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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의 역임 직책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리오넬 메시
(2011~ )
현직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리오넬 메시
(2018~2021)
리오넬 메시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2010 · 2011 · 2012 · 2015
2009 · 2019 · 2021
2009 · 2011 · 2012 · 2015 · 2019
파일:골든볼.png
FIFA 월드컵 골든볼 2014
베스트팀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2007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카카
2위
리오넬 메시
2008 FI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16 FI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17 FI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20 FIFA 올해의 선수
3위
리오넬 메시
2021 FI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07 Ballond'or
수상
카카
3위
리오넬 메시
2008 Ballond'or
2위
리오넬 메시
2013 FIFA Ballond'or
2위
리오넬 메시
2014 FIFA Ballond'or
2위
리오넬 메시
2016 Ballond'or
2위
리오넬 메시
2017 Ballond'or
2위
리오넬 메시
2011-12 UE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12-13 UE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16-17 UE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18-19 UEFA 올해의 선수
2위
리오넬 메시
2008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리오넬 메시
2016-17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리오넬 메시
2018-19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리오넬 메시
2020-21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07
수상
카카
2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08
2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10
2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13
2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14
3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16
2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17
2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20
3위
리오넬 메시
Player of the Year 2021
2위
리오넬 메시
2011 FIFA 푸스카스상
2위
리오넬 메시
2015 FIFA 푸스카스상
2위
리오넬 메시

2021 코파 아메리카 MVP
리오넬 메시
리오넬 메시의 기타 정보



파리 생제르맹 FC No. 30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본명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 쿠치티니
Lionel Andrés Messi Cuccittini
출생
국적
신체[2]
170cm / 체중 72kg
포지션
주발
왼발
유스클럽
CA 그란돌리 (1992~1995)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5~2000)
FC 바르셀로나 (2000~2003)
프로클럽
FC 바르셀로나 C[4] (2003~2004)
FC 바르셀로나 B (2004~2005)
FC 바르셀로나 (2004~2021)
파리 생제르맹 FC (2021~ )
국가대표
통산득점
772골[6]
SNS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가족
배우자
안토넬라 로쿠소(1988년 2월 26일)

아들
티아고 메시(2012년 11월 2일)
마테오 메시(2015년 9월 11일)
치로 메시(2018년 3월 10일)
등번호
서명
종교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Andrea)
후원사
파일:아디다스 로고.svg 아디다스 (X 스피드플로우 메시)
앰버서더

1. 개요2. 생애3. 플레이 스타일4. 평가5. 기록6. 별명7. 논란 및 사건 사고8. 기타
8.1. 개인사 및 사생활8.2. 친분8.3. 대중문화 속의 메시8.4. 아르헨티나에서의 위상8.5. 여담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유년기[편집]

1987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12]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후손이 가장 많은 아르헨티나[13]에서 리오넬 메시 역시 혈통적으로 주로 이탈리아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이었던 증조할아버지 안젤로 메시(1866년생)가 189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면서 집안이 아르헨티나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는 철강 노동자였다. 어머니 셀리아 마리아 쿠치티니도 주로 이탈리아계 후손이며 파트타임 청소부로 일했다. 아버지가 지역의 클럽인 글란돌리의 코치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와 가까워졌고 글란돌리의 클럽에 가입해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시기는 네 살 때라고 한다. 처음으로 축구 경기에 뛰어본 것은 할머니의 권유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지역 유소년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가 우연히 결원인원이 발생하게 되자 이 할머니가 감독에게 대타로 자신의 손자를 써보라고 강권했고 그렇게 투입된 경기에서 메시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14]
[15]
1995년 로사리오를 연고로 하는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에 6살에 입단하였고, 곧 유망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열한 살 때 성장 호르몬 결핍증(GHD)이 있다는 진단을 받으며 시련을 겪는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매달 90 ~ 100 달러의 돈이 필요했고,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의 부모가 감당하기에는 큰 금액이었다. 소속팀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도 이 금액을 지출하기는 꺼렸다. 일단은 부모가 빚을 내서라도 장애를 치료하고 그가 축구 선수가 될 수 있게 지원하려 했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었다.[16]

2000년 7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FC 바르셀로나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다. 앞서 아르헨티나의 명문 구단 CA 리버 플레이트에서도 그를 초청해 입단 테스트를 치른 바 있었다. 테스트를 진행한 리버 플레이트의 코치는 메시를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로 구단에 보고했고, 입단 테스트를 함께 지켜본 기자는 그를 '새로운 마라도나'로 칭할 정도로 재능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설득해야 한다는 점, 숙식 외에 치료 비용이 고정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끝내 확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메시와 아버지는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 제의에 응해 바르셀로나로 건너갔다. 바르셀로나 측과 메시의 아버지 사이에서 몇 차례 협상이 오간 끝에 메시의 치료비를 모두 부담해 주겠다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덧붙었다.
2014년 메시의 1군 입단 10주년 기념으로 공개된 냅킨 계약서
당시 메시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온 카를레스 렉사흐(Carles Rexach)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17]는 메시의 플레이를 보자마자 매료되어 계약 의사를 타진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13세의 외국 유소년 선수와 계약해 본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메시 측에 계약과 관련한 확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 달이 흐르자 참다 못한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 라며 최후통첩을 보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렉사흐가 냅킨에다가 즉석으로 계약서를 만든 것이다.[18]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이 정도.
FC 바르셀로나, 2000년 12월 14일
구단 내 일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리오넬 메시를 라 마시아로 데려오기로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본인이 지겠다.[19]

-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 렉사흐
바르셀로나와 계약한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팀, 이른바 '라 마시아'에 입단했으며, 가족들도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한다. 바르셀로나는 당시에 이러한 결정으로부터 어떠한 혜택을 받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유망주고 잘 키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메시가 축구계에서 '신'의 클래스에 도달했으니 바르셀로나는 최고의 혜택을 누렸다.[20]

2.2. 클럽 경력[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국가대표 경력[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21세기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펠레, 마라도나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으며, 각종 축구 언론매체가 선정하는 역대 선수 랭킹에서 TOP 3에는 거의 고정적으로 포함된다.[21]

만 20세 때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후보에 올랐고, 22세의 어린 나이에 최다 득표로 2009 발롱도르와 2009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009 발롱도르와 2010, 2011, 2012 FIFA 발롱도르를 연속으로 수상하며 커리어가 다 완성되기도 전인 20대 중반 즈음에 이미 펠레, 마라도나와 비견되는 퍼포먼스와 임팩트를 보여주었고, 현 축구계에서 무려 10년 넘게 정상에서 군림하고 있다.[22]

드리블, 연계, 시야, 숏패스, 롱패스, 플레이메이킹, 골 결정력, 중거리, 프리킥 등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부문의 능력치에서 각각 역대 최고를 논할 수준이다. 축구 역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한 선수가 이렇게 공격의 모든 역할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사례는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전술의 발전으로 단 한 명의 천재에 의존하는 축구가 점차 사장되었고 과거에 비해 전세계적인 경쟁의 수준이 말도 안되게 치열해진 현대 축구에서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메시는 위와 같은 추세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거의 모든 작업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호날두, 레반도프스키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득점력을 갖춘 선수가 네이마르, 에덴 아자르보다 뛰어난 드리블을 하며 전성기 외질, 더 브라위너를 상회하는 숫자의 킬패스와 찬스메이킹을 했던 것이다. 앞서 언급된 선수들 모두 현시대에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선수들임을 생각해보면, 메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보여줬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메시가 처음부터 위에서 언급한 모든 기량을 갖추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데뷔 직후부터 08/09시즌까지는 파괴적인 드리블과 준수한 득점력을 지닌 윙어였으며, 08/09시즌 과르디올라의 지도 하에 득점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11/12시즌과 12/13시즌에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차비 에르난데스가 주전 엔트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14/15시즌부터는 3선까지 내려와서 플레이메이킹에 관여하는 비율이 늘어났으며, 본래 가지고있었던 킬패스 능력과 프리킥 능력이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들을 경기장 내에서 구현하는 스피드[23]와 민첩성, 킥력[24], 완벽한 신체 밸런스, 수비수와의 경합에서도 밀리지 않는 몸싸움 등 피지컬적인 능력과[25]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수읽기, 심리전, 넓은 시야, 문전 앞에서의 차분함 등 멘탈적 능력도 모두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다. 한마디로 축구라는 종목에서 공격수로서 가장 완전체에 근접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축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선수.

위 그래프는 18-19 시즌 메시의 솔로골을 나타내는 표로서 제일 높은 수치를 기록중이며, 득점뿐 아니라 드리블, 쓰루패스,평점, 맨 오브 더 매치(MVP)[26] 및 기타 세부지표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4년 연속 득점왕,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득점왕 6회,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우승, 단일 시즌 최다 골[27], 단일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28], 한 해 최다 골[29], 라리가 통산 득점 1위, 라리가 통산 어시스트 1위, 발롱도르 4회 연속 수상, 발롱도르 역대 최다 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 2회 수상, 월드컵 4경기 연속 맨 오브 더 매치, 단일 클럽 최다골 등 무시무시한 기록 브레이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메시의 가장 큰 장점은 무려 10년 이상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고 있는 꾸준함이지만 단일 시즌 임팩트로도 역사에 남을만한 압도적인 시즌들을 보냈다. 다시 말해 웬만한 월드클래스 공격수의 커리어하이 이상급 시즌을 10시즌 넘게 보내고 있다.[30]

2008-09 시즌, 레이카르트의 뒤를 이어 부임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 시즌의 부진과 해이해진 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팀 전체적인 전방위적 개혁을 실시했다. 기존 팀의 주축이었던 호나우지뉴데쿠를 내보내고 이미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하던 메시차비 에르난데스, 이니에스타, 부스케츠의 미드필더 라인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했다. 그리고 이것은 최고의 결과로 이어져, 이 시즌 바르셀로나는 라리가, 코파델레이,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트레블을 기록했고 더 나아가 2009년에 축구 역사상 최초의 6관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물론 메시 개인으로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는데, 이 시즌 챔피언스리그 12경기 9골로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라리가에선 31경기 23골 11도움을 기록하였다.

커리어 전체에서 최고의 시즌으로 평가받으며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2010-11 시즌에는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거론되는 10-11 바르셀로나를 이끌며 축구 역사상 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시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010년 초반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완성시킨 티키타카 전술로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미드필더진 부스케츠-차비-이니에스타의 패싱 능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이러한 전략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유율 축구에서도 미친듯한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메시의 개인 기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수많은 팀이 2010년 초중반의 바르셀로나를 따라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리오넬 메시라는 독보적인 존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31]

2011-12 시즌에는 무려 73골 29어시스트라는 경악스러운 스탯을 기록하여 유럽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공격포인트 100개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2012년 5월 6일, 라리가 37라운드 에스파뇰전에서 4골을 터뜨리며 라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50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펠레의 75골 기록과 게르트 뮐러가 세운 한해 최다 골 기록인 85골을 뛰어넘어 2012년 한 해 동안 무려 91골을 터트리며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2014년 조국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며 골든볼을 수상하였음에도 메시의 이름값에 걸맞는 국가대표 활약상이 좋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2021년 남미 최대의 국제 대회인 코파 아메리카에서 베테랑 반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득점왕, 도움왕, MVP를 모두 싹쓸이 하고 조국을 우승시키면서 이런 말은 줄어들었다.

2014-15 시즌에는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여 2008-09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트레블을 달성했고, 한 팀에서 두 번의 트레블을 달성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챔피언스리그 득점왕과 도움왕, 라리가 도움왕을 차지하였고, 2014-15 시즌 57경기 58골 2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해 메시는 라리가 최우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 등 각종 상들을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15년 본인의 5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17-18 시즌과 2018-19 시즌에는 네이마르의 빈자리까지 메꾸며 2년 연속 라리가 우승, 라리가 득점왕, 라리가 MVP를 달성하며 라리가에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이 시기 계속되는 챔피언스리그 부진으로 팀 전체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32] 그러나 한 팀을 상징하는 선수이자 에이스인 위치에서 클럽의 챔피언스리그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팀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메시라는 한명의 선수에게만 이러한 책임을 과도하게 돌리는 것은 부당한 평가이다.[33] 2016-17시즌 이후 바르셀로나는 주전들의 노쇠화로 인한 팀 기동력 하락, 중원 장악력 하락, 수비 불안 등의 문제로 선수단과 구단의 이름값에 비해서 실제 전력은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34] 이러한 상황에서도 메시는 거의 매경기를 캐리하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 골든슈, 발롱도르 등 수많은 개인상을 휩쓸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20-21시즌에는 앙투안 그리즈만, 프랭키 더용 등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이 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이전보다 메시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많이 줄어든 상태지만, 아직까지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서 메시가 차지하는 지분은 엄청나다.

현재 삼십대 중반이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 영향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득점, 전반적인 플레이메이킹 등 많은 역할을 담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기량을 계속해서 유지한 덕분에 34세의 나이에 오랜 한이었던 국가대표 우승과 7번째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5. 기록[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기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별명[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별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편집]

8.1. 개인사 및 사생활[편집]

가족으로는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Jorge Horacio Messi), 어머니 셀리아 마리아 쿠치티니(Celia Cuccittini), 형 로드리고, 마티아스, 여동생 마리아 솔이 있다. 사촌 형제로는 막시 비안쿠치와 엠마누엘 비안쿠치가 있는데 이들도 프로 축구선수이다.

아내는 안토넬라 로쿠소(Antonella Roccuzzo)이며, 자식은 티아고(Thiago, 2012년 11월 2일생), 마테오(Mateo, 2015년 9월 11일생), 치로(Ciro, 2018년생)가 있다.

메시가 골을 넣으면 팀 동료와 껴안고 서로 축하를 한 뒤, 두 손을 하늘로 가리키는 셀레브레이션을 따로 하는데, 이것은 돌아가신 할머니 로사 마리아 페레스를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메시를 돌본 사람이 할머니라 애틋한 감정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 할머니는 메시를 돌보는 일 외에 엄청난 일을 하셨는데, 형들이 동네 축구팀에서 축구하는 것을 보기만 하던 메시가 할머니의 권유로 처음 축구 팀에서 축구 경기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었다고 한다.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서 메시가 어린 시절 축구하는 모습을 찍은 흐린 화질의 영상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찍은 사람이 메시의 할머니라고 한다.

파일:MessiBojan.jpg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뛰다 AS 로마를 거쳐 스토크 시티로 이적한 보얀 크르키치와 십촌[35] 친척 관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시의 할머니의 할아버지와 보얀의 어머니의 증조부가 형제였다. '최연소 메시'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았지만 성인 무대에선 항상 메시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남이나 다름없는 먼 친척 관계였던 만큼 당사자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메시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 때 메시는 가브리엘 에인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메시의 이런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에인세가 메시를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건방진 후배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인세가 메시의 성격을 알고 난 이후에는 메시와 화해하고 오히려 메시와 친분이 생겼다. 또한 메시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메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도 메시의 코멘트는 언제나 짧으며, 가능한 책잡힐 만한 발언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인 세스크 파브레가스제라르 피케 역시 유스 시절부터 넘사벽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벙어리인 줄 오해할 정도로 말이 없었고 이탈리아의 한 대회에서 우승한 후부터 친밀한 사이가 됐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다만 아르다 투란이나 제라르 피케 등 가까운 동료들 말로는 영리해서 꽤나 재미있는 농담을 구사한다고 한다. 거기다 어린 시절 일화 등을 보면 매우 신중하고 침착한 성품이지만 축구 실력으로 도발당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승부욕과 근성은 아주 강한 선수다. 경기장에서도 이런 성격은 자주 드러나는 편이다.

실제로 라리가 2016-17 시즌 발렌시아 CF와의 원정 경기에서 메시가 페널티 킥을 넣고 극적인 역전을 하고, 분노한 발렌시아 팬이 물병을 투척해 네이마르 주니오르가 맞자, 그들에게 욕설을 한다던가 2018 러시아 월드컵 A매치에서 브라질에게 3 : 0으로 진 뒤, 인터뷰에서 X같은 상황 변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등 축구 경기와 관련이 되어있으면 전형적인 공격수답게 한 성깔 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지의 일부 안티팬들에게는 별의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고 까일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오히려 애국심이 매우 강한 선수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말렸는데도 끝까지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여 우승을 차지했고[36]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MVP를 차지했음에도 우승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MVP 자리까지 거절해버렸다. 인터뷰에서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대해 유난히 감정적이다. 평소 감정 표현을 크게 드러내고 하는 선수가 아님에도 불구,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성공으로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는 모습이나 결승전을 앞두고 트로피를 간절히 쳐다보는 모습 등은 팬이 아닌 사람이 봐도 짠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자신이 축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 그저 축구가 즐겁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자주 한다. 특히 "축구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은퇴하겠다"는 말은 메시가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하고 있는 발언으로 일종의 신조라고 봐도 될듯 하다. 한준 기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시상식 뒷풀이에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축구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팀의 승리를 위해서도 있지만 축구가 가장 즐겁기 때문이며 훈련부터 경기까지 모든 순간이 가장 재미있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어시스트를 많이 하는 것은 물론 PK 양보까지 곧잘 해주는 모습 덕에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다르게 공격수임에도 개인적인 골 욕심은 많지 않은 이타적인 선수로 여겨지는 편이지만[37] 경기 욕심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8] 메시는 이에 대해 “선발 출전해서 교체되는 것을 싫어한다. 차라리 벤치에 있다가 투입되는 것이 낫다."고 발언했는 데 이유는 마지막 순간에 경기의 판도가 뒤바뀔 때가 많고 그런 즐거운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라고 한다.

메시 자신이 존경한다고 밝힌 우상은 파블로 아이마르다. 실제로 둘이 경기에서 만났을 때 아이마르를 바라보는 메시의 눈빛을 보면 그야말로 덕심이 뚝뚝 떨어진다.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당시 월드컵의 여파로 지쳐 있었고 호날두에게 수상을 내주었던 2014 발롱도르 시상식 당시 주최측에서, 메시의 아이돌인 아이마르가 메시 본인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여기서 아이마르는 메시에게 "아직도 어린시절에 축구를 즐겼던 것처럼 축구를 하는게 즐겁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상술했다시피 메시는 "어린 시절처럼 축구가 즐겁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바로 은퇴할 것이다"라는 말을 신조처럼 삼아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해왔기 때문에 메시 입장에선 굉장히 의미있는 질문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당시 메시의 상황이 슬럼프가 온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좋지 못했는데[39]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이 영상편지를 본 이후 메시는 불화설과 갈등을 봉합하고 충공깽급 활약을 펼치며 트레블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팬들 사이에선 우상인 아이마르의 편지가 메시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마르 이외에도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존경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 매체 'TyC스포츠' 를 통해 다른 선수에게 유니폼 교환을 요청하지 않지만 딱 한번, 막 대뷔했던 선수생활 초기에 적극적으로 교환을 요청한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그 선수가 바로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상대팀의 아르헨티나 선수가 있을때만 요청하고 그외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워낙 교환요청을 많이 받는 지라 유니폼 컬렉션이 장난아니다.유니폼 컬렉션

영어권 리그에선 뛰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영어를 하지 못한다.[40] 카탈루냐어는 알아들을 수는 있다고 하는데 말하는 모습은 거의 보여진 적이 없다. 현지인들 앞이라 그런지 부끄러워서 웬만하면 말할 땐 사용하진 않는다고 한다.[41]

보유한 자동차는 20대가 넘지만 상당수는 협찬받은 것이며, 정작 자동차에는 별 흥미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차량에서 가장 아끼는 게 아우디 차량이라고 인터뷰했다. 그중에는 중국의 체리 모터스[42]로부터 여러 대를 협찬받았으나 그 역시 죄다 차고에 두고 안 탄다고 한다. 이를 두고 체리 측이 무척 섭섭해했지만 다른 업체에게 받은 차량도 마찬가지이고 메시 본인이 차량은 별 흥미가 없어 뭐라고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메시의 팀 공헌도를 생각해보면 스포츠카를 몰고 나와서 할 일이 팀 훈련을 하러 가는 것뿐이라 불쌍하다는 팬들도 있다.

메시가 축구 외에 흥미 있어 하는 것은 게임으로, 평상시엔 축구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하는데, 파브레가스는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관련지어, 어린 시절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었으면 친해질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케의 말에 따르면 매일 게임을 할 정도의 게임 덕후에다 실제로 바르사 선수들 중에서도 게임을 제일 잘한다고 한다. 평소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때도 물론 바르사나 아르헨티나 선수들로 플레이하며 경기에서 지면 굉장히 화가 나고 그럴 때면 그냥 조용히 로그아웃을 한다고. 아들 티아고와 게임을 같이 하는 모습이 SNS에 올라오기도 한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걸 볼 바에 자신이 그냥 축구 경기를 뛰겠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한데, 아내인 안토넬라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하며 그 시간에 아들 티아고와 같이 만화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없을 때 틈타 보고 싶은 축구 경기를 몰아서 본다고. 여기서도 메시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의외로 미신을 상당히 믿는 것 같다. 한창 국대에서의 불운이 계속되던 2016년 쯤부터 선수 생활 최초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나오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전체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메시의 수염을 일종의 행운의 부적으로 믿고 있어서 우승 트로피를 들기 위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나 뭐라나. 만약 턱수염을 밀면 동료들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정작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메시가 면도를 했을 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2021년 들어서는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지 않고 적당히 남기거나 예전처럼 아예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43]
기자가 선물한 리본을 보여주는 메시
행운의 부적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러시아 월드컵 당시 아이슬란드 전의 PK 실축으로 온갖 욕을 다 들어먹고 풀이 죽은 채 인터뷰를 하러 이동하던 메시에게 한 기자가 접근했다. 이 기자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도 메시를 더 좋아할 정도로 메시의 광팬이었는 데, 메시를 위해서 빨간색의 리본을 손수 만든 다음 스포츠 기자인 아들에게 혹시 메시를 인터뷰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것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기자는 이런 사연을 말하면서 메시에게 이 행운의 리본을 선물했다. 다음 나이지리아 전에선 메시가 골도 넣고 아르헨티나도 승리를 챙기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는 데 똑같은 기자가 다시 메시에게 인터뷰를 하러 가서 별 기대하지 않고 우리 엄마가 준 행운의 부적을 버리진 않았느냐고 물어봤는데 메시가 말없이 양말을 걷어보였다. 기자의 어머니인 팬이 선물한 행운의 부적을 발목에 찬 채로 경기했던 것. 당연히 해당 기자의 반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미담. 이 리본이 어지간히도 소중했는지 월드컵이 끝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발목에 차고 다니는 모습을 보였고, 이적생인 필리페 쿠티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홈팬들에게 온갖 욕을 먹고 주전 경쟁에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 행운을 불러오는 물건이라며 이 리본을 빌려주고 그날 경기에서 PK를 양보해주기도 했다. 국대 후배인 디발라에게도 이 리본을 착용할 것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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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안토넬라 로쿠소(Antonella Roccuzzo)와 동거하다, 2017년 6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메시가 사귄 여자는 본인이 밝힌 바로는 안토넬라를 포함해 세 명이다. 마카레나 레모스라는 모델 여친이 있었는데 2006년부터 2년정도 교제했으나 메시의 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해서 프라이팬으로 때리려고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마카레나가 메시와 사귀기 시작한 시절의 나이는 14세다. 이후 사귀게 된 것은 루시아나 살라사르[44]라는 7살 연상의 아르헨티나 연예인이다. 이쪽은 그리 길게 교제하지는 못했다.

메시 어머니는 메시가 소꿉친구 안토넬라와 사귀게 되자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로쿠소는 뛰어난 외모로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실제로는 대학교에서 영양학을 전공한 일반인 여성이다. 메시보다 한살 연하인 1988년생이자 메시의 친구의 사촌으로서, 6살 무렵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메시가 아르헨티나를 떠나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며 잠시 관계가 서먹해지면서[45] 각자 다른 이성과 교제했었다. 그런데 2007년에 안토넬라의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46] 학교도 가지않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메시가 안토넬라를 위로하려고 아르헨티나로 찾아오면서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메시는 외도를 시도해 본 적조차 없을 정도로 아내와 금슬이 좋고 가정적인 남편으로 유명하며, 최근 레시덴떼라는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아내 안토넬라와 딥키스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평소 이미지가 워낙 범생이 느낌이라 그런지 팬들 사이에선 "충격적이다", "부모님이 검열삭제하는 현장을 목격한 기분"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2021년 메시의 첫 국대 우승 이후 아내와 영상통화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참고로 남편이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22년 3월 기준으로 무려 1894만명이다.

2020년 11월 사이클형 운동기구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아내 로쿠소와 슬하에 3남을 두었다.
장남인 티아고 메시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메시가 유소년 시절을 보낸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계약했다고 한다.

아들바보 메시답게, 옆집 소음으로 티아고가 계속 울음을 터트리자 옆집을 통째로 사 버리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가 쓴 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패했을 때, 메시는 상대팀에게 축하를 전하고 카메라와 팀 동료들 앞에서 의연한 척했지만 아들 티아고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2014년 본인과 클럽의 난조로 인해 힘들었을 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최고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아들 티아고가 유치원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그럴 만도 한 게 티아고가 정말 귀엽다. 메시의 왼발 종아리엔 티아고의 손 모양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무개념 안티팬들이 메시의 집 앞에 찾아와서 "메시는 어디있나? 우리는 메시를 비웃으러 왔다"고 조롱하자 "그럼 난 당신들 부모를 비웃어 주겠어요" 라고 야무지게 응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인 메시의 평가에 따르면 티아고는 축구에 재능이 있지만(!) 본인이 관심이 없다고 한다.

차남 마테오 메시는, 메시 본인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장난꾸러기라고 한다. 티아고가 뭐든지 척척 잘 해내며 장남답게 듬직한 모양이지만, 마테오는 정말 미칠듯한 말썽쟁이라고 한다. 한 일화로, 바르셀로나의 안필드 대참사 이후부터 자기가 이라고 메시를 놀려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임을 할때마다 "하하하! 내가 너네를 이긴 리버풀의 팬이다!!" 라고 하질 않나, 메시가 벌을 주려고 벽에 가서 서 있으라고 했을 때는 "코너킥 빠르게 처리합니다, 오리기!!"라고 말하며 뛰어갔다고 한다. 그 외에도 형인 티아고를 화나게 만들려고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발렌시아 편을 들고, 레알 마드리드가 골을 넣을때마다 일부러 좋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가 부상을 당해서 함께 관중석에서 레알 베티스 전을 관람하는데, 베티스가 골을 넣자 대환호했다. 옆 자리에서 당황한 수아레스의 리액션이 압권이다. 요즘에는 많이 성숙해졌는지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에 눈물의 기자회견을 끝내고 기립박수를 받을 때 치로 혼자 휴대폰을 만지다가 마테오를 보면서 싱글벙글한 채로 방방 뛰자 이를 말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7년 10월 15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한국 시각 3월 10일 오후 11시경 셋째가 태어났다. 성별은 남자아이이고, 이름은 치로(Ciro)다. 치로는 셋중에서 가장 메시와 닮고 잘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메시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맏형인 티아고도 치로를 굉장히 귀여워한다.

형제들끼리 사이가 굉장히 좋은데 티아고가 치로를 안고 놀아주는 모습이나 마테오가 형인 티아고에게 업히려고 뒤에서 안는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아들만 3명인 아들 부자 부부이다 보니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듯 하다.#

20/21 시즌 바르토메우의 패악질에 지쳐 확고하게 이적을 결심한 메시가 포기하고 1년 잔류를 선택한 것 역시 20년 간 몸담은 팀과 법정 싸움까지 갈 수는 없다는 팀 사랑,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하면서 메시의 깊은 부성애를 다시금 확인시켰다. 메시가 이적 결심을 통보했을 때 온 가족이 눈물 바다가 되었는 데 특히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사가 뭔지 확실히 모르는 차남 마테오는 그렇다치고 장남인 티아고는 TV 매체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참이라 바르셀로나에 살고 싶고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며 "가지 말고 남아요. 아빠."라고 울어서 메시를 무너지게 했다고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메시는 어릴 때 라 마시아에 발탁되면서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는 데 이당시 고향에 대한 향수병과 가족, 친구들을 두고 온 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자기 자식들만큼은 절대로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알려진 일화이다. 그러나 보드진의 삽질이 너무 심해지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이적을 시도하려 했으나 차마 자식들의 눈물을 보니 결심이 서지 않았던 모양. 어쨌거나 메시 이적 사가를 잠재운 것은 바르토메우 회장이 아니라 메시의 아들들이 된 셈이다.[47]

2021/22시즌을 앞두고 메시의 재계약이 무산되어 고별식을 겸한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이 때 티아고와 마테오는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치로와는 달리[48] 시무룩한 모습을 보여 많은 꾸레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파일:메시형제 축구입문.jpg

리오넬 메시가 PSG로 이적한 직후 8살인 티아고 메시는 PSG U-10 팀에서 , 5살인 마테오 메시는 U-7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8.2. 친분[편집]

세르히오 아궤로, 앙헬 디마리아 등 아르헨티나 국적 선수들과도 친분이 두터우며 특히 곤살로 이과인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 CF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국적 불문하고 서로 한창 으르렁거리던 시절에도 눈치 보지 않고 경기 전후로 포옹과 뽀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다질 정도로 친한 사이. 20-21시즌 챔스 16강 2차전에서도 경기 종료후 바르셀로나의 탈락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앙헬 디마리아, 마우로 이카르디 등 PSG 소속의 아르헨티나 국대 동료선수들과 친목질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세르히오 아궤로와는 청대 시절부터 친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아궤로와 첫 만남 당시 아궤로가 당시에도 유명인사였던 메시를 못 알아보고 "야, 너 누구냐?"라고 이름을 물어봤다는 일화는 본인들도 방송에서 수시로 언급할 정도로 유명하다. 국대에서도 항상 방을 함께 쓰는 사이이며 최근 아궤로가 운영하는 개인 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아궤로의 생일 날마다 메시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49] 둘이 놀거나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무슨 만담하는 부부 느낌이 날 정도다.[50] 심지어 메시가 자신이 없을 때의 아르헨티나 10번은 ''이라고 못 박으면서 압박감 견딜 수 있겠냐고 아궤로와 함께 농담을 할 정도다.

라 마시아에서도 역대급 세대로 불리우는 87년생 황금라인의 제라르 피케세스크 파브레가스와도 유소년 팀부터 이어진 죽마고우이다. 피케와는 거의 20년 가까이 함께 뛰고 있는 동료이고 이적한 파브레가스와도 휴가 때마다 가족끼리 틈만나면 함께 여행다닐 정도로 친하다.[51] 처음 라 마시아에 들어왔을 당시 혼자만 외국인에다 성격까지 내성적이었던 메시가 적응하지 못할 때 피케와 세스크가 신경써줘서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친하지 않았던 초창기에 피케가 메시를 벙어리인줄 알고 있었던 것과 유소년 시절 이탈리아로 원정경기를 갔을 때 비디오 게임을 계기로 메시의 말문이 트이면서 친해지게 되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 이 친해지게 된 계기도 상당히 코믹한데# 그 때도 장난끼가 많았던 피케가 메시에게 일종의 신고식을 치뤄주겠답시고 몰카를 기획했다고 한다. 당시 룸메이트였던 세스크가 메시를 데리고 나간 틈에 피케가 메시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심지어 침대까지!) 다 끌어내서 숨겨버렸고 방에 돌아온 메시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카메라로 찍었다고 한다. 이후에 몰카라고 공개하고 메시도 슬슬 피케와 세스크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서 친해졌다.

카를레스 푸욜과는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분이 깊으며 푸욜 본인이 메시의 빽을 자처할 정도였다. 엘 클라시코에서 세르히오 라모스가 메시에게 린치를 가하자 푸욜이 빡돌아서 라모스를 꾸짖다가 라모스에게 펀치를 얻어맞기까지 한 사건은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발롱도르 투표 기간이 다가올 때면 푸욜은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의 다른 축구선수들을 다 제치고 메시에게 발롱도르를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인이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이 강한 선수임에도 호나우지뉴 등 아르헨티나와 라이벌 구도에 있는 브라질 선수들과의 친분이 매우 두텁다는 점은 특이한 점이다. 처음 1군으로 올라왔을 때 원래 성격도 내성적인 데다 나이까지 17살로 가장 어린 바람에 어색해 하던 메시를 호나우지뉴와 다른 브라질 선수들이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다른 브라질 선수들도 막내였던 메시를 귀여워해서 많이 챙겨주었고 식사를 할 때 동석을 권유하며 '메시는 이 테이블에 앉아도 되는 유일한 아르헨티나인'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호나우지뉴와의 친분으로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시우비뉴데쿠, 사무엘 에투 등 당시 대부분의 이적생 선수들과 굉장히 친했었다. 시우비뉴는 FA 신분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까지도 락커룸의 다른 선수들에게 메시를 잘 부탁한다고 했을 정도로 메시를 챙겨줬으며 알베스와 메시가 친해진 계기도 시우비뉴 덕분이었다고 한다. 사무엘 에투 역시 메시의 대표 절친 중 한 명인데 메시가 16살이었던 시절부터 보고 지낸 사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메시를 '내 아들(Hijo)'이라고 부른다. 메시가 어렸을 때 에투가 결정적인 조언을 해줘서 도움이 되었다고 하고 지금도 인터뷰에서 친아들만큼 사랑한다는 발언을 수시로 할 정도니 거의 친자식처럼 생각한다.

호나우지뉴와는 서로를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거의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사이였다고 하며 호나우지뉴가 팀을 나가게 된 뒤 올림픽에서 재회하자 경기가 끝난 후 포옹을 하고 라커룸까지 찾아가는 등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음이 보여졌다. 호나우지뉴의 경우 자신의 축구 커리어에서 유일한 후회는 메시와 좀 더 오래 뛰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며 메시와 어린 시절밖에 함께 할 수 없어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할 정도로 우정이 여전하다. 문제는 바르셀로나에서 메시한테 호나우지뉴의 못된 물이 들까 봐 호나우지뉴를 이적시켰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때나 지금이나 메시에게 호나우지뉴는 그야말로 친형과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메시는 호나우지뉴를 자신의 대부로 생각하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더 뛰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발언했다. 메시 - "호나우지뉴는 내 대부, 함께 더 뛰지 못한 것이 아쉬워..."

현재 브라질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팀 동료인 네이마르 역시 메시에게 무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어서 마치 소싯적 지뉴와 메시의 관계를 보는 듯하다는 의견이 많다. MSN 라인이 메인이었던 시절, 수아레즈까지 셋이서 뭉쳐 다니면서 굉장히 친하게 지냈고 세 선수가 사적으로도 친한 것이 플레이 상의 장점으로 나타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공격수로서 케미도 좋은 편이었다. 네이마르와 메시가 마찰을 빚을수 있다는 예상과 반대로 실제로는 네이마르의 적응을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 메시였다고 한다. 네이마르가 이적 초기 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하프타임 때 혼자 울고 있었는데 메시가 다가와서 위로도 해주고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어줬다고 한다. 네이마르가 후일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며 울기까지 했을 정도다. 득점왕 경쟁으로 불이 붙은 시점에서도 네이마르에게 PK를 많이 양보해주기도 하고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소송이 걸려 팀과 마찰을 빚을 당시에도 대놓고 네이마르의 아들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이를 SNS에 올리는 등 네이마르와의 관계는 끝까지 돈독했다. 지금까지도 MSN 3인방만의 왓츠앱 단톡방이 있어 셋이서 대화를 많이 하고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떠날 당시에도 끝까지 네이마르를 잡으려 했고, 떠난 직후에는 수아레즈와 자신이 네이마르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고 어디에서나 행복하길 바란다고 영상 편지를 보내서 네이마르가 감동받기도 했다.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선 마침내 결승전 상대로 만났고 결국 메시가 승리를 거뒀지만 패배한 네이마르가 먼저 메시에게 다가와 부둥켜안고 울거나 세리머니 뒤에도 친목질을 하는 훈훈한 명장면을 만들어내며 두 선수의 진한 우정을 실감하게 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10일자로 메시가 파리 생제르맹 FC로 FA로 이적하면서 다시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메시의 파리 이적 배경에는 네이마르가 파리에 있는 점도 한몫했다.

돈독한 관계를 보이는 또 다른 브라질 선수는 다니 아우베스다. 그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래 과르디올라 시절부터 차비와 함께 팀의 오른쪽 조합을 만들어냈으며 메시에게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제공한 선수이기도 하다. 전성기에서 내려오면서 기량에 많은 비판을 받고 2014-15 시즌 이후 바르셀로나를 떠날 계획도 갖고 있었으나, 트레블 이후 메시의 남아달라는 말에 클럽과 재계약을 체결할 정도. 네이마르와 아우베스 모두 팀을 떠났지만 여전히 메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이렇듯 브라질 선수들과 세대 불문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럽 축구 클럽인 바르셀로나 최고의 레전드인 덕분에[52] 브라질에서의 인기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53] 마라도나와의 라이벌리 떡밥 때문에 종종 메시를 까던 펠레도 네이마르가 메시의 팀 동료가 된 이후로는 덕담도 하고 좋은 평가도 내려 주고 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싫지만 메시는 좋아한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고 심지어 메시가 펠레, 마라도나를 뛰어넘을 거 같냐는 브라질 내 설문조사에서 둘 다 뛰어넘을 거다라는 응답이 거의 50%에 가깝게 나온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예 둘을 넘어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응답이 60%를 넘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마라도나에 대해서는 그렇다 쳐도[54] 펠레브라질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일.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당시엔 일명 아디오스 아저씨가 결승전에서 "메시를 믿는다"는 어구를 써들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 컷이 잡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브라질 여권에 메시를 합성한 사진을 게시하거나 브라질에서 전지훈련을 했을 때 여러 명의 팬들이 훈련장에 난입하여 격한 환영 인사를 해 준 적도 있다. 이때 메시의 구두를 닦아주는 퍼포먼스를 펼친 팬도 있는가 하면 메시의 절친이자 자국의 영웅인 호나우지뉴 코스프레를 하고 들어온 팬도 있는데 이를 본 메시는 빵 터지며 매우 좋아했다.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서도 메시의 국대 우승을 기원하는 일부 브라질 유명인들과 팬들이 결승전에 앞서 아르헨티나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네이마르가 대놓고 자국팬들에게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을 정도로 브라질에서 메시의 인기는 의외로 정말 높다.

한편 전성기 때의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비교가 정말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마라도나 본인도 메시를 아주 아꼈다.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 "1986년(자신의 최전성 시절)의 나보다 메시가 더 뛰어나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메시를 극찬하며 싸고돌았다. 물론 메시 또한 마라도나를 아주 존경하고 찬양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는 두 사람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메시가 뭘 한 건 아니고 마라도나가 방송에 나와서 펠레와 함께 메시가 사람은 참 착한데 소극적인 성격이라 리더의 미덕에 맞지 않다고 뒷담화를 까거나 이후로도 "경기 전에 화장실을 20번이나 가는 선수, 동료와 얘기하는 것보다 비디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선수가 어떻게 좋은 리더인가"라며 메시의 리더쉽이 부족하다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깠기 때문이다. 레전드 선배가 안그래도 국대 부진에 대해 독박으로 욕먹어서 힘들 상황에 비난 여론에 편승해 자국 후배를 조롱하는 그림이 졸렬해 보이기도 하고 메시의 성격에 기반한 주관이 섞인 인신 공격을 했다는 점에서 마라도나의 발언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메시의 사촌이 크게 분개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의 전설 마리오 켐페스 역시 "마라도나 본인도 완벽한 롤모델은 아닌 주제에 누굴 욕하냐"고 꼬집었으며 바르셀로나 동료인 차비 역시 "함께 생활한 동료를 욕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메시는 조용하지만 완벽하고 거친 리더"라고 이를 저격했다. 하여간 이후로도 마라도나가 메시의 소심한 성격을 일방적으로 저격하며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에서 열린 메시의 결혼식에도 마라도나는 초대되지 않았다. 메시 본인이 이에 대해 대응한 적은 없지만 아르헨티나 코치진인 로베르토 아얄라 등 국가대표 관계자들이 메시가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논다거나 하는 건 어릴 때 얘기고 요즘은 어린 선수들한테도 먼저 다가가고 사교적인 리더가 되었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별개로 마라도나가 사망한 후, 메시는 마라도나를 추모하는 골 세레모니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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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절친은 루이스 수아레스로 아마도 팀에서 가장 친한 동료일 듯 하다. 평소 사진을 보면 라 마시아 시절부터 친구였던 제라르 피케나 국대 동료인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제쳐두고 수아레스와 가장 많이 붙어 다녔다는 걸 알수 있다. 메시가 네이마르 주니오르, 수아레스와 친하게 지내며 공격진의 케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바인데, 특히 수아레스와 메시의 경우 둘 다 애 아빠들이다 보니 아침에 둘이서 같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사진들이 종종 찍히곤 한다. 네이마르도 전여친과의 아들 한명이 있고 교육 문제로 아이를 바르셀로나로 데려왔지만 직접 키우지는 않아선지 여기엔 끼지 않는다. 심지어 수아레스 가족이 메시 부부의 신혼여행까지 따라갔다. 2020년 8월, 19-20시즌을 무관으로 마친 뒤 바르셀로나의 새 감독이 된 쿠만이 수아레스를 예의없이 내치자 바르토메우 회장에게 6년간 꾹꾹 참던 메시가 폭발해서 이적 요청을 했다.

8.3. 대중문화 속의 메시[편집]

메시가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이전 시대의 축구 스타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라면 바로 유튜브 시대의 축구 스타라는 점이다. 그가 경기를 뛰고 나면 수 시간 안에 해당 경기에서 메시가 볼터치를 한 장면만 모은 영상들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유명 축구 유튜버들이라면 한 번쯤은 메시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플레이 장면을 모은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유명 축구 해설자인 '레이 허드슨(Ray Hudson)'이 메시의 플레이에 경악하는 반응을 모은 컴필레이션 영상들도 있을 정도다. 축구 선수들을 평가할 때 이른바 '현역 버프'라는 것이 있어서, 평가 대상이 되는 선수가 은퇴를 하면 버프가 사라지고 현역 때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게 된다는 시각이 있는데,[55] 메시의 경우 남아있는 영상 자체가 너무 많아서 은퇴 후에도 현역 때 받는 찬사를 그대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반박도 있다.

여느 스포츠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품들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나이키의 스폰서십을 받았지만, 현재는 아디다스의 스폰서십을 받고 있다. 원래 축구 분야 메인 모델이었던 히카르두 카카가 기량 하락으로 슈퍼스타의 지위를 잃자, 메인 모델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착용하는 축구화는 원래 '아디제로 F50'이었으나, 현재는 아디다스에서 '메시 15.1'이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모델을 출시한 상태다. 아디다스 모델로서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반영한 Impossible Is Nothing 광고와 There Will Be Haters 광고가 유명한 편이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꼬마팬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개인기 대결을 펼치는 항공사 CF가 재치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 외에 호날두와 문자로 키배를 뜨는 CF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웃기는 CF는 일본 '앙파' 사의 스칼프D 세안제 광고. 임팩트 있는 대사[56]덕에 빵터졌다는 평가가 많다. 메시 기모찌~ 한국에서는 몬데그린 자막 버전이 유행하기도 했고 웹툰 작가 와싯에 의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해당 CF는 정확히 메시가 25세였던 2012년에 찍은 CM으로, 공교롭게도 이 세안제 회사도 1987년에 설립되어 25주년이 되었던 상황이라, 메시와는 동갑내기인 회사이다. 이 회사는 샴푸 모델로는 네이마르출연시키기도 했다. 메시는 이 회사와의 인연을 깊게 생각했는지, 2018년에 다시 한번 이 회사의 샴푸 광고를 촬영했었다. 그리고 다단계 판매 건강식품 회사 허벌라이프의 전속모델이기도 했다. 멘트는 "오늘도 셰이크 하셨어요?" 여담으로 리오넬 메시 다음 허벌라이프 광고 모델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다.

2015년 1월 1일 그의 축구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스페인에서 개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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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게임에서는 운용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인데, 게임 특성상 피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기술적인 능력치를 온전히 뽑기 위해서는 플레이어의 섬세한 컨트롤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메시 역시 피파나 FM 등의 축구게임에서 항상 최고 능력치를 부여받는 선수답게 잘만 사용하면 무지막지하게 강력하다.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도 바르셀로나를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주적. 선수들 중에서 제일 높은 포텐셜 199-200을 찍는다. 2011에서는 많이 하향돼서 스탯은 찍지 못하는데[57] 평균 평점이 높아 항상 발롱도르를 독점한다. FM 2012에서도 사기캐인 건 여전하다. 최신작 FM 2019에서는 현실 반영으로 타고난 체력과 지구력이 낮은 편이어서 체력 관리를 잘 해줘야 한다.

8.4. 아르헨티나에서의 위상[편집]

리오넬 메시는 신이 아르헨티나에 보내준 선물 같은 존재다.

리오넬 메시는 항상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제 53대 대통령(上)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제 54대 대통령(下).
농구의 지노빌리, 테니스의 델 포트로, 유도의 폴라 파레토, 여자 하키의 루시아나 아이마르, 축구의 메시와 마라도나, 이들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선수이다. 그러나 인기에서는 아무도 마지막 2명을 능가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현지인 Mateo Meula #
  • 2016년 6월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는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했고 아르헨티나는 칠레에게 패한다. 경기가 끝난 후 리오넬 메시는 갑작스럽게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고 이는 아르헨티나 전역에 큰 충격을 준다. 리오넬 메시의 은퇴를 만류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국민들, 전설적인 축구선수 마라도나, 대통령, 시장 등 모두가 나서 리오넬 메시의 은퇴를 만류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항, 시장, 교통 등 온 나라가 "No te vayas Lio"(메시 떠나지 마)로 도배가 되고 시위까지 확산됐다. 리오넬 메시의 은퇴 만류는 온라인도 마찬가지였다. 리오넬 메시에게 '떠나지마라'는 제목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수백만명이 서명까지 했다. 이러한 너무나도 큰 파장에 리오넬 메시는 국가대표 복귀를 결정했다.

8.5. 여담[편집]

  • 해외에서의 별명은 본명 Lionel의 애칭인 LEO(레오). 팬들 뿐만 아니라 지인들도 전부 메시를 부를 때는 백이면 백 이렇게 부르는데, 심지어 스페인은 그의 이름 표기도 Leo Messi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신의 인스타 계정 역시 @leomessi 이다.
  • 축구 전문지 '월드 사커'에서 전 세계 축구 전문기자 74명의 투표를 받아 역대 베스트 11을 선정했는데, 현역 선수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 축구잡지 포포투에 메시 할머니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는데, 어린 시절 메시가 축구를 잘 하게 된 이유는 바로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는 과자를 제일 좋아했다고 하는데, 경기를 하기 전에 할머니가 넣은 골의 수만큼 그 달콤한 과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더니니 12골을 넣고 와버려서 정말 배터지게 과자를 만들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 삼중국적 취득자이며[58]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국적 문제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FIFA에서는 다중국적 선수가 일생에 1번 제1국적을 고칠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 스페인 축구 협회에서 국가 대표팀의 보강을 위해 메시에게 스페인 대표팀에 들어오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지만, 메시는 자신의 병마를 해결해 준 스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한다.
  • 외모가 많이 바뀐 편이다. 바르사 유스팀 때부터 2005/06시즌 까지는 머리를 뒤통수 정도로만 기르다가, 2006/07시즌과 2007/08시즌에는 호나우지뉴처럼 머리를 길게 기른 후 머리띠를 하고 다녔다. 그 후 2008/09시즌부터 머리를 다시 뒤통수 정도로 기르고 다니다가, 2012년부터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군것질을 끊고 아이가 생기면서 살도 많이 빠졌는데, 대체로 2012년부터 2016년까지가 메시 외모의 전성기로 꼽힌다. 2015년 중반기에는 왼팔 반쪽을 문신으로 채우면서 모범생 이미지를 벗었다. 그후 2015년 코파 아메리카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우승을 놓친 것에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2016/17 시즌에는 수염을 길게 기르고 노란색으로 염색을 한 충격적인 비주얼로 등장했다. 이후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2017/18시즌부터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짧게 자른 지금 메시의 모습이 되었다.
  • 챔피언스 리그에서 어지간한 강팀들(리버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 아스날,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모두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첼시를 상대로는 골이 없었지만 17-18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드디어 9경기만에 마수걸이 골을 넣었고, 2차전에선 2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첼시전 징크스를 완전히 깨부쉈다. 이전에도 골만 없었지 데뷔 초기 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는 아주 탈탈 털었다. 오직 골만 못 넣었을 뿐 이 경기 첼시의 왼쪽 수비수였던 델 오르노를 퇴장시키는 데 한 몫 하고, 로번의 협력수비도 가뿐이 넘어가면서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었다. 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드디어 PK로 넣나 싶더니 골대를 맞히는 등 첼시 전에서는 유독 불운했던 선수였다.[62] 한 동안 AC 밀란 상대로 필드골이 없어서 챔스에서 이탈리아 세리에 팀들을 상대로 골을 못넣는 징크스가 있다며 12/13 시즌 밀란전 1차전에서 2:0 패배 후 드세기로 소문난 이탈리아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이에 독을 품은 듯 그 징크스 반드시 깨겠다고 다짐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보란듯이 경기시작 5분만에 선제골과 추가골까지 터뜨려 4:0 대승에 일조하며 언론들을 데꿀멍시키고 세리에 징크스 이야기는 쏙 들어가게 되었다. 더구나 집계를 해 보니 밀란이 유럽 대항전에서 메시에게 가장 많은 실점을 한 클럽이다. 인테르리버풀에게도 득점이 없지만 인테르와는 한번 만났을 뿐이었고, 리버풀은 메시가 발롱도르급으로 올라선 이후[63]엔 한동안 챔스 진출도 어렵게 된 상황이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9년 5월 2일 캄 노우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챔스 4강 1차전에서 2골을 넣어서 월드 클래스가 무엇인지 보여주기는 했다. 2차전에서 안필드의 기적(2019년)이 터지고 메시 본인도 무득점으로 묶이면서 결과적으로는 새드 엔딩으로 끝났지만. 2019년까진 도르트문트한테도 골이 없었지만, 그건 스페인팀을 많이 만나는 도르트문트가 [64] 이상하게 바르셀로나랑 붙는 경우가 없어서 그런 것으로 2019/20 조별리그에서 만나서는 홈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 축구 선수들 중에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 2010년 최다 수입 축구선수 랭킹에서 3100만 유로(연봉 1000만 유로[65] + 보너스 100만 유로 + 기타 수입 2000만 유로)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통계에서도 최다 수입 축구선수 랭킹 1위를 차지하며 2위인 호날두랑 120억 가까운 차이를 벌렸다. 하지만 2017년 중국 슈퍼 리그상하이 선화카를로스 테베스를 영입하면서 이 기록이 깨졌다. # 이후 2018년에는 호날두보다 약 300만 달러를 더 받으면서 모든 스포츠 선수 중 수입 2위를, 2019년도에는 호날두보다 약 1,800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면서 모든 스포츠 선수 중 수입 1위를 차지했다. 링크 1 링크 2
  • 세계적인 명성을 가졌음에도 유명 에이전트를 따로 두지 않았으며, 메시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아들의 에이전트 일 업무를 맡고 있다. 바르셀로나와의 협상 자리에는 늘 아버지가 에이전트 자격으로 동행해왔다.
  • 스폰받는 업체에게 충실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디다스가 스폰해 줄 때는 주야장천 아디다스만 입더니, 돌체 앤 가바나가 스폰서를 해주자 돌체 앤 가바나 옷을 많이 입는다. 그냥 패션에 크게 관심은 없고, 그저 시기마다 들어오는 옷만 입는 것 같다. 맨유 시절의 호날두처럼 패션에 신경을 쓴답시고 괴상한 차림을 하고 다니느니 그냥 얌전히 스폰 들어오는 옷을 입는 게 낫기도 하다.
  • 국가대표 감독인 리오넬 스칼로니와는 상당히 끈끈한 친분을 자랑한다. 일단 이름이 둘 다 동일한 리오넬이고, 선수와 감독이기 이전에 둘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 호세 페케르만 밑에서 똑같은 선수로서 같이 뛴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 친한 형님이 이번에는 감독으로 부임해오자 메시는 매우 반가워했다.
  • 파일:날두야.jpg
    한국 한정으로 메시가 호날두를 놀리는 이미지가 생겼는데, 통칭 '좆두야'. 짤방도 그냥 평범한 사진이지만 묘하게 비웃는것같은 인상으로 널리 쓰인다. '메좆아'라는 제목의 호날두가 묘한 웃음을 짓는 사진도 있으며 그 둘을 번갈아서 움짤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있다.
  • 2010년 8월 FC 바르셀로나의 방한과 관련해서 폭풍같이 까였었다. 정확히 말하면 메시만이 아니라 바르셀로나 전체가 까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로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던 점이 있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월드컵 우승으로 인해 스페인 축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 의무적인 휴가 한 달이 주어지게 되어 팀의 주축을 차지하는 스페인 선수들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팬들은 바르셀로나 2군 멤버들을 보러 간 게 아니라 메시 이외에도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비야, 카를레스 푸욜, 제라르 피케 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보러 간 것이다.[70] 메시는 첫 인터뷰에서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며 믹스트존 인터뷰 거부, 출전 번복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첫 인터뷰는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을 거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대한민국까지 날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상황이었고, 피곤하다는 발언도 시차 적응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피곤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뛰겠다" 정도의 발언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있다. 심지어 메시가 북한, 남한도 구분 못한다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퍼졌는데 메시가 컨디션 난조로 "지금이 몇 시인지,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피곤하다."고 농담조로 한 발언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메시 뿐만이 아니라 다니 알베스 역시 언론의 날조로 태도 논란에 휩싸였으나 실제 증언으로는 오히려 가장 친절한 선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바르셀로나의 태도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지만 당시 언론 역시 바르셀로나에게 심하게 편향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음 날 연습 경기와 그다음 인터뷰에서는 상당히 밝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산책 중에 우연히 한국 팬들이 메시를 찍으려고 할 때 메시는 오히려 이러한 팬들의 모습을 찍으며 엄지척을 날렸다. 무엇보다도 결과적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기대에 못 미치게 15분만 뛰었지만[71] 4분 만에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이며 경기를 본 한국 팬들에게 부족하게나마 화답했다. 또한 이때 메시를 조항보다 적게 뛰게 한 것은 메시의 컨디션이 심히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당시 경기 화면을 유심히 보면 나가면서 토하는 메시를 볼 수 있다.[72] 그럼에도 여전히 사전 계약대로 하지 않았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2019년 7월 라이벌이라는 선수가 방한하여 경기 준비를 위해 인터뷰 거부, 행사 불참은 기본 정작 계약상 뛰어야하는 경기마저 벤치에만 앉고 불참한데다 분노한 관중이 메시를 외치자 적반하장 태도, 귀국 후 약올리는 듯 한 영상을 올리며 큰 논란에 휩싸이면서 각종 축구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지상파 뉴스에서까지 완벽하게 메시 방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메시가 당시 방한 후 소감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사실이 뒤늦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글에는 감독의 결정으로 경기에 아예 못 나갈 뻔했지만 결국엔 뛸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한국 팬이 많아서 기쁘고 놀랍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문 메시는 경기에 못 뛴 것에 정말 어쩔수 없는 건강 상의 사정이 있었는 데다, 어차피 뛰던 말던 위약금을 물 상황이었음에도 감독의 명령까지 거스르고 조금이라도 뛰게 해달라고 한 것은 오히려 대단한 프로 의식이라고 칭찬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 브라질의 언론 '글로부이스포르치'에서 2015년 FIFA 클럽 월드컵을 맞아 낸 기사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낸 기사지만, 리버 플레이트가 메시 영입을 결정했다고 가정한 후의 몇 가지 평행 세계를 제시해 본 것이다. 예를 들어서 메시가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한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든지.메시의 평행 우주.
  • 2010년 6월 26일 기사에서는 자신이 영국의 밴드 오아시스의 광팬이라고 하면서 이번에 월드컵을 우승한다면 축하파티에 오아시스를 불러오고, 다시 재결합하게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메시가 밝히길 오아시스와 관련된 내용들은 모두 영국 언론이 지어낸 구라라고 한다.
  • 리오넬 메시가 막 데뷔했었을 때, 한국에서는 박주영보다 못할것 같다는 반응이 남아있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리오넬 메시의 패스를 받는 어시스트로 골을 기록한 아시아 출신 축구선수가 바로 박주영이다. 그런데, 이게 다름아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기록한 아르헨티나전의 자책골이다.#
  • 안토니오 카사노의 차남인 리오넬 카사노의 이름은 메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자 자신의 우상인 메시의 이름을 따서 아이를 '리오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아이가 메시처럼 되는 건 불가능할 테니 나만큼만 축구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카사노처럼 되는 것도 결코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 유별나게 관중난입의 타깃이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관중난입계의 전설 아닌 레전드 지미점프에게 습격당해 그 패기에 눌린 듯 고분고분하게 있다 모자를 선물하고 볼키스를 날린 채 도망가는 그를 보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3년 2월 6일 스웨덴과의 평가전 때는 경기 종료 일보직전에 한 팬이 난입하더니 포옹을 하고 이마키스를 날린 뒤 도망쳤다. 이마 키스 후 울상이 되어 유니폼으로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멘붕하는 표정에 사람들 반응은 "가여운 것."
    파일:/image/045/2013/02/07/201302070038_59_20130207104840.jpg
  • 2013년 3월 27일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볼리비아전을 치르면서 하프타임부터 고지대 특유의 산소부족에 의한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를 보이며 골골거리다가 경기 종료 후 고산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갔다. 그러나 그 다음날 걱정하는 팬들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인증샷으로 찍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 2013년 10월,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 데포르티보에 따르면 의하면 올여름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메시를 데려오기 위해 제시한 이적료가 무려 2억 5000만 유로(약 3633억)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가레스 베일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기록한 역대 최고 이적료 1억유로(약 1453억)의 2.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렇게까지 거액을 불렀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메시에게 자사 제품을 입혀 홍보하려던 아디다스에서 그 돈을 부담, 정확히는 투자한다는 것이었기에 가능했지만. 바르셀로나 측이 즉시 거절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로셀 회장은 이미 베일을 두고 선수들의 이적료 관련 의문이 불거지던 때에 “바르셀로나의 모든 선수들은 떠나고 싶다면 자신의 의지대로 떠나도 된다, 단 메시만큼은 절대 안된다"라고 할 정도로 메시만큼은 절대로 이적 못 시킨다고 단단히 못 박아두었다.[73] 여기서 한술 더 떠서 만약 메시를 데려가고 싶다면 적어도 5억 8천만 유로(약 8,612억원)를 내야하는데 이 돈을 준다 해도 안 보낼거라고 아예 확인사살까지 했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에 100M에 팔렸는데 메시를 사가려면 580M 이상 내놓지 않으면 절대 안넘기겠다는 소리다. 일단 바르셀로나와 메시의 계약에 명시된 바이아웃은 위의 2억 5000만 유로지만 56% 세금까지 몽땅 내놓아야 된다는 것이 바르사의 조건. 이정도 금액이면 웬만한 소규모 구단을 아예 사들일수 있는 거액에다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급 이상의 중견급 국가대표팀 엔트리 멤버를 모두 구매하고도 돈이 남는 거액이다 선수 본인도 유소년 시절부터 자신이 뛰었던 팀을 떠날 의사가 없음을 언제나 표력하고 있었다.[74]
  • 2014-15 시즌 초에 바르셀로나를 떠나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 보드진과의 마찰 및 지난 시즌의 각종 악재 등으로 팀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 이 때 메시를 잡은 사람이 바로 티토 빌라노바였다. 빌라노바는 당시 으로 투병 중이었는 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수척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방문을 만류했지만 메시가 팀을 떠나려 한다는 회장의 말을 듣고는 그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절친인 핀투와 함께 병문안을 왔던 메시는 은사인 빌라노바의 수척해진 모습에 놀랐으나 "감독님, 저 떠나요."라고 이적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빌라노바는 메시에게 절대로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고 강권했다. 메시는 가족을 제외하면 빌라노바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빌라노바는 메시가 돌아간 뒤 1주일 뒤에 작고하고 만다. 이 때 메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장례식장에서도 슬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장례식 다음날 메시는 바로 재계약 문서에 싸인했고 그 다음 시즌 바르셀로나는 또 한번의 트레블을 이룩했다. 이후로도 타 구단과 링크가 나고 있으나 빌라노바와의 일을 들어 망설였다고 한다.
  • 2013년 7월 25일 건강 악화로 감독에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의 뒤를 이어 차기 감독으로 헤라르도 마르티노가 선임되자 메시가 감독을 임명했다는 논란이 생겼다. 메시와 마르티노가 같은 아르헨티나인이고 메시는 스페인 국대 제의를 거절한 채 조국 아르헨티나를 택하고 팀의 만류에도 올림픽에 출전해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던 선례가 있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다[75] 바르셀로나 차기 감독 후보로 루이스 엔리케[76] 마르티노 중 마르티노에게 존경의 말을 한 것이 그 이유.[77] 그러나 본인은 마르티노를 (사적으로) 알지도 못하고[78]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그가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파라과이 대표팀에서 좋은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는 국가대표팀과 메시에 관해서 무수한 음모론적 접근들(대표적으로 불화설이라거나, 메시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선수나 감독 등의 선임에도 간섭하며 막 나간다는 식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 중 에베르 바네가의 국가대표팀 탈락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반론에 해당한다.
  •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2014년 3월 루마니아와의 평가전에서 프리킥 한 번 차고 나서는 곧바로 구토를 심하게 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잦은 구토로 고생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메시가 위암 같은 큰 병에 걸렸거나 기타 다른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79] 이후로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해발 3000m 에콰도르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데 실제로 2018년에 인터뷰에서 언급하길 지난 몇 년간 초콜릿과 탄산음료를 즐겨먹다가[80] 지금은 그런 음식들을 끊고 생선, 고기, 샐러드 등 체계적인 식단으로 관리받으면서 몸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10년 전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살이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 휴가 중에 보트 위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이 찍혀서 요한 크루이프지단처럼 애연가가 아니냐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그건 담배가 아니라 사탕이었다.
  • 2014년 11월 23일 라리가 12라운드 세비야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라리가 최다골을 경신했다. 두 번째 득점 후 동료들이 모여 헹가래를 쳐주었고, 메시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세레머니를 장식했다.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함께 바르사에서 준비한 헌정 영상감상했다. 그 후 파씨오는 덤.
  • 2014년 11월 26일 UEFA 챔피언스 리그 5경기 아포엘전에서는 라울 곤살레스의 챔스 최다골 기록을 넘어섰다. 이경기 또한 해트트릭이었다. 같은 해 12월 8일 에스파뇰전에서 까탈루냐 더비 최다골 기록도 해트트릭으로 갈아치웠다. 축팬들은 기록은 해트트릭으로 깨는 변태라 카더라.[81][82]
  • 가봉에서 그의 태도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던 적이 있다. 사건의 연유는 다음과 같다.

    파일:external/a.espncdn.com/fc_messi_rh_1296x729.jpg
    Lionel Messi dressed 'like he were going to a zoo' - Gabon political party
    예의를 갖추지 않고 가봉 대통령을 만났다는 이유로 구설에 올랐다. 메시는 2015년 7월 아프리카의 가봉을 방문해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데 메시는 흰색 티셔츠에 청반바지 차림의 너무나 편안한 복장이었던 것. 설상가상 메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등 태도가 불량했다고 한다. 가봉 정당 UPG에서는 성명을 내고 “메시는 마치 동물원에 가는 차림으로 왔다. 그는 면도도 하지 않은 지저분한 얼굴로 와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었다. 마치 땅콩을 던져줄 것처럼 보였다. 메시 같은 억만장자가 대통령을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에 예의를 갖추지 않고 나타났다. 가봉은 동물원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위의 가봉 대통령 관련 구설수에 대한 반박글이 올라왔다. 요약하자면 원래는 가봉 대통령이 메시를 초대한 것처럼 알려졌으나 바르셀로나의 전 동료인 사무엘 에투가 자선 행사 관련으로 그를 초대한 것. 인권단체와 가봉내 야당 측으로부터는 오히려 메시의 태도보다는 독재자 알리 봉고[83]와 함께 사진을 찍고 어울리는 것은 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 깠다고 한다. 누구는 무시했다고 까고 누구는 지지했다고 까고 에투의 초대로 방문한 것이 가봉 대통령에게 알려져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해석이다. 위 뒷짐진 사진에 대해 세계의 네티즌들은 "한 나라의 수반을 만나며 저런 태도를 보인 것이 좋지는 못한 일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으나 이는 이 반박글이 올라오기 전 반응이다.
  • 호나우지뉴와 네이마르, 그리고 메시 세 사람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다. 07-08 시즌 비야레알 CF코파 델 레이 8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PK를 얻어냈는데, 전담 키커였던 호나우지뉴가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하던 메시에게 PK를 양보했고 메시는 아쉽게도 실축하고 말았다. 그리고 7년 후, 다시 비야레알 CF와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에서 메시는 자신이 얻어낸 PK를 네이마르에게 양보했고, 이번에도 똑같이 네이마르는 실축했다.
  • 2011년 6월 아르헨에서 벌어진 섹스 파티[84] 참가해서 플스하고 나왔다고 한다.
  • 2011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직후 일본 개그맨들에게 습격당했다. 지들 딴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모셔왔다고 별의 별 호들갑을 떨며 방송했으나, 우승 세리머니 도중 끌려나온 메시로서는 웬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지들끼리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낄낄대니 어이가 가출할 수밖에. 메시의 표정은 말 그대로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였는데, 여기서 한술 더떠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인 메시에게 "은퇴하면 뭐 할 거임?"이라 묻는 병크까지 있었다.[85] 메시는 "아직 멀었고 생각해본 적 없다"라 짤막하게 대답하고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 대회 주최 측과 사전 합의도 없이 거의 납치 수준으로 끌고 와서는 막무가내 진행을 했고 페널들의 병크로 메시 팬들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 메시가 가히 무시무시한 전적과 개인 기록으로 인해 역사에 다시 없을 완벽 그 이상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지만 딱 하나, 월드컵 우승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흠결로 치부된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하기만 한다면 반론의 여지 없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를 제치고 역대 최고의 선수로 기록될 것이라 확신하는 평론가들도 많이 존재한다.[88] 본인도 월드컵 우승에 대해 강한 열망을 보였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들들 볶이기도 해서인지 타국의 팬들 뿐만 아니라 타국 선수들까지도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하는 게 보고 싶다"고 그를 응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고통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내 발롱도르와 기꺼이 바꾸겠다고 말했고 프랭크 램파드도 슛포러브에 출연해서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하는 그 날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라고 했다.
  • 요아힘 뢰프 독일 축구 대표팀 감독은 메시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메시가 참가한 최근 세 번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모두 독일에게 탈락했는데, 그중 최근 두 번을 뢰프의 독일에게 패하고 탈락했다. 그나마 뢰프가 감독이 아니었던 독일 월드컵에서조차 뢰프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로 있었다. 브라질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만나 고군분투했지만[89] 연장 승부 끝에 마리오 괴체에게 한 방을 맞아 결국 아르헨티나는 준우승에 그쳤다. 그런데 이는 뢰프의 전술이 성공한 게 아니라 곤살로 이과인의 대삽질이 뢰프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 메시를 은퇴 선언하게 만든 주범이 다름아닌 루이스 세구라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회장이다. 원래 아르헨티나의 축구협회 회장은 훌리오 그론도나(1931~2014)가 했었고 그때까지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나 훌리오 그론도나가 2014년 7월 30일 노환으로 타계하자 임시로 루이스 세구라가 담당했는데 루이스 세구라 이 인간 비리가 극에 달한 인물이다. 세구라의 비리에 치를 떤 것이 메시가 더 이상 국가대표에서 견뎌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 은퇴 선언을 번복한 후 복귀한 이후부터는 팀메이트이자 절친인 곤살로 이과인과 둘이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후 메시는 19-20 시즌 전반기까지 털보였다.
  • 2016년 메시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를 만류하며 [[http://cafe.daum.net/dotax/Elgq/1324051?q=%B9%CC%C4%A3%20%B0%C5%20%B0%B0%C0%BA%20
[1]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 국적이 있고 스페인이탈리아의 국적도 갖고 있는 삼중 국적자이다. 스페인 국적법에 의하면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던 국가 출신 이민자가 2년 이상 스페인에서 거주할 경우 국적과 영주권을 준다. 이 때문에 스페인 리그에서 뛰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 축구 선수 대부분은 스페인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라리가의 비유럽 쿼터제(한 클럽에서 비유럽 선수를 최대 3명까지만 사용할 수 있는 규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이탈리아 국적 보유는 아래 기록되어 있는 이탈리아계인 증조 할아버지 덕분. 친구인 앙헬 디 마리아와는 스페인 국적이 있고 없고의 차이밖에 없다.[2] 파리 생제르맹 FC 공식 프로필[3] 폴스 나인 역할의 중앙 공격수는 물론, 프리롤 공격수 역할의 투톱 중앙 공격수세컨드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다. 현재는 주로 4-3-3 포메이션에서 프리롤 공격수 역할의 오른쪽 윙어로 뛴다. 2선과 전방,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움직이며 플레이메이킹과 득점을 노린다. 기본적으로 포스트 플레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공격수 역할이 가능할 정도로 공격 재능은 천부적이다.[4] 당시 테르세라 디비시온(4부 리그) 소속. C팀은 2007년에 해체되었다.[5] 2022년 6월 6일 기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및 최다 득점자, 남미 A매치 역대 최다 득점자.[6] 2022년 8월 7일 클레르몽전까지 기록. 현역 선수 중 득점 기록 2위. 은퇴한 선수까지 포함 시 호날두(815골), 호마리우와 함께 역대 2위.[7] 전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팔로워 수를 보유하고있다. 1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8] 2005년부터 2008년까지 18번과 19번을 번갈아가며 달았다.[9]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30번, 그후 2006년부터 2007-08시즌까지는 19번을 달았는데, 그 당시 10번의 주인은 호나우지뉴였다.[10] 데뷔 때부터 2009-10 시즌 초반까지는 드리블과 득점력이 좋은 윙어였으나, 2009-10 시즌 중반부터 2013-14 시즌까지 폴스 나인 역할의 중앙 공격수로 뛰었으며, 루이스 수아레스가 이적해 온 2014-15 시즌부터 2016-17 시즌 까지에는 프리롤 공격수와 측면 플레이메이커 역할의 윙어로, 2017-18 시즌부터 2018-19 시즌에는 수아레스와 투톱 센터 포워드로 뛰었다. 현재는 다시 프리롤 공격수와 측면 플레이메이커 역할의 윙어로 뛰고 있다.[11] 발롱도르 7회, FIFA 올해의 선수와 유러피언 골든슈는 6회 수상. 2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각각 5회, 5회, 4회 수상했다.[12] 체 게바라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로사리오는 18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 무렵 이민자들이 모이면서 커진 도시인데,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였다고 한다.[13]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사람들의 거의 절반이 이탈리아인이었을 정도로 아르헨티나에서는 이탈리아계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스페인 이민자들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인 중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의 이탈리아인 조상을 둔 사람이 전 국민의 62.5%에 달할 만큼 이탈리아계의 비중이 높다. 이탈리아계 성씨를 가진 유명 선수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클라우디오 카니자, 하비에르 사네티, 디에고 시메오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등이 있었고, 현역으로는 메시를 비롯해 앙헬 디마리아, 마우로 이카르디, 지오바니 로셀소(이 셋은 같은 로사리오 출신이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에세키엘 라베시, 하비에르 파스토레, 루시아노 비에토, 파울로 디발라 등이 있다. 현직 대통령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교황도 이탈리아계이다.[14] 메시 입장에선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은인인 셈이라 그런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메시가 굉장히 슬퍼했다고 한다. 또한 메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골을 넣을 때마다 하고 있는, 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세리머니가 바로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골을 바친다는 의미라고 한다.[15] 위 사진에서 아래에 가운데 소년이 메시이다.[16] 이 시절 메시는 하루에 10시간이나 축구 연습을 했다고 한다.[17] 1947년생 스페인의 축구선수이며 카탈루냐 출신으로 FC 바르셀로나 원클럽맨이다. 1981년 선수은퇴하고 지도자가 되었으며 FC 바르셀로나 코치, 감독, 이사회에서 일했다. 2010년 FC 바르셀로나 회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이후에는 팀의 기술고문이 되었다.[18] 이 계약서가 없었다면 이후 FC 바르셀로나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19] 하지만 메시는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이걸 실제로 본 적은 없다고 한다.어찌보면 당연한것이 당시 메시는 13세였기 때문에 이적에 관한 부분은 전적으로 메시의 아버지인 호르헤 메시가 담당했다.[20] 이 계약은 이후 바르셀로나의 육성 정책을 바꾼 계약이기도 하다. 자국인 유소년들을 육성하는 기존 방침에서 해외로 눈을 돌려 전 세계의 유망한 유소년들을 수집하는 방향으로 육성 정책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된 선수들 중 우리가 잘 아는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도 있다.[21] 관련링크 1, 2, 3, 4, 5, 6, 7, 8 메시를 제외한 역대 선수들 중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그나마 펠레, 마라도나와 비견되지만 일반적으로 펠레, 마라도나와 크루이프가 완전히 같은 레벨로 놓이지는 않는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크루이프조차도 마라도나를 평하며, “선수로서는 녀석에게 당해낼 수 없지.”라고 꽤나 순순히 인정했다. 보통 크루이프는 여러 매체에서 펠마메 다음인 4~5위 정도로 평가받는다.[22] 한준희 해설위원을 비롯해 몇몇 해외 전문가들은 이런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서 메시를 마라도나보다 위대한 역대 2위의 선수로 평가하기도 한다.[23] 나이를 먹고 내려와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과거 폴스 나인으로 뛰던 시절처럼 스피드로 수비라인을 부수는 모습은 보기 드물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순간 가속도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파일:F8049588-C6D1-4781-858F-8F702FCACC71.jpg 메시의 가속도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ESPN SPORTS SCIENCE에서 측정한 2015년 코파 델레이 골 과정에서 드리블 칠 때의 가속도가 NFL의 스피드 스타 JAMAAL CHRLES와 동등한 수준으로 측정되었다. 심지어 메시는 공을 몰고서 저런 속도가 나온 것이기에 분석가도 그것을 감안해 메시의 가속도를 더 우위로 보았다.# 메시의 순간 속도는 세계 정상의 피지컬 리그인 NFL의 최상위권 선수의 순간 속도와 비교해도 오히려 우위를 점하는 수준인 것이다.[24] 메시가 강한 슈팅보다는 정교한 슈팅을 선호하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종종 보여주는 엄청난 중거리 골들과 프리킥 득점 장면을 보면 강력한 발목 힘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25] 작은 키 때문에 메시의 피지컬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키는 드리블러로서는 상당한 강점으로, 키가 큰 선수들에 비해 낮은 무게중심을 지닐 수 있고 빠른 방향전환과 순간 가속도를 내는 데에는 키가 작은 것이 더 유리하다. 또한 메시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26] 2009-10시즌부터 공식 MOM을 선정하기 시작했는데, 메시가 220경기 가량으로 1위, 2위는 호날두로 130경기 가량.[27] 60경기 73골[28] 60경기 73골 29도움, 102공격포인트[29] 69경기 91골[30] 본격적으로 신계에 진입했던 2009년부터 트레블의 코앞까지 갔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2019년까지만 잡아도 10년이라는 기간이 나온다.[31]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조차도 전성기 시절에도 골은 안넣고 애무만 한다고 까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미드필더 라인을 바탕으로 항상 경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말이다.[32] 2015/16시즌부터 2020/21시즌까지 6년간 챔피언스리그 8강-8강-8강-4강-8강-16강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였다. 꾸준히 8강 이상은 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수도 있으나, 세계 축구계의 정점에 있다는 레바뮌이라는 클럽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너무도 아쉬운 성적이다. 게다가 패배한 경기들도 1차전까지 앞서나갔던 것을 2차전에서 역전 당하거나, 다득점 차로 패배하는 등 패배한 경기들의 임팩트가 너무 컸고 팀 전체가 멘탈이 나간 듯 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비판받고 있다.[33] MSN으로 2년 연속 8강에서 탈락한 루이스 엔리케, 안이한 전술로 2년 연속 상대팀에게 기적을 선사한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등 감독의 문제도 있었으며 로마의 기적에서의 제라르 피케사무엘 움티티, 안필드의 기적에서의 조르디 알바세르지 로베르토, 리스본 쇼크 에서의 넬송 세메두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등 수비진들의 실책도 아쉬웠다. 그러나 로마, 리버풀과의 2차전에서 한 골만 더 넣었으면 진출이 확정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메시를 비롯한 공격진들도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렵다.[34] 2017/18시즌 리그 무패를 이어가던 상황에서도 경기력은 불안불안했었고 메시와 테어슈테겐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면이 강했다. 오죽하면 이 당시 바르셀로나의 공격 전술은 리오넬 메시, 수비 전술은 테어슈테겐이라는 농담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을 정도이다.[35] 부계 직계도 아니고 이렇게 혼인을 통해 모계로 간접적으로 연결되면 촌수가 무의미해진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상복을 입는 가까운 친척이 부계 8촌 이내이다.[36] 물론 구단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간 건 아니고 구단에선 끝까지 반대했지만 그 당시 부임한 신임 감독 예정자였던 펩 과르디올라가 보내주는게 나을 것 같다고 구단과 메시 사이를 중재해서 감독의 허락하에 다녀온 것이다.[37] 2019 발롱도르 시상 기념 인터뷰에 따르면 메시는 스스로 전형적인 골 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며 골을 넣는 것 이외에 플레이 메이킹을 잘한다는 역할에 만족감이 크다는 인터뷰를 여러번 한 바 있다.[38] 메시가 매 경기 선발되려는 욕심이 강하다는 것은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일이며 루이스 엔리케와 불화설이 터진 원인 역시 엔리케가 그를 교체 아웃시키려 하자 메시가 따봉을 시전하며 그의 지시를 무시했다는 것에서 출발한 게 원인이었다. 이 당시 당사자들인 엔리케는 원래 교체 전에 선수 의사 물어보고 교체한다고 해명했고 메시는 선수 교체는 감독님의 권한이며 항명할 의사가 없었고 감독이 원하면 언제든 교체시킬 수 있는 게 당연하다고 해명하며 불화설을 봉합했다.[39] 국대의 경우 월드컵에서 준우승 밖에 못했다고 메시가 국민들의 원망을 다 뒤집어썼고 클럽팀인 바르셀로나도 전 시즌 무관에 그친데다 오만가지 논란이 다 터지고 감독 티토 빌라노바가 투병 중 사망하는 등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거기다 해당 시즌에도 전반기 바르셀로나가 연이은 패배로 욕을 먹은데다 메시 본인은 신임 감독과 불화설이 터지는 등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40] 2017년 연말 아디다스에서 'Calling all Creators' 광고 캠페인에 등장했는데, 당시 같이 나온 엔도서들이 죄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스포츠 스타들이거나(제임스 하든, 데미안 릴라드, 본 밀러, 애런 로저스, 디안드레 홉킨스, 크리스 브라이언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등등. 스포츠 스타 이외에는 퍼렐 윌리엄스가 등장), 미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데이비드 베컴처럼 영국인이거나 폴 포그바처럼 당시 잉글랜드에서 뛰는 스포츠 스타가 등장했다. 한마디로 영어가 안 되는 메시를 앉혀놓고 영어로 능욕을 준 셈.[41] 성인팀 합류 후 본격적으로 에이스에 등극한 첫 시즌이기도 했던 08-09시즌 당시 팀이 6관왕을 기록하며 기념으로 열리는 축하 행사에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서는 팬들 앞에서 카탈루냐어로 연설을 하는 걸 보면 사실인 듯하다.# 평상시와 달리 완전히 꽐라가 돼서 방방 뛰는 메시를 보고 배꼽 잡는 동료들은 덤이다.[42] 예전에 화제가 된 중국 짝퉁 마티즈를 제작한 회사이기도 하다.[43] 대체로 메시가 수염을 깔끔히 밀었을 때 아르헨티나의 국제대회 성적이 더 좋았다.(2014 월드컵 준우승+골든볼, 2021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반대로 메시가 수염을 길렀을 때의 아르헨티나는 힘을 영 못썼다.(2018 월드컵 16강 탈락, 2019 코파 아메리카 3위+메시 본인의 퇴장)[44] 참고로 이 사람,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일 때 우승하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랜드마크에서 나체쇼 하겠다고 하자 그럼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한 사람이다.#[45] 어렸을때 메시가 안토넬라를 짝사랑했었다보니 메시가 몇번 편지를 쓰기는 했었다고 한다.[46] 이때의 일을 잘 밝히지 않다보니 우리나라 언론이나 해외 몇몇 언론에서는 안토넬라의 남자친구였다는 식으로 오보를 내기도 했었는데, Ursula Notz라는 여자분이었다.[47] 메시가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에 잔류하지만 클럽의 현 상황에 대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을 확실하게 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이상) 계약이 만료되고 FA로 이적을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지만 그때도 메시의 부성애와 가정 상황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에 이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48] 너무 어려서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다가 아빠의 기자회견이 끝날 쯤에는 지루했는지 엄마폰을 만지고 놀고 있었다.[49] 개인방송이 나간 시점인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모든 리그들이 중단돼서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 생일이 되었다.[50]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리모컨 가지고 싸우거나 메시가 자기 두고 딴 사람하고 방 쓰지 말라고 전화했다거나 하는 등 코믹한 일화들이 많다.[51] 세스크의 부인이 메시의 아내인 안토넬라와 절친인 것도 있다.[52] 호나우두, 호마리우,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네이마르, 다니 아우베스와 같이 수많은 브라질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클럽의 위상을 드높였다. 덕분에 필리페 쿠티뉴하피냐와 같은 후대 선수들도 바르셀로나를 드림 클럽으로 생각하는 등, 브라질에서 바르셀로나의 인기는 상당한 편이다.[53]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두 나라의 축구 라이벌 감정은 무지막지하게 격해서 과장 좀 보태면 한일전이 귀여워 보일 수준의 라이벌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서로 상대 선수들을 좋게 보는 것은 고사하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단 것만으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판국이다.[54] 셋 중에서 가장 적은 응답을 기록했다.[55]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의 입후보 투표에 괜히 5년간 유예기간을 두는게 아니다.[56] メッシ気持ちいい(메시 기분좋아~), メッシも、アンファも、二十五歳(메시도, 앙파(해당 세안제의 회사)도, 25세)[57] FM 2011에선 피지컬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라이벌 호날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58]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한 사람에게 국적을 부여하며 국적포기 방법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메시는 이탈리아계 혈통에 따라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했으며 스페인 국적법은 스페인어권 국가 출신자가 스페인 영내에 2년을 체류하면 손쉽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59] 브라질 대표팀에서 리더십이 제일 좋은선수는 치아구 시우바다니 아우베스이다. 네이마르는 PSG에서 주장단에도 못들고 있다.[60] 다만 케인은 소속팀에서도 부주장을 맡을 정도이다. 물론 짬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케인 자체의 리더십도 꽤 뛰어나다. 다만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리더십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리버풀 FC의 주장인 조던 헨더슨이 더 주장에 적합다는 평을 받으며 실제로 대표팀의 부주장인 헨더슨이 실질적인 리더롤을 수행하는 중이다.[61] 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PSG와의 8강 2차전에서 나온 장면인데, 메시가 부상으로 선발 출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바르셀로나가 0:1로 뒤지고 있자 교체 투입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메시가 교체 투입되자 좋지 않은 경기력을 펼치고 있던 바르셀로나가 각성하며 동점골을 작렬, 원정 다득점으로 4강에 진출하게 된다.[62] 첼시는 수비라인을 완전히 내려놓고 공격수까지 수비로 가담시켜서 선수간의 간격을 촘촘하게 하는 이른바 10백 수비(일명 버스 세우기)에 능한 팀이라, 메시와 바르사의 플레이 특성상 가장 득점하기 어려운 상대이긴 하다.[63] 유망주 티를 온전히 벗지 못했던(REM 트리오 시절) 2007년 초에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만난 적은 있으나 크게 활약하진 못했다. 경기도 리버풀이 크레이그 벨라미욘 아르네 리세의 골로 원정에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고 이후 리버풀은 결승까지 진출했다.[64] 광탈한 2014/15, 유로파 2015/16을 제외하면 레알을 지겹게 만났다. 아틀레티코도 한번이다.[65] 그런데 이 액수는 연봉 1위 사무엘 에투의 절반 수준. 바르사와의 인연으로 헐값 계약하고 있다. 바르사는 재계약하며 연봉을 1250유로로 상승했다.[66] 30년 동안 이어진 탈레반과 정부군의 싸움으로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중 37%가 여성과 어린이이다. 그리고 450만 명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걸고 피난길에 올라있는 막장 국가다.[67] 소년이 유명해지자 메시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인간 말종들이 협박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지역 유지들까지 나서서 대놓고 "메시에게 받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소년을 납치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았다고.[68] 문제는 소년의 가족이 이슬람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하자라족이라는 것인데, 하필이면 탈레반의 공격 대상 중에 하자라족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파키스탄에서의 난민 생활도 더 버티지 못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로 이주해서 집에 숨어 지내는 처지였다고 한다.[69] 물론 막시마 소레기에타를 둘에 비교하기엔 결격 사유가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70] 비슷한 시기 레알 마드리드는 북미 투어에 월드컵 우승 멤버인 이케르 카시야스세르히오 라모스를 모두 포함시켰으며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는 출전시키지 않았지만 주요 행사에는 모두 참석시켰다. 경기엔 내보내지 않더라도 최소한 얼굴은 비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할 수 있다.[71] 30분 이상을 뛰지 않았으므로 위약금을 냈다. 그러나 0분을 뛰든 15분을 뛰든 위약금을 내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메시는 벤치에만 있지 않고 관중들을 위해 15분이라도 뛰었다.[72] 당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인터뷰에서 메시가 출전하지 않을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그 안좋은 몸을 이끌고 경기 나간다는 메시를 뜯어말리려고까지 했으나 실패.[73] 실제 2014-15 시즌 전후로 메시의 이적설이 잠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소시오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보드진 중 일부가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보드진에 앞서 소시오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일인 것.[74] 결국 메시는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연봉을 50%나 삭감하면서도 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어떻게든 팀에 남기를 원하고 있었다.[75] 그래서인지 메시는 클럽을 초월해서 국적이 아르헨티나인 모든 선수들과 친분이 깊다.[76] 마르티노와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중 하나였으나 셀타 비고의 감독이 된 지 6주밖에 지나지 않은 터라 3백만 유로(44억원)가량의 위약금을 문뒤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데다 같은 라리가 팀인 셀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탈락된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마르티노의 경질 후 2014-15 시즌부터 바르사를 맡게 되었다.[77] 마르티노 감독이 선수들 사이에서 인망은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8] 굳이 '사적으로'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는, 마르티노가 메시의 첫 소속팀이었던 뉴웰스 올드 보이스 최고의 레전드 선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의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마르티노의 광팬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적인 친분 관계는 없었더라도,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79] 실제로는 컨디션 난조와 스트레스가 겹친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축구라는 스포츠가 많이 뛰는 스포츠고, 강팀에서 뛰는 선수는 시즌 일정도 빡빡하다 보니 경기 중에 구역질을 하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다.[80] 실제로 메시 같이 어린 시절 가난한 남미 사람들은 단 음식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81] 파울리노 알칸타라의 바르셀로나 최다골,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엘 클라시코 최다골, 텔모 사라의 라리가 최다골, 라울 곤살레스의 챔스 최다골, 세자르 로드리게스의 카탈루냐 더비 최다골 전부 다 해트트릭으로 경신했다. 이 변태스러운 행각은 클럽 통산 400골을 한 골만 넣고 끝냄으로써 일단 마무리되었다. 이후 다시 이런 짓을 다시 하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82]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도 새로운 기록을 하나 작성했는데, 2021년 9월 10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펠레의 남미 A매치 역대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다.[83] 어떤 인물인지는 부정선거 논란 기사나무위키 가봉 정치 항목을 참조. 50년에 걸친 2대 세습이다.[84] 이름만 이런 거고 실제 붕가붕가하는 파티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야하게 입고 노는 파티라고 한다.[85] 일본 최고 인기 개그맨인 아카시야 산마가 한 질문이다.[86] 이중적인 의미. 재미있게도, 메시는 공격수, JJ 왓은 수비수이다.[87] JJ 왓은 196cm, 미국식으로 6' 5"이고 메시가 170cm, 미국식으로 5' 7"이다. 다만 나이는 메시가 2살 위.[88] 물론 월드컵 우승이 없더라도 메시가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보는 의견도 있고 월드컵 우승을 하더라도 여전히 펠레 혹은 마라도나가 더 우위라는 의견도 있다. 애초에 펠레, 마라도나, 메시 세 선수 사이의 순위는 논쟁도 많고 의견도 갈린다.[89] 그 대회 아르헨티나의 토너먼트 경기 중에서는 가장 경기력이 좋았다.