는 구분된다. 공화국의 차수는 대체로 헌법의 개헌 횟수에 따라 결정된다. 다만 1987년부터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제6공화국 헌법이 30년 이상 유지되고 있기에 제6공화국부터는 각 정부별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노태우 정부 이후로는 모두 제6공화국에 속하지만, 제6공화국이라고 할 경우 대체로 노태우 정부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제6공화국의 각 행정부를 부르는 명칭은 대통령들의 결정에 따른다.

2017년 기준으로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책임 정치 구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대통령직의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5.1. 6.25 전쟁[편집]

6.25 전쟁(六二五戰爭, 6·25 전쟁) 또는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3시 30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폭풍 작전' 계획에 따라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침공(남침)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뻔 하였으나,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휴전 이후로도 현재까지 양측의 유무형적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반공 양강 진영으로 대립하게 된 세계의 냉전적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대표적 사례로, 냉전(冷戰)인 동시에 실전(實戰)이었으며, 국부전(局部戰)인 동시에 전면전(全面戰)이라는 복잡한 성격을 가졌다. 이는 국제연합군과 의료진을 비롯해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연방까지 관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다.

6. 경제[편집]

대한민국의 경제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혼합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통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고속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은 3만 1,637 달러이다. 2020년 유엔 세계경제상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었으나 2021년 7월 2일 이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하였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넥스트 일레븐 경제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국가적인 특수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중앙집중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모자라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고, 현재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국미국베트남일본, 오스트리아, 몽골, 싱가포르, 인도, 호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러시아말레이시아 등이다. 세계 규모 9위 및 대한민국 최대 그룹인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중공업, 백색가전 세계 1위인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

6.1. 농업[편집]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정부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00년 12월 1일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4백3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8.6%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6.2. 공업[편집]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945년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현재는 하이테크 산업(IT, 첨단 전자부품 및 전자제품 등등), 자동차, 광학, 조선, 철강 등의 산업분야에서의 첨단기술이 전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업 생산은 국민 총생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6.3. 자동차[편집]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2015년 현재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초기에는 거의 외국에서 수입한 부품의 조립으로 운영되었으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자동차 생산국 중의 하나이다. 1988년 연간 국내 생산량이 100만 대를 초과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디자인, 퍼포먼스, 기술 측면에서 그 능력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그 완숙함을 나타내는 모델을 생산하였다.

6.4. 서비스업[편집]

대한민국에서 서비스업은 국민 총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29]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외국과의 무역 거래 확대는 서비스업의 발달을 촉진했으며 금융업도 발달해 다국적 기업이 대한민국에 본사 및 지사를 두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투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6.5. 통신업[편집]

1952년 1월 국제전기통신연맹(ITU) 가입, 1966년 8월 별정우편제도 창설, 1968년 4월 1일 우편물 매일·당일배달제실시, 1965년 12월 가입전신(TELEX)업무 실시, 1967년 마이크 로 웨이브 통신회로 개통,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년 7월 1일 우편제도 실시, 1971년 3월 서울∼부산간 장거리자동전화(DDD) 개통, 1977년 제2위성통신지구국 개통 등으로 이어진 한국의 통신사업은 이상과 같이 1970년대 초에야 현대화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1970년 대중에 계속된 통신망의 확대·현대화에 불구하고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추세는 통신사업의 후진성을 노정시켰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의 설비투자와 기술혁신·개발, 통신사업에 관한 정책 및 계획수립·실적평가의 전문성 확립이 요청되었고 독립적인 통신사업경영 기능의 운용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1979년 서울과 미국·홍콩·일본간의 국제속달 우편제도가 설치되어 특히 무역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국제 우편환제도 개선 5개년계획이 실시되었으며 비적성공산국가 5개국과 항공 및 선편에 의한 소포우편물 교환업무가 시작되었다. 전신·전화부문에서도 전자교환방식의 도입이 가속화되었고 광섬유 전화케이블의 개발로 광섬유통신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소련과의 국제전화선로가 개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 중 계속되어 온 전화적체현상을 해소하고 시설확장을 위한 재원확보를 위해 '통신시설확장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공포되었고 동법에 따라 전신·전화공채가 발행되어 전화 신규가입자·승계·양수자는 의무적으로 인수하게 되었다. 1982년 1월1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어 체신부로부터 전기통신사업 경영·연구 및 실용화·시험 및 검사업무 등을 이관받아 업무에 들어갔으며 체신부는 우정사업과 전기통신의 기본정책, 유관산업의 육성, 안보통신, 공사의 지도감독 등 전기 통신 행정업무만을 관장하게 되었다. 1982년 4월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도래하고 있는 정보통신시대의 개막에 대비해 컴퓨터와 전화의 기능을 결합, 신속·정확하게 정보를 교환·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통신업무를 전담할 한국데이터통신 주식회사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민간기업의 공동출자로 설립, 데이터 통신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6.6. 건설업[편집]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을 누비던 한국의 해외 건설 사업은 198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2차 석유파동의 위력이 소진되면서 중동 산유국의 건설 투자가 막을 내렸고, 이로 인해 중동에 진출해 있던 100여 개의 한국 건설사들은 마치 한순간에 빠지는 썰물처럼 해외 건설 무대에서 밀려났다. 1982년 133억 달러를 기록한 해외 건설 수주고는 1983년 들어 101억 달러로 감소했다.

KDI에서 발간한 2019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1월 현재 주택부문을 중심으로 한 건설투자 감소세가 큰 폭으로 지속되고 있다. 2020년 국내 건설투자는 토목부문이 건축부문의 감소세를 상쇄하면서 부진이 완화될 것으로 KDI는 전망하였다. 다만 토목부문 건설수주는 2019년 대규모 민자 철도 사업 수주에도 불구하고 도로, 교량, 발전, 송전 수주 부진으로 인해 2018년 3/4분기 대비 14.4% 감소하였다. 보고서는 2019년 SOC 예산이 2018년 대비 4.0% 증가하였고, 2020년 SOC 예산이 예산안 기준으로 2019년 대비 12.9% 증가될 예정이므로 토목부문의 기여도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 하였다.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2020년 5월 월간건설경제동향을 보면 국내건설수주액이 2019년 5월 대비 37.4% 증가했다. 민간분야 건축공사 중 재개발이 281.6%, 재건축이 108.1%로 큰 증가폭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수주액이 상대적으로 낮아 기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협회는 보고서에서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줄어들면서 소비 등 비제조 분야 중심으로 경기회복세를 보여 건설관련 선행지표는 개선되었으나, 6.17 부동산 대책, 전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여전히 경기불확실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건설수주액은 총 15조 3019억 원(2019년 5월 대비 37.4% 증가) 중 공공부문에서 2조 8120억 원(2019년 5월 대비 11.9% 증가), 민간부문에서 12조 4,899억원 (2019년 5월 대비 44.8% 증가)을 기록했다. 건설고용인구는 1,979 천명으로 2020년 4월 대비 3% 감소하였다. 경상 기준 국내건설 기성액은 2019년 5월 대비 4.9% 증가하였다. 공공부문이 5% 증가, 민간부문은 7% 감소했으며, 공종별로는 토목이 3.7% 증가, 건축이 7.8% 감소했다.

7. 교통[편집]

7.1. 도로[편집]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 및 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국내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노선의 일부 이며 국도 제7호선은 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사 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7.2. 도시철도[편집]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사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이 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7.3. 철도[편집]

대한민국의 철도 및 광역전철의 총 연장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 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

7.4. 버스[편집]

서울의 버스는 중·장거리 지역을 운행하는 '간선버스(파란색)'와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을 연결하는 노선을 운행하는'지선버스(초록색)', 서울과 수도권을 직행으로 운행하는 '광역버스(붉은색)', 그리고 마을버스와 순환버스 등으로 나뉜다. 2004년 7월부터 도입된 이 시스템은 환승 제도와 함께 시행되었으며 서울과 경기도, 인천까지 환승할인을 받을 수 있다.[40] 버스와 버스 혹은 지하철과 버스간의 환승시에 추가로 요금이 지불되지는 않으며 하차시 버스카드리더기에 인식시키면 거리에 따라 요금이 정산되어 최초 10km까지는 기본요금, 5 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요금이 지불된다. 광역버스의 기본요금은 1800원에 버스카드 이용시 1700원이며, 환승시 최초 30km까지 기본요금을 적용하고 이후 5km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간선버스의 노선은 108개, 지선버스 292개, 광역버스 43개, 순환버스 5개 노선 등 총 420개 노선, 7967대 버스가 모두 민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의 버스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500만명으로 대중교통중에 지하철 다음으로 많으며, 전국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개선점으로는 일반 버스들의 출입문이 높고 폭이 좁아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3년부터 저상버스를 도입, 현재 751대가 운행 중이며, 2012년까지 전체 시내버스 중 절반을 저상버스로 바꿀 계획에 있다. 이 외에도 버스도착 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시는 모든 버스정류장에 '안내단말기'를 설치하고, 대기오염을 예방하기 위하여 천연가스버스로 모두 바꿨다.

7.5. 항공[편집]

대한민국에는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공항이 국내외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1948년 대한민국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사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도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 많은 저가항공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8. 정치[편집]

→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국방[편집]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대립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으며 1990년대까지는 양적 위주의 성장을 추진했으나,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무기 기술의 개발과 발달로 인해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국군(國軍)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군을 지휘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병력 규모는 현역이 약 555,000명, 대한민국 예비군은 약 3,100,000명이다. 세계에서 11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독자 개발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여군은 기갑, 포병, 잠수함 병과에는 진출할 수 없었으나 2014년 9월 창군이래 최초 여군 포병장교가 탄생하였고 기갑병과에도 여군이 진출함에 따라 다양한 병과에서 여군들이 활약하고 있다.

9.1. 육군[편집]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명, 전차 약 2,300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포 약 5,200문, 유도무기 30기, 헬기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56] K2 전차(K2 흑표, Black Panther)를 개발했다. K-2 전차는 2014년 대한민국 육군에 정식으로 배치된다. K-21 전투장갑차는 2012년경 전력화하였고 복합형 소총인 K-11 소총을 운용하고 있다.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 그 외 상비 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고 전 부대를 기계화부대로 편성한다. 병사들의 개인화기 및 개인장비, 피복을 개선시키는 중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고글+무릎(팔꿈치)보호대+장갑+방탄복+야간 야시장비+스코프+도트사이트+광학장비를 지급하고 보병장비,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이 늘어나고 저격소총, 옵션장비 ,사격장, 1인당 교탄증가가 되었다. 소대장이 항공근접지원을 직접 유도할 수 있고 병사들은 무인 항공기를 수시로 띄울 수 있다. 시가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속대응 훈련과 CQB 훈련과 시가전 훈련을 자주 진행 중이다. 실전 훈련처럼 진행한다. 현대전에 맞추기 위해 육군 전 부대 대대급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저격수, 정찰 저격수들을 육군 전 부대(소대급)에서 양성 중이다. 저격수 학교를 창설한다. 저격수 규범은 미국 저격수 규범과 똑같은 저격수 교범을 채택하였다.

9.2. 해군[편집]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대잠헬기 및 해상초계기 50 대를 보유하고 있고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다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 총 3개 함대와 4개 전단을 두고 있다.

9.3. 해병대[편집]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군 예하에 편성되어 있는 군으로서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서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9,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 K1A1 전차와 K9 자주포, 상륙돌격장갑차(KAAVP7A1) 등의 기갑 차량, 상륙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59]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 방어, 상륙작전을 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2014년 기준으로,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와 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9.4. 공군[편집]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F-15K 59대,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4E 80대 (퇴역 중),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전투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A로 대체되며 T-103 훈련기 72대 역시 기체 노후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개발한 KC-100 나라온으로 대체된다.

수송기는 전략 전술 수송기인 C-130J-30 4대 C-130H 12대, CN-235-220M 18대가 있으며 VIP 수송용으로 대한항공에서 임차한 보잉 747-400 1대를 비롯해 보잉 737-300 1대, VCN-235 2대, VC-118 1대, BAe-748 2대가 있다. 정찰기로는 호커800기를 개조한 금강정찰기와 백두정찰기, RF-4C 18대, RKF-16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 중이며 회전익 항공기 (헬기)는 구조.탐색용인 HH-60 페이브호크, HH-47 치누크, 카모프 Ka-32가 있으며 병력 수송용인 벨 205, 212, 412, UH-60 블랙호크 등이 있다. 이외에도 VIP 수송용인 VH-92, VH-60, AS-362 '수퍼퓨마'가 있다. 또한 공군은 국산 헬기인 수리온을 2기 주문하였다.

사병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소화기 실탄 사격장 및 1인당 실탄사격 훈련의 내실화와 사병들의 개인 장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공군 전력사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인 한국형 전투기 사업인 KF-X 사업과 차기 대통령전용기 사업인 VC-X사업, 원격지원전자전기 사업, 스텔스 무인 전투기(UCAV)의 개발 및 사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KC-X 사업의 최종 후보로 에어버스 A330 MRTT가 선정, 4대 구매를 체결하였다.

10. 대외 관계[편집]

→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대외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대한민국 관련 문서를 편집하는 집중 기간을 말한다. 대한민국 관련 문서에 필요없는 내용이나 출처가 없는 내용이 적혀 있는 지 검토한다. 또한, 내용이 부실한 문서의 경우 내용을 추가하는 등의 작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