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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약력3. 생애
3.1. 문재인 정부
3.1.1. 임기 마지막 날 관련 문제
4. 비판과 논란5.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6.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7. 여담8. 가족 관계9. 선거 이력10. 소속 정당11. 어록12. 저술 활동
12.1. 저서12.2. 공저
13. 참여 음반14. 둘러보기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선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1953년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출생해 경희대학교를 졸업,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부산의 4대 재야 인권변호사[12]로 활약하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시민사회수석을 지냈다.

이후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봉하마을을 근거지로 정치와 거리를 두며 생활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하면서 노무현재단의 2대 이사장으로 활동하였고, 2011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의 길에 뛰어들게 된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 출마해 부산광역시 사상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안철수와 함께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야권 양대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후 경선과 단일화 과정을 거쳐 박근혜와 양강구도를 형성했으나 최종 48%를 득표해 3.6%라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다. 이후 의원직을 유지하며 평당원으로 잠행을 이어오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대 당대표로 선출, 제20대 총선을 이끄는가 했으나 연이은 재보궐선거 패배와 이에 따른 극심한 당내 계파갈등으로 인한 대대적인 야권 분열이 이어지면서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개정한 뒤 김종인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당대표직에서 사임한다.

이후 20대 총선 국면에서 물밑에서 여러 지원을 하며 총력을 기울였고, 야권의 일방적인 참패가 예상되었던 해당 선거에서 대반전으로 새누리당이 패배하는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옴으로서 정치생명 최대의 위기를 극복한다. 그 영향으로 지지를 회복하여 2016년 하반기부터 야권의 압도적인 대세 대권주자로 인식되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 조기 대선으로 치러진[13] 제19대 대통령 선거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41.1%의 득표율[14]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음날인 5월 10일 대통령직에 곧바로 취임한 뒤 현재까지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2. 약력[편집]

3. 생애[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문재인 정부[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 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서 구성된 정부다.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대통령직이 궐위되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이 출범한 첫 정부다. 이는 전임자의 파면으로 인하여 예정보다 7개월 앞선 조기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 명칭은 문재인 정부다.

3.1.1. 임기 마지막 날 관련 문제[편집]

궐위에 의한 선거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취임일 0시에 시작되지 않아서 발생한 해프닝이다.

기간 계산법이 따로 규정되지 아니한 대한민국의 모든 법령상의 기간 계산에 적용되는 민법 제157조는 "기간을 일, 주, 월 또는 연으로 정한 때에는 기간의 초일은 산입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 기간이 오전 영시로부터 시작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준용한다면 2017년 5월 10일 08시 09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계산에는 초일(첫날)인 2017년 5월 10일이 산입되지 않으므로, 2017년 5월 11일부터 5년을 셈하게 되어 2022년 5월 10일 24시(11일 0시)에 만료하게 된다.

한편, 2018년 초에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제안한 개헌안에는 본인의 임기를 2022년 5월 9일까지로 정해 놓았던 사실이 있다(부칙 제3조). 청와대 스스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5월 9일까지라고 봤다는 뜻인데, 이는 대통령 임기가 0시에 시작하지 아니한 데 따른 특이한 상황으로 발생하게 될 임기 마지막 하루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고, 아예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개헌안이었을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게 된다면 추후 이 “마지막 하루”에 대한 법적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2021년에 다시 이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불거졌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 해당 기사에서 인터뷰한 법조인들은 대부분 이미 취임 당일부터 권한 행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초일 불산입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5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검토 끝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을 ‘2022년 5월 9일 24시’로 확정지었다.#

4. 비판과 논란[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비판과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 정부/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재인/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문용형 (1920~1978)
  • 어머니: 강한옥 (1928~2019)
    • 누나: 문재월 (1949~) - 주부.
    • 여동생: 문재성 (1955~) - 주부.
    • 여동생: 문재실 (1957~) -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았다고 한다.
    • 남동생: 문재익 (1958~)
      상선사관.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34기 해사수송과학부 졸업 후 항해사 일을 시작, STX팬오션에서 선장으로 근무 중 사고가 생긴 뒤 SK로 이직하게 된다. 2020년 현재도 상선 선장을 하고 있으나, 2018년에 SK에서 정년퇴임한 후 SM그룹 계열로 옮겼다. 현재 벌크선을 운항하고 있다고 한다.
  • 아내: 김정숙 (1954~)
    • 아들: 문준용 (1982~)
      건국대 디자인 관련 학과를 나와서 게임 회사에 재직했으나 2018년 퇴직했다. 이전엔 공공 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에 있었는데. 한때 문준용의 공공기관 취업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이후 노동부 감사 결과 문준용의 고용정보원 채용에 특혜나 불법 행위가 없었음이 밝혀졌다. 자세한 것은 문준용 취업특혜 논란 참조.
    • 딸: 문다혜 (1983~)
      2010년 3월 결혼. 주부. 원래 직업은 요가 강사.[26]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 때 자기 아들과 함께 등장했다.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이후 정의당에 입당하였다. # 2018년에 재산을 정리하고 남편인 서모 씨, 자식과 함께 태국으로 이주를 했는데, 임기 도중에 대통령의 가족이 해외로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지라 야당에서는 그 이유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27]기사, 기사2

자식 교육에 있어서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아들에게는 다소 엄하고 딸에게 약했다고 한다. 김정숙 여사가 “딸에게 뭐든지 다 괜찮다고 하니까 속이 터진다”라고 말할 정도. 반면 아들인 문준용은 어렸을 때는 콩을 안 먹고 편식한다는 이유로 아버지한테 한 대 맞았다고 한다. 동시에 당시 일반적인 아버지상과 달리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진로 결정은 전적으로 자식의 결정에 맡기며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말 대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문준용이 어린 시절 좋아하던 비디오 게임도 같이하고, 초등학교 2~3학년 때 즐겼던 젤다의 전설 가이드북과 영상이 모두 영어로 돼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영문으로 적힌 수십 페이지의 게임 설명 밑에 한 줄 한 줄 한글로 번역을 해주었다고 한다. #

문민정부 이래로 역대 대통령들의 형제자매, 자식들이 좋던 나쁘던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경우가 많은데, 문재인 대통령의 친인척은 자녀들을 제외하고는 대중에 알려진 인물이 많지 않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서 정·재계 유력 인사를 한 명도 찾기 힘들 정도로 친가나 외가 할 것 없이 가계가 평범하다.

남동생 문재익(文在益)[28] 씨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책 ‘문재인 스토리’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 문재익이 일하고 있었던 선사에서 배려해서 문재익을 해상직에서 육상직의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문재익 선장에게 연락해서 "선사에서 그런다고 그 선사에 도움을 주는 일 따윈 없을 테니, 다시 선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라고 딱 잘라 말했고, 결국 문재익은 선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문재익 본인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문재익 선장이 만취한 상태에서 형 이야기를 하며 그날의 서운함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서야 자기가 모시던 선장이 문재인의 동생이었단 것도 알았다고 한다. #

9.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65,336 (55.04%)
당선 (1위)
초선
2012
14,692,632 (48.02%)
낙선 (2위)
2017
13,423,800 (41.08%)
당선 (1위)

10.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2002 - 2003
16대 대선 노무현 후보 부산 선대위원장
2003 - 2006
청와대 정무직 임명으로 인한 탈당[31]
2006 - 2007
입당[32]
2007 - 2011
청와대 정무직 임명으로 인한 탈당[33][34]
2011
정계 입문
창당
2011 - 2013
합당[35]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36]
2015 -
당명 변경

11. 어록[편집]

사람이 먼저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의 캐치프레이즈[37]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中[38]
저를 키운 건 8할이 가난입니다. 가난과 싸우며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웠습니다. 가난이 고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난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시련을 시련으로 남겨놓지 마십시오. 시련에서 시작해보십시오.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옵니다. 우리가 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공권력이나 국가 권력이라는 말을 쓰는데, 헌법에는 권력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와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나머지는 다 권한에 대한 겁니다. 대통령의 권한, 정부의 권한, 국회의 권한. 국민의 권력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되는 거죠.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174쪽 中
새누리당이 국민의 심판을 모면하고 다시 집권하려면 반드시 저를 밟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역할, 끝까지 충실하게 해낼 것입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6. 12. 02. 출연 인터뷰 중 中
정치는 타협이다. 우리 인생사가 타협이다. 어떻게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만 살 수 있나.
그러나 원칙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시사인 인터뷰, 2016. 12. 27.
세상이 바뀌길 원하는 사람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친노, 친문이다. 이제 새 시대의 첫차는 저의 몫으로, 저의 꿈으로 남았다. 그것이 그 분이 남긴 숙제다.

시사인 인터뷰, 2016. 12. 27.
그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가장 최선의 복수다.

<시사인 인터뷰>, 2016. 12. 27.
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저서 운명
오늘부로 종북의 의미를 새로 규정한다. 군대 피하는 사람들이 종북이다. 방산비리 사범들이 종북이다. 국민을 편갈라서 분열시키는 가짜 보수 세력이 종북이다. 특전사 출신인 저보고 종북이라는 사람들이 진짜 종북이다. #

2016년 12월 26일 국회도서관에서
제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민으로나 당원으로서 언제든지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할수 있습니다. SNS 공간상으로 할수도 있고 또는 문자를 보낼수도 있고.. 그런 일들을 마치 무슨 빠 하면서 폄하 하는것을 보고 저는 늘 미안했습니다. 저는 그러려니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비판하는 글들은 열심히 보게 되지만 욕부터 앞서나와 있으면 그냥 넘겨 버리거든요. 그래서 자기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도 정정당당한 비판을 하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독려하며
착함을 평생 동안 하나의 원칙처럼 유지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히 강한 것이다.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중략)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7차 포럼, 2017. 02. 16.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며,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다.

인터뷰, 2017. 02. 20.
젊은 남녀들 간에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들이고 예전에 난민 문제나 소수자 문제(가 있었던 것 처럼), 늘 갈등이 있기에 마련이죠.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 때문에 지지도가 격차 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신년 기자회견 中 20대 남녀간 지지도 격차가 난다는 질문에 답변, 2019. 1. 10.
'대인춘풍 지기추상’, 자신에겐 엄격하면서 부하들에게선 늘 ‘순진 형님’으로 불린 부하 사랑 모습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이 바라는 참군인의 표상이었습니다. (중략) 조국은 ‘작은 거인’ 이순진 대장이 걸어온 42년 애국의 길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순진 전 합동참모의장 전역시 축사 中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사 中
중국이 법과 덕을 앞세우고 널리 포용하는 것은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입니다.
(중략)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입니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랍니다.
인류에게는 여전히 풀지 못한 두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항구적 평화이고 둘째는 인류 전체의 공영입니다. 저는 중국이 더 많이 다양성을 포용하고 개방과 관용의 중국 정신을 펼쳐갈 때 실현 가능한 꿈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입니다.

2017.12.05. 방중 도중 열린 베이징대 연설 中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입니다.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입니다.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99주년 3.1절 기념사 中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70주기 제주 4.3 사건 추념사 中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함께 선언하였습니다. 긴 세월 동안 분단의 아픔과 서러움 속에서도 끝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남북의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북 모두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판문점 선언 기자회견 中.
노벨상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

이희호 여사의 축전[39]을 받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 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그림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갑시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능라도 경기장,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 中
우리 모두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의 가족입니다.

건군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에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역량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우리는 역경을 오히려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낼 것입니다.

2019년 8월 2일,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열린 제31차 임시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우리 정부는 성장률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기간에 부동산 가격을 잡아 왔고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의 전월세는 과거에는 정말 ‘미친 전월세’라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정부하에서 전월세 가격은 안정돼 있지 않느냐.

2019년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택 공급의 확대도 차질 없이 병행하여 신혼부부와 1인 가구 등 서민 주거의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2020년 1월 7일 신년사
조국 전 장관의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초, 그것만으로도 저는 아주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 (#동아, #한겨레, #YTN)
한국이 ‘코로나’에 아직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하여 일상과 방역이 공존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산발적인 집단 감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외에서 계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대유행이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치료제와 백신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새로운 대유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협력하는 힘은 바이러스가 갖지 못한 인류만의 힘입니다. 코로나는 인류 공동의 가치인 ‘자유의 정신’까지 위협하지만, '자유의 정신’에 기반한 ‘연대와 협력’이야말로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2020년 5월 18일, 세계보건총회 초청 연설 중.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합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뜻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략)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美 하원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담은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시민운동은 시민의식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년 6월 8일, 수석 보좌관 회의 모두발언 중.
국민 여러분,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정비되어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을 뽑고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위해 존재하고, 언제나 주권자의 명령에 부응해야 합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이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지금 최고의 민생 과제는 부동산 대책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은 사상 최대로 풍부하고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은 상황에서 정부는 최선을 다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며, 서민들과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2020년 7월 6일 수석보좌관회의
위기 극복을 넘어 위기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정부의 남은 과제입니다.

2021년 5월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

12. 저술 활동[편집]

12.1. 저서[편집]

  •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년 6월 15일 #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13일 #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
  •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17일 #

12.2. 공저[편집]

  •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
  • 공저,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
  • 공저, 《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하다》, 다산북스, 2017년 3월 23일 #

13. 참여 음반[편집]

트랙
곡명
작사
작곡
편곡
01
One Dream One Korea (Original Ver.)
김형석, Zigzagnote

14. 둘러보기[편집]

[1]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는 쓰지 않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까지만 올라온 상태.[2]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해시태그가 많이 붙어 있기도 했으나 당선된 이후에는 해시태그 없이 그냥 사진과 글만 올라오다가 임기가 지나면서 익숙해졌는지 해시태그가 늘고 있다. 하지만 임기 말엽인 2021년 현재는 그냥 대통령의 글을 올리는 소셜미디어의 역할만 하고 있다.[3] 대통령 당선일인 2017년 5월 11일부터 포스트 업데이트가 중단되었다.[4] 충선공파 의안공파 이곡-관북파 33세손 재(在)○ 항렬.[5] 원적은 함경남도 흥남시 운성리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 운성동).[6] (1928~2019) 이모 강병옥은 북한이산가족으로 있으며 상봉 사진이 있다. 2019년 10월 29일 선종.[7]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 특전행정병[8]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영도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신선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아버지 문용형도 천주교도였다.[9]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접한 자리에서 자신의 세례명을 직접 밝혔다.[10] 젊은 시절에는 프로필 기준으로 172cm이었으나 현재는 170cm 정도이다.[11] 전반기에는 기획재정위원회, 후반기에는 국방위원회 소속[12] 문재인, 노무현, 김정길, 이흥록[13] 대한민국 헌법 71조 "대통령이 사고나 궐위가 되었을 경우 60일 이내에 대통령 후임자가 선출되어야 한다"에 의거.[14] 득표수 1,342만 3,800표.[15] 현 남항초등학교[16] 김영삼이 그의 선배이다. 따라서 경남고는 대통령을 두명이나 배출한 학교가 되었다.[17] 종로학원에서 1년 재수해서 1972년에 입학했다.[18] 이 당시 여단장이 전두환 준장이었다.[19] 1995년에 이름을 바꾸어 지금은 법무법인 부산.[20] 2007.3.12 ~ 2008.2.24[21] 봉하마을을 관리하는 재단으로, 봉하재단이라고 불린다.[22] 야4당 공동 선대위였다.[23]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정치 신인 손수조를 꺾고 당선된다. 그의 정치적 지위 등을 고려했을때 싱거운 당선이었다.[24] 당시 이해찬 대표가 지도부 총사퇴로 물러나자 대통령후보 자격으로 대표직을 대행하였다.[25] 새정치민주연합손혜원 당시 홍보위원장 주도하에 당명을 절차에 따라 바꾼 것이기에 자동으로 첫 대표가 되었다.[26]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7월 인도에 국빈 방문 당시 밝힌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그 전 달인 6월에 해외 이주를 한 상태이기에 더 이상 강사가 아니었다.[27] 문다혜 부부의 아들인 서모 군의 ‘학적변동 관련 서류’에는 2018년 7월 10일 서울 구기동 빌라를 매각한 후 같은 달 11일 서 군의 초등학교에 학적 변동 관련 서류를 낸 것으로 되어 있다. [28]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파일:문재인 일가 족보.png[29] 역대 대통령 후보들 중 득표수 2위다. 이전의 1위였던 노무현의 기록까지 넘은 득표수였으며,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라는 타이틀도 겸하고 있다.[30]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 중 득표수 3위였다. 역대 대선에서 2위와의 최대 표차로 당선(557만 951표)되었다. 2위는 17대 대선의 이명박 대통령의 531만7,708표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 후보 득표수 1위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2위는 18대 대선 문재인 본인이다. 2, 3위를 모두 갖고 있는 셈인 것이다.[31] 청와대 비서관은 당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임명 이후 탈당했다.[32] 2007년 기준 당적 보유 기사 민정수석 퇴임 이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탈당 이후에도 당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보좌관(특보)은 청와대 정무직이 아니기 때문에 당적 보유가 가능하다.[33]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임명되면서 다시 탈당했다.[34] 다만 대통령비서실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당적을 가지는 일은 없었는데 이건 당시 민주당 계열이 18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면서 반노세력이 새 주류가 되었기 때문.[35] 민주당과 신설 합당[36]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7]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선거 구호를 넘어 정치인 문재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되었다. 오죽하면 어린 아이들이 "사람이 먼저다 해주세요."라고 할까. 이름은 모르는데 이 말은 아는 경우도 있다.[38] "사람이 먼저다."와 함께 정치인 문재인의 가장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 거의 쓰이지 않는 "사람이 먼저다."와 달리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39] "노벨상 타시라."

대한민국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